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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 부부의 이혼 사정-116화 (116/160)

116화. 의외의 쿵짝

“피아나.”

“언니!”

흙투성이가 된 피아나가 레이에게 쪼르르 달려왔다.

“피아나, 인사부터 하자. 여긴 몬순 소공작님이야.”

레이의 말에 피아나가 비로소 공작 부부 뒤에 있는 인영을 발견했다.

“소공작님?”

“여긴 내 동생 피아나예요.”

“반갑습니다, 레이디. 카네스 몬순이라고 합니다.”

카네스의 인사에 피아나는 살짝 고개를 갸웃했지만 바로 답했다.

“안녕하세요, 몬순 소공작님. 피아나 르아넬로예요.”

“피아나, 여기 소공작님이 피아나한테 검술을 알려 주고 싶으시대.”

레이가 목적을 말하며 두 사람이 이야기할 수 있도록 살짝 뒤로 물러나 섰다.

“레이디께 검술을 알려 드리려 합니다.”

“저한테요? 저는 스승님이 있어요!”

피아나가 생글생글 웃으며 뒤쪽에 서 있는 기사들을 가리켰다. 지명당한 기사들은 멋쩍은 얼굴로 웃었다.

“가끔 공작님께서도 봐 주시고. 아! 공작님은요…….”

종알종알, 피아나가 항간에 도는 라미엘의 스펙에 과장과 허구를 조금 섞어 신을 숭배하듯 찬양을 늘어놓았다.

자신의 눈앞에서 쏟아지는 본인 찬사에 라미엘은 차마 피아나를 멈추지도 못하고 어색한 얼굴을 했고, 그의 표정을 본 레이는 입술을 꼭 깨물고 웃음을 참아야 했다.

“레이, 그만 좀 웃죠.”

“왜요. 대륙을 삼킨 신의 경지 마스터신데 칭찬이 듣기 어려우세요?”

공작이 웃으며 공작 부인의 뺨을 아주 가볍게 쓰다듬었다.

찰나의 장면이었지만 카네스는 충격을 받았다. 저 대단한 공작이 그 어떠한 거친 기색도 풍기지 않고 사랑이 가득한 빛으로 자기 아내를 바라보고 있다.

‘저렇게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니.’

토벌전에서 몇 년을 구른 기사답게 루이반 공작은 가만히 있어도 사람의 기를 내리누르는 기세가 대단했다.

카네스 역시 검을 다루기에, 다른 평범한 사람에 비해 좀 더 예민하게 기를 느낄 수 있었지만 아마 무예에 능하지 않아도 공작이 어느 경지에 오른 자라는 건 온몸으로 알 수 있을 것이었다. 아무리 갈무리하려 해도 절로 흘러나오는 기색이 그랬다.

그간 공작 부인이 옆에 있어도 그 기색은 숨겨지지 않았고 그가 대단한 무장이기에 그런 건 당연한 줄만 알았다. 그런데 자신의 실수로 언짢은 심정 때문에 기세가 눌리지 않은 것일 뿐이었다.

일이 모두 해결되고 나서 공작 부인 앞에 선 공작은 그 기운을 모조리 거두고 있다. 그가 조절하려 해서 그런 게 아니라 자연스레 공작 부인 앞에 조금의 위협도 되지 않을 순수한 상태를 만들었다.

‘저럴 수도…… 있단 말이야?’

루이반 공작이 공작 부인에게 푹 빠져 있다는 건 라비던에 유명한 소문이지만, 눈앞에서 직접 보고 느끼는 것은 사뭇 다르게 다가왔다. 소문은 거짓이 아니다. 만약 거짓이라면 소문보다 더 공작이 아내를 아낀다는 사실일 것이다.

‘저런 분께 내가 뭘 한 거지?’

다시금 확 부끄러움이 몰려왔다. 정보 길드에서는 마그스너 영애와 루이반 공작 둘이서 함께 돌아다닌다고만 했는데 거기에 편견을 더해 생각한 것은 자신이었다.

‘그런데 왜 마그스너 영애와 단둘이 몰래 다니는……. 설마?’

루이반 공작 법안에 유일한 지지자인 마그스너 가문. 그리고 그 가문의 유일한 후계이자 여성인 케이틀린을 떠올리자 윤곽이 잡히는 듯했다.

“근데 소공작님은 왜 저한테 검술을 가르쳐 주려고 하는 거예요?”

카네스의 상념을 가르며 피아나의 발랄한 목소리가 들렸다.

“제가 영애께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것 같아서요.”

피아나는 잘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레이나 기사도 기초는 동네 친구한테 배운 뒤, 마스터인 스승을 만나서 재능에 꽃을 피웠잖아요.”

피아나가 읽은 연극 내용을 빗대 말하는 카네스의 설득에 그녀의 얼굴이 사뭇 진지해졌다.

“……소공작님 검술 잘해요?”

피아나가 익히 봐 온 기사들하고 체격이 현저히 다르니 선뜻 믿을 수 없는 모양이었다.

“영애가 기초를 쌓을 수 있을 정도는 될 겁니다.”

카네스의 말에 피아나는 성에 차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말보다도 더 선명히 떠오르는 저 의심을 보니 레이는 잠시 앞이 캄캄한 기분이 들었다.

