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1장 (1/22)

01장

눈앞이 벌겋다.

수차례 닦아도 눈꼬리에 스며드는 혈흔이 연방 시야를 가렸다. 힘 조절을 하지 못한 손과 다리가 제멋대로 핸들을 돌리고 액셀을 밟았다.

끼이익-!

좌회전 차선에 올라 급격한 커브를 도는 순간, 타이어의 마찰음이 시린 겨울밤을 날카롭게 갈랐다. 중심을 잡지 못하고 휘청대던 차체는 몇 미터를 미끄러지다 가까스로 바로 섰다.

“으읍…!”

그는 전신을 짓누르는 중력에 이를 악다물었다. 버티고자 온몸에 힘을 싣자 여기저기 벌어진 상처에서 피가 울컥 새어 나왔다.

“하… 씹, 좆같네….”

연신 새된 신음이 짓씹혔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아리지 않은 곳이 없었다. 다 죽은 몰골을 하고서도 양평을 벗어난 것이 용할 지경이었다.

이대로 안진까지 갈 수나 있을까.

몰라, 씨발.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을 거라면 가보기나 해야지.

고속도로에 올라 가까스로 꼬리는 떼어냈으나 방심할 수 없었다. 그야말로 죽기 살기로 이를 악물고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다. 무슨 정신에 2시간이 넘도록 아스팔트를 내달렸는지 모르겠다.

전라도 안진군 송대읍 송대마을.

암흑을 지나 익숙한 풍경을 눈에 담았을 땐 자정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철썩이는 파도가 해안가를 달리는 세단을 덮칠 듯 넘실댔다. 높다란 절벽 위에 외떨어진 한옥 한 채가 피에 젖은 시야에 까마득히 어른거린다.

“하….”

일시에 긴장이 풀렸다. 눈앞이 빙글거리고 온몸에 피가 쑥 빠져버린 기분이었다. 바들거리는 다리가 당장이라도 의지를 놓아버릴 듯 아슬아슬하다.

하지만 눈앞에 목적지를 두고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는 마지막 힘을 쥐어짜 내어 액셀을 꽉 지르밟았다. 찢기고 터진 다리 곳곳의 상처에서 또 한 번 울컥 피가 새어 나왔다.

“읍….”

구두 속으로 뜨겁고 끈적한 혈액이 줄줄이 고여 들고 있었다. 온통 피로 물든 까만 셔츠는 물에 푹 절인 양 질척하게 들러붙은 지 오래였다.

근근이 언덕을 오른 그는 자갈이 깔린 공터에 다다라 힘껏 브레이크를 밟았다. 차 문을 열어젖힌 손이 피에 젖어 바들바들 떨렸다. 훅 끼쳐온 바닷바람이 차 안에 가득했던 피비린내를 품고 사납게 회오리쳤다.

“윽….”

흘러내리듯 차에서 빠져나온 그는 비척비척 걸음을 뗐다. 비포장길에 몇 번이고 무릎을 처박아가며 다시 일어서고, 기듯이 걸었다.

경계 없이 늘 열어두는 초록색 대문을 온몸으로 밀고 들어간 순간,

“어… 어, 르….”

태건은 문틈에 고꾸라진 채 의식을 잃고 말았다.

* * *

파도가 거센 밤이었다.

겨울의 바다는 늘 매서웠지만, 오늘은 유난히도 그랬다. 이런 밤이면 공연히 겁 많은 아이처럼 무서운 망상이 들곤 한다.

잔잔한 팝송을 틀어놓고 잠자리에 누운 시각이 9시경이었다. 밤이 더 음산해지기 전에 일찌감치 잠드는 게 상책이었다.

그러나 시간은 착실히 흘렀고 정신은 쉬이 흐려지지 않았다.

“아… 왜 이렇게 잠이 안 와.”

얼마나 뒤척였는지 몰랐다. USB에 넣어둔 30곡의 음악이 한 트랙을 다 돌도록 결국 잠이 들지 못했다.

