깜빵에서 재벌까지! 131화
- 예, 조 이사님.
“당신은 해고됐습니다.”
- 하, 그렇군요. 조 이사.
“왜요?”
- 명예회장님을 위험한 곳으로 이끌지 마세요. 당신이 올바르게 보좌하는 것이 당신의 일입니다.
권지용 이사의 말에 조 이사가 한껏 인상을 찡그렸다.
“됐습니다. 당신의 훈수 같은 건 필요 없습니다. 그보다, 당신 해고됐으니까 빠져.”
조 이사는 바로 전화를 끊고.
GK증권 사장에게 전화를 걸어서 오구광 회장이 자신에게 했던 말을 그대로 전한 후에 계약을 체결하라고 지시했다.
* * *
20분 후, GK증권 VIP 접객실.
기다리고 있던 권지용 이사가 아닌 증권사 사장이 내 앞에 앉았다.
나는 어리둥절한 척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증권사 사장에게 물었다.
“권지용 이사님은?”
“갑작스러운 급체로 제가 대신 계약을 마무리하게 됐습니다.”
내가 VIP 고객이라고는 하지만 증권사 사장이 직접 와서 계약을 마무리하게 될 줄은 몰랐다.
물론 내가 상급자 오라고 권지용 이사에게 소리를 지르기는 했지만 말이다.
‘급체?’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권지용 이사에게 무슨 일이 있는 것 같다.
“그래요?”
“예, 그렇습니다. 파생 상품 계약을 체결해 드리겠습니다.”
“계약서 내용도 확인하지 않습니까?”
내가 묻자 증권사 사장은 찰나의 순간 인상을 찡그렸다.
“하하하, 권지용 이사가 대략적인 파생 상품 내용을 제게 알려줬습니다. 급체가 있어도 인수인계는 확실히 해야 하니까요. 그래도 고객님께서 원하신다니 제가 세부적으로 확인하겠습니다.”
이제야 내가 요청한 파생 상품의 내용을 확인한단다.
‘알고 있다는 건데?’
권지용 이사가 설명했을 것 같지 않다.
‘혹시?’
모든 상황을 열어두고 나는 생각해야 한다.
‘몰래카메라도 설치되어 있나?’
만약 그렇다면 오구광 명예회장은 내가 권지용 이사의 조언을 수용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조바심이 났을 것이다.
‘조바심을 내는 쪽이 진다.’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계약서를 확인하고 있는 증권사 사장을 봤는데 힐끗 나를 보고 미소를 보였다.
‘말도 안 되는 계약이라는 것을 알지.’
그래도 파생 상품 계약은 체결이 되리라.
왜?
오구광 회장이 내게서 회수해야 할 돈은 900억이 남아 있으니까.
그러니 증권사 사장을 보낸 것일 터였다.
“투자에 성공할 가능성이 희박한 계약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요? 어렵다는 겁니까?”
내 물음에 증권사 사장이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저희는 이 파생 상품 계약을 체결해 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이 파생 상품을 투자하신 것은 오로지 최태원 고객님의 의지라는 것을 명시해야 할 것 같습니다.”
“실패할 수도 있다는 거네요?”
내가 왜 이렇게 다시 묻냐고?
오구광 명예회장을 살짝 놀리려고 이런다.
“모든 투자는 실패 확률이 존재합니다. 100% 성공하는 투자란 있을 수가 없죠. 그런 게 있다고 하는 사람은 사기꾼입니다.”
“그렇죠. 여기에 올 때까지는 투자를 꼭 해야겠다는 생각만 들었는데 권지용 이사의 말씀을 들으니 잠시 고민이 되네요.”
내 말에 인상을 찡그리는 증권사 사장이다.
‘계약을 체결하라는 명령을 받았구나.’
그렇다면 증권사 사장은 지금 심장이 벌렁거리고 있을 것 같다.
이 계약이 성사되느냐 마느냐가 그의 커리어와 직결될 테니까.
“사실 인제 와서 고민은 의미 없겠죠. 남자가 큰 꿈을 가지고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잘라야 하니까. 이 파생 상품 계약 체결해 주세요.”
이런 내 말에 이제야 안도하는 눈빛을 보이는 증권사 사장이다.
“예, 알겠습니다. 특약 사항 잘 확인하시고요.”
물론 내가 명시해 놓은 특약 사항은 1차 파생 상품 투입과 거의 똑같은 조건이다.
