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화. 노 아르망 (2)
“근데 여긴 어떻게 오게 된 거예요?”
대화가 영 이상하게 시작을 한다. 어떻게 오게 됐냐니.
“……집정관이 노 아르망에 참여한 건데 어떻게 오게 됐냐고요? 질문을 이해하기가 조금 어렵네요. 혹 무슨 수단으로 여기까지 왔냐고 물어보신 거라면, 마차 타고 왔어요.”
네가 어떻게 집정관이 되어서 여기 있냐, 무슨 수로 된 거냐를 묻고 싶은 거겠지. 어떤 의도로 말을 하는지 훤히 알았지만 레이는 모르는 척, 눈치 없는 척 질문을 넘겼다.
“그게 아니라, 어쩌다가 오게 됐는지……. 다들 궁금해해서 물어보는 거예요.”
“어쩌다가요? 으음, 혹시 내가 오기 싫어했는데 누가 등을 떠밀어서 이 자리로 보냈다고 하던가요?”
“아니, 아니요. 그런 말은…….”
“그럼 집정관께선 여기 어떻게 오셨습니까? 어쩌다가 오게 되셨지요?”
레이의 질문에 남자는 당황한 눈치였다.
“저는 그야 집정관으로 노 아르망에 당연히 참석을 해야 했기에 온 거죠.”
“같은 집정관이니 저도 그와 마찬가지입니다.”
레이는 방긋 웃으며 대답했지만 웃는다고 해서 벽을 세우는 서늘함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남자는 레이의 대답에 입을 다물었다. 더 이상 대꾸하지 않겠다는 기색을 읽었기 때문이었다.
‘무례하군, 무례해. 뭘 믿고 저리 방자하지. 임시라면서.’
사근사근 대답을 하지 않은 것도, 대답을 들었으나 제가 바라던 정확한 답을 하지 않은 것도 남자는 불쾌했다.
뭐 얼마나 잘났다고 잠깐 틈새에 끼어든 어린것이 저리 빳빳하게 구는지. 델마와는 웃으며 잘만 노는 것 같더니 저한테는 이런 대접이다.
“쯧.”
남자는 마음에 안 든다는 듯 혀를 차며 자세를 원래대로 했다.
“델마도 처음 여기 왔을 때 저런 식으로 묻는 사람들 참 많았겠어요.”
늙은 사람들 사이에 열아홉 살이 끼어 있었으니 얼마나 눈에 튀었을까. 저런 식으로 빈정대듯 그를 어린애로만 취급하는 사람들만 가득했을 것이다.
“네? 아, 저는…….”
딱히 저런 식으로 묻는 사람은 없었던 것 같다. 어린 나이에 됐다고 다들 신기해했을 뿐이지, 어린놈이 집정관이라고 무시하거나 왜 왔냐는 질문을 들어 본 적은 없었다. 대체적으로 젊은 피가 들어왔다고 환영하는 분위기였다.
델마가 기억을 곰곰이 곱씹는 것을 보고 레이는 작게 충격을 받았다. 저런 모습이라면 방금 저와 같은 일을 겪어 본 적이 없다는 말이다.
‘나이 때문이 아니야.’
혹시나 나이가 어려 관심을 가졌던 걸까, 했던 가정은 보기 좋게 박살 났다.
‘내가 여자라서 그런 거였어.’
씁쓸한 현실에 기분이 가라앉았다.
예상대로 레이의 안건 회의는 치열했다. 휴일을 따로 지정하자는 데에도 대부분이 노동자가 아닌 계급이라 그런지 쉽게 동조하지 않았다. 작업량이 훨씬 더 늘어난 효율 통계를 보여 주고 결과에 대해 말해도 들어먹질 않고 시큰둥했다.
아이의 날을 지정하자는 안건은 아이를 몇 살로 보느냐로 시간만 허비했다. 아이의 나이가 중요한 게 아니라 아이들을 보호하고 그들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할 중요성이 있기에 공식적인 기념일 겸 휴일로 아이의 날을 먼저 지정하고, 이후에 정해도 된다고 했지만 사람들은 ‘아이’라는 개념에만 꽂혀 허투루 시간을 보내는 중이었다.
“대체 이건 왜 하자는 겁니까? 작고 어리면 그냥 애 아닙니까.”
“아이들이 납치되지 않도록 여기 계신 모두 다 각별히 신경 쓰고 있습니다.”
나이 지정으로 시간을 보내더니 이제는 원점으로 돌아와 아이의 날이 대체 왜 필요하냐는 소리가 나왔다.
“소포니악 집정관, 이에 할 말 있습니까.”
사회자가 사람들을 진정시키고 물었다. 이 안건을 계속하겠느냐는 뉘앙스의 질문이었다.
