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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 부부의 이혼 사정-65화 (65/160)

65화. 울프 드래곤

“일단 모이신 분들 먼저 회의하고 예하가 오시면 진행 사항 보고드리죠.”

사냥제 사회를 맡았던 이유가 있는 모양인지 셀릭이 빠르게 분위기를 정비하고 회의를 시작했다.

“공작 각하. 어찌 된 일인지 영문을 먼저 들어야 할 것 같습니다.”

“아사 직전의 울프 드래곤을 발견해서 잡은 곰을 먹이로 주고 떠난 게 전부인데.”

그래서 루이반 공작이 말한 곰이 뼈만 남아 있던 것이다. 산에서 사냥당한 짐승 몇 마리가 뼈만 남은 채로 발견되었는데 같은 이유인 듯했다.

공작이 우연히 발견한 멸종 위기 종에게 호의를 베풀고, 그 후 산으로 돌려보낸 게 전부라는 말이다.

“설마 각인된 겁니까?”

“아닙니다. 어려서 각인을 새길 힘이 안 됩니다. 부모에게 배운 것도 없으니 각인도 없는데 마냥 쫓아온 거죠.”

드래곤 연구 일인자인 노데릭의 말에 다들 난감해졌다.

이대로 방생하기에는 이미 사람 손을 탔고, 사람이 끼고 있자니 마음만 먹으면 저 짐승으로 무슨 짓을 벌일지 모른다.

“공작께서 혹여 욕심을 내셨던 건 아닌지요.”

귀족에게 조금 적대적인 신관인 샤베롯이 날카롭게 물었다.

‘욕심은 무슨. 라엘은 귀찮은 일 생길까 봐 죽이려고 했습니다.’

진상은 숨기고 레이는 결론만을 전했다.

“그건 절대 아닙니다. 쫓아오기에 산으로 돌려보냈어요.”

“그럼 왜 그런 케이지에 넣어 뒀던 겁니까? 몰래 데리고 갈 생각이었던 게지요?”

“제멋대로 여기까지 찾아온 울프 드래곤이 마구 돌아다니다가 무슨 일이라도 생길까 봐 잠시 넣어 둔 겁니다. 루이반 기사단장의 호위까지 받으면서요. 그 덕에 우리 기사는 귀한 손에 화상까지 입었습니다.”

워낙 귀한 생명이 케이지에서 뛰어나온 상황이니 의심을 할 수도 있겠지만 왜 저리 짜증을 내는지 모를 일이었다. 레이도 상대 말투에 짜증이 나 조금 날이 선 목소리가 튀어 나가려고 했다.

“그쪽이나 가져가. 난 이런 동물에 관심 없으니.”

레이의 말을 바로 이으며 라미엘이 사뭇 귀찮은 기색을 숨기지 않고 신관의 말을 맞받아쳤다.

삽시간에 살벌해지는 분위기에 셀릭이 나서려는 순간 헤덴이 불쑥 모습을 드러냈다.

“토마, 왔잖니? 이제 그만 좀 불러라. 시끄러워 죽겠네. 쯧.”

아까부터 입도 벙긋 않던 토마가 신력으로 애타게 헤덴을 부르고 있던 듯했다. 헤덴은 모습을 보이자마자 짜증 난다는 얼굴을 감추지 않고 빈 의자에 털썩 앉았다.

“예하, 인사…….”

회의실에 모인 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예를 갖추려는데 헤덴이 됐다는 듯 손을 휘저었다.

“그래, 무슨 일인데 이렇게들 난리냐.”

“제가 몇 번이나 말씀드렸습니다.”

토마가 질린다는 얼굴로 대답했다. 그의 얼굴을 보니 회의장 사람들은 절로 숙연해지는 기분이었다.

저 남자, 불쌍하다.

“어? 너는…….”

헤덴이 뒤늦게 레이를 발견하고 알은체를 했다.

“아가 조련사 아니냐.”

아가 조련사는 또 뭐지.

사람들의 혼란을 뒤로하고 레이는 덤덤하게 헤덴에게 인사를 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예하.”

레이는 헤덴에게 왜인지 불쌍한 아가에서 아가 조련사로 승격이 되어 있었다.

“네가 왜 여기 있니? 아하. 답장이 왜 안 오나 했더니 아예 만나러 왔구나!”

사냥제 명단을 대충이라도 보지 않으셨구나.