‘단!’
담보물로 제공이 될 드림랜드 사업 진행 토지가 시세가 아닌 공시지가로 계산된다는 사항만 추가했다.
“아무 문제 없는 것 같습니다.”
증권사 사장의 말에 나는 싱긋 웃어 보였다.
“그럼 됐네요.”
내 말에 증권사 사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내가 제시한 파생 상품 계약서에 서명했다.
‘3개월짜리 파생 상품 계약이지.’
이렇게 되면 나는 1997년 3월에 200억을 오구광 명예회장의 아가리에 쑤셔 넣게 된다.
‘입 크게 벌리세요, 명예회장님. 이제 돈 들어갑니다. 하하하!’
* * *
경제부총리의 집무실.
“민간 주도 신도시 개발 사업이라고 했습니까?”
건설부 장관과 이야기를 나누던 경제부총리가 건설부 장관에게 되물었다.
“예, 그렇습니다. 부총리님.”
“정부 주도 재개발 사업으로 판교 지역을 개발할 계획인데 왜 갑자기 민간 주도 신도시 개발 사업을 거론하시는 겁니까?”
경제부총리의 물음에 건설부 장관이 답했다.
“대통령 각하의 지지율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서민들의 자가를 보유할 수 있게 공급을 늘리는 방법밖에는 없습니다.”
“그건 정부가 주도해서 하면 됩니다.”
“예산이 문제입니다.”
“예산이 문제라?”
경제부총리의 되물음에 건설부 장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렇습니다. 당장 판교만 해도 그렇습니다. 토지 보상 금액만 해도 상상을 초월할 정도입니다.”
“그건 또 그렇습니다.”
“그러니 대통령님께 잘 말씀해 주십시오.”
이런 건설부 장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경제부총리가 건설부 장관을 불렀다.
“그런데 건설부 장관님.”
“예, 부총리님.”
“민간 주도 신도시 재개발 사업에 참여하겠다는 그룹이 있습니까?”
경제부총리의 물음에 건설부 장관이 슬쩍 어깨를 으쓱했다.
“뭐 정부가 발표만 하면 누구든 뛰어들지 않겠습니까.”
“민간기업이 주도하는 재개발 사업이면 아파트 가격이 폭등할 수도 있는데?”
건설부 장관이 경제부총리를 보며 말했다.
“그 부분은 정부가 명시해서 통제하면 됩니다. 하지만 이익이 있어야 주택 공급 활성화 계획에 동참합니다. 분명한 것은 최소한의 자금으로 더 많은 아파트를 공급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것도 서울 가까운 지역에요.”
이런 건설부 장관의 말에 경제부총리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건설부 장관이 다시 경제부총리를 봤다.
“요즘 한부 그룹 때문에 각하께서 골머리를 썩고 계시지 않습니까.”
한부 그룹 부실 대출 관련 사건에 대통령의 아들이 연결되어 있다는 뉴스가 계속 보도되고 있는 상태다.
“그러게요, 곧 특검이 열린답니다.”
“이렇게 되면 정권 교체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이대로 각하의 지지율이 하락하게 되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그래서 아파트 공급을 늘리자는 겁니까?”
경제부총리의 물음에 건설부 장관이 고개를 끄덕이곤 말했다.
“그래야죠. 만약에라도 정권이 교체되면 정치 보복이 없을까요?”
건설부 장관의 말에 경제부총리는 인상을 찡그렸다.
“대통령 각하께 꼭 진행되어야 한다고 말씀드려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 * *
1997년 1월 6일 제주도 서귀포에 있는 바나나 농장.
민주노총은 170개 노조 20여만 명이 참가한 가운데 2차 파업을 개시한단다. 나는 GK증권과 2차 파생 상품 계약을 체결한 후 권지용 이사가 그날 해고가 됐다는 사실을 다음 날에 GK 그룹 비서실장을 통해서 통보받았었다.
그리고 바로 권지용 이사를 만나려고 접촉을 시도했는데 거부당했다.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던 나는 이전에 한철 삼촌이 내게 했던 말이 문득 떠올랐다.
『내가 필요할 때만 나를 찾아와.』
그래서 여기에 왔다.
‘유리 온실이 엄청나게 무시무시하네.’
이 정도면 기업형 농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귀농한다더니 기농을 하려던 게 아닐까 싶었다.
기업형 농장이니까 기농이다.
“삼촌, 이게 수지타산이 맞을까?”
