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 부부의 이혼 사정-143화 (143/160)

143화. 진실보다는

소포니악 집정관은 이혼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항상 같이 다니던 케이와 엘이 없어진 걸로 대답을 대신하는 듯 보였다.

두 사람이 없어진 자리엔 대신 개가 두 마리 생겼다. 흰 개는 자주 보이지 않았지만 검은 개는 매일 줄에 묶여 주인과 함께 소포니악을 돌았다.

오늘도 푸엥과 산책을 하며 도시를 시찰하는 레이에게 브리가 물었다.

“저 사실 계속 궁금했는데, 이제 물어볼게요. 대체 개는 왜 묶어서 다니시는 거예요?”

브리만이 아니라 소포니악 모든 이의 궁금증일 수도 있는 질문이었다.

“푸엥이 갑자기 확 달려 나갈까 봐. 그렇게 되면 사람이 다치거나 개를 잃어버릴 수 있어서 그래. 강아지들 행동은 예측이 안 되잖아.”

사람과 개의 안전 모두를 위해 강아지를 묶어서 데리고 다닌다는 희한한 발상이었다.

특이한 점은 목줄만이 아니었다. 강아지 주제에 옷도 입었다. 옷도 보통 고급이 아닌 것들이었다. 개를 이렇게까지, 심지어 검은 개를.

이해할 순 없지만 수도 귀족들은 저런가 보다 하고 넘기고 보니 우리 집정관님은 이제 귀족이라기에 모호한 위치다. 정말 이혼을 했느냐고 묻고 싶은데 차마 물을 수가 없어서 브리는 빙빙 말을 돌렸다.

“그, 저, 공작님께서는 안녕…… 하시죠?”

브리의 조심스러운 질문에 레이는 방긋 웃었다.

“응, 잘 계셔.”

웃으며 대답하는 걸 보니 속이 말이 아닌 모양이다. 브리는 레이의 손을 꼭 잡고 위로하듯 두드려 주었다.

아무래도 여기에 집정관으로 오신다고 해서 그리된 것 같아 마음이 조금 껄끄럽다. 누구 말마따나 아내가 집 밖의 일을 하겠다고 나와 사는데 어떤 남편이 마음에 들어 할까.

“……다행이네요.”

그래도 괜찮다며 웃는 레이를 위해 맞장구를 쳐 준 브리는 자신을 보며 신나게 꼬리를 흔드는 푸엥의 머리를 슬쩍 쓰다듬어 주었다.

검은 개에 대한 안 좋은 이야기는 푸엥이 소포니악에 등장했을 때부터 들었다. 오랜만에 듣는 기분 나쁜 편견이었지만, 레이의 말을 착착 따르는 푸엥을 보고 사람들은 조금씩 그런 생각을 버렸다. 일부에선 이렇게 머리 좋은 개는 생전 처음 본다며 놀라워했다.

도베는 관사에서 목이 마르다는 레이의 말에 푸엥이 컵을 물어다 주는 것을 본 이후 생각이 싹 바뀌었다. 이제는 매번 출근할 때마다 배를 까고 반겨 주는 검은 개를 위해 간식까지 따로 챙겨 갈 정도가 되었다.

조금씩 더워지는 날씨 속, 소포니악에 또 다른 편견 하나가 사라지고 있었다.

***

“공.”

“예, 전하.”

“무슨 꿍꿍이인가.”

태자 파르베제가 맞은편 자리에 라미엘을 앉혀 놓고 물었다. 제로석 공표를 앞두고 당사자와 최종적으로 논의를 하기 위해서 루이반 부부를 황실로 불렀다.

지난번 광산 시찰 때 라미엘이 이건 아내 몫이라 못을 박았듯, 이 건은 레이하고만 진행해도 될 일이었다. 하지만 항간에 난리인 소문의 진상을 제대로 알고 싶은 마음이 컸기에 일부러 두 사람을 모두 불렀다.

“그대들이 이혼을 한다고?”

“소문일 뿐입니다.”

루이반 공작 부인은 현재 헬라 소속 도시의 집정관으로 그곳에서 살고 있다. 부부가 요란하게도 별거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와중이니 헛소문이 날 수는 있으나 기묘할 정도로 루이반은 침묵을 고수하고 있다.

귀족의 이혼은 외부에 발설할 사항이 아니라 황실은 그 어떤 말도 꺼내지 않는 게 불문율이었으나 특이한 점은 이번 일이 기존의 이혼 소식의 양상과 다르다는 것이었다.

“혹시 항간의 일부 소문대로 공이…….”

