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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 부부의 이혼 사정-142화 (142/160)

142화. 공작 부부의 이혼 사정

“도착. 푸엥, 잘 있었어?”

푸엥이 맹렬히 꼬리를 치며 주인을 반겼다.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함께 있었는데, 푸엥은 레이가 돌아올 때마다 언제나 그랬듯 격하게 반겨 주었다.

돌아온 곳은 소포니악 관사였다.

레이알렉시스는 추천을 받아 정식으로 임명된 정식 집정관이었다. 루이반 부부가 이혼을 했음에도 소포니악 사람들은 그녀를 선택했다. 더 이상 루이반 사람이 아님에도 그랬다.

“그, 그 소문이 사실이야?”

“맨날 붙어 다니던 케이랑 엘이 없잖아. 그 둘, 루이반 소속 하녀라고 했었어.”

“그럼 참말로 공작 부인은 이제 공작 부인이 아닌 거야?”

루이반에 기대를 걸었던 소포니악 사람들은 크게 실망했다. 레이가 정식 추천에 나왔다고 좋아하던 사람들의 표가 이혼을 계기로 흔들렸고, 그래서 레이는 오디와 비슷한 표를 받을 것이라 예상했다.

그러나 예상과는 전혀 달리 오디와는 박빙으로 싸우지 않았고, 아이러니하게도 레이가 추천한 인물인 브리와 겨뤄 이겼다. 오디 때문에 브리 보기만 민망해진 어처구니없는 결과였다.

오디는 레이가 정식으로 후보 신청을 하자 본인은 당선 가망이 없을 것이라 여겼는지 추천 당일에 사퇴해 버리는 일을 저질렀다. 그에겐 집정관이 고작 그 정도의 각오였던 것이다. 되면 하고 질 것 같으면 지기 전에 때려치울 정도의 각오.

오히려 레이가 설득했던 브리는 끝까지 후보에 올라 그녀와 경합을 벌였다.

루이반이 아닌 임시 집정관 경력의 레이알렉시스와 마을 일에 앞장섰던 토박이 브리의 대결은 레이알렉시스의 승리로 끝났다.

레이를 지지하는 추천서에는 그동안 소포니악을 위해 정말 열심히 해 줬다, 그녀가 일을 잘했다는 의견 이외에도 루이반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이유도 있었다.

거물의 이혼 소식에 사람들은 차마 레이에게 직접적으로 묻진 못하고, 아직 이혼이 확정된 게 아니니 루이반의 힘을 좀 빌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이유를 적은 추천서를 적어 내기도 했다.

루이반을 아주 떼어 버릴 순 없었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선방한 결과였다. 앞으로 사람들은 루이반과 레이알렉시스를 동일시하지 않고 그녀의 능력만을 보게 될 것이다.

“이제 시작이야.”

라미엘이 과감하게 던진 승부수가 먹혔다.

***

라미엘이 이혼하자는 말을 꺼내자마자 둑이 터진 것처럼 줄줄 눈물부터 나왔다. 믿고 있는 이에게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소리를 듣자 혼이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라미엘은 무슨 말을 더 할 새도 없이 레이가 울어 버린 탓에 크게 당황했다.

“레, 레이, 레이. 그게 아니라…….”

아마도 그의 인생에서 처음으로 말을 더듬은 순간이 아니었을까. 그 정도로 라미엘은 기겁했다.

“어떻게 그런……. 내가, 라엘은 내가 집정관이 되는 게 날 버릴 정도로 싫은 거예요?”

“절대 아니에요. 일단 진정해요. 당신이 울면 내가 미칠 것 같으니까. 제발 울지 말고 내 이야기 들어요.”

안절부절못한 얼굴로 레이를 달래고 어르던 라미엘은 이내 그녀를 품에 꼭 안고 도닥였다.

“미안해요. 내가 다른 말을 먼저 해야 했는데. 아니, 그러니까…….”

“흐어엉. 너 진짜 나쁜 놈이야. 다 달라며! 다 주겠다는데에.”

진정할 때까지 묵묵히 주먹질을 받아 내던 라미엘은 한참 뒤에야 빨개진 얼굴로 씩씩대는 레이를 마주할 수 있었다.

품에서 레이가 떨어져 나가자마자 가슴팍이 서늘했다. 어찌나 울었는지 그녀의 얼굴이 닿았던 부분이 흠뻑 젖어 있었다.

“미안해요. 레이. 이혼하자는 건, 진짜가 아니었어요.”

“근데 왜 그런 말을 했어요? 나는 또 당신이 나 때문에 불안해서 결국엔 이런 선택을…….”

레이의 말에 라미엘은 더더욱 미안해졌다. 제 말 한마디로 레이가 조마조마한 심경이 되었다는 걸 여실히 보여 주었으니까.

“다시 한번 사과할게요. 레이. 당신을 불안하게 만들어서 미안해요.”

“라엘, 당신 대체 무슨 생각인 거예요?”