내 앞에는 한철 삼촌이 있고 그의 옆에는 행복해 보이는 누나가 앉아 있다.
“태원아, 이제 호칭부터 바꿔야 하지 않냐?”
“무슨 호칭?”
“내가 태원이 삼촌이면 개족보잖아.”
한철 삼촌의 말에 나는 피식 웃었다.
“재벌 3세 출신께서 상스럽게 그런 단어를 쓰실까?”
“재벌 3세는 무슨. 가짜 재벌 3세였지.”
나를 보며 웃는 한철 삼촌이다.
“이렇게 됐으니 호칭 바꾸자. 이제는 네가 나를 삼촌이 아니라 매형이라고 불러야지.”
한철 삼촌의 말에 나는 고개를 휘휘 저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거 아니거든, 그리고 나는 아직도 한철 삼촌이 도둑놈이라고 생각해. 지금은 누나의 눈에 콩깍지가 씌어서 이러고 있지만…….”
“게임 끝났어.”
대뜸 한철 삼촌이 내 말을 끊었고.
나는 그런 한철 삼촌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건 또 뭔 소리래?”
나도 모르게 살짝 긴장되는 순간이다.
한철 삼촌은 단호하게 대꾸했다.
“이제 나한테 매형이라고 불러야 한다.”
한철 삼촌은 내게 그렇게 말하고 주머니 속에 있는 지갑을 꺼내서 그 지갑 속에서 사진 한 장을 꺼내서 내게 보여줬다.
온통 새까매서 도통 알아보기가 힘든 사진이었다.
“뭐야 이거?”
“너 초음파 사진 처음 보지?”
한철 삼촌의 말에 멍해지는 순간이다.
이 상황에서 초음파 사진이라면 떠오르는 것은 하나밖에 없다.
“초, 초음파 사진?”
나는 말을 더듬으며 다시 한 번 사진을 확인했고.
한철 삼촌이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여기 오른쪽 끝에 톡 튀어나온 거 보이지? 그게 손가락이란다. 하하하!”
세상을 다 얻은 사람처럼 웃는 한철 삼촌,, 아니, 매형이다. 그리고 나를 바라보고 있는 누나는 수줍은 듯 웃고 있다.
“아…… 한철 삼촌! 아니. 매, 매형……?”
“그렇지. 매형이야, 매형, 하하하!”
나는 멍하니 두 사람을 번갈아가며 봤다.
1+1이 수학에서는 2가 되지만 인간사에서는 3이 되는 것이 당연하리라.
오한철과 내가 더 단단하게 묶이는 순간이다.
한철 삼촌과 나는 피 한 방울 안 섞였지만, 이제 피가 섞인 존재가 태어나 나와 한철 삼촌, 그리고 누나를 연결해놓을 테니까.
“응, 처남~ 그리고 혼인신고도 끝냈다. 하하하!”
내가 한철 삼촌에게 처남 소리를 듣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때 건장하게 생긴 남자가 차에서 내렸고.
우리 쪽으로 걸어왔다.
“사장님, 다금바리 구해왔습니다.”
건장한 남자가 한철 매형에게 말한 후 이내 나를 보곤 살짝 묵례했다.
‘독사 삼촌의 후배지.’
조폭이 된 후부터 회칼을 허리춤에 차고 다니는 사람이다. 그리고 나는 혹시라도 몰라서 이렇게 두 사람 주변에 보호할 수 있는 사람을 심어놓은 상태다.
『농장 근처 민가는 다 우리 쪽 사람이다.』
촉새 형이 내게 한 말이다.
『잘했네.』
『농장에서 일하는 사람도 50%가 독사 씨 부하고. 그런데 너무 오버하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
『혹시 모르잖아.』
『썩어도 준치인데?』
『썩어도 준치인 것을 GK 그룹도 알지.』
『그것도 그렇긴 하지.』
이내 한철 삼촌이 독사 후배와 펄떡이는 다금바리를 번갈아 보았다.
“수고했어요. 귀한 첫째 처남이 제주도까지 왔는데 다금바리 회랑 미역국은 먹여서 보내야죠. 하하하!”
한철 삼촌이 호탕하게 웃었다.
“예, 알겠습니다. 바로 회를 준비하겠습니다.”
저 남자의 회칼은 이제 사람을 해하는 용도로 쓰이지 않고 정말 회를 뜨는 용도로 쓰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