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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 부부의 이혼 사정-20화 (20/160)

20화. 초대 (2)

진짜 잘생겼다. 정말 숨 막히게 잘생겼다. 어떻게 사람이 이렇게 부분 부분 다 완벽할 수가 있지?

마침 뒤쪽의 창에서 비쳐 드는 햇빛에 라미엘의 머리카락이 반짝거렸다. 그 모습이 인간의 영역을 뛰어넘어, 마치 장인이 정교하게 잘 빚어 만든 작품 같았다.

레이의 심장이 콩콩 뛰었다.

‘1년 동안 열심히 눈에 담아 둬야겠다.’

사진이 없으니까 지치고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꺼내 보려면 기억에 최대한 많이 잘 넣어 두어야 했다.

“할 말이 있으면 해요.”

레이의 시선을 깨달은 듯 라미엘이 책장을 넘기며 말했다.

“라미엘 님 정말 잘생겼네요.”

상대방에게 직접적으로 외모 언급을 듣기는 처음인지라 그가 책에서 눈을 떼고 레이를 바라보았다.

“다른 차원까지 포함, 제가 살면서 본 모든 사람을 통틀어 라미엘 님이 월등하게 최고예요.”

갑작스러운 찬사에 라미엘은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다른 차원?”

“네. 이세계에서도 라엘이 가뿐하게 압승이에요.”

단호하리만치 확고한 대답이었다. 엉뚱한 사람이다 보니 제 미모를 두고 차원까지 언급해 가며 칭송하는 모양이었다.

“내가 고맙다고 해야 하는 건가요?”

“아뇨. 제가 고맙죠. 이런 남자가 내 남편인데.”

레이가 몹시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생글거렸다.

“평생 갈 건 아니지 않나?”

“물론 그렇지만, 앞으로 1년은 내 거잖아요.”

초절정 미남과 함께하는 365일간의 짜릿한 결혼 체험. 그리고 끝나면 두둑한 수당까지.

그야말로 이쪽에서 손해 보는 건 하나도 없는 장사다. 라비던에서 이혼녀 딱지가 붙는 것은 위에 나열한 장점을 상쇄하고도 남을 정도로 안 좋은 일이지만, 재혼에 뜻을 두고 있지 않은 레이에겐 그야말로 절호의 상품이었다.

“물론 나도 라엘 거.”

라미엘의 표정이 좀 구깃구깃해지는 것을 캐치한 레이가 급히 말을 덧붙였다.

그때 서재 문을 약간 거칠게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노크 소리만으로도 밖에 있는 사람이 누군지 알 수 있는 강도였다.

“들어와, 크레하.”

라미엘의 허락에 문이 벌컥 열리고 붉은 머리가 불쑥 안으로 들어왔다.

“주인님, 연무장 끝에 있는 나무 그거 베어, 어? 마님도 계셨네?”

그렇지 않아도 크레하를 찾아갈 생각이었는데 본인이 나타나 주니 반가웠다.

“크레하, 요즘 많이 바빠? 나 며칠간 훈련 좀 받을 수 있을까?”

“훈련이요? 누가? 마님이?”

크레하의 눈동자에 ‘대체 왜?’, ‘진심이야?’, ‘그걸 뭐 하러?’ 같은 의문들이 두둥실 떠오르는 게 보였다.

“태자 전하 앞에서 떨지 않게 담력 훈련 같은 걸 좀 해 두려고.”

이유를 밝히니 크레하의 표정이 못 들을 소리라도 들은 것처럼 일그러졌다.

과연 무어라 답을 할지 궁금해져 라미엘도 의자에 깊게 기대앉으면서 크레하를 보았다.

“……남편 팔짱을 꼭 끼고 계십시오.”

수 초 만에 그의 입에서 나온 대답이었다. 남편이 남의 편이라서 담력을 키워 보겠다는 건데 저딴 대답을 하다니.

“그딴 방법만 알려 주면 윌포프 보는 앞에서 크레하한테 존대할 거야.”

