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 부부의 이혼 사정-137화 (137/160)

137화. 선택 (2)

“브리가 나온다고? 에엥? 그게 무슨 말이야.”

“후보 신청한다고 하던데?”

“여자가? 그게 말이 돼?”

집정관 후보에 브리가 나섰다는 사실이 소포니악에 알려지자 사람들은 아연실색했다.

여자가, 그것도 공작 부인 같은 분도 아닌 평범한 여자가 집정관에 나오겠다니. 아무리 다들 필레 때문에 몸을 사리고 있다고는 하지만 오디의 출사표에 이어 나온 후보가 생각지도 못한 사람이라 당황스러웠다.

“여자가, 나온 거야?”

“허 참. 진짜 별일을 다 보는군.”

난생처음 보는 이색 후보에 소식을 들은 사람들은 저마다 난감한 기색을 보였다.

“브리 그분, 마을에 일이 생기면 필레 대신 나서던 분 아닌가요?”

조곤조곤한 낯익은 목소리에 사람들이 시선을 주었다. 근래 또래 여자애들과 부쩍 친해졌는지 나움은 삼삼오오 몰려다니는 모습을 자주 보였다. 그리고 친구들이 있어 그런지 이전보다 좀 더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경우가 많아졌다.

“브리가…… 그렇긴 했지?”

곰곰이 생각해 보니 마을에 일이 생기면 브리가 필레에게 찾아가서 해결을 하고 오곤 했었다. 그런데 그건 필레한테 요청한 거지 본인이 해결한 일이라곤 할 수 없는 일이다.

“가서 말만 했지 집정관이 했잖아.”

“필레한테 말하기 전에 사람들을 모아서 이런 일이 있다고 설명해 주고, 이렇게 하자고 필레한테 말하는 건 어떠냐 의견을 모은 것도 브리였잖아요.”

“어? 그럼 브리가 집정관이 되면 사람을 모으고 집정관을 설득할 필요가 없이 바로 문제가 해결되겠네요.”

여자애들끼리 조잘조잘 떠드는 소리에 사람들이 어린 여자애들이 뭘 아냐며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브리가 희한한 선택을 했는데 어린애들까지 이리 정신을 못 차린다며.

“지금 집정관님도 여잔데 뭐 어때요.”

누군가가 한 말에 사람들이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그분은 공작 부인이시잖니!”

“그래. 그것도 루이반 공작 부인이셔. 그 대단한 루이반이라고.”

“우린 지금 루이반의 가호를 받고 있는 셈이네.”

순식간에 이야기 주제가 바뀌었다.

“휴일도 아마 루이반에서 먼저 이야기가 나왔던 거겠지?”

“일단 여기서 시범 삼아 먼저 해 보고 결과가 좋으니 루이반에도 적용을 한 게 아닐까.”

“뭐야, 그럼 우리 도시가 루이반 실험장이란 말인가?”

“아니, 무슨 말을 그렇게 하나. 난 그저 루이반 공작 부인께서 여기까지 루이반처럼 돌보신다는 말을 하려는 거였지.”

“공작 부인께선 이번에 안 나오시려나.”

모여 있는 사람들은 은근한 소망을 내비쳤다. 앞으로도 계속 루이반 영향하에 있으면 지금처럼 마을이 더 좋아질 것이란 희망으로 하는 말이었다.

“어찌 그분이 집정관이 되시겠나. 루이반으로 가셔야지.”

“우리 도시가 점점 좋아지는 게 루이반의 영향을 받으니 이런 것 아니겠나.”

“그냥 지금처럼 루이반같이 돌보시면…… 안 되겠지?”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들으며 나움은 입을 다물고 조용히 무리를 빠져나왔다. 이상한 말이었다.

‘알렉스 님이 먼저 하시고 나서 공작님도 따르셨다고 했는데.’

그때 마을 입구에 레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평소처럼 꽃같이 웃는 표정이 아닌 어딘가 잔뜩 굳어 보이는 모습이었는데 사람들을 보더니 사르르 인상을 폈다. 그러나 확실히 평소보단 어둑한 모습이었다.

“모두 안녕. 다들 여기 모여 있었네? 무슨 일 있어?”

“아닙니다. 그냥 후보로 나온 자가 웃겨서 한마디 하던 중이었습니다.”

“그래? 뭐가 그렇게 웃긴데?”

“아니, 뭐, 집안일이나 하던 사람이 덜컥 후보로 나온 거 보니 여기 집정관 자리가 그렇게 우습게 보이나 싶기도 하고……. 아! 절대 공작 부인께 드리는 말이 아닙니다!”

