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빵에서 재벌까지! 250화
태성빌딩에 있는 최태성의 집무실.
“그래요?”
나는 이 밤에 청송 교도소에 갇혀 있는 독사에게 전화를 받았다.
- 예, 갑자기 특별 접견을 나갔습니다.
지금 내 옆에 문동철 법무법인 대표가 있기에 오상철을 접견할 사람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가 왔다는데?”
- 교도관에게 알아봤는데 오종철 회장이 왔다고 했습니다.
독사 삼촌의 말에 나도 모르게 인상이 찡그려졌다.
“오종철 회장?”
- 예, 교도관에게 그렇게 들었습니다.
“알았어요. 이제 3개월 남으셨죠?”
- 예, 그렇습니다. 회장님. 그리고 감사합니다.
나는 독사 삼촌의 후배들(?)을 제대로 챙겨주고 있다.
‘태성 주류 유통!’
이 회사 하나만으로도 독사 삼촌의 조폭 후배들은 제대로 챙김을 받고 있으니까.
‘나중에는!’
태성 용역까지 만들어줘야겠지.
물론 은택에게 견제할 수 있는 단체를 만들라고 지시했고 현재 꽤 큰 단체가 구축된 상태지만 그런 은택을 또 견제할 존재로 독사 삼촌을 생각하고 있다.
모두를 견제하고 내게만 충성하게 만들어야 하니까.
“내년이면 태성 주류 유통의 사장님이 될 겁니다.”
-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럼 끊습니다.”
뚝!
나는 통화를 끝내고 문동철 법무법인 대표를 봤다.
“이 밤에 무슨 일일까요?”
지금부터 나는 오종철 회장의 입장이 되어서 생각하고 판단해야 할 것이다.
“오종철 회장이 제 사위를 만나러 청송까지 갔다는 겁니까?”
문동철 법무법인 대표가 인상을 찡그렸다.
“그렇다네요. 이 밤에 거기까지 갈 수밖에 없는 이유가 뭘까요?”
『허수아비가 됐다고 화가 많이 나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나는 이 순간 GK 그룹 비서실장이 언젠가 내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화가 많이 났어.’
허수아비로 전락했다고 오종철 회장이 생각하고 있다면 GK 그룹 관련 사업에 관해서 모르는 것이 많기 때문일 거다.
내가 생각하기에도 오구광 명예회장은 자신이 벌이는 사업을 오종철 회장에게 구구절절 말해주지는 않았을 것 같다.
‘설마 파생상품에 관해서도 몰랐던 거 아니야?’
오늘의 담판에서도 오종철 회장은 없었다.
“엄청난 일이 일어나는 것이 아닐까요?”
“그러니까요, 그 엄청난 일이 뭘까요? 두 아들이 같이 앉아서 꾸밀 음모가 뭘까요?”
이런 내 물음에 문동철 법무법인 대표가 답했다.
“음모를 꾸민다고 해도 절대 성공할 확률은 높지 않습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죠?”
문동철 법무법인 대표가 나를 보며 담담하게 말했다.
“그 집안에서 보유한 GK 그룹의 지주회사의 지분 대부분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오구광 명예회장이기 때문입니다.”
“지분 경쟁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예, 그렇습니다. 오구광 명예회장이 금치산자가 되지 않는 이상 반란은 불가능합니다.”
내가 고민했는데 문동철 법무법인 대표가 내게 답을 줬다.
“금치산자까지 가기 전에 정신병원에 강제로 입원시키려면 직계 가족이 몇 명이나 동의해야 하죠?”
“예?”
문동철 법무법인 대표가 살짝 눈을 동그랗게 떴고.
나는 그런 문동철 법무법인 대표를 보며 재차 물었다.
“몇 명입니까?”
“정확하지는 않지만…… 잠깐만 기다려 주십시오.”
문동철 법무법인 대표는 뭔가 깨달은 듯한 눈빛을 보이곤 내게 말하더니 바로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고는 내가 한 질문을 그대로 한 후 곧 전화를 끊었다.
“회, 회장님…… 두 명입니다.”
문동철 법무법인 대표가 살짝 당황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고.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턱선을 매만졌다.
“답이 나왔네요.”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엮을 수가 있군.’