뒤척이다 허무하게 2시간을 날려버린 해인은 결국 벌떡 일어나 마른세수를 했다.

“큰일이네.”

점심을 배불리 먹고 1시간쯤 낮잠을 자버린 게 화근이었을까. 어쩐지 낮잠이 꿀맛이더라니, 달콤함의 대가가 지독하기도 했다.

해인은 캄캄한 방에 오도카니 앉아 창 너머를 돌아보았다. 둥그런 보름달이 사위를 밝혀 그나마 어둡지 않은 밤이었다.

그러나 이따금 구름에 가려질 때면 칠흑 같은 어둠이 한 줄기 빛도 남김없이 달빛을 날름 집어삼켰다.

다시 구름이 밀려왔다. 방 안을 밝히던 달빛은 여지없이 까만 어둠에 먹히고 말았다. 기다렸다는 듯 거세게 몰아친 파도가 절벽에 부딪혀 비명을 질러댔다.

매일 밤 저 멀리서 아스라이 들리던 소리가 오늘은 왜 이리 가깝게 들려오는지 모를 일이었다. 마치, 드높은 절벽을 타고 올라와 당장이라도 저를 덮칠 것처럼.

“으으….”

막연한 공포에 부르르 몸을 떤 해인은 좌식 책상 위의 스탠드를 켰다.

“망했어.”

정신이 외려 또렷해졌다. 이래서야 당장 잠자긴 글러 먹은 듯싶다.

책상 귀퉁이에 산처럼 쌓아놓은 대본들을 손끝으로 훑던 그녀는 중간쯤에 꽂힌 것을 뽑아 들었다. 어르신들 다음 숙제로 내드릴 단어도 찾아볼 겸, 오랜만에 읽어보자 싶다.

‘미성’

좋아하는 작가의 드라마 입봉작이었다. 그해 신인이었던 해인이 처음으로 비중 있는 조연을 맡았던 작품이기도 했다.

언제고 다시 한번 그녀가 그린 세상을 연기할 수 있기를 갈망했었다. 그땐 주연으로서 그 자리를 빛낼 수 있기를 바랐다.

꿈은 이루어졌다. 아니, 이루어질 뻔했다고 해야 맞을까.

- 첫 장부터 ‘이해인’ 이름 딱 박아놓고 시작한 거야. 자기 말곤 대안 없어. 해줄 거지?

작가에게 직접 신작 ‘소나무’의 캐스팅 연락을 받은 그다음 날, 해인의 세상은 무너졌다. 코앞까지 다가왔던 꿈이 갑작스레 몰아친 태풍에 난파되고 만 것이었다.

그 후 반년이 지나 해인의 자리는 다른 배우로 메워졌고, 작품은 타국에서 올 로케이션으로 촬영 중이란 소식을 전해 들었다.

“작품 정말 좋았었는데….”

해인은 오래된 대본을 손으로 훑으며 서울에 두고 온 ‘소나무’의 시나리오를 떠올렸다. 혹여 미련이 따라붙지는 않을까 두고 온 그것이 오늘처럼 이따금 생각날 때가 있다.

아무래도 보내 달라고 해야 하려나….

해인은 아쉬운 마음을 대신해 닳고 닳은 미성의 대본을 펼쳤다. 이곳에서 생활한 2년 동안 수십 번은 본 듯싶지만, 볼 때마다 새롭고 재미있는 작품이었다.

시간이 얼마나 흐른 줄도 몰랐다. 한참을 꼼짝 않고 앉아 대본을 정독했다. 꾹꾹 눌러 담듯 활자를 눈에 새기고 마지막 장을 넘기던, 그 순간이었다.

“…응?”

바람이 잠잠해진 창밖으로 별안간 차 소리가 들려왔다. 이 늦은 시각에, 하물며 이 집 한 채가 전부인 언덕 위까지 차가 올라올 일이 없는데 무슨 일일까.

