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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 부부의 이혼 사정-66화 (66/160)

66화. 사냥제 종료

라미엘은 천사처럼 웃고는 있지만 대놓고 제게 다가오지 말라는 오라를 팍팍 풍기고 있었다. 기척에 예민한 기사들이 잔뜩 있는 시상식장이니 사람들은 더더욱 그에게 다가가지 못했다.

그래서 대신 공작 부인과 케이틀린의 대화에 온 신경을 쏟아붓는 중이었다.

“그게 정말이세요? 대신전에 바치셨다고요?”

두 사람을 예의주시하던 사람들은 케이틀린의 목소리를 듣고 달라진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사회생활 잘하는 라비던 천사 영애의 영리한 분위기 전환이었다.

“처음부터 그럴 생각으로 가둬 뒀던 거예요.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대신전에 바치려고요. 애초에 잡아서 데려온 것도 아니었고.”

제일 못 믿을 대목이었다. 울프 드래곤이 제 의지로 인간을 졸졸 따라왔다는 게 가당키나 한 일인지.

하지만 가장 중요한 각인도 없었고 부부가 아예 손을 놓은 것을 보면 울프 드래곤 본인의 의지라는 결론이 모아진다.

“그냥 잡아서 키우다 각인하시지 그러셨어요.”

귓가에 케이틀린이 속삭였다.

“저 같으면…….”

역시 케이틀린 야망 캐릭터였구나.

레이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새끼 울프 드래곤 하는 짓이 약간 강아지 같았는데.

“전 푸엥 하나로 만족해서요.”

“푸엥이요?”

“영애한테 선물로 받은 강아지요.”

“아…….”

루이반 공작 부인이 데려간 검은 개를 떠올리자 그날의 티파티도 생각이 났다.

잘난 척하는 미친 여자라고만 생각했지 제 목숨 구해 줄 미래가 있을 거라곤 당시엔 상상조차 못 했었다. 그리고 자신과 반대로 마녀인 겉과 다르게 속이 하얗고 착한 사람이라는 것도.

결혼 후 막말도 하지 않고 여느 사람들과 어울리며 분위기를 망치지도 않는 건, 루이반의 이미지를 위해서 연기를 하는 게 아니라 레이알렉시스의 본래 모습일 것이다.

“건강하게 잘 있어요. 내 새끼, 보고 싶어 죽겠네. 긴 여정에 불편할까 봐 안 데려왔는데 조금 후회돼요.”

“내 새끼…… 요?”

“원래 반려동물은 내 가족이라고 생각하면서 키워야 하는 거래요.”

착하고 특이하고. 루이반 공작 부인은 케이틀린이 처음 보는 종류의 사람인 것은 분명했다.

울프 드래곤의 거처가 대강 정해졌는지 1부 시상이 재개되었다. 사람들은 다시 본인의 자리에 앉았고 다들 기대하는 눈빛으로 사회자의 입만 바라보았다.

“1부 시상을 마무리하기에 앞서 순위에 변동이 있음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울프 드래곤에 대한 논의 중, 루이반 공작 각하의 곰 사냥 증거가 확실히 확인되었습니다.”

라미엘이 잡은 곰이 세 마리라는 것을 인정한다는 말이었다.

“하여 2위는 곰 두 마리와 멧돼지 한 마리를 잡은 황실 기사단의 테스, 1위는 곰 세 마리를 잡은 라미엘 루이반 공작 각하입니다.”

1위와 사냥감에 대한 흥미는 첫 발표 때보다 많이 떨어진 상태였다. 부부가 나란히 1위를 거머쥔 최초의 사례가 되었음에도 만인의 관심은 울프 드래곤에 좀 더 쏠려 있었다.

“드래곤은 어떻게 됐습니까?”

누군가가 용기를 내 사회자에게 질문하자, 셀릭은 조금 지쳐 보이는 얼굴로 말했다.

“드래곤에 사심이 전혀 없는 자를 후견인으로 두고 각인이 가능해질 시기에 워크산에 방생할 예정입니다.”

“드래곤에 사심이 없는 자가 대체 어디 있습니까?”

드래곤과 각인을 하면 드래곤의 힘을 사용할 수 있게 된다. 하늘을 날기에 이동에 제약이 없고 불을 뿜으니 그 힘을 사용하게 된다면 섣불리 건드리기도 쉽지 않아 주의가 필요했다.

울프 드래곤이 고대의 여느 용들처럼 거대하고 엄청난 힘을 지닌 것은 아니지만 불을 다루고 하늘을 날 수 있다는 점에서 위험성이 낮은 편은 아니었다.

“이제부터 찾을 겁니다.”

“그렇다면 후견인을 찾을 때까지 누가 데리고 있습니까. 그것도 위험한 것 아닌가요?”

“후견인을 찾을 때까지 신전에서 임시 보호를 할 겁니다.”