레이의 협박에 크레하의 안색이 조금 나빠졌다.

레이가 루이반 저택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되었던 때, 그녀가 존대하는 걸 자연스레 받아들이던 크레하는 윌포프에게 걸려 된통 혼났다.

하극상. 감히 마님께 존대를 받았다는 이유였다.

예전에 처음 루이반에 들어왔을 때, 그는 집사 손에 이끌려 몇 날 며칠 서재에 처박혀서 예절 교육만 받았다.

차라리 한여름 폭염에 밖에서 검 휘두르며 라미엘과 특훈을 하는 게 낫겠다고 생각하게 만들었던 그 지독한 예절 교육, 그걸 간만에 받게 되었던 것이다.

“아니, 그, 어, 그러니까 대체 마님, 그거 지금 진심으로 하는 말씀입니까?”

“내가 왜 경이랑 농담을 해? 나 진지한데?”

“야밤에 묘지라도 다녀오시지요.”

“산 사람이 더 무서워!”

“그건 맞는 말입니다. 산 것들이 더 무섭지요.”

‘미친놈’ 수식어가 잘 어울리는 들개 같은 남자가 조막만 한 여자에게 휘둘리는 광경을 보며 라미엘은 속으로 웃음을 삼켰다.

크레하는 한참을 골똘히 고민했다. 찾아온 목적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 토벌전 때 하던 방법입니다만…….”

“응, 응!”

토벌전까지 나오다니.

라미엘은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나오려 했다. 누가 지금의 대화만 보면 황실 방문이 아니라 마물이라도 퇴치하러 가는 줄 알 것이다.

“눈앞에 있는 걸 보고 저건 X밥이야, 이렇게 생각하는 겁니다.”

“으응?”

윌포프가 들었다면 뒷목 잡고 쓰러질 말이었다. 루이반 저택 내에선 절대 쓰지 말아야 할 저급한 말을 크레하는 다른 사람도 아닌 마님 앞에서 사용했다.

웬만한 레이디들이 인상을 찌푸릴, 아니면 무슨 단어인지 짐작도 못할 저급 단어의 등장에 레이가 갸웃했다.

“아! 아, 이런. 마님, 방금 뱉은 말은 기억에서 제발 지워 주세요. 그러니까 제 말은 어어, 그게, 마님 눈앞에 있는 상대가 누구든 간에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시라는 겁니다!”

크레하가 당황하며 재빨리 제가 흘린 말을 수습했다.

“음, 그게 쉽지가 않을 거 같단 말이지. 태자를 어떻게 X밥으로 봐? X밥 치고 너무 거물이잖아.”

“예, 물론 쉽지는 않……. 네? 예에? 마님? 마님! 그, 어어어.”

‘웬만한 레이디’가 아닌 레이알렉시스에게 크레하가 말리다 못해 배배 꼬여 가는 광경을 보며 라미엘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연무장에 있는 나무를 치워도 된다고 기사들에게 알려 주기 위해서였다.

***

“이게 뭐야?”

윌포프가 내민 초대장을 받아 들며 레이가 물었다.

“마그스너 후작 부인께서 티파티 초대장을 보내 주셨습니다.”

“마그스너 후작 부인?”

낯익은 성이었다. 정확히 누군진 모르지만 초대장에서 은은히 기분 좋은 향기가 나는 것을 보아하니 꽃처럼 예쁜 센스를 지니신 분이리라.

레이에게 귀족들의 현 가문 교육도 추가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윌포프가 입을 열었다.

“케이틀린 양의 모친 되십니다. 후작 부인 명의로 왔지만 아마 따님이 주최하실 거라 생각됩니다.”

마그스너 가문이 명성을 얻게 된 이유인 케이틀린.

라미엘이 신랑감으로 유명했다면, 케이틀린은 신붓감 1순위였다.

지금도 그녀에게 구애하는 남자만 한 다스요, 그녀와 친해지기 위해 주변을 맴도는 여자들도 많았다. 모든 이에게 친절하며 벽을 세우지 않고 친분을 쌓는 케이틀린이지만, 그녀와 좀 더 특별히 친한 사이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비단 남성뿐만이 아니란 이야기였다.