일부에선 라미엘이 법안 때문에 이혼을 당한 것이라 주장했다. 여성에게 작위를 주겠다고 설치더니, 그 소원대로 공작 부인이 집정관 작위를 받자마자 루이반을 떠났다며 신나게 떠들어 댔다.

“그것 역시도 아닙니다.”

라미엘은 거듭 부인했다.

실은 그에겐 레이에게도 아직 말하지 못한 비밀이 있었다.

황실은 루이반에서 그 어떤 이혼 서류도 받은 적이 없다. 그렇기에 파르베제는 당황한 것이다. 이혼 서류를 받은 적도 없는데 모두가 이혼이 확정이라도 된 것처럼 여기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왜 가만히 있지?”

“헛소문에 일일이 대응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기에 그렇습니다.”

라미엘은 황실에 서류를 내고 최종 확인 때 이혼을 하지 않으면 된다고 했지만, 막상 작성된 실제 서류를 보니 차마 가짜로라도 두 사람의 이름이 적힌 종이를 황실에 낼 수가 없었다. 끝이라는 단어만 봐도 앞이 아찔하고 숨이 막히는 기분인데, 이걸 당사자 외의 또 다른 이에게 보여야 한다는 것이 내키지 않았다.

결국 그는 고민만 하다가 그만두었다. 이미 소문은 확정된 것처럼 흘러갔으니 굳이 황실까지 이용할 필요는 없어 보였기도 했다.

“대체 왜 그런 말이 나온 거지? 아, 그렇다면 누군가가 서류를 봤다는 것도 거짓말인 거군.”

무성한 소문 속 유일한 진실을 파르베제가 집어내는 순간 시종이 레이가 도착했음을 알렸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태자 전하를 뵙습니다.”

레이가 들어오며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어서 오게. 일은 잘 해결이 되었는가.”

소포니악 일부에서 갑자기 사람들이 어지럼증을 호소하는 일이 일어났다. 전염병이라면 도시 전체에 비상이 걸릴 일이었기에 황실과 약속을 미루고 사태를 먼저 수습해야 했다.

다행히 전염병은 아니었고 그들이 최근 먹은 닭 요리에 먹을 수 없는 것들이 섞여서 그리되었다는 결론이 나오고서야 뒷수습을 명령하고 부랴부랴 황실로 올 수 있었다.

“예, 전하께서 배려해 주신 덕분에 처리를 할 수 있었습니다.”

레이가 감사 인사를 전하며 라미엘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녀가 앉자마자 라미엘의 눈이 자연스레 꼼꼼하게도 제 아내를 살핀다. 부러 하려는 게 아니라 거의 자동으로 나오는 행동이었다. 아무 이상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공작의 눈에서 긴장이 풀린다.

‘저러면서 이혼 소릴 듣다니.’

이런 부부의 이혼이라니. 황녀 탄생 축하연 때 각자 입장한 걸로 크게 소문이 퍼진 듯했지만, 그건 다른 입장에서 보면 소포니악 집정관 일을 마치고 오는 공작 부인 때문에 함께 오기로 한 일정이 틀어졌을 가능성도 높다.

사이좋은 부부의 이혼이 모두의 흥미를 돋울 만한 재미난 소문이라 그런가,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진실보다는 귀로 들리는 알싸한 매운맛을 더 찾는 듯했다.

‘당사자들이 조용하니 내가 나설 건 없지.’

워낙 시끄러우니 조정이라도 할까 했지만 장본인이 별 반응이 없으니 굳이 먼저 나설 필요는 없어 보인다.

“제로석 시설은 어찌 되었는가.”

“순조롭게 잘 지어지고 있습니다. 이대로라면 예정보다 이르게 완공이 될 것 같습니다. 시범적으로 먼저 운용될 가시설은 완공이 되었습니다.”

휴일이 도입되고 나서 조금 늦어지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시설 노동자들이 잠시 쉬면서 고단한 몸을 회복하고 좋아진 컨디션으로 일을 할 수 있었기에 오히려 일일 작업 속도가 빨라졌다.

이후 제로석 발표와 처리 등을 위한 회의가 이어졌다. 먼저 시범적으로 몇몇 장소에 제로석을 사용하기로 하고 시설이 제대로 돌아가는지 확인할 수 있게 가시설에서 사후 처리를 해 보기로 했다.

“그런데 말이야. 어찌 그런 결심을 했지?”

회의가 끝이 나고 말미에 파르베제가 물었다. 왜 집정관이 되었느냐고.

“그대가 정식 집정관이 된 것이 소문을 만드는 데 일조한 것 같은데.”