해인은 언덕 쪽으로 난 창을 뚫어져라 바라본 채 동그랗게 눈을 깜박였다.

자갈을 구르는 바퀴 소리가 성큼 가까워졌다. 아마도 근방의 공터에 멈춰 선 듯한데, 어쩐지 브레이크 밟는 소리가 사납다.

벌컥, 그리고 탁.

이어 문을 여닫는 소리마저 심히 거칠고 투박했다. 마치 누군가를 잡으러 오기라도 하는 듯.

“뭐야….”

해인은 선뜻 내다볼 용기가 나지 않아 대본 끄트머리만 꽉 우그려 쥐었다. 지은 죄도 없이 덜컥 긴장해 괜히 심장이 벌렁댔다.

동상처럼 바짝 굳은 채 창밖으로 신경만 뻗치기를 얼마쯤.

끼이익- 쿵!

“허! 깜짝이야.”

대본을 쥔 손이 화들짝 경련했다. 폴짝 튀어 오른 어깨가 그대로 경직됐다. 해인은 일순 뻣뻣해진 목을 근근이 돌려 문을 돌아보았다.

분명 마당에서 둔탁한 소리가 들린 것 같은데, 착각인지 뭔지 문밖은 금세 또 조용해졌다. 하지만 잘못 들었다기엔 방바닥까지 전해지던 울림이 너무도 선명하지 않았던가.

해인은 긴장 어린 얼굴로 문만 바라본 채 마른침을 삼켰다. 갑작스레 고요해지니 외려 더 겁이 나 꼼짝도 하지 못했다.

“뭐야, 무섭게….”

하필 스릴러인 미성의 대본만 만지작거리던 해인은 결국 찜찜함을 견디지 못하고 외투를 걸쳤다.

영화에선 꼭 이렇게 호기심 많은 사람이 죽곤 하던데….

그 같은 생각에 등골이 오싹했으나 다리는 이미 멋대로 문 앞까지 그녀를 이끌고 있었다.

끼이익, 조심히 밀어 연 문틈 새로 흐린 달빛이 미끄러졌다. 소심하게 눈만 빠끔 내민 해인은 가는눈을 뜬 채 마당을 휘둘러보았다.

이윽고 빙 둘러 간 시선이 머문 곳은 대문이었다.

“…어?”

어쩐 일인지 대문이 세 뼘만큼 열려있었다. 늘 잠가두진 않으나 고리를 돌리지 않는다면 저절로 열릴 일 또한 없는 문이었다. 하물며 이 매서운 바닷바람에 멀쩡히 열려있을 리도 없다.

그렇다는 건, 뭔가가 문틈을 막고 있다는 뜻이었다.

“저게 뭐야…?”

아니나 다를까. 무언가 크고 시꺼먼 것이 문틈에 끼인 채 길게 늘어져 있었다. 흐릿한 형체를 살피려 드니 하필 구름이 달빛을 가리고 만다.

눈을 더욱 가늘게 좁힌 채 의문의 형체를 빤히 응시하던 해인은 결국 슬리퍼를 꿰어 신고 마당에 내려섰다. 내딛는 걸음이 조심스러웠다. 괜히 입 안이 바짝 말랐다.

찔끔찔끔 발을 옮기면서도 꿋꿋이 나아가길 몇 발짝.

“허…!”

흠칫 발이 멈추었다. 시꺼먼 그것을 몇 미터 앞에 두고 힘이 풀린 해인은 풀썩 주저앉아 입을 틀어막았다.

“사, 사람…!”

쿵쿵쿵. 박동이 미친 듯이 솟구쳤다. 그러잖아도 뽀얀 얼굴이 삽시간에 새하얗게 질리고 말았다.

흘러간 구름이 검은 형체 위로 보란 듯이 달빛을 쏘았다. 피로 칠갑을 한 웬 남자의 시뻘건 얼굴이 더욱 선명해졌다.

