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 부부의 이혼 사정-119화 (119/160)

119화. 재판 (1)

석 달의 행정 공백을 메우기 위해 하루라도 빨리 집정관을 세우자는 결론을 내린 뒤, 조이먼과 세든은 소포니악에서 어떻게든 적당한 인물을 찾아내기 위해 애를 썼다.

그러나 필레가 연임 세 번을 할 수 있었던 도시답게 눈에 띄는 인물은 없었다. 조금 더 신중하게 살핀다면 분명 인재가 있을 터이지만 문제는 조이먼이 너무 바쁘다는 데 있었다.

헬라 도시들의 행정 전수 조사는 간단한 일이 절대 아니었다. 시간차를 두면 그사이 비리를 숨겨 둘 집정관들이 생길 것이기에 거의 동시에 집중 단속을 시작했다.

헬라는 수도 다음으로 인구가 많고, 그에 소속된 소도시가 무려 열두 개나 되는 가장 큰 도시다. 그렇다 보니 조이먼은 그야말로 일 폭탄이 터졌다.

그 이후로 하루에 세 시간 이상을 자 본 기억이 없다. 그 와중에 소포니악도 돌보고 후임 집정관을 찾자니 과로사하기 딱 좋은 상태가 되어 가고 있었다. 숨통이 트일 만한 일은 뭐든 해야 했고, 그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루이반 공작 부인께 연락을 한 것이었다.

수도에 있는 귀족을, 그 루이반 공작 부인을 소도시 집정관 후보를 찾는 일로 불러내는 데엔 엄청난 용기가 필요했다. 몇 날 며칠을 고민하고 온갖 수를 생각해 보다 앞이 하얗게 흐려지고 잠시 정신을 잃었다 깨어나서야 요청을 하기에 이른 것이다.

일말의 사정을 전해 들은 레이는 저도 모르게 딱한 심정으로 파칸을 보았다.

“매일 소포니악에 오실 것도 없습니다. 편하실 때 잠깐씩 오셔도 됩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객관적으로 소포니악을 잘 아는 분은 공작 부인밖에 없다고 생각되어 이리 부탁을 드리는 겁니다.”

소포니악 집정관 후보 찾기라니. 그리 어려울 것 없어 보이는 부탁이긴 했다.

매일도 아니고 가끔씩 와서 후보를 찾아내 발굴하면 되며, 조이먼은 필요하다면 보조를 붙여 주겠다고까지 선언했다. 헬라 측에서 합당한 보수도 지불하겠다고 하니 레이 입장에선 그리 나쁘지 않은 일이었다.

어차피 킹크랩과 양성소 때문에 헬라는 자주 오는 곳이니, 그 김에 소포니악을 좀 더 오래 둘러보면 될 것이다.

레이는 조이먼의 요청을 받아들였다.

***

필레가 재판을 받는다는 말에 소포니악 사람들은 ‘집정관’이라는 직책 자체에 대해 다들 겁을 먹었다.

그는 잘못을 해서 그에 응당한 벌을 받기 위해 재판정에 서는 것이다, 범법 행위를 하지 않고 일만 제대로 하면 아무 일도 없을 것이라 해도 소포니악 사람들은 집정관 소리에 학을 뗐다.

집정관이 되고 싶다며 의지를 내비치는 사람들은 자신의 능력을 보인다기보다 집정관이 되면 얻어지는 ‘준귀족’이라는 지위에 더 관심을 가졌다.

‘이래서 파칸이 고생을 하던 거구나.’

파칸은 빽빽한 일정 때문에 집정관 후보를 직접 찾기보단, 일정 시간을 정해 두고 집정관이 되고 싶은 자는 자신에게 찾아오라는 방식으로 후보를 구하고 있었다.

너무 바빠 어쩔 수 없이 최대한 효율적인 방법으로 한 것이겠지만 다들 몸을 사리는 중이니 직접 대중 속에 들어가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귀족이 되고 싶은 자들의 휘황찬란한 자기소개만 듣다가 하루가 끝이 날 지경이었다.

“알렉스 님!”

“안녕, 롭.”

소포니악 양성소에서 수업 시작 전 교실을 정리하던 롭이 레이를 발견하고 뛰어나왔다.

“요즘 자주 오시네요!”

롭이 레이를 반갑게 맞이했다.

“응. 도시를 좀 둘러보려고.”

“마님, 도시 관광하세요? 제가 같이 갈까요? 이번엔 어디로 가세요?”

롭은 베르니에 머물면서 사람들이 레이를 보고 마님이라 부르며 깍듯이 모시는 광경을 보았다. 그래서 자연스레 어느 날부터 레이를 마님이라 칭하기 시작했는데, 그 외의 공간에선 주변을 의식해 여느 사람들처럼 알렉스 님이라 불렀다. 인생의 절반 이상을 길거리에서 살아온 아이의 놀라운 눈치였다.

롭은 예전에 비해 살이 조금 올라 훨씬 보기가 좋았다. 생기 없던 눈동자는 이제 빛이 일렁이는 것처럼 생생하다. 자신이 내민 건 아주 약간의 관심뿐이었는데 멋지게 잘 자라는 모습에 레이는 절로 미소가 흘러나왔다.

“오랜만에 동산이나 함께 가 볼까?”

“네! 좋아요!”

처음 롭이 레이를 데려다주었던, 빈민가 끝자락에 있는 동산을 오랜만에 찾아가기로 했다.

“레이디 주려고 챙겨 뒀어요.”

“이거, 이것도 받아요!”

동산으로 가는 길에 레이는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을 만났다. 소포니악에서 검은 머리 레이디는 이제 모르는 이가 없는 유명인이었다.

영영 몰랐을 필레의 부정을 알게 해 주고 소포니악을 위해 물심양면 애쓰는 레이디에게 가는 곳곳 자그마한 선물이 안겨졌다.

한 땀 한 땀 정성 들여 만든 뜨개 인형, 가장 맛있고 예쁜 것만 골라 담았다는 빨간 사과, 이른 봄에 열매를 맺는, 이제 막 판매를 시작한 오렌지 등등. 모두의 마음을 담은 귀한 선물들이었다.

“내가 이렇게 인기가 많다는 걸 우리 라엘이 알아야 하는데.”

“이미 알고 계실 겁니다.”

“여기서 더 많아지시면 걱정에 잠도 못 주무실 것 같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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