정확히 따지자면 집정관이 되기 위해 소문을 이용한 것이다. 질문의 순서가 바뀌어 있었지만, 사람들의 생각도 아마 저러할 것이다.

레이가 잠시 라미엘을 바라보았다. ‘당신에게 했던 말, 태자께 해도 될까요?’ 하는 고민에 라미엘이 괜찮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은 머뭇했지만 확고하고 당당한 눈빛으로 레이가 말했다.

“제 이름으로 불릴 수 있는, 저의 능력과 노력으로 얻어 낸 것이라서 그랬습니다.”

레이의 대답에 태자는 놀란 얼굴을 했다.

한동안 말이 없던 그는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하다가 한참 만에 생각을 정리하고 말을 했다.

“……내 아이도 그리되었으면 좋겠군.”

아이가 태어나기 전 미리 여성 작위 법안에 찬성을 표한 것이 다행인 일이었다. 황녀가 태어나고 찬성했다면 계승을 위해 속을 드러낸 셈이 될 뻔했으니 말이다.

현재 유일하게 황위 계승권을 가진 파르베제의 딸이 노아반테르라는 거대한 황실 이름에 눌리지 않고, 이전의 젠달 황제처럼 여자라는 꼬리표에 밀리지 않게 가진 능력을 마음껏 펼치는 황제가 되길 진심으로 바랐다.

***

“이거 공작 각하 방에 있던…….”

“조용히 해. 입 다물어.”

로사가 들고 있는 이불보를 안나가 빼앗아 커다란 빨래용 욕조에 던져 넣었다. 이런 적이 어디 하루 이틀인가. 새삼 놀랄 것도 없다.

“말 잘못 하면 여기서 아예 쫓겨난다고.”

안나가 로사의 귓가에 소곤거리며 주의를 줬다.

마님 전담 하녀였다가 제대로 보필을 못 해 최하위 업무처인 빨래방까지 밀려났다. 여기서 입이라도 잘못 놀렸다간 루이반과는 영영 안녕이다.

같은 하녀 일을 했더라도 어느 가문에 속해 무슨 일을 했느냐는 천지차이였다. 루이반은 가문도 유명한 곳이거니와 일대에서 가장 대우도 좋고 심지어 휴일도 있기에 최고의 일자리였다. 빨래가 고되긴 해도 여타 가문의 하녀 일보단 훨씬 나았다.

무엇보다 여기서 입을 잘못 놀렸다는 이유로 쫓겨난다면 추천서고 뭐고 아무것도 받을 수 없다. 그렇다면 귀족 가문에서는 영영 일을 할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허드렛일을 하는 하인들은 추천서 없이도 고용되긴 하지만 고위 가문이나 좋은 곳으로 가려면 추천서가 있는 편이 채용 확률이 높기에 조심해야 했다.

“나도 알아. 우리를 의심하고 있는데 이런 것까지 나오면 또 누가 말을 퍼뜨릴지 모르잖아. 그래서 그 전에 없애려던 거였어.”

“그럼 평소처럼 말없이 해야지.”

“며칠 조용한 것 같더니 또 이래서 나도 모르게 그만 말이 나와 버린 거야.”

“어후, 알았으니까 조용히 해. 쉿!”

루이반 부부의 이혼 소식이 빨래방에서 나왔다는 소문을 듣고 빨래방 하인들은 새파랗게 질려야 했다.

대체 어떤 정신 나간 놈이 가문 내부의 일을 밖으로 떠벌렸을까. 심지어 이런 중대하고 심각한 사안을.

아무리 좋은 일자리라고 해도 목숨을 내놓을 만큼은 아니기에 공작이 칼부림을 하기 전에 일을 그만두고 싶지만, 이곳에서 지금 나간다고 하면 유포한 범인이 자신이라고 실토하는 것이나 다름없기에 나갈 수도 없었다.

남은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 어떻게든 최초 유포자를 찾으려 안달하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덜컥 로사가 이불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안나의 심장이 벌벌 떨렸다.

마님이 소포니악으로 떠나시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부부 침실에서 나오는 빨래는 마님이 있던 시절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밤새 누군가가 공작과 한 침대에 있었다는 흔적이 고스란히 남은 빨랫감.

이를 못 본 척하기 위해 빨래방 하인들은 무던히 애를 써야 했다. 이걸 보면 이혼이 확실하다 못해 공작에겐 벌써 짝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대체 우리 공작 부부에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도통 이해할 수 없지만 모두는 침묵했다. 침묵만이 살길이기에 오늘도 모른 척 묵묵히 제 일만 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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