레이는 생각했다. 헤덴이 사냥제 명단 표지도 안 읽어 봤다에 아까 딴 상금 1라블 모두 걸 수도 있다고.

“말씀 중에 죄송합니다만 사안이 시급한지라 담소는 잠시 미루어 주셨으면 합니다.”

셀릭이 과감하게 헤덴의 대화에 끼어들어 어수선해진 분위기를 정리했다.

“문제가 뭔데?”

“울프 드래곤이요, 예하. 제발 기억 좀 하세요.”

헤덴의 말에 토마가 대답해 줄 때마다 진하게 짠내가 풍겼다.

“울프 드래곤? 그 짐승이라면 머리 노란 녀석이 연구하던 거 아니냐?”

“예하, 저 여기 있습니다.”

헤덴의 반대편에 앉은 노데릭이 대답을 했다. 녀석이라 지칭했지만 노데릭은 나이가 예순이 넘은 교수였다. 그녀의 강의 때문에라도 신관이 되는 자들이 있을 정도로 유명하며 수십 년째 최고위 자리를 지키는 중이었다.

“그럼 동물은?”

“여기요.”

레이가 무릎에 있던 짐승을 냉큼 들어 건넸다.

헤덴은 컁컁대는 울프 드래곤을 요리조리 살피기 시작했고 노데릭이 가까이 다가와 함께 확인을 했다. 평생 한 번 보기도 힘든 자신의 연구 과제를 보는 학자의 눈은 그야말로 불타오르고 있었다.

노데릭이 계속 레이를 힐끔거리기에 저 노학자가 왜 그러나 싶었는데 그녀의 품에 있는 울프 드래곤을 어떻게든 빨리 만져 보고 싶어서 그랬던 모양이다.

“그런데 아가랑 너는 왜 여기 있고?”

헤덴의 질문에 토마가 대답을 했다.

“루이반 공작 각하께서 울프 드래곤을 잡으셨답니다.”

“이걸 왜 잡았는데?”

“사냥제 중에 우연히 잡았다고 오는 길에 보고드렸습니다.”

“제대로 말한 게 맞느냐? 난 들은 적이 없구나.”

“예하, 제가 세 번이나 말씀드렸습니다.”

“……그 얼마 전에 잔소리하면서 나한테 준 명단이 사냥제였나?”

“예에. 그렇습니다.”

속 편한 헤덴과 속 끓이는 토마의 대화를 듣고 있자니 레이는 격렬하게 이곳을 나가고 싶어졌다.

‘어차피 1위 발표도 다 한 것이나 다름없으니 가면 안 될까요. 우리 보내 줘요.’

레이의 속마음을 듣기라도 한 건지 라미엘이 몸을 일으켰다.

“레이, 가죠.”

“네?”

“공작, 어디 가십니까?”

셀릭이 물었다.

“내 역할은 다한 것 같은데.”

라미엘이 천사처럼 화사하게 웃으며 말했다.

“울프 드래곤은 대신관께 맡기겠습니다. 헤덴 예하만큼 사적인 일에 사용하지 않을 분도 없을 거고, 옆에 전문가도 계시니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조건입니다.”

귀찮은 짐을 덜어 낸 남자의 눈부신 미소가 회의장을 밝게 빛냈다. 라미엘은 헤덴을 보자마자 해결책을 찾은 듯했다.

“정말입니까? 루이반 공작, 혹시 공작이 몰래 각인하고 이미지 때문에 이리 쉽게 넘기는 척하는 건…….”

샤베롯은 넓은 이마에 흐르는 땀을 손수건으로 닦아 내며 물었다.

“아까 노데릭 님 말씀 못 들었나? 어려서 각인이 안 된다고.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난 저 동물에 관심 없다고 했는데.”

라미엘의 발언으로 아까부터 묘하게 신경 쓰이던 그의 말투에 이유가 있었다는 게 확실해졌다.

신관들을 무시해서 반말을 하는 것인지 오만한 귀족이 으레 그러듯 건방지게 구는 것인지 애매했는데, 라미엘은 받은 만큼 주고 있는 것이었다.

샤베롯이 귀족을 그리 좋지 않게 생각한다는 건 유명한 일이었다.

“모든 처분은 예하께 넘깁니다.”

라미엘은 어딘가 속이 후련한 얼굴을 하고는 누가 부를 틈도 주지 않고 레이를 데리고 회의장 밖으로 나왔다.