“끄, 꺄아악-!”

앉은 채로 뒷걸음치며 숨을 헐떡이던 해인은 뒤늦게 안채로 뛰어들며 소리쳤다.

“하, 할아버지! 할아버지이-!”

이게 무슨 날벼락이야.

파랗게 동이 트고 있었다.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해인은 몇 시간째 사랑방 앞을 벗어나지 못하고 초조하게 문만 힐끔거렸다.

주인 할아버지와 둘이 부축하기에도 여의치 않을 만큼 키도 덩치도 보통이 아닌 남자였다. 하는 수 없이 언덕 아래 사는 수철이까지 깨워 겨우 사랑방에 눕혔지만, 그 난리통에도 남자는 눈을 뜨지 못했다.

대체 누굴까. 대체 어쩌다가….

슈트며 시계며, 대충 봐도 전신에 값비싼 것들을 걸친 남자가 어쩌다가 여기까지 저런 몰골로 오게 됐을까.

생김새를 확인할 수 없을 만큼 피로 범벅이 된 얼굴을 떠올리던 해인은 팔에 오스스 돋아오른 소름을 벅벅 문질렀다.

벌써 몇 시간째였다. 사랑방 안에서 도통 소식이 없으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수철이가 할아버지 곁에 있다지만, 녀석이 제대로 뭘 할 수나 있을까.

“할아버지, 뭐 도와드릴 거 없어요?”

어떻게든 손을 거들까 싶어 넌지시 물었지만, 굳게 닫힌 문 너머에선 여상한 답만 돌아왔다.

“이잉. 일읎다.”

말과 동시에 방문이 열렸다. 바가지에 물을 새로 받기 위해 방을 나선 수철이 등 뒤로 얼른 문을 닫았다.

“누나 들어가면 놀랄걸. 홀딱 벗겨놔서.”

“아….”

해인은 괜한 민망함에 목덜미를 문지르며 슬그머니 비켜섰다. 피식거리며 마당에 내려선 수철이 수돗가로 향했다.

열여덟에 세상을 통달한 듯 만사 무감한 녀석은 피로 떡칠이 된 남자를 보고도 놀란 기색조차 없이 영차영차 착실하게 부축을 했더랬다.

맨살에 그득할 상처도 다 보았을 텐데, 하품만 찍 뱉으며 수돗가에 쪼그려 앉는 모습이 아무리 봐도 범상찮은 녀석이다.

해인은 벌건 핏물이 수챗구멍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모습을 흐린 눈으로 바라보다 질끈 눈을 감았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서성거리던 그녀는 핏물이 말끔히 사라진 후에야 수철의 곁에 쪼그려 앉았다.

“많이 다쳤어?”

수철은 새 물을 받으며 심상하게 말했다.

“멀쩡한 데가 없던데. 곧 죽을지도 몰라.”

“야. 넌 무슨 말을 그렇게…!”

아랫입술을 악물고 녀석의 팔뚝을 꼬집은 해인은 사랑방을 힐끔거리며 질문을 바꾸었다.

“아는 사람이야?”

“몰라. 난 첨 봤고 할아버진 아시는 눈치고. 근데 얼굴에 피 닦아내고 보니까….”

별안간 입을 쩍 벌리며 어스름이 깔린 하늘을 올려다보던 수철은 고개를 절절 흔들며 감탄사를 터트렸다.

“와… 시바, 졸라 잘생겼어.”

“…….”

지난 2년을 겪어 본바, 순하고 심심한 성격만큼 허풍도 없는 녀석이었다. 또래의 겉멋 든 아이들처럼 가벼운 욕을 입에 담는 녀석도 아니었다.

그런 녀석이 이렇게나 진지한 얼굴로 비속어를 섞어가며 감탄했다는 것은 진심으로 ‘졸라’ 잘생겼다는 소리였다.

