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화. 푸엥의 난동
“멍! 멍멍멍! 으르르르. 멍! 멍!”
푸엥, 이놈의 자식!
황실에 도착을 하고 크레하에게 맡기기도 전에, 라미엘을 만나기도 전에 푸엥이 사고를 쳤다.
황실 별채 건물 중 하나로 장례식을 진행하기 전, 조문을 하기 위한 건물인 기도관 근처에 도착하자마자 푸엥이 맹렬한 기세로 짖기 시작한 것이다. 사람들의 눈에 띄기 전에 크레하를 통해 푸엥을 다른 곳에 두려고 했는데 갑작스러운 개 짖는 소리에 모두가 레이를 주목했다.
심지어 푸엥은 이제 아예 레이를 뒤에 두고 제가 한 걸음 앞에 서서 이제 막 도착한 마이클레이 공작 부인을 향해 이를 드러내고 찢어 죽일 것처럼 으르렁거렸다.
“기다려! 앉아!”
레이 말이라면 찰떡같이 알아듣던 푸엥이 지금만큼은 전혀 말을 듣지 않았다. 덕분에 진땀을 빼는 건 레이였다. 사람들이 이 시국에 이런 장소에 개를 데리고 온, 심지어 새카만 개를 줄에 매고 끌고 온 루이반 공작 부인을 경악한 눈으로 보고 있었다.
‘나 같아도 저렇게 보겠다!’
하지만 그 시선이 이번만큼은 뼛속 깊이 공감되었다.
“죄송합니다. 두 분께 정말 실례를…….”
“멍! 멍멍! 왈왈!”
오랜 시간 병석에 있느라 고생했다던 공작 부인은 여전히 안색이 창백했고, 이 여름에 목까지 올라오는 긴팔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그녀는 남편의 팔짱을 끼고 아주 느릿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아직도 제대로 거동하기 힘들다는 이야기였다.
“루이반 공작 부인, 이게 대체…….”
마이클레이 공작이 미간을 찌푸리며 한 걸음 물러섰다.
“정말 면목 없습니다. 제가, 안 돼─!”
레이가 아무리 줄을 당겨도 푸엥은 막무가내였다. 대형견이 있는 힘껏 달려들자 레이는 속수무책으로 개에게 끌려갔다.
푸엥이 눈에 불이 붙은 것처럼 흥분하고 털까지 바짝 세워 가며 공격적인 성향을 보인 건 처음이었기에 레이는 당황스러웠다. 순둥하기 그지없던 가족의 원인 모를 폭주에 진땀이 났다.
레이가 온몸으로 푸엥을 안아 누르며 말렸지만 기어이 푸엥은 마이클레이 공작 부인의 다리를 물어 버리고야 말았다.
“이, 이런!”
공작의 놀란 비명 외에도 주변에서 경악하는 소리가 들렸다. 레이는 정말 미칠 것만 같았다.
물었어? 지금 이놈의 자식이 공작 부인 문 거야? 그것도 아픈 사람을?
환장할 노릇이었다. 레이의 안색마저 파랗게 질리고 주변은 개에게 물린 공작 부인의 안위를 살피느라 소란스러웠다.
“괜찮으세요? 어떡해. 빨리 의사를 부를게요. 부인, 정말 죄송합니다!”
레이가 파랗게 질려서 사과를 했다. 그 와중에도 부인에게 달려 나가려는 푸엥을 온몸으로 막느라 제대로 서서 사과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 아.”
그런데 정작 개에 물린 당사자는 목 안에서 울리는 듯한 작고 음울한 소리만 내고 아무 반응도 보이질 않았다.
갑작스레 개가 덤벼들어 물면 놀라는 모습을 보이는 게 정상인데 마이클레이 공작 부인은 미동도 없이 조용했다. 마치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무슨 일이 일어난 줄도 모르는 것 같은 반응이었다.
마이클레이 공작 부인의 반응에 위화감을 느낀 건 레이만이 아니었다. 개념 없는 레이를 탓하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사라지고 기묘한 감각만 공기를 부유했다.
오싹.
레이는 목줄을 짧게 팔에 칭칭 감고 푸엥을 온몸으로 잡은 뒤 거의 바닥에 엎드리듯 있었기에 공작 부인의 베일 속 얼굴을 슬쩍이나마 볼 수 있었다.
‘맙소사.’
눈 주변이 검게 푹 파였고 볼이 홀쭉했다. 마이클레이 공작 부인, 메리엔의 체격은 조금 통통한 편이었다. 그런데 안색이 저렇게 안 좋아질 정도의 큰 병에 걸려서도 그 체격은 여전해 보였다.
외려 이전에 비해 조금 더 커진 듯 보였다. 핼쑥하고 퀭한 얼굴과 달리 부은 듯 퉁퉁한 몸. 부종이 생기거나 몸속에 물이라도 찬 것과는 다른 양상으로 보이는 모습이다.
‘대체 무슨 병이었기에 사람이 저렇게 변할 수가 있지?’
