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빵에서 재벌까지! 310화
“대주주님, 하지만 램버스 방식도 연구 개발에 착수해서 자체적으로 개발 기술을 확보해 둔다면 치열한 반도체 산업 경쟁 분야서 언젠가는 선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박대길 사장도 굽히지 않았다.
맞는 말이다.
문제는 언제나 그것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맞습니다. 태성 그룹의 핵심은 기술 확보고 기술 자체 개발이죠.”
기술 확보는 기술을 가진 다른 기업에 돈을 주고 기술을 사는 거다. 그래서 일본에 태성 재팬이 존재하고 지금도 다시마 대표이사가 여기저기로 뛰며 일본의 전자 기술을 확보하는 중이다.
“그러니 지금은 램버스 방식으로 메모리 반도체를 생산할 수 있는 자체 기술 확보를 위한 연구소 설립까지가 좋을 것 같습니다. 사실 아실 분은 아시겠지만, 지금은 경제 및 외환 위기 상황에 빠질 수도 있다는 의견이 지배적인 상황입니다.”
“아, 그건 그렇죠.”
박대길 사장이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그런 박대길 사장을 보며 말을 이어갔다.
“자체 기술력 확보에 집중하고 박대길 사장께서 말씀하신 비메모리 사업 분야의 연구 개발에도 착수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아시는 것처럼 메모리 사업 분야에서는 엄청난 세계 점유율을 가지게 됐지만, 진짜 수익이 되는 비메모리 사업 분야의 시장 점유율은 대한민국의 모든 전자 회사들이 합쳐도 4%가 넘지 않으니까요.”
훗날, 비메모리 반도체 사업은 극소수의 몇 회사가 전 세계의 컴퓨터 시장을 지배하게 된다.
그 이유는 당연히 기술과 인재를 가진 회사가 그 소수의 회사들 말고는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비메모리 반도체를 지배하면 전 세계 컴퓨터 시장을 지배할 수 있게 된다.
아무튼, 이것으로 반도체 사업 분야의 신년 사업 계획 논의는 마무리될 것이다.
“최태원 대주주님, 좋은 의견 감사합니다.”
바로 차도명 태성 그룹 회장이 내게 말하고 박대길 사장을 봤다.
“비메모리 사업 분야에 진출 준비를 하십시오.”
“예, 알겠습니다. 회장님.”
박대길 사장이 차도명 회장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DDR 방식의 메모리 사업 분야에서 삼정전자를 꺾는 것이 태성전자의 1차 목표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와 함께 비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도 세계 시장 점유율 1위를 달성할 수 있는 토대를 지금부터 만들어야겠다.
* * *
대호 그룹 회장실.
“2일 남았군.”
태성 그룹과 대호 그룹 비서실은 두 그룹 회장의 일정을 조율하며 1월 7일에 미팅 약속을 잡은 상태였다.
“예, 그렇습니다. 회장님. 그리고…….”
“그리고 또 뭐?”
이런 김대호 회장의 물음에 재무이사가 답했다.
“대호 자동차 국외 법인들을 매각하는 것이 좋을 거라는 분석입니다.”
“이제 시작한 사업인데 포기해서야 되겠나?”
대호 그룹 김대호 회장은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는 말로 대한민국 그룹들의 세계화 경영에 앞장선 장본인이었다.
사실 그가 이룩한 업적도 꽤 많지만, 합병과 인수를 통해서 대호 그룹이 성장했기에 어떤 측면에서는 속 빈 강정과 다름이 없었다. 물론 대호 그룹에서도 알짜 기업이 상당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재계 3위의 그룹이라는 쾌거는 이루지 못했을 테니까.
“벨기에 자동차 법인과 아르헨티나 자동차 법인은 설립 과정에서부터 적자였습니다. 그런 적자들이 그룹에 악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알고 있어, 하지만 일시적인 유동성 자금 위기는 곧 극복할 수 있어. 어린 최태원 회장 정도는 내가 잘 설득할 수 있으니까. 하하하!”
김대호 회장이 호탕하게 웃었다.
김대호 회장은 최태성을 그저 어린 사람으로 보고 있었다.
