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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빵에서 재벌까지-325화 (325/452)

깜빵에서 재벌까지! 325화

“예, 회장님.”

“재벌은 말입니다. 욕심이 끝도 없는 존재죠.”

비서실장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내게 말했다.

“그래서 불행해 보입니다. 그리고 제가 봤을 때 회장님은 사모님과 알프스 여행을 즐기실 때 제일 행복한 표정이셨습니다.”

“그때는 제가 재벌이 아니라 그냥 개인인 최태원이었으니까요.”

나는 좌석에 몸을 축 늘어뜨렸다.

“저는 회장님께서 어떤 방식으로든 더 많은 부를 축적하실 거라고 확신합니다. 그리고 사실 스위스 은행 연합회의 제안을 거절하고 나오실 때부터 대한민국을 걱정하고 계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요?”

내가 몸을 늘어뜨리고 비서실장을 슬쩍 노려보자, 비서실장이 살짝 당황하며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이런 생각을 하면 안 되는 줄 아는데 저도 모르게 주제넘었습니다.”

“예, 맞습니다.”

비서실장이 조수석에서 몸을 돌린 채 계속해서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저는 오로지 제 생각대로 결정하고 행동합니다.”

이런 내 말에 비서실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 보고를 드릴 것이 있습니다.”

“뭐죠?”

비서실장이 나를 보며 차분하게 보고했다.

“대호 그룹의 대호 조선과 대호 자동차가 끝내 부도처리 됐다고 합니다.”

이럴 줄 알았다.

내가 대호 그룹의 모든 자금줄을 끊어놨으니까.

아마 지금쯤 김대호 회장은 화병으로 쓰러져 병상에 누워있을지도 모른다.

“청와대와 재경부가 머리가 아프겠네요.”

“예, 그럴 것 같습니다.”

나는 차 창문 밖을 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어떤 것을 살리고 어떤 것을 버릴지 고민하겠죠.”

대한민국 정부에게 현재 대호 조선과 대호 자동차를 모두 살릴 방법은 없으리라.

“그럴 것 같습니다. 공적 자금을 한없이 투입할 수는 없을 테니까요.”

“비서실장님.”

“예, 회장님.”

나는 조수석에 앉아있는 비서실장을 보며 담담하게 말했다.

“귀국한 후에 대호 그룹 회장님을 제가 다시 만나야겠습니다.”

“아……!”

비서실장이 탄성을 내뱉었다.

“상황이 확실히 달라졌으니 기가 많이 꺾였을 겁니다.”

나는 비서실장에게 말한 후에 사악한 눈빛을 보였다.

이제 김대호 회장에겐 달리 선택권이 없으리라.

‘대호 조선이든 대호 자동차든 뭐든 하나는 가진다.’

그리고 고난의 행군과 같을 IMF 상황을 막대한 자본력으로 극복할 계획이다.

이제 IMF 체제로의 전환은 현실이 될 것 같다.

* * *

스위스 은행 연합회 총재 사무실.

“태성 금융 회장이 총재님의 제안을 거절할 줄은 생각도 못 했습니다.”

연합회 총재의 보좌관이 놀랍다는 반응을 보이며 말했다.

“독이 든 성배라는 것을 아는 거지.”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럼 이제 내 선택은 어디로 향해야 할까?”

스위스 은행 연합회 총재의 눈빛이 서늘하게 변했다.

“조지 소로스에게 바로 연락하겠습니다.”

보좌관이기에 총재의 마음을 간파하고 있었다.

“비밀계좌의 자금이 증가하고 있는 상태에서 활용해야지. 언제까지 쌓아놓고만 있을 수는 없지 않겠어? 하하하!”

스위스 은행연합회 총재가 호탕하게 웃었다.

“예, 그렇습니다.”

보좌관은 바로 위성 전화기를 이용해서 조지 소로스에게 전화를 걸었다.

따르릉, 따르릉!

딸깍!

통화가 연결되자마자 보좌관은 자신이 든 위성전화를 스위스 은행 총재에게 건넸다.

“여보세요.”

- 결정했습니까?

“대한민국이 그렇게 호락호락하다고 확신합니까?”

- 화이트 타이거의 주인인 최태원이 있는데 어디 호락호락하겠습니까?