“사회자님, 그리고 여기 계신 여러분께서는 대부분 자녀분들이 있으시지요?”
레이의 질문에 잠시 시끄러워졌다. 우리도 애가 있지만 그런 건 필요 없다는 소란에 사회자가 다시금 사람들을 조용히 시켰다.
레이는 다시 발언의 기회가 온 틈에 몬순 소공작과의 일화를 떠올리며 회의장 사람들에게 질문을 했다.
“만약 자신의 아이가 어른에게 큰 잘못을 저질러 엄한 처벌을 받게 된 경우가 있다고 가정해 보세요. 음, 어떤 경우가 좋으려나. 그래, 루이반을 예로 들죠.”
이 장소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알 만한 존재라면 황제와 여덟 파칸들, 루이반 정도일 것이니 그리 예를 들어야 했다.
“내 아이가 어디서 헛소문을 듣고는 루이반 공작을 찾아가 ‘당신이 사람들 눈을 피해 뒤에서 몰래 불법을 저지르고 있는 것을 알고 있다.’라고 말했다고 합시다.”
말로만 들어도 눈앞이 아찔한 예시에 상상만 해도 숨이 막혔는지 누군가가 작게 큽, 소리를 냈다.
“공작에게 ‘당신 아이가 이런 무례를 저질렀고 나는 이 건으로 당신의 아이를 처벌할 것이다.’라는 연락을 받았다면 다들 어떻게 하실 겁니까?”
웅성웅성.
다들 그게 무슨 가정이냐,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 루이반 공작을 어떻게 만나나 등등 주제에서 빗나간 헛소리만 해 댔다.
‘내 말을 콧구멍으로 들었나.’
그때 레이를 구한 건 아이가 있기는커녕 결혼도 안 한 옆자리의 델마였다.
“일단 내가 나서거나, 가문의 이름으로 제대로 사과를 하고 나서 빌든 뭘 하든 어떻게든 공작님께 용서를 받아야 할 것 같습니다.”
델마의 말을 듣고 나서야 사람들은 뒤이어 해결책을 이야기했다. 다들 비슷한 과정이었다. 먼저 내가 나서서 사과하고 달랜 뒤 용서를 구한다.
“왜 무례를 저지른 당사자인 아이를 안 내세우고 본인께서 용서를 구하시는 거죠?”
레이의 질문에 서서히 말소리가 없어졌다.
“에? 어, 그야…….”
당연하게 여기는 처리 방식에 대해 처음으로 ‘왜’냐는 질문이 들어오자 사람들은 당황했다.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영역의 일이었다.
집정관 중 누군가가 말을 했다.
“아이가 혼자 감당하기에 큰일이니까요.”
그의 대답에 사람들이 비로소 답을 찾은 듯 동조의 목소리를 냈다. 역시나 레이가 예상했듯 다들 인지를 하지 못했을 뿐이지 ‘여러 상황’에서 아이들을 보호하고 있다.
“맞습니다. 아이가 감당할 수 없는 일이라 그런 겁니다. 우리에게는 이런 부분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레이는 뒤이어 <불같은 사랑>의 줄거리를 말하고 이것으로 영향을 받은 사례들을 설명했다.
이 부분은 도베뿐만 아니라 케이와 엘까지도 나선 일이었다. <불같은 사랑> 연극이 상영되고, 대본 낭독회가 있던 곳에서의 사례들을 추리느라 다 같이 며칠을 고생했다. 인터넷이나 신문같이 각 지역의 소식을 공유할 수 있는 매체가 없으니 연극을 상영했던 곳까지 직접 찾아가서 사례들을 수집해야 했었다.
“만약 그 아이들이 <불같은 사랑>을 보고 공작을 찾아왔다면 어설프게 칼부림이라도 나지 않았겠습니까. 공작이 조금이라도 다쳤다면……. 어후, 그건 누가 감당할까요.”
장내가 조용해졌다.
“이 연극을 보고 아이들이 청부 살인, 즉 살해 사주를 쉽게 생각하는 경향을 보인 예가 많았습니다. 이 극이 가장 활발하게 공연된 곳에선 자기와 싸운 친구를 괴롭혀 달라고 또 다른 친구에게 사주를 했던 일까지 있었습니다.”
배포된 자료를 읽으면 다들 심각성을 알 수 있을 거라 말을 덧붙이고 레이가 말을 이었다.
“그래서 아이의 날을 지정해서 그날은 온전히 아이를 보듬고 아이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나 모두가 고민하고 노력했으면 합니다.”
연극에 등급을 정하고 나이를 제한하는 것까지 안으로 올리기에는 버거운 일정이니 일단은 차후의 과제로 남겨 두었다.