사실 닳고 닳은 재벌 그룹의 회장들은 대부분 김대호 회장과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현태 그룹 왕태성 회장이나 이제는 없어진 GK 그룹의 오구광 명예회장도 마찬가지였지만, 직접 최태성을 만나고 나서 생각이 달라졌다.
그들과 김대호 회장의 유일한 차이는 아직 최태성을 만나보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아……!”
대호 그룹 재무이사가 작게 탄식을 내뱉었다.
김대호 회장이 이렇게까지 말하고 있으니 그룹 재무이사는 뭐라고 할 말이 없었다.
“대호 증권을 매각하면 태성금융의 계열사인 태성 증권이 대한민국 1등 증권회사가 되는 거지. 1등에 욕심을 안낼 사람은 없네.”
이건 맞는 말이리라.
그리고 김대호 회장의 대호 그룹은 대한민국 재계 서열 3위에 올라 있지만 정말 대한민국에서 시장 점유율에서 1위를 하는 기업은 거의 없었다.
대호 조선도 그렇고 대호전자도 그렇고.
대부분 2~3위를 하는 기업들이 대부분이었다.
* * *
현태 전자 사장실.
현태 전자는 1997년까지 꾸려나가던 휴대전화 생산 사업부를 솔택이라는 무선호출기를 생산하는 회사에 넘기며 반도체와 전자 가전 사업부에 집중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리고 솔택이라는 회사는 태성금융의 자금에 의해서 비밀리에 인수된 상태였다.
걸리면 걸린다는 걸리버를 끝내 매각한 것이다.
“아쉽기는 합니다.”
현태 전자 사장이 임원들을 보며 말했고.
현재 현태 전자는 현태 그룹에서 계열 분리된 상태라 현태 그룹의 자금 지원을 거의 받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현태 전자 사장이 반도체 산업에 집중하고 있기에 자금이 필요했고, 삼정전자와 경쟁해야 하는 휴대전화 생산 사업부를 솔택에 매각해서 자금을 확보할 수밖에 없었다.
“예, 그렇습니다.”
“확보된 자금으로 반도체에 집중합시다.”
현태 전자는 목표를 잘 잡은 편이었다. 하지만 현태 전자의 가장 큰 실수는 현태 그룹에서 계열 분리를 한 것이다.
다른 면으로 보면 현태 그룹은 현태 전자를 계열 분리했기에 나중에 닥칠 위기를 미리 막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물론 이런 사실은 대한민국 경제의 미래를 알고 있는 최태성만 아는 사실이지만 말이다.
“예, 알겠습니다. 그런데 사장님, 그래도 사업 확장 자금이 부족한 상태입니다.”
사업을 할 때 가장 중요한 부분이 자금 조달일 수밖에 없으리라.
언제나 돈이 문제였다.
“그래요?”
“예, 그렇습니다. 삼정전자가 DDR 방식의 D램 생산의 주도권을 잡은 상태에서 GK 전자를 흡수한 태성 전자가 D램 메모리 반도체 2위에 올라 있습니다. 그에 반해서 현태 전자는 대한민국 3위입니다.”
이런 재무이사의 말에 현태 전자 사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러니 메모리 반도체 생산 설비를 증설해야죠.”
사실 반도체 산업만큼 치킨 게임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현태 전자는 그런 치킨 게임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자금력이 부족했다.
그렇기에 치킨 게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승자는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말씀을 드린 것처럼 자금력이 부족합니다.”
“나한테 안 될 이유만 말하지 말고 대안을 말하세요.”
현태 전자 사장이 살짝 인상을 찡그렸고.
재무이사가 현태 전자 사장을 향해 고개를 숙인 후 입을 열었다.
“아, 죄송합니다. 제가, 그리고 다른 임원들이 생각한 대안은 태성금융을 통해서 사업 대출을 받는 방법이 하나 있습니다.”
“조카사위한테?”
이런 현태 전자 사장의 물음에 재무이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예, 관계성이 있지 않습니까.”
“그 조카사위 때문에 내가 그룹에서 나왔는데 지금 가서 손을 벌리라고?”
바로 인상을 찡그리는 현태 전자 사장이었다.
사업엔 감정이 없다지만 현태 전자 사장은 자존심이 상했다.
“죄송합니다.”
재무이사가 고개를 살짝 떨궜다.
“다른 방법은?”