고령인 오구광 명예회장이다. 그러니 엮으려면 치매로 엮을 수 있을 것 같다.
‘정말 치매가 온다고 해도 이상할 나이는 아니긴 하지.’
사람의 인생사.
어찌 될지 누가 알겠는가.
천하를 손가락 하나로 호령했던 진시황도 세월의 흐름은 끝내 이겨내지 못했다.
“정말 그 엄청난 일을 실행에 옮길까요?”
문동철 법무법인 대표가 내게 물었지만 나는 그에게 대답하지 않고 바로 비서실과 연결된 인터폰을 눌렀다.
삐이이- !
- 예, 회장님.
“제주도로 출발하는 항공편이 남아 있습니까?”
- 바로 확인해 보겠습니다.
그리고 잠시의 시간이 지났고.
삐이이- !
비서실로 연결된 인터폰이 울렸다.
“있습니까?”
- 예. 내일 새벽 4시 비행기가 있습니다, 회장님.
“알았어요.”
- 예매해둘까요?
“아닙니다. 그냥 두세요.”
나는 김 비서에게 말하고 문동철 법무법인 대표를 봤다.
“청송까지 가서 강제 입원 동의서를 받을 생각이었다면 비행기 표 정도는 예매해 놨겠죠?”
이런 내 물음에 문동철 법무법인 대표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야 그럴 겁니다.”
“이제 어떻게 하죠?”
나는 사악하게 웃었다.
‘양손에 떡을 쥐었네.’
이 사실을 오구광 명예회장에게 알려준다면 집안이 콩가루가 될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분명한 것은 두 아들이 바로 오구광 명예회장에게 응징을 당하게 될 거라는 거다. 그렇게 되면 제주도에 있는 한철 매형이 강제 소환이 될 거고.
그러면 누나의 행복도 저 멀리 날아갈 수도 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내 추측일 뿐이다.
‘하지만 정황상 오종철 회장이 오상철과 함께 어떤 꿍꿍이를 벌이고 있다는 건 분명하지.’
그냥 이러한 내 추측을 오구광 명예회장에게 살짝 언질만 해줘도 그가 알아서 모든 전후 상황을 파악할 것이다.
“어떤 카드를 생각하셔도 회장님께는 득이 되시겠지만, 회장님께서는 제 사위를 지켜주실 거라고 저는 믿습니다.”
“백년손님 아니었습니까?”
내 말에 문동철 법무법인 대표가 나를 보며 인상을 찡그렸다.
“그래도 제 딸의 남편입니다.”
무슨 마음으로 이런 말을 하는지 이해가 된다.
“예, 이게 아버지의 마음이군요. 제가 다른 것은 약속을 못 드리겠지만, 따님께서 이혼녀가 되시는 일은 없게 만들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따님께서 오상철을 버리기 전까지는 말이죠.”
“감사합니다.”
바로 내게 머리를 조아리는 문동철 법무법인 대표다.
어찌 되었든 내 사람은 챙겨줘야 한다.
“오종철 회장 상대하기 더 편할 것 같으니까, 그냥 불구경이나 하시죠. 하하하!”
나는 정말 기분 좋게 웃었다.
‘집안 꼴 잘 돌아가네.’
나는 테이블에 놓여 있던 시원한 물 한 잔을 쭉 들이켰다.
망할 집안은 원래 안에서부터 난리가 나는 법이다.
역시 집안싸움은 재벌가의 어쩔 수 없는 숙명인가 보다.
* * *
다음 날 새벽 6시, 서귀포에 있는 국제호텔 인근의 해안 도로.
대형 컨테이너가 해안 외곽 도로 갓길에 정차해 있고.
운전석 밖의 도로 바닥에는 담배꽁초가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X발! 인생 한번 제대로 펴보자.”
운전사는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성공하면 5억을 더 주지.』
운전기사는 GK 그룹 비서실장이 자신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는 이미 GK 그룹 비서실장에게 5억을 받은 상태였다.
『버려진 기분이 어땠어?』
놀랍게도 대형 컨테이너 차량에 타 있는 남자는 GK 그룹 비서실 출신으로 오경철이 최태성에게 밀쳐서 식물인간이 됐을 때 오경철을 수행하던 비서였다. 그리고 그 사건이 일어나자마자 오구광 명예회장에 의해서 해고가 됐고.