“우린 확실한 투자를 원합니다.”

- 투자에서 위험을 부담하지 않고 수익만 바라는 것이 가능하겠소?

“허허허, 우린 은행입니다.”

- 좋소. 내 편에 서시오.

“좋습니다. 대한민국 경제 자본 식민지 사업을 위해 동참하겠소.”

스위스 은행 연합 총재는 분명 자기 입으로 대한민국을 경제 자본 식민지로 만드는 사업에 동참한다고 말했다.

이렇게 최태성이 예상한 그대로 최태성은 또 하나의 적을 만들고 말았다.

* * *

1998년 2월 26일, 한신 은행 은행장실.

“우리가 수십 년 동안 거래를 했는데 이렇게 안면을 바꾸기입니까?”

대호 그룹 김대호 회장이 찾아와서 한신 은행 은행장에게 통사정하고 있었다.

이제 아쉬운 쪽은 김대호 회장이었기에 대놓고 노발대발하지는 못했다.

한신 은행의 남상식 은행장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혀를 차곤 입을 열었다.

“부실화될 채권을 감당하기 벅찼습니다. 시기가 시기인지라……. 이해하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태성 금융에 한신 은행이 가진 대호 그룹의 채권을 매각하는 것은 너무 심했습니다.”

“죄송한 일이지만 한신 은행을 위해서는 현명한 선택이었습니다. 입찰자가 누구든지 저희로서는 매각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익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안면을 확 바꾸는 것이 사람일 거다.

“은행장, 내가 정부의 공적자금을 못 받을 것 같소?”

“다 받을 수는 없을 겁니다.”

한신 은행 남상식 은행장이 담담하게 말했다.

이것은 모두가 예상한 일이었다.

그리고 김대호 회장 역시 대호 조선이나 대호 자동차 중 하나는 포기해야 한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벌써 애지중지 일궈놓은 사업이 저만치 날아가는 모습이 눈앞에 선했다.

“으음…….”

대호 그룹 김대호 회장이 살짝 신음을 흘렸다.

“둘 중 하나는 포기하셔야 합니다.”

“은행장께서 도와만 주신다면 두 계열사 모두 살릴 수 있소.”

한신은행 남상식 은행장이 단호하게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는 아니라고 보고 한신 은행의 동업자 역시 아니라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동업자라는 말에 대호 그룹 김대호 회장이 인상을 찡그렸다.

동업자가 누구를 지칭하는 말인지 곧바로 눈치챈 것이었다.

“그 어린 녀석이 뭘 안다고 믿습니까?”

“과연 그럴까요? 대호 자동차나 대호 조선이 최종 부도 직전에 놓이게 될 것이라고 제게 말했죠. 그리고 그렇게 되기 전에 자신이 두 계열사의 부채를 모두 산다고 했습니다. 한신 은행 쪽에서는 고마운 협력자죠.”

이런 한신 은행 은행장의 말에 김대호 회장이 인상을 찡그리며 물었다.

“정말 이러깁니까?”

“회장님.”

눈빛이 확 달라지는 한신 은행 은행장이다.

“왜요?”

“최태원 회장이 왜 대호 그룹의 부채를 인수했을 것 같습니까? 잘 생각해 보세요. 여전히 태성 금융은 대호 그룹의 두 계열사에 관심이 있다는 겁니다. 특히 자동차의 경우에는 삼정 그룹도 관심이 있지 않습니까.”

삼정 그룹 2대 총수가 이루지 못한 사업은 자동차 사업밖에는 없었다. 그리고 현재 자동차 사업에 진출하기 위해서 외국 자동차 회사와 기술 협력을 추진하고 있는 상태였다.

“대호 자동차를 팔아라?”

“최악의 상황이기는 하지만 정말 최악이지는 않지 않습니까, 비쌀 때 팔면 좋죠.”

김대호 회장이 미간을 찌푸리며 한신 은행 은행장에게 물었다.

“삼정과 태성을 이용하란 말입니까?”

“예, 그렇습니다. 정부는 대호 자동차와 대호 조선 모두에 공적 자금을 투입할 수 없을 테니까요. 대호 자동차를 매각해서 기회를 만드십시오. 어느 정도 구조조정 계획이 발표된다면 정부가 움직이기 더 수월하지 않겠습니까?”

