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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 부부의 이혼 사정-45화 (45/160)

45화. 무를 수 없을 때

올해 사냥제에 루이반이 참여할지 말지를 두고 시끌시끌하던 귀족들은 루이반이 참가 신청서를 냈다는 말에 탄식을 했다.

1등이 너무도 확실하니 재미가 있겠느냐는 여론에 황실에서 중재안을 내놓았다.

사냥제의 1등이 두 명인 이유는 참가자 자격을 둘로 나누어서였다.

라미엘이나 기사 같은 사람들을 묶은 1부에서 한 명, 몸 쓰는 일에 특화되지 않은 일반인들이 모인 2부 중에서 한 명, 총 두 그룹에서 1등을 뽑기 때문이었다.

올해는 너무도 강력한 우승 후보를 견제하기 위해 기사 계열인 1부는 팀을 짤 수 없고 오로지 개인의 승부로만 판가름한다는 특이 조항이 내려왔다.

즉, 라미엘은 크레하와 기사단의 도움 없이 혼자서 움직여야 한다는 말이었다. 토벌전에 참여했던 기사들도 대거 참석을 한다고 하니 올해 사냥제는 그야말로 대규모로 화려하게 진행되는 듯싶었다.

“워크산 동물들 멸종당하는 건 아닐지 걱정이 되네요.”

레이의 말에 라미엘이 피식 웃었다.

오전 내내 레이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했더니 의상실에 콕 박혀 있었다고 했다.

항상 푸엥과 저택을 돌아다니던 시간에 뭘 하나 궁금했는데, 그녀는 점심때가 되어서야 요상한 줄을 들고 식당에 모습을 보였다.

“워크산, 실제로 본 적 없죠?”

“네. 라엘은 본 적 있어요?”

토벌전 후 1급 마물의 독에 후유증이 남지는 않았는지 최종 확인을 위해 1급과 접촉했던 기사들은 모두 베롬으로 향했다.

“그 산을 보면 멸종 이야긴 쉽게 안 나올 겁니다.”

워크산이 워낙 높고 크고 산세가 험하다는 이야기는 유명했지만 라미엘이 저렇게 말할 정도인지는 잘 상상이 되질 않았다.

“나도 2부에 참가하는 거죠? 가기 전에 사냥 훈련 좀 받을까.”

“레이도 참가하려고요?”

“참가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1부에 개인으로만 출전 가능하다고 하니 식솔로 따라갈 순 없을 것 같아서 당연히 자신은 2부로 참가하는 줄 알고 있었다.

“1부는 이제 개인전이니까.”

“개인전 여부와 상관없이 사냥 참여자 외에 다른 사람들도 행사에 참가할 수 있습니다.”

“그렇구나. 내가 이해를 잘못 했나 봐요. 아이, 푸엥 훈련 괜히 시켰네.”

나름 2부 참가를 대비해서 레이는 푸엥을 사냥 도우미로 훈련시키고 있었다. 물론 그 훈련이라는 건 전문성도 없고 놀이나 다름없는 일이긴 했다. 터그 놀이, 공 물어 오기 등등 평소에도 자주 하던 것들.

“공 던져 주고 입으로 뭘 물어 당기고 했던 게 훈련이라고요?”

“지금 생각해 보니 훈련이 아니라 그냥 놀아 준 거였네요. 푸엥이 엄청 행복해했어요.”

레이의 엉뚱한 행동에 웃음이 나왔다. 요즘 좀 조용했다 싶었는데 저만의 세계에서 열심히 살고 있었나 보다.

“사냥개는 데려갈 수 없습니다. 보다 험한 짐승들이 많아서 다칠 수도 있고, 혹여 잘못 알아본 사람이 개를 사냥할 수도 있어서요.”

우리 푸엥한테 큰일 날 짓을 할 뻔했구나.

레이가 고개를 저으며 중얼거렸다.

“절대 안 되겠다.”

“그런데 레이, 그 줄은 뭔가요?”

“이거요?”

라미엘의 질문에 레이가 활짝 웃으며 손에 든 리드 줄을 흔들어 보였다.

“요거 강아지 줄이에요.”

강아지 용품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 리담이기에 하네스와 리드 줄이 있을 리 만무했다.

그래서 레이는 기억을 더듬어 오전 내내 루이반 의상실 직원과 머리를 맞대고 강아지 용품을 몇 개 만들어 냈다. 하네스, 리드 줄, 푸엥의 옷까지.