“임시 보호라니요? 그럼 그 신관은 확실히 검증이 된 겁니까?”

여러 사람들이 우수수 질문을 쏟아 냈다.

사람들의 질문에 셀릭이 아주 지치고 힘든 표정을 차마 숨기지 못하고 한숨을 쉬더니 억지로 입꼬리를 올려 웃으며 말했다.

“헤덴 예하께서 보호를 맡기로 하셨습니다. 공작 각하의 최초 뜻이 그러하기도 했고요.”

대신관이 임시 보호자가 되었다는 말에 사람들은 조금 얼떨떨하지만 수긍하는 듯했다. 그 양반이라면 세상만사 자기 연구 말고는 다른 일에 관심이 없으니 적합할 수도 있는 인물이다.

본디 울프 드래곤의 후견인은 헤덴으로 결론이 났지만 당사자인 헤덴은 이 결정을 쉽게 수락하지 않았다. 이리저리 방법을 찾던 중 점차 최고권위자인 본인이 맡아야 한다는 의견에 힘이 실리기 시작하자 싫다고 대놓고 말하며 어깃장을 놓았다.

‘그 노인네, 성질머린 정말…….’

나중에 다들 지쳐서 적합한 후보를 찾을 때까지만 임시 보호해 주시라고 타협안을 내놓았고 헤덴은 마지못해 수긍하는 걸로 끝이 났다.

앞으로 대신전은 본인의 연구 외에 울프 드래곤의 보호에 적합한 인물을 찾는 일도 함께 수행하게 되었다.

때 아닌 멸종 위기 종의 등장으로 사냥제 마무리에 진이 빠졌다.

13회 사냥제는 여러 사건으로 기록에 제대로 새겨질 지독한 행사가 되었다.

***

파란만장한 사냥제가 끝나고 남은 건 기도식이었다.

기도식은 신년을 밝히는 첫 행사다. 새해 첫날 다 같이 모여 제국의 안녕과 발전을 기원하는 것으로 신에게 닿는 배, 성함에 소원을 빌어 낸다.

리담은 제국력과 신력 두 가지 날짜를 사용한다.

대륙 통일 전에는 각 나라마다 조금씩 다른 날짜 체계를 사용했기에 혼돈이 많아 통일 후엔 제국력을 세워 전국의 날짜를 똑같이 만들었다.

신력은 제국이 생기기 전부터 존재하던 날짜로, 신이 대륙에 처음 모습을 보인 날을 기준으로 고대부터 대대로 내려왔다.

하늘의 움직임을 기준으로 짜인 신력은 제국력 발효 이후 주력으로 날짜를 헤아리는 데 사용하진 않았지만, 나라의 길일을 정하거나 신년을 맞이할 때처럼 특정일을 정할 때 기준으로 삼았다.

그래서 제국력으로는 이미 신년이 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신력의 새해를 진정한 신년의 첫날로 삼아 새해 기도식도 지금 치러지는 것이었다.

사냥제는 연말 마무리 행사였고 이어지는 기도식은 새해의 첫 행사인 셈이다.

“두 분 이쪽으로 절 따라오십시오.”

리담의 대표로 제국의 안녕을 기도하게 된 루이반 공작 부부는 흰 옷에 금빛 수가 놓인 신전 정복을 입은 신관을 따라 복도를 걷고 있었다.

“부부가 나란히 1위를 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이번 사냥제에 처음인 것이 어디 부부 공동 1위 하나뿐일까.

“네. 그렇다고 들었습니다. 그간 사냥제엔 여성 참가자가 많지 않았다고 하던데.”

레이가 대답을 하자 신관이 대화를 이어 나갔다.

“사냥이 거칠고 험하니 귀족 여성에게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는 듯합니다.”

아닌데. 우리 엘이랑 케이는 좋아하면서 잘했는데. 몰이꾼이 아니라 출전을 했으면 바로 순위권에 들었을 것이다.

“아.”

‘귀족’ 여성.

이 참가 기준이 문제구나.

“레이?”

“무슨 일이십니까?”

레이가 작게 낸 탄식에 두 사람이 동시에 물었다.

“아무것도 아녜요. 내년엔 ‘모든’ 사람들이 참여해서 실력을 보였으면 좋겠어요.”

내년부터 사냥제 규칙이 확 바뀐다고 하니 재야의 숨은 고수들도 나와서 실력을 보일 수 있는 자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레이의 말에 앞서던 신관이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했다.

“……내년부터는 공작 부인 말씀대로 ‘모두가 참여할 수 있는’ 사냥제를 만들도록 하겠습니다.”

그녀의 미소가 참 따스했다.

“두 분이 이틀 동안 머무실 방입니다.”

기도식을 올리기 전에 정화의 의식을 거쳐야 한다.