집정관 레이알렉시스가 되겠다는 이에게 가장 큰 걸림돌은 루이반이었다. 그리고 그 루이반은 라미엘 자신을 말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니 아무리 생각해 봐도 답은 하나밖에 떠오르질 않았다.

자신이 레이가 가는 길에 조금이라도 발에 걸릴 장애물이라면 빠르게 비켜 주고 응원해야겠다는 것.

“당신은 레이알렉시스로 있고 싶잖아요. 그러니 루이반이란 이름표를 떼려면 루이반이 빠져야 할 것 같습니다.”

라미엘의 말에 레이의 안색이 서서히 하얗게 질려 갔다.

“그게 뭐야. 이혼하자는 소리잖아요.”

“아니, 절대 아닙니다. 레이, 내가 하, 어떻게 당신을……. 그게 아니에요.”

위장 이혼. 라미엘이 찾아낸 선택지였다.

그럴싸한 정식 이혼 서류를 작성하고 황실에 올린 뒤 이혼은 안 하면 되는 일이다. 이혼 서류를 올리고 이혼을 번복한 부부의 사례는 제법 있었다. 이 때문에 황실은 이혼에 일정 기간을 두고 일을 진행했다.

재산 분할이나 유책 사유를 확인하는 등 여러 가지 사정도 있지만 서로 간에 조금 더 생각해 보고 이혼 결정을 하라는 이유가 있기에 시간을 두고 면밀히 검토를 하는 것이었다.

마침 지금 라비던엔 두 사람의 별거 소문이 나돌고 있으니 이혼 서류라는 약간의 불씨만 던져 줘도 알아서 엄청난 기세로 활활 타올라 단시간에 루이반이 떨어져 나갈 것이다.

추천까지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레이가 루이반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이것뿐이다.

“왜, 왜…… 그렇게까지 하려는 거예요.”

라미엘의 이야기를 들은 레이의 눈동자가 놀란 것처럼 흔들렸다.

“하고 싶은 거 마음껏 해요. 완벽하게 해내요. 당신의 마음에 조금의 미련도 남지 않게.”

차분하게 아주 담담한 말투로 라미엘이 말을 이었다.

“그러고 돌아와서 온전하게 날 사랑해요.”

나만 봐 달라 조르는 것 같지만 ‘미련 없이 온전하게’라는 말로 레이는 그가 어떠한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마음속에 계속 신경 쓰이고 걸리는 일 없이 자신을 품어 달라는 요청이었다.

레이알렉시스로 열심히 이끌고 후에 도시민들에게 후회 없이 소포니악을 돌려줄 수 있도록 달려 보란 말에 레이는 잠시 말을 할 수 없었다.

“라엘, 나, 내가, 어떻게 당신한테 이렇게까지 사랑받을 수 있는 건지 모르겠어.”

라미엘 스스로도 어떻게 제가 이렇게까지 한 사람을 사랑할 수 있을까 놀라고 있었다.

그에게 이런 감정은 상상도 해 본 적 없던 것이었다. 이런 일은 자신의 인생에서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여겼고, 이런 감정이 제 안에 있었다는 사실조차도 믿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그 기적 같은 일이 자신에게 벌어졌다.

“왜 모릅니까. 레이가 날 사랑하는 만큼 하는데.”

레이 덕분에.

처절했던 지난 과거부터 지금까지 오롯이 품어 주는 이 사람 덕분에 기적을 얻었다.

레이의 눈동자에 다시금 차곡차곡 눈물이 차오른다. 맑고 예쁜 두 하늘에 비가 채워지지만 마음이 아프지는 않다. 자신에 대한 레이의 감정이 선명하고 진하게 물드는 광경이니 아플 리가 없었다.

“그런데 라엘, 그렇게 되면 라엘이 라비던에서 혼자 이혼에 대한 화살을 받을 거예요.”

귀족들이 굳이 헬라까지 내려와 레이를 만나 소문을 추궁할 리 없으니 남는 건 수도에 있는 루이반 공작뿐이다. 그 말을 들은 라미엘은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

“누가 감히 내게 그런 걸 말할 수 있겠습니까.”

굳이 소문을 끌어들였던 건 레이를 잡기 위해 투정을 부렸을 때 한 번뿐이었다. 애초에 소문 따윈 신경도 쓰지 않았다.

“다만, 레이의 임기 내내 자유가 아니라 이혼 검토 시간 정도밖에 못 벌 겁니다. 어쩌면 훨씬 더 짧을 수도 있고.”

레이알렉시스로 집정관이 되고, 이후 루이반 딱지를 떼는 건 온전히 그녀의 몫이다.

“라엘, 하나만 약속해 줘요.”

“네.”

“앞으로 아까처럼 그렇게 밑도 끝도 없이 덜컥 헤어지잔 말, 이혼 이야기 하면 가만 안 둘 거예요. 나 정말, 아까 당신 말 듣자마자 심장 멈추는 줄 알았단 말이야.”