이제 막 귀족 사회에 입성한 루이반 공작 부인이 주변 귀족들에게 휘둘리지 않도록 조심스럽고 친절하게 사교계를 알려 줄 생각으로 초대를 했으리라고 윌포프가 짐작할 정도로, 그녀는 모두에게 천사 같은 여자였다.

윌포프의 말에 레이는 나이프로 실링왁스를 툭 뜯어내고 내용을 보았다. 그의 짐작대로 케이틀린 영애 주관으로 소규모 티파티를 여는데 ‘공작 부인’께서도 오셨으면 한다는 내용이었다.

“이런 걸 받을 거라곤 생각도 못 했는데.”

레이알렉시스는 사교계 아가씨들한테 공공의 적 아니었던가. 그럼에도 이런 초대장을 보내 온 것을 보니 신분이 주는 사회적 명성은 쉬이 무시할 수 없는 게 분명했다.

“앞으로 더 많이 받으실 겁니다. 제가 적당한 선에서 정리할 테니 그 점은 염려치 마십시오.”

정확히 말하자면 라미엘은 아직 정식으로 공작위를 받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귀족 사회에서 명실상부 공작으로서 위치하고 있으니 그의 아내인 자신까지도 올라서는 거다.

‘내가 귀족이 되긴 됐구나.’

새삼 신기한 기분이었다.

“황실에 가시기 전에 귀부인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가볍게 긴장을 푸시는 건 어떠십니까.”

작위를 받으러 황실에 갈 때, 낯익은 사람들이 있으면 조금이라도 덜 긴장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음, 그것도 괜찮네. 작은 규모라니까 부담 없이 가도 되겠지?”

“물론입니다.”

“그런데 내가 공작 부인인 건 어떻게 알았지?”

태자야 황실에 올린 결혼 서약서를 봤으니 알았다고 쳐도, 당사자 외의 사람들은 잘 모를 게 분명한 일이었다. 아직 두 사람은 약혼 사실조차도 공식적으로 알린 적이 없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사방팔방 떠들고 다니기라도 하시나?’

신분 상승에 목말랐던 모친이었기에 갑자기 딸이 공작 부인, 그것도 ‘루이반 공작 부인’이 됐으니 신이 나서 여기저기 떠들고 다녔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어머니가 귀족 사회에까지 퍼질 파급력을 지닌 사람은 아닌데.’

갸웃하는 레이에게 윌포프가 조심스레 말을 더했다.

“두 분께서 별장에 다녀오시지 않았습니까.”

“응. 그게 왜?”

“별장이 어떤 장소인지는……. 마님께서도 알고 계시리라 생각하고 설명 생략하겠습니다.”

“응.”

“별장이 그런 공간이기에, 그곳에 갈 때는 다들 최대한 눈에 띄지 않게 평범한 수단으로 다녀오는 게 보통입니다.”

베롬같이 귀족들이 휴가를 즐기러 가는 곳으로 유명한 도시의 별장으로 가는 게 아닌 이상, 귀족들의 별장행은 조용히 행해지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런 곳을 누가 봐도 알 수 있는 휘황찬란한 루이반가의 마차를 타고 돌아다녔으니 소문이 퍼지지 않았을 리 없다.

라미엘이 여기저기 귀족들의 파티나 모임에 참석해 자신의 약혼을 알리는 것보다 한 번에 알려지는 쪽을 택한 것이었다. 일일이 사람을 만나는 일을 꺼리고 피곤해하는 그다운 선택이었다.

“윌포프, 나 티파티 특훈시키면 크레하한테 욕 배워서 깽판 치고 올 거야.”

“그럼 전, 네?”

윌포프의 교육을 사전에 협박으로 차단한 레이는 만족한 얼굴로 씩 웃었다.

해 볼 테면 어디 해 봐라, 하는 얼굴에 윌포프는 항복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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