“미안해요, 소공작님. 피아나가 아직…….”

“괜찮습니다. 당연한걸요.”

카네스는 피아나의 탐색을 별로 신경 쓰지 않고 피아나를 상대해 주던 기사에게 다가가 말했다.

“검을 잠시 빌릴 수 있습니까?”

“제가 쓰던 건데 이거라도 괜찮으시겠습니까?”

“괜찮습니다.”

기사는 카네스의 요청에 그에게 검을 내밀었다. 기사에게도 깍듯이 존대하는 게 자연스러운 걸 보아 평소 인성이 대강 짐작되었다.

카네스는 받아 든 검으로 잠시 실례하겠다며 연무장에 있는 나무로 만든 검술 연습용 더미 앞에 서서 검을 휘둘렀다.

“라엘, 소공작 엄청 잘하는 거 맞죠?”

레이가 봐도 월등한 실력자였다. 아직 덜 여문 검사라고 해도 저 정도면 웬만한 기사와 비등한 수준으로 보였다.

“움직임에 군더더기도 없고 나쁘지 않습니다.”

라 선생 입에서 이 정도 말이 나온다는 것은 굉장히 잘한다는 뜻이다.

“역시 라미엘 과…….”

“뭐라고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소공작의 검술 솜씨에 피아나의 입이 벌어졌다. 레이와 마찬가지로 피아나 눈에도 그의 실력이 잘 보이는 듯했다.

“이 정도면 마음에 드나요?”

“네!”

카네스가 피아나에게 합격 도장을 받았다.

***

모두가 잠자리에 들기 시작하는 때, 레이가 피아나의 방을 찾았다.

편안한 잠옷 차림으로 침대에 누워 있던 피아나는 레이가 온다는 소식에 맨발로 문 앞까지 달려 나와 언니를 맞았다.

“피아나, 소공작님 훈련은 어땠어?”

오랜만에 한 침대에 자매가 나란히 누웠다. 피아나는 레이의 품으로 파고들며 키득키득 웃었다.

‘반응을 보아하니 제법 마음에 든 모양인데…….’

“소공작님한테 내가 조언해 줬어!”

그런데 돌아오는 대답이 영 엉뚱한 말이었다.

“뭘 해? 소공작한테 충고를 했다고?”

“응! 소공작님이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데, 아차. 언니, 이거 비밀이야. 쉿! 절대 말하면 안 돼. 레이니까 말해 주는 거야.”

피아나의 말에 레이는 놀라서 잠시 입을 다물지 못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소공작이 자기 짝사랑까지 밝힌 거야?’

이전부터 피아나는 상대방을 무장 해제시키는 순진무구한 눈망울로 상대에게 질문을 해 대답을 끌어내는 데엔 도가 터 있었다. 일부러 유도하려는 게 아니라 타고나길 그랬다. 가끔 피아나가 툭툭 물어보는 것에 별생각 없이 술술 대답하다가 멈췄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러나 이번 일은 루이반에 와서 잔뜩 긴장하고 있었을 예민한 소공작이었을 텐데 어떻게 해냈는지 모를 일이다. 앞으로 만날 일 없는 어린아이라서 방심하고 그냥 편하게 이야기한 걸까.

“자기 작위 때문에 그 사람이 선택을 안 하는 것 같대.”

그런 말까지 하게 만들다니 피아나 얘는 대체 무슨 능력을 가진 걸까.

소공작의 발언도 놀랐지만 그걸 입 밖으로 떠들게 만드는 피아나의 능력에 레이는 더 놀랐다.

“그 레이디가 작위 있는 남자가 싫대요?”

“아니요. 그게 아니라, 음. 이건 어디까지나 내 예상인데 본인이 작위를 받고 싶어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으음? 그게 왜 문제예요? 둘 다 작위가 있으면 안 되는 거예요?”

그 질문에는 카네스가 대답을 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건…….”

“둘 다 있는 게 안 되는 거고, 레이디는 작위 없는 남자가 좋다면 소공작님이 작위를 포기하면 되는 거 아니에요?”

그런 심도 있는 이야기를 나눴던 거구나. 사춘기 직전의 아이와 사춘기 아이 둘이.

“그래서 내가 ‘소공작님은 그 언니를 사랑하는 게 아니에요. 그 언니가 정말 좋으면 다 포기해야 하는 거예요!’ 이렇게 말해 줬어.”

“음? 으음?”

잠깐만. 이것도 연극 대사 아닌가. 본 적 있는 것 같은데.

레이는 새치름하게 가늘어진 눈으로 해맑은 피아나를 보았다. 이 아이가 읽은 대본은 역시나 한 권만이 아니었나 보다. 다시금 대중 매체 연령 제한의 필요성을 온몸으로 느꼈다.

레이는 나중에 소공작을 만나면 피아나의 발언을 사과해야 할지, 비밀이라 했으니 모른 척을 해야 할지 고민에 싸였다.

하지만 이런 레이의 고민과는 달리 당시 카네스는 피아나의 말에 깨달은 얼굴을 했다.

“그, 그러네요…….”

예상치 못한 부분에서 의외의 쿵짝이 맞아 돌아갔지만 당사자 둘 외에는 알 수 없는 에피소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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