“약속해요. 앞으론 절대 이런 말, 꺼낼 일 없습니다.”

이런 살 떨리는 일은 그에게도 이번 한 번으로 족했다.

이혼 소문을 퍼트리기 위한 계획은 간단했다.

이혼 서류는 부부 각자 이혼 사유를 적은 서류 한 장씩 두 장과 재산 분할이나 이혼 유책 사유를 체크하는 서류 한 장으로, 총 세 장이다.

이 중 마지막 서류가 가장 핵심인데, 이 마지막 서류를 침실에 잘 감춰 놓은 것처럼 위장하고 슬쩍 흘려 놓는 것이었다. 마치 비밀 서랍에 들어 있는 서류가 실수로 살짝 비어져 나온 것처럼.

서랍 끝에 살짝 빼 놓은 서류는 허술한 관리 속에 바깥으로 점점 튀어 나왔고 빨랫감을 챙겨 가던 하인의 손에 옷과 함께 뭉쳐져 루이반 빨래방으로 향했다.

이후는 소문대로였다. 저택에서도 이혼이 실제라는 긴장감을 유지해야 더 진짜 같아 보일 수 있기에 이 일은 부부 둘만의 비밀로 두어야 했다.

이 때문에 루이반 마님의 전속 하녀였던 케이와 엘이 레이를 떠나야 했고, 그림자 기사도 철수했다. 푸엥과 푸둥까지도 소포니악으로 보냈다.

그 바람에 루이반 저택은 한순간에 살풍경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공작의 심기를 조금이라도 거스르면 큰일이 날 것 같아 모두 숨을 죽였고, 공작이 이혼 소문을 낸 당사자를 찾아 죽일 거란 흉흉한 말도 하인들 사이에 돌았다.

이 모든 일이 마님 한 명이 사라지면서 생겼다. 최후의 보루처럼 매달릴 한 분이 계셨는데 그분이 사라지니 예전의 루이반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리 사이가 좋았는데 이렇게 벼락같이 이혼이라니, 루이반의 모든 이들도 당황했다.

다만 두 사람이 하루아침에 갑작스레 이혼을 하게 된 것에 분명 무슨 이유가 있을 것이라 짐작한 노련한 집사장 윌포프와 눈치 빠른 행정관 테일러, 짐승 같은 감각의 기사단장 크레하만이 진심이라 믿지 않고 있을 뿐이었다.

“공작님, 정말 이리하실 예정입니까.”

윌포프는 몹시도 외람된 줄 알면서도 물어야 했다. 주인은 자신이나 테일러에게 이혼과 관련한 어떠한 일도 맡기지 않았고 저택 내 어수선한 소란과 바깥의 소문도 방치하고 있었다.

확실히 두 분 사이에 무언가가 있다는 걸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런데 지금 주인이 내린 결정은 그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태자비가 출산을 했다. 태자를 빼다 박은 황녀께서 태어나셨다는 소식이 리담에 전해졌고, 그 축하를 위한 연회 초대장이 각 귀족에게 전달됐다.

정말로 이혼을 한 게 아니라면 부부가 함께 참석해서 축하를 해야 하는 자리인데 라미엘이 레이와 따로 가겠다고 선언을 한 것이다.

새로운 황실의 후계를 대중에 공개하는 정식의 큰 연회가 아니라 오랫동안 후사가 없어 고민이었던 황실의 경사 자체를 축하하는 비교적 작은 규모의 연회였다.

하지만 이것 역시도 황실이 주최하는 행사였다. 그 자리를 부부가 따로 입장하겠다는 이야기였다. 이혼이 아니라고 하면서 오히려 이혼에 대한 확신을 주는 듯한 라미엘의 선택을 윌포프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라미엘은 그를 쳐다도 보지 않고 두 번 말하게 하지 말라고 일축하고는 내보냈다. 더 이상 무어라 말할 수 없는 윌포프는 정중히 물러났다.

고요해진 실내를 둘러보며 라미엘이 귀걸이를 톡톡 두드렸다.

“레이, 각오는?”

[됐어요.]

연회는 이혼 소문을 대중에게 강력하게 확인시켜 줄 수 있는 한 방이었다.

가서 일부러 서먹하게 굴 필요도 없이 각자 따로 행사장에 가서, 평소처럼 사이좋게 있으면 된다. 서먹하게 보이는 것보다 사람들 앞에서 친밀한 모습을 보여야 더더욱 이혼을 확신할 것이다.

비밀로 하고 싶어서 아닌 척한다고 생각하도록 공작 부부가 이혼을 감추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여야 더더욱 빠르게 이혼이 확정됐다는 소문이 퍼질 것이리라.

머리 좋은 두 사람의 계획은 제대로 먹혔다. 연회 이후 온 동네에서 루이반의 이혼을 들먹이게 됐으니 말이다.

두 사람이 이혼 서류를 흘린 뒤 고작 사흘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리고 이어 소포니악은 집정관 추천을 했고, 결과는 레이의 승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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