얼마 전 밤에 침대로 오다가 푸엥이 발치에 있는 줄도 모르고 걷어찰 뻔해서 어찌나 식겁을 했던지.

사상 최악의 악당이 된 것 같은 심정이었다. 푸엥이 까매서 밤에는 잘 보이지 않는다는 상황 같은 건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다. 자신은 그저 세상에 다시없을 쓰레기일 뿐.

다신 이런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푸엥이 입을 옷을 몇 벌 만들기로 했고, 이왕 작업을 시작한 김에 하네스까지 작업 목록에 올렸다.

“강아지 줄?”

“네. 푸엥 산책시킬 때 쓸 거예요.”

루이반 정원이 어느 정도 적당한 크기였다면 푸엥이 마음껏 뛰어놀게 얼마든지 풀어 두겠지만 너무도 광활한 게 문제였다.

저택 뒤 작은 동산의 입구는 왜 막아 놨는지 항상 궁금했는데, 루이반의 정원이기 때문에 외부인의 출입을 금하느라 그랬다는 것을 알고 얼마나 놀랐던지.

배변 때문에 정원에 나갈 때도 혹시나 푸엥이 우다다 달려 나가서 길을 잃지는 않을지 항상 조마조마했다. 강아지 때는 품에 안고 다니니 큰일은 없었지만 덩치가 제법 커진 지금으로선 계속 안고 다니는 것도 힘에 부쳤다.

“저기 라엘, 정원에 가제보 설치해 준 곳 있잖아요.”

에이나가 푸엥을 보고 레이를 내쫓았던 때, 피아나와 함께 있던 정원 나무 근처에 가제보가 생겼다.

바닥을 고르게 다지고 작은 테이블과 푹신한 의자까지 두었고 윗부분에 조명까지 달아서 밤에 쫓겨나도 충분히 편안함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물론 더 이상 쫓겨날 일은 없을 테지만.

피로연이 끝나고 저택에 와서 정원에 마련된 새로운 장치를 보고 레이는 감동했다.

‘아무래도 테일러였겠지?’

루이반 마님의 위신과 체면을 중시하는 건 윌포프가 테일러보다 앞서 있지만, 저 자리에 가제보를 설치해 둘 센스가 있는 건 테일러 쪽일 확률이 높았다.

“그 근처로 넓게 울타리를 설치하고 싶은데요.”

루이반 공작저의 잘 가꿔진, 조경의 끝판인 정원에 설치한다면 혹여나 전망이 망가지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되긴 했다. 그래도 아주 정면은 아니고 구석 쪽이니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튼튼하되 철거는 쉬운 걸로 할 거예요. 나중에 얼마든지 처리 가능한 걸로요.”

“어디에 쓰려고요?”

“우리 푸엥 전용 공원을 만들고 싶은데…….”

말을 하다 보니 약간 눈치가 보였다. 반려동물을 키우기 위해 집주인의 동의를 구하는 세입자의 심경이라고나 할까.

후원에 두면 좋겠지만 지금 울타리를 치려고 하는 곳이 푸엥이 가장 좋아하는 곳이자 주요 산책로였다. 앞으로 목줄을 매고 산책을 하게 될 텐데, 답답하지 않게 좋아하는 공간에서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장소를 만들어 주고 싶었다.

“공원이라고 거창한 건 절대 아니고! 그냥 정원에 울타리만 쳐 두는 게 전부예요.”

더불어 아무도 내색은 안 하지만 뒤에선 검은 개라고 푸엥을 꺼려할 사람이 있을 게 분명했다. 그러니 아예 전용 공간을 만들어 주면 서로에게 이득이 될 것 같아서 생각한 일이었다.

“그게, 그러니까, 아, 음, 강아지한테 옷 입히고 전용 공간 만들어 주고 그러는 게 조금 이상한 일인 건 알겠는데요, 일단 얘도 살아 있는 생명이고…….”

반려동물이란 존재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고심하는데, 라미엘은 별것 아니라는 말투로 대답했다.

“이야기해 두죠.”

“네?”

너무 선뜻 나온 대답에 오히려 레이가 반문을 했다.

“허락해 준다는 말이 맞아요?”

“네. 레이 하고 싶은 대로 해요.”

레이의 행동은 언제나 예상 밖이었다. 하지만 라미엘은 딱히 그걸 어쩌겠다는 생각이 전혀 없었다.

레이알렉시스는 원래 저런 사람이고 앞으로도 생각도 못 할 일들을 할 것이다. 그러니 특별히 놀랄 일도 없고 해가 되는 일도 없으니 저지할 이유도 없었다.