이 와중에 그 얼굴이 내심 궁금한 것은 신체 건강한 28세 여성에겐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므로 어떠한 죄책감 같은 건 느끼지 않아도 되겠지.

사뭇 호기심 어린 눈으로 사랑방 문을 돌아보던 순간이었다.

이 집의 주인이자 읍내 송대의원의 잔뼈 굵은 의사인 대길이 방을 나섰다. 해인은 한달음에 달려가 성마르게 물었다.

“어떻게 됐어요?”

대길은 피 묻은 손을 수건으로 대강 닦으며 툇마루에 걸터앉았다. 지친 기색은 엿보였으나 늘 그렇듯 덤덤한 얼굴이시다.

“살리는 놨응게 걱정 마러라. 은제 눈 뜰랑가 모릉께 일찌감치 쌀이나 한 바가지 갈아주고잉.”

“네에….”

다행스러운 일이었으나, 여느 때와 같은 분위기에 호들갑을 떨기도 뻘쭘해졌다. 밤중에 웬 남자가 피 칠갑이 되어 나타났는데, 어떻게 된 것이 무섭고 놀란 것은 저뿐인 듯싶다.

괜히 머쓱해져 눈치만 살피던 해인은 대길의 곁에 앉아 넌지시 물었다.

“아는 사람이에요? 수철이가 할아버진 아시는 눈치라던데.”

수건으로 이마에 흥건한 땀을 벅벅 닦던 대길은 심상한 어조로 두루뭉술하게 말했다.

“이잉, 있어. 니는 몰라도 디야.”

* * *

온통 암흑이었던 시야에 어느 순간 빛이 들었다.

파란빛이었다가, 하얀빛이었다가, 또 한순간 노란빛이 들다 다시 암흑이 됐다.

그것이 두 차례 반복되자 제 안의 어떠한 의식이 알아차린 것 같기도 했다. 아마도 하루 간 하늘의 변화가 감은 눈두덩에 오롯이 닿은 게 아닐까, 하고.

그것이 두 차례 반복되었다면 꼼짝 않고 누운 채 이틀이 흘렀다는 뜻일 테다.

“아직… 어요?”

“물수건… 이거는… 내놓고. 니는 가서… 입을 만한….”

언제부터였을까.

드문드문 사람의 말소리가 들렸다. 아주 멀리서부터, 혹은 물에 잠긴 채 들려오듯 먹먹하고 희미하게.

“그짝서부터… 벗기… 아따, 작아서 이기….”

“이게… 제일 큰….”

어르신의 걸걸한 목소리는 귀에 익었으며, 웬 어린놈의 목소리는 낯설었다.

어쨌든 희미하게나마 소리는 들렸으나 눈이 떠지지 않았다. 몸을 움직이고 싶었지만, 가위에 눌린 것처럼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의식이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닌, 꽤 섬뜩하고도 기이한 경험이었다.

노을로 추정되는 세 번째 노란빛이 눈두덩에 내려앉았다. 그러니까 아마도, 의식 불명인 상태로 3일째 저녁을 맞았다는 뜻이겠지.

“계속 저렇게 둬도 괜찮을까요?”

그날 저녁엔 말소리가 제법 또렷이 들렸다. 문밖에서 들려오던 여자의 목소리는 역시 낯설었다. 송대의원의 간호사인가, 의식이 없는 와중에도 그런 짐작은 한 것 같다.

“지금이라도 큰 병원으로 가보는 게 좋을 것 같은데….”

“걱정 마러라. 처자는 건께.”

어르신의 그 말을 끝으로 거짓말처럼 까무룩 잠이 들었다. 혹시 이대로 평생 귀만 열린 채 눈을 감고 살아야 하나, 저 역시 내심 두려웠던가 보다.

아… 내가 지금 그냥 처자고 있는 거였구나.

대길의 말에 아주 크게 안도한 태건은 그제야 속닥대는 말소리에 집착을 버리고 편안하게 꿈속으로 빠져들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