브리가 후보에 오른 걸 보고 하는 말이다. 역시 아직 브리에 대한 인식과 인지도가 너무 낮다. 오디가 별로라고 해도 이대로라면 분명 브리가 지고 말 것이다.

‘……잠깐만. 방금 나한테 공작 부인이라고 했지?’

방금 들은 호칭을 상기하자 억지로 만든 미소도 사라졌다.

“여자가 어떻게 저런 일을 합니까.”

“말도 안 되는 일이지.”

자기들끼리 하는 말이지만 분명히 귀에 들려왔다. 레이는 그들을 향해 돌아서서 물었다.

“내가 여자라는 사실을 잊은 건가, 모르는 건가.”

“네? 아이고, 당연히 알고 있습니다. 공작 부인 아니십니까.”

“루이반 공작 부인이신데 어찌 보통 여성이라 합니까.”

머리가 멍해졌다.

이들은 다를 줄 알았는데. 소포니악 사람들도 노 아르망의 여타 파칸과 집정관들처럼 자신의 능력이 루이반에서 나온 것이라 믿고 있었다.

레이알렉시스가 하는 일은 루이반이 하는 일이 되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자연스럽게 그렇게 생각을 했다. 그만큼 루이반이란 이름은 거대했다.

‘나는 지금 소포니악 집정관이지, 루이반 공작 부인이 아닌데.’

여자라서 절대 안 된다는, 상상조차 안 하던 사람들은 레이가 루이반 공작 부인이라는 사실을 들먹이며 이를 최우선으로 하고 있었다.

‘루이반’이라는 이름에 ‘여성’이 묻혀 버린다. ‘루이반’이라는 이름에 ‘레이알렉시스’의 업적이 묻혀 버렸다.

하루 종일 멍했다. 집정관과 공작 부인을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서도 결정을 못 했는데 전자를 택했을 경우에도 앞이 막막하기만 할 것 같았다.

만약 집정관이 된다 해도 그건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루이반이라는 이름 덕분일 것이다. 이는 자신이 원치 않는 일이며, 라미엘의 법안이나 여타에 도움이 되는 일도 아니었다.

루이반. 이 대단한 이름이 이렇게나 큰 걸림돌이 되리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머릿속이 복잡하다. 이걸 다 끊어 내려면 소포니악을 완전히 손에서 놔 버리고 이전처럼 오롯이 루이반 공작 부인으로만, 라미엘의 아내로만 살면 되는 일이다.

그렇지만 소포니악이, 자신이 좋아하는 소박한 이 도시가 다시 이전으로 되돌아갈 게 뻔해 차마 놓을 수가 없었다.

레이는 한참을 미동도 없이 앉아 치열하게 고민했다. 선택을 내려야 한다.

“그렉도 이렇게 고민을 했을까.”

그는 대체 어떤 심정으로 선택을 했을까 고민하던 레이가 불현듯 깨달은 얼굴을 했다. 선택!

“이 녀석은 수도에 행사 있을 때만 모습을 보이는지라.”

그는 선택하지 않았다. 자연스레 귀족이면서 집정관이 되는 두 가지 길 모두를 걸었다.

귀족이면서 집정관이기도 한 남자. 당연하게도 두 개를 쥐었다.

저처럼 고민할 일도 없었다. 제대로 따진다면 작위를 받을 가능성이 있는 귀족 남성이니 그가 레이보다도 더 우위에 있는 자였다. 그럼에도 그는 선택 따윈 하지 않았다.

이는 남자인 그렉에게는 주어지지 않은 선택지였다. 오로지 레이에게만 내밀어진 선택권이었다.

본인의 의지로 자유롭게 고르라고 하지만, 선택권이 있어 선택을 해야만 하는 것과 애초에 고를 필요도 없이 자유 의지만 존재하는 것은 천지차이였다.

선택에 대한 자각을 하자 뒤따라 마음이 흔들렸다. 레이는 심호흡을 한 후, 게이트를 열었다. 나중으로 미뤄 뒀던 이야기를 해야 할 때였다.

***

“나 집정관 할 거예요.”

레이의 눈이 반짝였다. 여느 때처럼 차분하고 온화한 눈빛이었다.

“제대로, 진짜가 돼서 그때 그 사람들한테 보여 주고 싶어요. 내년에도 노 아르망에 참석해서, 보여 주기식으로 특산물 주제 따위나 내보이는 사람들 콧대를 납작하게 만들어 주고 싶어요.”

