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빵에서 재벌까지! 171화
‘있는 자들의 것을 빼앗아도 충분히!’
누군가가 나 때문에 눈물을 흘려야 한다면 그것은 그때까지 부와 권력을 누렸던 똥들(?)이어야 한다.
“그런 것 같다. 지금 건설부랑 최종 보상비 협상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 토지 보상비와 함께 수목 보상비도 상당할 것 같다. 어떻게 재벌이 그런 잔머리를 쓰는지 모르겠다.”
맞다.
대한민국의 경제를 이끄는 재벌들이 잔머리를 써서 돈을 버니 대한민국 사람들은 대한민국 재벌을 존경할 수가 없는 거다.
“수목 보상비?”
“응, 그것도 대략 5,000억 이상 될 거라고 하더라고.”
5,000억이 누구 집 개 이름으로 변하는 순간이리라.
“그 돈 다 서민이 낸 세금이잖아.”
“뭐 따지고 보면 그렇지, 없는 서민들한테 세금 걷어서 재벌의 배를 채워주는 대한민국이네, 이러니 망하지.”
그런 면에서 보면 대한민국은 망해도 싼 나라다.
하지만 정말로 망하면 가장 피해를 보는 것이 결국 서민들이다.
차도명 이사는 처음에는 내가 했던 말들을 믿지 않으려고 했었다. 그런데 태국의 바트화가 폭락하고 인도네시아 루피화도 폭락하면서 외환 경제 위기는 태풍처럼 북상해서 대만을 덮친 상태다.
그리고 대만은 환율 방어를 포기한다고 공식 선언한 상태다.
거기다가 홍콩도 직격탄을 맞은 상태이니 이제 곧 거대한 외환위기의 태풍이 대한민국에 상륙하게 되리라.
“아직도 속이고 있지.”
이쯤이면 대한민국의 경제를 총괄하는 고위 공직자들은 대한민국에 치명적인 외환위기가 닥칠 거라는 사실을 직감하고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서 분주하게 움직일 것이다. 하지만 말해주지 않고 있다.
‘서민은 알고 대비라도 해야 하잖아.’
곧 외환위기가 닥칠 것이라는 사실을 서민들이 알았다면 단기적으로는 상상을 초월하는 혼란이 발생하겠지만, 서민들이 다 죽고 중소기업들이 줄도산하는 일까지는 어쩌면 막을 수도 있었으리라.
그런데 대한민국 정부는 여전히 국민을 속이고 또 모든 사실을 숨기고 있다.
‘대통령은 알까?’
알고 숨기고 있다면 사악한 존재!
경제 고위 공무원들의 말만 믿고 몰랐다면 끝없이 무능한 존재!
금융실명제 빼고는 잘한 것이 없는 대통령이 바로 그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다음 대통령이 될 사람도 대통령이 된 후에 잘한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대통령이 좋은 평가를 받기가 참 힘든 자리라는 건 인정한다.
하지만 나라와 국민을 이끌 능력이 없다면 애초에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지 말았어야 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뭘 그렇게 또 생각해?”
내가 가끔 생각에 잠길 때마다 나를 살피다가 내게 묻는 차도명 이사다.
“땅이야 없어질 수 없으니 토지보상은 받을 거야.”
“당연한 소리를 왜 해?”
내 말에 차도명 이사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옛날에는 나무로 땔감을 썼다지 아마.”
나는 차도명 이사를 보며 웃었다.
“뭔 소리래?”
* * *
강남에 있는 최고급 일식집 특실.
이런 최고급 일식집들은 일반인이 출입하는 입구와 특정 인원이 출입하는 입구가 따로 있기에 타인의 눈을 피해서 누군가를 만나려는 꿉꿉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애용하는 곳이기도 했다.
“9월쯤부터 토지보상에 돌입해야 하지 않습니까?”
GK 그룹 오구광 명예회장은 놀랍게도 이곳에서 은밀히 건설부 장관을 만나고 있었다.
꿉꿉한 정경유착이 바로 이런 모습일 거다. 그리고 이 둘의 관계는 아주 오래되고 익숙한 관계였고.
사실 드램랜드 사업을 오구광 명예회장이 계획했을 때부터 이들은 손을 잡은 상태였다.
“예, 토지보상 발표가 난 상태입니다. 명예 회장님 축하드립니다.”
건설부 장관이 오구광 명예회장에게 말했다.