저 정도면 아직도 병상에 있어야 하겠지만 국상이라는 시국이니 모든 귀족은 무조건 와야 했기에 무리해서 억지로 나온 거겠지.
“으르르. 월! 월월! 컹컹!”
푸엥은 레이가 자신을 온몸으로 막고 있는 걸 알았는지 더 이상 공작 부인에게 달려 나가진 않았다. 하지만 레이에게 꽉 붙들린 채 제 주인을 지키듯 계속 맹렬히 앞을 향해 짖어 댔다.
“마님!”
그때 크레하가 나타나 푸엥의 목줄을 단단히 붙잡고 레이를 일으켜 세웠다.
***
루이반 공작 부인의 검은 개가 조문을 위해 겨우 병상에서 벗어나 황실에 온 마이클레이 공작 부인을 물었다.
소문은 파다하게 퍼졌고, 소란을 일으킨 죄로 레이는 기도관에 들어가지 못하고 건물 밖 사람이 없는 정원으로 나와 있어야 했다. 앞으로 황실 중앙에서 장례가 진행되기 전까진 기도관에서 대기하지 못하고 밖에서 내내 기다려야 한다. 출입을 금지당한 것이다.
다른 날도 아니고 황제가 승하한 날 불미스러운 소동을 벌였으니 황실 측에서도 가만히 있을 순 없어 소란의 당사자를 잠시 대기실인 기도관에서 내보내는 것으로 처벌을 내렸다. 벌이기에 크레하도 곁에 둘 수 없고 혼자 있어야 해서 그도 일단은 기도관으로 가 있어야 했다.
그러나 레이는 이 처분이 결코 과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충분히 그럴 만했다. 개가 사람을 물고 소란을 피웠으니 개 주인으로서 수습하는 건 당연한 이치였다.
황실 의사가 부랴부랴 나타나 마이클레이 공작 부인을 모시고 가까운 의료실로 향했고, 그사이 마이클레이 공작에게 레이는 거듭 사과를 하며 차후 치료에 드는 모든 비용을 담당하겠다고 약속했다. 더불어 마이클레이 공작가에 이 사건을 보상할 만한 합당한 사과 선물을 보내는 것으로 겨우 합의를 마쳤다.
“푸엥아, 이놈의 자식! 왜 그랬어. 오랜만에 너 불편해하는 사람들 많아서 예민했던 거야? 응?”
겨우 진정한 듯한 푸엥은 레이 옆에 얌전히 엎드렸지만 그래도 아직 안심이 안 되는지 작게 으르르 소리를 내며 계속 두리번두리번 주위를 살피고 있었다.
라미엘은 당연 레이와 함께 있으려 했지만, 그녀는 황명으로 처벌을 받는 중인 데다가 루이반 가문 사람은 라미엘 한 명뿐이라 자리를 비울 수 없어 기도관에 홀로 남아 사람들을 상대해야 했다.
저 꼴을 보고도 아직도 아내를 사랑한다고 할까, 이번에 정이 떨어지지 않았을까.
사람들은 저마다 속으로 공작의 감정을 추측해 봤지만 라미엘은 아무런 동요도 하지 않는 듯 보였다. 아내의 일에 굳은 얼굴을 했지만 그 일에 대해선 아예 함구하고 있었다.
“헥, 헥헥.”
레이가 꼬리 부근의 등을 툭툭 두드리며 혼을 내는데 푸엥이 드러내던 이를 쏙 감추고 평소처럼 주인을 향해 방긋거렸다. 온통 까만 털 속에 반짝이는 검은 콩 세 개와 빨간 혀가 보였다.
이 와중에도 내 새끼는 심각하게 귀여워서 화가 풀리고 있었다.
가뜩이나 아프고 몸이 안 좋은, 심지어 공작 부인이기까지 한 환자를 물었으니 보상은 제로석급은 가야 타산이 맞을 것이다. 이전에 몬순가에서 귀하게 여기던 정보 길드를 사용하게 되었던 것처럼 말이다.
“하아.”
그나저나 정말 그건 뭐였을까.
‘대체 무슨 병이기에 사람이 그렇게 시체 같은 모습일 수가 있지.’
단순히 모습이 평범한 환자 같지 않다는 사실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초점 없는 공작 부인의 눈을 마주하자 소름이 끼쳤다. 오싹하고 싸했다.
무슨 병인지 원인도 모르고 차도가 없어 숱한 날 동안 마이클레이 가문은 고생을 했다고 했다. 그나마 지금이 나아진 상태라고 하는데 대체 그렇다면 예전엔 어땠길래 그 정도가 좋아진 것이라고 말하는 걸까.
그때 얌전히 엎드려 있던 푸엥이 몸을 다시 벌떡 일으키고 으르렁거리기 시작했다.
“푸엥, 너 또 갑자기 왜 이래?”
레이가 말을 마치자마자 푸엥은 이를 드러내며 한곳을 향해 다시금 맹렬히 짖기 시작했다. 레이는 푸엥이 또 달려 나갈까 봐 목줄을 단단히 쥐고 어떻게든 막기 위해 꽉 껴안았다.