펄럭펄럭, 회의 자료를 넘기는 소리만 가득했다. 다들 대강 넘겨 보던 자료에서 아이들이 연극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해 벌어지는 사건을 읽어 내렸다. 사회자 역시도 회의 자료를 정독하는 모습이었다.
자료를 좀 더 제대로 읽기 위해 잠시 중단됐던 회의가 재개되고 여기저기서 목소리가 나왔다.
하지만 문제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왔다는 것이었다. 어디까지 아이라고 볼 것인가. 이 말이 다시 대두되었고 처음과 똑같이 방향이 엇나가기 시작하더니 종내 시큰둥한 반응이 되었다.
이 광경을 보고 있자니 레이는 속이 답답했다.
또 원점이야, 또!
“……이미 다 하신 말씀인 것 같은데, 다른 방향으로 논의하는 것은 어떠십니까.”
레이의 표정을 보고 사회자가 정리를 시도했지만 그 역시도 딱히 깊이 생각하는 분위기는 아니었기에 소용은 없었다.
“소포니악은 어찌하실 겁니까.”
결국 레이에게 맡겨 버리는 것으로 결정한 것인지 사회자는 소포니악을 짚었다.
“몇 번이나 말씀드렸고 자료에도 쓰여 있겠지만, 소포니악은 이미 휴일을 시행하고 있으며 그 휴일에 더해서 아이의 날을 지정해 추가 휴일을 더할 생각입니다.”
휴일과 아이의 날.
노 아르망 역대 최장 회의 시간이라는 기록을 세우며 집정관 첫날 회의가 종료되었다.
숙소 식당 겸 응접실인 곳에서 우연하게 모인 사람들이 하루 종일 치열했던 주제로 다시 이야기를 나눴다.
휴일이 있다면 도시 생산성이 오른다니 적극 찬성은 아니어도 시범 운영을 해 보겠다는 등으로 동조하는 도시들이 몇몇 보였지만, 아이의 날은 조금 달랐다. 은연중에 중요성은 느끼고 있으면서도 섣불리 응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별걸 다 봅니다.”
“어떻게 하루를 노는데 생산성이 오른다는 건지. 이거 속임수 아닙니까. 자료야 거짓으로 꾸며 쓰면 되니까요.”
“현실성이 없어요.”
“아이의 날은 또 뭡니까. 리담은 툭하면 아이들이 유괴당하는 줄 알겠습니다.”
“아이의 날이라기보단 그냥 쉬는 날 하나를 더 만들려는 것 같은데요.”
“쉬면서 그날은 온전히 아이한테 관심을 가져 달라는 거 아닌가요.”
“아이는 부모들이 알아서 잘 보호하는데 뭘 또.”
“아이가 영향을 쉽게 받는다잖아요. 루이반 이야기, 생각 안 나요?”
“우리 애들은 그럴 리가 없어. 왜 그걸 구별 못 해.”
“그런데 조금 생각해 볼 만하지 않습니까. 우리 애들 저번에 연극 보고 와서 보석 달린 검을 사 달라고 난리여서 어찌나 고생을 했던지.”
그때 활짝 열린 문 너머로 소포니악 집정관이 보였다. 그녀는 조금 다급하게 걷는가 싶더니 이내 뛰어서 입구로 가고 있었다.
노 아르망 개최 이후 내내 시선을 한 몸에 받던 이가 숙소 밖으로 내달리는 모습에 다들 의아한 눈을 했다.
“둘이 친하잖아. 저쪽, 무슨 일 있어요?”
스투라 집정관이 델마에게 물었으나 그는 모르겠다는 얼굴로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공적으로 친하다고 소포니악 집정관님 행적까지 제가 다 알고 있지는 않습니다.”
델마의 대답에 그가 가까이 다가와 작게 물었다.
“공적으로만 친한 건, 맞고?”
아까 보니 사이 좋아 보이던데.
굳이 안 해도 될 말을 곁다리까지 붙여 가며 늘어놓는다.
“……결혼하신 분입니다. 실례되는 발언, 삼가 주십시오.”
이전에 휴일 업무 관리 건으로 레이가 자신을 찾아왔을 때 그녀는 이야기 중에 ‘남편’이 적극 돕는다고 했었다. 그 말을 듣고 저도 모르게 아주 조금 실망스러운 감정이 들었던 사실이 떠오르자 델마는 다시금 화들짝 놀랐다.
“아? 그래요? 결혼을 했어?”
그가 놀란 듯 목소리를 크게 내며 물었다.
“거짓말 아냐? 자기 아내가 이렇게 밖에서 나돌고 있는데 어느 정신 나간 놈이 그냥 내버려 둬요?”
“왜요, 무슨 일인데 그럽니까?”
“저 소포니악 집정관 말입니다. 결혼한 여자랍니다.”
이 한마디에 순식간에 응접실 사람들의 이야기 주제가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