“허허허, 이러다가 드림랜드 사업이 축소되면 타격이 큽니다. 내가 그래도 배포가 커서 아시아 최대의 종합 문화 시설을 그곳에 건설하려고 하는데 망하라고 하듯 딱 중간에 16차선 고속도로를 건설하면 어떻게 합니까, 하하하!”
오구광 명예회장이 건설부 장관을 보며 웃었다.
“2조쯤이라고 하지요?”
이런 건설부 장관의 물음에 오구광 명예회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예, 그렇습니다. 공시지가를 슬쩍 올려서 2조까지 토지보상을 받으실 수 있게 해놨습니다.”
“고맙습니다. 하하하, 그런데 수목 보상 계획은 어떻게 되고 있습니까?”
건설부 장관이 소리 내 웃고는 오구광 명예회장에게 물었다.
원래 국가가 토지를 수용할 때 토지의 가격만 지급하는 것이 아니라 토지 위에 세워져 있는 건물도 보상해야 한다.
그리고 그 지역이 과수원 같은 곳이 있다면 그 과수에서 생산될 과일들의 값까지 몇 년 치를 계산해서 보상하게 되어 있었다.
오구광 명예회장은 이걸 노린 것이다.
“제가 꼼꼼히 계산해 보니 대략 6,000억쯤 될 것 같습니다. 과수 이전 비용까지 하면 7,000억쯤 되죠.”
최태성은 5,000억쯤으로 판단하고 있었는데 2,000억이 플러스가 된 보상 금액이었다.
“고맙소, 나는 그 돈이 나오기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어요. 그 돈이면 GK 그룹의 부채비율을 확 줄일 수 있으니까.”
하여튼 오구광 명예회장은 10년 전부터 이 사악한 계획을 구상했고.
그래서 GK 화학 공장까지 창원으로 이전한 거였다.
‘아버지의 흠도 숨기고!’
막대한 자금도 확보하는 일이니 꿩 먹고 알 먹기이리라.
그래서 그 계획을 수립한 후부터 건설부나 대한민국 정치인들에게 많은 로비를 해온 그였다.
“아이고, 하하하! 그렇습니까?”
“그래요. 앞으로 모든 일이 잘될 겁니다. 하하하!”
오구광 명예회장이 자신만만하게 웃었다.
그의 머릿속에선 이제 GK 그룹이 승승장구하는 일만 남았다.
* * *
화성 인근에 있는 드림랜드 사업 예정지.
대규모의 놀이 시설이 건설될 사업부지인데 토목 및 건설사업을 위한 자재나 중장비보다 들판과 산에 빽빽하게 심어놓은 묘목들밖에 없었다.
“와…… 많이도 심어놨다.”
최태성의 운전기사를 하다가 김 과장 때문에 다른 일을 하게 된 칠성은 이곳에 와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저게 다 돈이 얼마야, 킥킥킥!”
칠성은 그렇게 웃다가 주머니에서 타는 모기향을 하나 꺼내 불을 붙인 후 묘목을 빽빽하게 심어놓은 곳에 잘 놓고 돌아섰다.
이렇게 되면 칠성이 이곳을 이탈한 후 화재가 일어나게 될 것이다.
원래 이 방식은 야산을 불태워서 잿더미가 된 후에 그다음 해에 고사리를 비롯한 산채를 더 많이 뜯기 위해 저지르는 짓인데 지금 칠성이 최태성의 지시를 받아서 그대로 하고 있었다.
“28번째 모기향~”
물론 이 지시를 내린 사람은 최태성이었다.
『방화는 엄청난 범죄입니다.』
『그렇죠.』
칠성은 최태성이 독일로 가기 전에 자신에게 지시했을 때를 떠올렸다.
『아이러니하게 내가 범죄를 저지르면 대한민국 국민이 행복해지네요.』
『예?』
『토지 보상비를 제외하고 수목 과수 보상비가 대략 5,000억쯤일 것으로 예상해요, 그 돈이 어디서 나올까요?』
『저야 잘 모르죠.』
『국민의 혈세입니다.』
『아!』
『재벌이 꼼수로 국민의 혈세를 슬쩍하면 안 되는 거죠?』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나는 모르겠다~”
자신은 그저 시키는 대로 할 뿐이다.
칠성은 최태성을 떠올리며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 * *
독일에 있는 호텔 앞 도로.
호텔 직원이 룸서비스를 들고 도로에 주차해 놓은 자동차 쪽으로 걸어왔고.