‘잠깐, 푸엥 상태가 좀 이상해. 아깐 정신이 없어서 몰랐는데…….’
다리 사이로 말린 꼬리와 한껏 낮아진 몸, 바짝 선 털, 뒷다리에는 단단히 힘이 실려 있었다. 무서워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공포에 질려 있는 푸엥은 무서워하면서도 ‘무언가’에게서 주인을 지키는 것처럼 도망가지 않고 버티고 있었다.
“……마이클레이 공작 부인?”
어둠 속에서 느릿한 걸음으로 마이클레이 공작 부인이 다가오고 있었다.
레이의 소리에 메리엔은 걸음을 멈추고 그녀를 향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의사를 만나러 갈 때만 해도 메리엔이 머리에 쓰고 있던 베일 달린 검은 모자는 보이질 않았다. 그 때문에 그녀의 얼굴을 자세히 볼 수 있게 되었다.
‘저게 뭐야.’
저것이라는 말은 사람에게 쓸 표현이 아니지만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마이클레이 공작 부인은 시체 같았다. 그녀의 갈색 눈동자는 초점이 없고 검게 죽어 있었다. 파리한 안색은 사람이 아니라 마치 썩기 직전의 시체를 보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켰다.
메리엔은 목까지 올라오는 드레스를 입고 있었는데 치료를 받다가 풀어진 건지 목 부분의 옷자락이 다 풀어헤쳐져서 새하얗게 질린, 거의 파랗게 보일 정도로 퍼석한 맨살이 드러나 있었고 그런 목에는 이질적인 붉은 핏자국이 묻어 있었다.
“컹! 컹컹컹! 컹!”
품 안에서 짖는 푸엥의 소리가 저 멀리서 들리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눈앞에 보이는 광경은 오싹하고 소름이 끼쳤다.
‘이게 병이라고?’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하기 어려운 모습이었다. 레이가 푸엥을 껴안고 주춤주춤 저도 모르게 뒤로 한 걸음 물러서는데 메리엔이 갑자기 입을 벌리며 자박자박 가까이 다가왔다.
“방금…….”
레이는 지금 자신이 본 게 맞는지 눈을 의심해야 했다.
“방금 분명…….”
푸엥이 짖는 소리가 더 거세졌다. 온 정원을 울릴 정도로 절박하게 짖는 개 소리에 기도관 사람들 몇몇이 밖으로 나왔다.
“마이클레이 공작 부인?”
밖으로 나온 사람들이 메리엔에게 말을 걸자 그녀는 레이에게 오던 방향을 바꾸어 더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에게 다가갔다.
“치료는 잘 받으셨습…….”
밖으로 나와 메리엔을 발견한 자가 안부를 묻다 그녀의 모습을 보고는 입을 다물었다. 괴기하고 소름 돋는 꼴에 사람들은 절로 할 말을 잃어 버렸다.
“배, 배가…….”
“예?”
“고…… 파아.”
서서히 메리엔이 입을 더 크게 열었다. 그리고 레이는 방금 전 자신이 제대로 봤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흐, 흐익!”
“뭐, 뭐야!”
“꺄아아아악!”
“으아아악!”
메리엔의 입 안에서 점액질로 뒤덮인, 하얗고 비쩍 마른 손이 튀어나오고 있었다.
‘저게 뭐야, 대체 뭐야. 어떻게 저런 게 있을 수 있지?’
개가 피를 토하듯 짖는 소리와 입구의 비명 소리를 들은 사람들이 무언가 심각한 상황을 인지하고 조금씩 몰려나오기 시작했다.
레이는 하얗게 질린 채, 덜덜 떨리는 손으로 귀걸이를 건드렸다.
“라, 라엘, 라엘, 여기로 빨리 와, 아니, 당신 절대 밖으로 나오지 말고 거기 있…….”
“끄에에에에엑─!”
메리엔이 도저히 사람 소리라고 할 수 없는 기괴한 소리를 내며 팔을 토해 내기 시작했다. 하얗게 보이던 손가락이, 손등이, 손목이 보이더니 이젠 팔까지 튀어나오고 있다. 손목까지만 해도 이상할 정도로 크게 벌어졌다고 생각한 입이 점점 기괴하게 커지면서 찢어지고 있었다.
난생처음 보는 징그럽고 끔찍한 광경이었다.
“으아악! 안 돼! 이, 이것 놔! 으악─! 제발, 살려 주시오!”
메리엔의 입을 찢고 나온 팔이 가까이에 있던 무이 자작의 머리채를 순식간에 잡아 허공에 흔들었다. 자작의 몸이 종이처럼 흩날리더니 이내 으득 소리를 내며 그의 비명이 뚝 멈췄다.
그 순간 메리엔의 몸에서 투둑투둑 소리가 나더니 입부터 아래쪽까지 쭉 찢기며 기괴한 생명체가 튀어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