“푸엥이 마음껏 놀 수 있는 크기 정도면 되는 건가요?”

“네, 네, 딱 그거예요.”

대답을 하는 레이의 눈동자에 반짝반짝 빛이 차오른다. 여전히 속이 투명한 사람이다.

레이는 저택 사람들이 바뀌었음에도 여전히 푸엥을 자신이 직접 챙겼다. 밥을 주고, 씻기고, 변을 치우고 하는 모든 일들을.

그렇다 보니 하인들은 좌불안석이었다. 이전 사람들이 왜 물갈이 되었는지 모르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그들은 푸엥을 예의주시했다. 밥을 챙겨 주고 함께 놀아 주는 건 못 해도 마님이 하시기에 험한 일은 자신들이 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인들은 적극적으로 마님 곁에서 푸엥을 돌봤다. 레이가 푸엥을 목욕시키려 하면 자신들이 먼저 나서서 강아지를 욕실로 데려갔고 변은 보이는 즉시 처리했다.

푸엥을 자식 키우듯 하는 마님이기에 하인들의 그런 행동은 요즘 레이의 눈에 제법 들어 있는 상태였다. 그 말인즉, 주인님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사람의 마음에 들었다는 이야기이자 고용 안정이 확보되었다는 의미였다.

하여 저택 내 하인들에겐 푸엥을 잘 돌보는 것이 성공의 길이라는 분위기가 슬슬 잡히려는 추세였다. 다만, 이 사실은 아직 레이도, 라미엘조차도 모르고 있는 일이었다.

라미엘이 정원에다 레이가 푸엥과 놀 수 있는 공간을 만들라고 지시했을 때, 하인들이 그 누구보다 빠르게 튼튼하고 멋진 가제보를 만들어 낸 것도 그 일환이었다. 그러니 이번 울타리 명령도 기대 이상으로 해낼 것이다.

“라엘, 정말 고마워요. 덕분에 나랑 푸엥 눈칫밥 안 먹고 대접받고 사네요.”

“다시 한번 말하지만, 레이 당신은 절대 그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 없는 사람입니다.”

고백을 받는 기분이다. 레이는 어딘가 간질간질한 기운을 꾹 누르며 대답했다.

“……알아요. 그래도 감사 인사는 해야죠.”

레이가 다시 식기를 손에 쥐었다.

“레이.”

식사를 마칠 무렵 라미엘이 레이를 불렀다.

“네.”

“사냥제, 구경 말고 참가해 보고 싶어요?”

사냥제에 간다는 말에 멋지게 여우를 잡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긴 했었다.

‘참여’라는 말에 직접 사냥에 가담하는 것과 곁다리로 놀러 가기만 하는 것이 나뉜다고는 생각을 못 했기에 그런 것이지만, 상상 속 모습은 멋지긴 했다.

“여우 한 마리 잡아서 라엘 올 겨울 따뜻하게 보내게 해 주려고 했죠.”

무기 한 번 잡아 본 적 없으면서 첫 사냥에 여우를 잡겠다는, 당차지만 현실 가능성이 희박한 포부야 그렇다 치더라도 그다음 말이 라미엘을 놀라게 했다.

“날 주려고 했어요?”

“그럼요. 당연한걸요? 라엘 말고 내가 누굴 줘.”

라미엘은 들고 있던 식기를 모두 내려놓았다.

“……내가 여우를 받으려면 레이가 첫 사냥에 성공할 수 있도록 잘 도와야겠네요.”

“어떻게 도와주려고요? 라엘은 개인전이잖아요.”

“오늘 오후 일정이 두 시간 정도 빕니다.”

“응?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레이가 사냥에 성공할 수 있도록 내가 돕죠.”

“어떻게……?”

라미엘이 대답 대신 내려놓았던 나이프를 살짝 손가락으로 건드렸다. 저 식사용 나이프가 순간 검으로 보였다면 그건 착각이겠지.

어라, 잠깐. 라미엘이 직접 나선다고?

“라엘이 직접? 날?”

“내 교육은 조금 엄할 겁니다.”

“나 영광이라고 생각해야 하는 건가요, 아님 잘못 걸렸다고 생각해야 하는 건가요?”

라미엘은 레이의 질문에 그저 미소로 답할 뿐이었다.

그리고 레이가 저 질문에 대한 답을 깨달은 것은 무를 수 없는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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