“뀨뀻!”

문이 닫히자마자 노데릭의 손에 있던 울프 드래곤이 안절부절못하며 소리 내 울더니 라미엘의 뒤를 따라가려고 바동거렸다. 노데릭이 놓치지 않으려 뒷목을 꼭 쥐자 울프 드래곤이 열을 뿜었다.

“으앗, 앗, 뜨것, 뜨거워!”

노데릭의 손을 빠져나간 울프 드래곤이 문을 부수고 나갈 기세로 거칠게 내달렸다.

“쯧.”

헤덴이 가볍게 공중에 검지를 빙글 돌리자 빛이 나면서 철창 모양의 빛 덩어리가 울프 드래곤을 감쌌다.

“저건 일단 진정될 때까지 저리 두고.”

연구에 참고하라는 이유로 노데릭에게 넘긴다면 분명 다른 연구진의 반발이 있을 것이다.

희귀종 동식물 쪽은 해당 개체의 보호를 위해 신관들이 행동에 제약을 많이 받는다. 특히나 직접적으로 접촉을 하게 되는 것에 극도로 예민했다. 희귀종이 눈앞에 있다는 이유로 울프 드래곤을 바로 곁에 두고 연구한다면 다른 연구 팀과의 형평성에 어긋날 것이다.

더불어 다른 동물도 아닌 드래곤이니 옆에 계속 두고 있다가 각인이라도 된다면 평생을 드래곤을 부리며 살 수 있게 된다.

이런 울프 드래곤을 악심 없이 품어 줄 인간이 어딘가에 있긴 하겠지만.

‘그걸 어찌 찾아내?’

만약 발견해서 어찌어찌 드래곤을 맡긴다고 해도, 처음엔 그럴 생각이 없어도 곁에 두고 있다 보면 마음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는 일이다.

이렇듯 아주 귀찮기 짝이 없는 일을 그 영악한 놈이 툭 던져 놓고 후다닥 사라진 것이다.

“……귀찮아.”

헤덴의 입에서 한숨 같은 본심이 흘러나왔다.

라미엘은 귀찮은 일을 감히 대신관에게 떠넘기고 사라진 것이다.

‘그놈이 재물이나 권력에 관심이 없어 다행이야. 아니었다면 치밀하게 숨겨 놓고 어떻게든 각인을 하게 만들었겠지.’

하여간에 이제 해결이 필요한 문제는 이쪽으로 넘어왔다.

“하아. 그래, 저놈을 어찌할 생각들이냐.”

***

수습되지 않은 시상식장의 분위기가 고스란히 루이반 부부에게 쏟아졌다.

“공작 부인.”

2부 시상식 때도 멀리서 박수만 보내며 축하해 주던 케이틀린이 온 걸 보니 어지간히도 상황이 궁금한 모양이었다.

“영애.”

“루이반 공작 부인과 공작 각하께 인사드립니다.”

케이틀린의 인사에 레이가 답을 했다.

“마그스너 영애, 몸은 괜찮은지요.”

“걱정해 주신 덕분에 괜찮습니다.”

“경황이 없어서 돌아온 날 이후로 영애를 만나 볼 생각도 못 했어요.”

레이와 케이틀린이 편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라미엘은 살짝 떨어진 곳으로 자리를 옮겨 주었다.

“죄송해요. 너무 궁금해서 티파티까지 못 기다리겠어서 실례를 무릅쓰고 왔어요.”

“나도 잘 몰라요.”

“어찌 잡으셨는지 아무 말씀 없으세요?”

“잡았다기보다는 울프 드래곤 상태가 많이 안 좋아서 잡은 사냥감을 먹이로 내어주신 게 전부예요.”

“어머, 세상에. 그래서 아까 곰 한 마리가 뼈만 남았다는 게…….”

“그게 다예요.”

사람들이 상상하는 것처럼 극적인 이야기는 아니었으나 그 귀한 짐승을 보고도 무심히 스쳐 왔다는 건 조금 이해하기 어려웠다.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너무 잘 알겠는데, 정말 울프 드래곤은 우리와 상관없어요. 방금 전, 지고한 대신전에 처분을 맡기고 바로 나왔답니다.”

“그게 정말이세요? 대신전에 바치셨다고요?”

케이틀린이 눈치 빠르게 주변 사람들이 듣도록 조금 큰 목소리로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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