룸서비스를 들고 오는 호텔 직원도 왜 자신이 지금 이러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 눈빛이지만 자동차 앞에 서서 자동차의 창문을 조심히 두드렸다.
“금방 갈 겁니다.”
자동차 운전자는 GK 그룹 독일 지사 직원이었다.
“그게 아니고요. 드시면서 하시라네요.”
“예?”
호텔 직원의 말에 GK 그룹 독일 지사 직원이 황당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굶고 일하시면 안 된다고 하시네요.”
“예? 그게 대체 무슨 소립니까?”
GK 그룹 독일 지사 직원이 고개를 갸웃거렸고.
호텔 직원이 GK 그룹 독일 지사 직원을 보며 말을 전했다.
“한국인은 밥심으로 산다고 전하라고 하시네요.”
호텔 직원의 말에 최태성을 감시하던 두 명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들켰다…….”
* * *
1997년 8월 26일 아침, GK 그룹 오구광 명예회장실.
와장창창!
쾅쾅!
쨍그랑!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오구광 명예회장은 아침 뉴스를 보고 또 조 이사의 보고를 받고 분노해서 자신의 집무실에 있는 사무 물품들을 다 때려 부수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오구광 명예회장이 조 이사를 보며 소리쳤다.
“죄송하다고 될 일이야, 도대체 왜 갑자기 산불이 난 거야?”
칠성의 타는 모기약은 오구광 명예회장이 조 이사에게 지시해서 심어놓은 묘목밭들을 다 태워 버렸다.
그리고 화성 인근 지역에 상당히 큰 산불이 발생했기에 대한민국 언론들은 모두 그 사실을 보도했다.
“산불이 아니라 방화로 추정됩니다.”
조 이사의 말에 오구광 명예회장이 이마를 와락 구겼다.
“젠장!”
오구광 명예회장은 자신의 꼼수로 얻게 될 7,000억의 수익이 산불 때문에 한 방에 날아갔다는 생각만 들었다.
“명예회장님…… 그리고 오늘 건설부에서…….”
오구광 명예회장이 쉽게 입을 열지 못하는 조 이사를 보며 소리쳤다.
“건설부에서 뭐?”
“안타까운 일이나 과실수 묘목들이 전소했기에 과수 수목 보상비가 현저하게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대신 총력을 다해서 범인을 검거하겠다고 전해왔습니다.”
조 이사가 분노한 오구광 명예회장의 눈치를 살피며 말했고.
오구광 명예회장은 몸을 부르르 떨기 시작했다.
“지금 범인을 잡는 것이 중요해? 내 돈 7,000억이 활활 타버렸잖아. 누가 그랬냐고? 누가 감히!”
조 이사는 오구광 명예회장의 노성에 눈살을 찌푸렸다.
오구광 명예회장의 기분을 가라앉히기 위해 최대한 조심스럽게 말했지만, 그도 이렇게 불호령이 떨어질 것은 피할 수 없었다.
순간 오구광 명예회장은 최태성이 떠오를 수밖에 없었다.
“젠장, 그 도깨비 같은 놈인가? 정 이렇게 나오겠다는 거지?”
최태성의 얼굴이 떠오르자 소름이 돋는 오구광 명예회장이었다.
물론 아직 물증은 없었다.
따르릉, 따르릉!
그때 조 이사의 휴대전화가 요란하게 울렸고.
자신의 휴대전화가 울린 것에 오구광 명예회장이 또 난리를 칠 거라는 생각이 든 조 이사는 기겁했다.
“죄송합니다. 명예회장님.”
따르릉, 따르릉!
“그 전화 이리 줘.”
오구광 명예회장은 조 이사에게 전화를 건 사람이 최태성이라고 직감했다.
“…… 예.”
조 이사가 조심스럽게 오구광 명예회장에게 자신의 휴대전화를 내밀었다.
딸깍!
“너 최태성이지?”
버럭 소리를 지르는 오구광 명예회장이었다.
- 어떻게 아셨습니까?
“너지!”
만약 그렇다고 대답하면 죽여 버리겠다고 작심한 오구광 명예회장이었다.
- 무슨 소리세요?
“너지, 내 묘목밭에 불을 지른 놈이!”
지금까지는 잘 참았던 오구광 명예회장의 분노가 이렇게 터지는 순간이었다.
- 저라는 증거가 없죠. 그러니 전 아닙니다.
오구광 명예회장이 인상을 찡그리며 휴대전화에 소리쳤다.
“이…… 이 망할 놈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