제국 대표로 기도를 올리는 일이기에 최대한 정갈하고 바른 몸, 마음가짐을 하기 위해서였다. 이틀 동안 최대한 맑은 몸을 유지해야 하기에 식단도 따로 관리를 받는다고 했다.

“공작 부인께선 왼쪽 방을, 공작 각하께선 오른쪽 방을 사용해 주십시오.”

케이틀린이 우승한 작년을 제외하고 그간 기도식 대표는 계속 남자 둘이었으니 방을 함께 쓸 필요는 없었던 듯했다. 두 사람은 자연스레 1인실을 사용하게 되었다.

이틀간 머물 방은 작았다. 안에는 별다른 장식이나 가구 없이 침대와 작은 테이블, 의자 하나와 자그마한 책장이 있었다. 그나마 창은 커다란 편이라 다행이었다. 창이 아니었다면 조금 답답했을 것 같았다.

“앞으로 이곳에서 식사도 하시게 될 겁니다. 주무실 때도 꼭 이곳에서 주무셔야 합니다. 나가시면 안 돼요.”

제국을 대표해 기도하는 영광을 얻었는데 도망이라도 간 사람이 있나. 왜 이렇게 신신당부를 하지.

의문은 머지않아 해결되었다.

우승자의 일과는 이랬다.

아침에 눈을 뜨면 워크산 중턱에서 떠 온 정화수에 신전의 성수를 섞은 물로 목욕재계를 한다.

빵과 약간의 생선, 채소 위주로 구성된 가벼운 식단으로 식사를 하고 남은 시간은 신전을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자유롭게 보낸다.

저녁에 다시 가볍게 목욕재계를 하고 잠을 잔다.

남들은 기도식까지 베롬에서 휴양하면서 맛있는 걸 먹고 신나게 노는 것과 비교하자면 심심하고 지루한 일정이었다.

“이래서 도망가지 말라고 한 거구나. 다들 노는데 난 이게 뭐야.”

예전에 누가 몰래 나가 놀다 들어오기라도 했던 건 아닐까.

고작 이틀도 못 참고 속세의 때를 묻혀 온다면 대표로 기도를 올릴 자격이 없다는 무언의 압박과 분위기가 루이반 부부를 감싸고 있었다.

“라엘, 우승자 생활이 이런 줄 알았어요?”

“몰랐습니다.”

사냥제 자체에 관심이 없어 신경도 안 쓰는 부분이었는데 꽤나 심심하고 다소 지루한 일정이 이틀이나 될 줄은 몰랐다.

레이는 확신할 수 있었다.

‘이건 괴롭힘 코스야.’

기도 전에 몸을 정결히 하기 위해서라는 것은 핑계일 것이다. 신관들이 그저 합법적으로 소소하게 귀족을 괴롭힐 수 있는 길을 만들어 둔 거라고.

“심지어 벌써 배고파요.”

부부는 신전의 도서관에 가는 중이었다. 빈 마력석에 생긴 이상 현상을 확인하기 위해 신전 도서관에서 관련 자료를 찾아볼 생각이었다.

헤덴에게 보여 주기 전에 관련 현상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아 두면 더 좋을 것 같고, 딱히 할 일도 없었기에 정한 일정이었다.

신전 밖을 못 나가니 안에서 할 일을 찾아야 하는데 대신전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일반인이 흥미를 가지고 놀 만한 곳은 전무했다.

레이가 불만을 이었다.

“식단이 그게 뭐야. 풀만 주는데 그것도 양이 너무 적지 않아요? 더 달라고 해도 안 주더라.”

왜 초식동물이 맨날 풀만 씹고 있는데? 먹고 돌아서면 배가 고프니까 계속 뜯고 있는 거 아냐.

“이럴 거면 간식이라도 좀 챙겨 주든가.”

“레이, 저녁에 잠깐 나갈래요?”

라미엘의 제안에 귀가 번쩍 뜨였다.

“네. 가요. 무조건이요.”

나가지 말라는 신관의 당부는 저 멀리로 지워 버렸다. 나간 줄도 모르게 몰래 갔다 오면 될 거 아닌가.

사냥제로 간만에 베롬이 떠들썩하다고 했다. 큰 규모는 아니어도 기도식 축제가 대신전 근처에서 열릴 것이라는 말을 들었을 땐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

‘다신 우승하나 봐라.’

근처에서 소규모로 축제가 열린다는 말을 들은 이후 레이는 계속 울상이었다.

라미엘은 사람 많고 시끄러운 걸 그리 좋아하지 않았지만 시무룩한 레이의 얼굴이 활짝 펴지는 걸 보는 것으로 충분한 듯싶었다.

“저녁 목욕 이후에 자유 시간이니 그때 다녀오죠.”

“응, 그래요. 원래 축제의 하이라이트는 전야제예요. 우리 짧고 굵게 즐기고 와요.”

도통 솟아나질 않던 기운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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