해고된 후에도 모진 학대 같은 응징을 당해야 했다.
자신이 하려는 일마다 온갖 훼방을 놓아대니 그렇게 괴로울 수가 없었다.
『뭐 같았죠. 하는 일마다 방해를 하고 그랬죠.』
『미안했어, 나도 살아야 하니까, 하지만 나는 도구였어.』
『압니다. 우리가 그런 것들이죠.』
『그러니까, 이번에 제대로 복수도 하고 돈도 챙겨보자고.』
『어떻게 돈을 챙깁니까?』
『조강래랑 같이 보내면 비자금 계좌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어.』
『비자금 계좌라고요?』
『그래.』
“비자금이 얼마나 있을까?”
야릇하게 웃는 운전기사였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운전기사는 비서실장에게 속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오구광 명예회장의 비자금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비서실장이 알고 있기는 해도 그 비자금 계좌와 비밀번호를 아는 사람은 오구광 명예회장과 조강래 이사밖에 없었다.
그래서 조강래 이사가 오구광 명예회장이 치매 초기 증상을 보였을 때 잠깐이라도 탐욕을 상상했던 거였다.
“그런데 왜 만년필은 챙기라는 거야?”
운전기사가 담배를 문 채로 고개를 살짝 갸웃거렸다.
이 모든 일은 최태성에 지시를 받은 은택이 비서실장에게 초소형 카메라가 장착된 만년필을 전달하고 그 만년필을 오구광 명예회장에게 빼앗기면서 생긴 일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비서실장의 실수로 인해 벌어진 일이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 * *
오종철 회장의 저택.
“갑자기 제주도?”
오종철 회장의 아내인 노 여사는 또 외박했기에 자기 남편의 행방을 수소문했는데 비서실을 통해서 제주도 비행기 표를 끊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제주도에 눈 돌아가게 만든 년이 있나?”
자기 남편의 여성 편력이 누구보다 심하다는 것을 잘 아는 그녀였고.
자신도 모르게 인상을 찡그렸다.
“신원이만 없었으면!”
이혼해도 벌써 했을 거라는 생각을 하는 노 여사였는데 정확하게 말하면 GK 그룹을 승계할 자기 아들이 없었으면 이혼했을 거라고 해야 할 거다.
‘내가 좀 더 우겼어야 했어.’
과거 자신이 집안끼리의 정략결혼에 놓였을 상황에서 자기 아버지가 말한 오종철이 아니라 자신이 우겨서 오한철과 결혼했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거라는 생각도 드는 그녀였다.
물론 그 오한철은 이미 자신의 사랑을 찾아 제주도에 유유자적 살고 있지만 말이다.
다시 말해 공교롭게도 오종철 회장과 오한철이 같은 제주도에 있게 되는 셈이었다.
“쯧쯧, 기를 살려줘도 안 되고…… 도대체 인간이 왜 그런지 몰라.”
노 여사가 혀를 차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 * *
새벽 6시, 서귀포에 있는 국제호텔 특실 복도 앞.
“여세요.”
오종철 회장이 호텔 지배인에게 단호하게 말했고.
그가 GK 그룹 회장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호텔 지배인은 문을 열 수밖에 없었다.
“예, 회장님.”
철컥!
그렇게 문이 열렸고.
호텔 지배인은 오종철 회장에게 묵례한 후에 급하게 사라졌다.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오상철은 인상을 찡그렸다.
자신이 오종철 회장에 의해서 여기까지 끌려오기는 했지만.
여전히 성공 확률이 희박하다는 생각이 자꾸 드는 오상철이였다.
‘성공할까?’
오상철은 자신의 이복형인 오종철 회장을 힐끗 봤다.
‘내가 열쇠를 쥐고 있잖아.’
자신이 만약 번복하면 강제 입원은 불가능해진다.
그리고 자기 아버지의 카리스마라면 오종철 회장을 따라온 박 박사 정도는 무릎을 꿇릴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오상철은 오종철 회장이 자신이 가질 몫을 주겠다고 했지만 절대 그럴 일은 없을 거라는 생각도 하고 있었다.
“박 박사.”
“예, 회장님.”
오종철 회장이 박 박사를 보며 입을 열었다.
“아버님이 놀라시지 않게 준비한 거 바로 실행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