“현재로서는 다른 방법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런 재무이사의 말에 현태 전자 사장이 천천히 입술을 뗐다.
“그럼 내가 다른 방법을 제시하죠.”
사실 현태 전자 사장도 반도체 사업 확장을 위한 자금 마련 방법에 관해서 고심했었다.
“우리는 직원들에게 항상 주인 의식을 가지고 일하라고 강조합니다.”
“예, 그렇죠, 그런데 왜 그 말씀을 지금……?”
재무이사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현태 전자 사장을 바라봤다.
“그러니까 현태 전자 직원들을 현태 전자의 주인으로 만듭시다.”
“예?”
현태 전자 사장이 재무이사를 보며 차분하게 말했다.
“현태 전자의 주식을 현태 전자 직원들에게 파는 겁니다. 우리 사주 방식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자금을 확보하자고요.”
“아……!”
재무이사가 현태 전자 사장의 말에 탄성을 내뱉었다.
기발하다면 기발한 방법일 수도 있었다.
물론 현태 전자가 성장한다면 현태 전자의 직원들도 현태 전자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기에 부자가 될 수 있지만 현태 전자가 만약 망하게 되면 현태 전자 직원도 주식이 폭락하기에 망할 수밖에 없었다.
“재무이사가 한번 추진해 보세요.”
“예, 알겠습니다.”
현태 전자 사장이 살짝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했다.
“내가 조카사위한테 손을 빌리지는 못해도 아버지한테는 부탁을 드려보겠소.”
결국에는 현태 전자 사장이 손을 내밀 곳은 현태 그룹의 왕태성 회장밖에 없었다.
세상에 믿을 사람은 가족밖에 없으니까.
“반도체 산업은 대한민국 경제의 주식이고 쌀이고 식량입니다.”
여기까지도 정확한 판단을 하는 현태 전자 사장이었다.
“예, 그렇습니다.”
“아버지께서 항상 제게 귀에 못이 박이도록 하신 말씀 중에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 하셨죠. 현태 전자가 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2위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합시다.”
현태 전자 사장은 삼정전자가 1위를 유지할 것이라고 확신하고 2위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자고 말했다.
* * *
태성 그룹 회장실.
태성 그룹 사장단들에 의한 신년 사업 계획 발표가 끝났고.
태성 그룹 차도명 회장과 나만 회장실에 남았다.
“와, 태원이 너 아니었으면 식겁할 뻔했다.”
나를 보며 농담조로 말하는 차도명 회장이다.
“자꾸 나만 찾으면 꼭두각시처럼 보여.”
“나야 꼭두각시 맞는데 뭐 어때서 그래, 하하하!”
차도명 회장이 나를 보며 호탕하게 웃었다.
차도명 회장의 가장 큰 장점은 자기 분수를 정확하게 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도 그건 아니잖아.”
“천천히 공부하면서 잘할게. 태원이 네가 알려주는 그대로 하면서 중요한 순간에 결심을 받으면 태성 그룹이 흔들릴 일은 없잖아.”
맞는 말이다.
사실 금산분리 정책 때문에 촉새 형인 차도명 이사를 회장 자리에 앉혔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금산분리 정책만 폐지가 되면!’
나는 다시 통합 회장으로 거듭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태성금융이 인수할 수도 있는 최고 은행과 남서울 은행은 다시 매각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때는 비싸게 되팔아야겠지.’
내가 알고 있는 대한민국의 미래에서 최고 은행을 샀던 영국 국적 펀드는 비싸게 매각하고 먹튀를 했었으니까.
“그건 알았고, 회장님.”
“예~ 최고 대주주님.”
나는 차도명 회장을 보며 천천히 입술을 뗐다.
“회의 때는 보는 사람이 많아서 말해주지 못했는데 반도체 산업에 불황기가 닥칠 것 같다는 뉴욕 경제 연구소의 분석이 나왔어.”
화이트 타이거 펀드와 태성 해상보험을 합병했지만, 뉴욕 월가에는 화이트 타이거 펀드가 아닌 뉴욕 경제 연구소를 설립해서 세계 경제 동향을 파악하고 있는 상태다.
물론 구실이다.
“그래?”
“응.”
차도명 회장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내게 물었다.
“그런데 왜 태성 전자에 비메모리 사업 확장을 지시한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