이런 한신 은행 은행장의 말에 김대호 회장이 팔걸이를 탁 내려치며 중얼거렸다.

“하, 정말 태성 금융과 짝짜꿍이 됐군요.”

“같은 연합체를 구성해서 최고 은행 인수 사업에 참여할 정도입니다.”

“아!”

김대호 회장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그 일만 성공하면 한신 은행은 대한민국 최대 규모의 은행이 됩니다.”

사실 은행장이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은 태성 금융과 태성 그룹의 유보금 중 일부가 한신 은행에 입금됐기 때문이고.

그래서 지표로 보이는 은행 부실화에서 조금은 벗어나 있는 상태였다.

반대로 말하면, 태성 금융과 태성 그룹이 유보금을 한신 은행 계좌에서 빼버리면 한신 은행은 금방 다시 부실은행이 되고 만다는 뜻이었다.

“꼭 후회하게 될 겁니다.”

대호 그룹 회장은 이제 더는 한신 은행의 지원을 받을 수 없다는 확신이 들었기에 악담을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멀리 나가지 않겠습니다.”

웃으면서 말하는 한신 은행 은행장이었다.

사실 지금까지 대호 그룹이 한신 은행에 온갖 갑질 아닌 갑질을 했었고.

그것에 대한 복수를 오늘 시원하게 한 은행장이었다.

* * *

삼정 그룹 회장실.

“대호 그룹이 대호 자동차를 포기하면 그것을 사라?”

삼정 그룹 회장이 전략기획실 실장에게 되물었다.

“가장 빠르고 완벽하게 자동차 사업에 진출할 방법입니다. 단지…….”

삼정 그룹 회장이 전략기획실 실장의 말을 자르며 태연하게 물었다.

“국외에 설립된 자동차 법인들의 부채가 심각하지?”

“예, 그렇습니다.”

“우리가 자동차 사업을 시작하면.”

전략기획실 실장이 삼정 그룹 회장의 말을 이어갔다.

“전자와 반도체 사업과 연동하여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지금 협상하고 있는 해외 자동차 회사가 르노지?”

“예, 그렇습니다.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해오고 있습니다.”

보고자인 전략기획실 실장의 말에 인상을 찡그리는 삼정 그룹 회장이었다.

“대호…… 대호 자동차라……!”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했지만 대호자동차를 자신이 손에 넣으면 자신의 삼정 그룹이 완전체가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대호 자동차 인수 TF를 구성해.”

“예, 알겠습니다.”

삼정 그룹 회장이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전략기획실 실장에게 물었다.

“그건 그렇고 E삼정은 어떻게 되고 있어?”

자신의 장남이 진행하고 있는 사업이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는 삼정 그룹 회장이었다.

“이번 분기도 적자를 예상하고 있습니다.”

“그래?”

“예, 그렇습니다.”

삼정 그룹 회장이 살짝 인상을 찡그리며 턱선을 매만졌다.

“인터넷 사업이 쉽지 않군.”

“예, 그렇습니다. 하지만 인터넷 사업이 활성화가 된다면 그에 따라서 인터넷을 사용하기 위해서 서버 시설이 증가하게 되고 그것은 다시 메모리반도체 가격 상승이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략기획실에서는 분석하고 있습니다.”

이런 전략기획실 실장의 보고에 삼정 그룹 회장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작게 혀를 찼다.

“그러니까, 인터넷이 제대로 된 미래 산업이야, 그러니 메모리 반도체를 장악한 것처럼 인터넷 사업 부분도 삼정이 장악해야 하는데 이렇게 지지부진하고 있으니, 쯧쯧!”

삼정 그룹 회장은 자기 장남인 김재용 사장의 경영 능력을 조금씩 의심하기 시작했다.

“제가 더 많이 보좌하겠습니다.”

“그렇게 해.”

* * *

한신 은행 은행장실 밖 복도.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대호 그룹 비서실장은 대호 그룹 회장이 은행장실에서 나오자마자 그에게 다가섰다.

“회장님.”

“왜?”

대호 그룹 회장의 표정이 어둡기에 협상은 실패했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태성 금융 비서실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태성 금융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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