라미엘은 결코 레이의 결심을 돌릴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공작 부인으로서도 충실할 거예요.”

말릴 수 없지만 그래도 제지하고 싶었다.

“레이, 그건 불가능합니다.”

“아뇨. 가능해요. 난 둘 다 잘 해낼 자신 있어요.”

안주인의 역할은 집정관 일을 하면서도 충분히 해낼 수 있다. 공작 부인으로서의 일이 필요하면 예전의 그렉처럼 일정을 조절해 참여하면 되는 일이고, 소포니악 관사에서도 얼마든지 루이반 내부 일에 관한 업무를 처리할 수 있다.

그리고 애초에 제가 없던 시절에도 루이반은 잘만 굴러갔다. 이제 와 갑자기 안주인 하나가 상주하지 않는다고 흔들릴 가문이 아니었다.

“그렉은 선택할 것도 없이 당연하게 둘 다 해냈어요. 그런데 나는 왜 안 된다는 거예요? 왜 나는 선택을 해야 하는 거죠?”

“그와 당신은 달라요. 그는 가문에서 내놓다시피 했고…….”

“라엘, 이즈만 가문이 정말 그를 내놨다면 애초에 사교계 데뷔도 안 했을 거예요. 그는 귀족이면서 집정관을 해내고 있잖아요.”

왜 이렇게 레이를 놓을 수가 없을까. 그녀가 잘 해낼 것도 알고 맞는 말만 하고 있는데도 라미엘은 이상하게 속이 울렁거리는 것 같았다.

“당신 하는 일이 몇 갠 줄 압니까. 조만간 황실에서 제로석에 대해 공표할 텐데 그것까지 어떻게 감당을 하려고요. 집정관으로 있으면 내가, 루이반이 나서서 당신을 보호하기 어려워요.”

당신을 위하노라 말하지만 기실 자신만을 위해 있어 달라는 속마음이 흘러나왔다. 아내를 훨훨 날게 하기 위해 법안을 내놨던 것과 달리, 진심은 자신 옆에만 있는 레이를 소유하고 싶은 욕망만 남아 머리를 어지럽혔다.

“……레이. 지금 사람들 사이에서 어떤 말이 오가는 줄 압니까.”

아직 구체화된 소문은 아니었다. 사람들 사이에서 이야기 주제가 떨어졌을 때 꺼내는 가십, 잡음 정도로 여겨지는 말이었다. 하지만 레이가 정식으로 집정관이 되면 바로 굵직한 소문이 되어 수도 여기저기를 돌아다닐 것이었다.

“우리가 곧 헤어질 거란 말이 나돌고 있습니다.”

“예?”

“소포니악에 있는 당신과 라비던에 있는 나. 이걸 뭐라고 생각하겠습니까.”

별거중인 부부. 상황만 놓고 보면 딱 그랬다.

“내가 작위를 위해 당신을 선택했고, 이제 헤어질 때가 됐다는 말까지 나왔습니다.”

결혼했을 때 나돌던 말이 별거를 계기로 다시금 수면 위로 떠오른 듯했다. 사이좋은 부부라지만 별거를 하고 있고, 아이도 생기지 않는 걸 보아 얼마든지 도마 위에 올려 안주 삼을 수 있는 그런 일이 둘의 결혼이었다.

기실 사실이기도 했던 소문. 이제야 계약을 논하기에는 의미가 없어져 버린 일이지만 계약서는 아직도 존재했다.

“지금에야 가벼운 수다 거리지만 언제 그게 기정사실화되어 소문으로 뭉쳐질지 모르는 일이죠. 그런데 이런 시기에 당신이 정식 집정관이 되어 버린다면…….”

골치 아픈 소문을 해결하기 위해선 애정 넘치는 모습을 계속 보여 줘야 하고 그렇게 되면 레이는 소포니악에 머물 수 없다. 루이반 공작저에 있으면서 라미엘과 함께하는 모습을 계속 보여야 할 것이다.

‘그깟 거, 단지 소문인데…….’

그냥 무시해 버리자고 하면 수도에 있는 라미엘 혼자 그 화살을 받게 되겠지. 자신이 결정한 일에 이 사람이 상처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레이의 머뭇거림을 본 라미엘이 가까이 다가와 말했다.

“레이알렉시스, 우리 계약 아직 남았어.”

금안 안에 고요하게 요동치는 무언가가 보였다.

“당신, 아직 내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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