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 부부의 이혼 사정-151화 (151/160)

151화. 마물 출현 (3)

헤덴의 집무실 바닥으로 레이가 구르듯 넘어졌다.

갑작스레 게이트를 열고 나타나 꼬질꼬질한 모습으로 바닥을 구르는 레이를 보고 헤덴이 미간을 찌푸렸다.

“공작 부인? 아니, 이게 대체 무슨 일이십니까.”

토마가 놀라서 달려와 레이를 부축했다. 헤덴은 황제의 죽음을 전달받고 연구 일정을 모두 정지시킨 후 장례 준비를 하던 중이었다.

“진정 좀 하고, 아가 조련사 너 괜찮…….”

“허억, 헉. 허억, 헤, 예, 헤덴 예하! 황실에, 허억. 1급 마물이 나타났어요!”

“뭐? 그게 무슨 소리냐, 어찌 마물이 황실에 나타나?”

“저도 모르겠어요. 허억. 사람을 찢고 나왔어요. 빨리 가서 제발 라엘 좀 도와주세요.”

거짓말 같아 보이진 않았다. 레이의 상태는 도저히 장난이라고 볼 수 없었고, 또 그녀가 이런 장난을 칠 사람도 아니었다.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한 토마는 성기사와 신관들을 준비하겠다며 집무실 밖으로 나갔고 헤덴은 긴급히 게이트를 열어 보려고 했다. 그러나 게이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평소처럼 원할 때 불쑥 황실을 찾아갈 수 있을 정도로 힘을 쓰는 데에 별 어려움이 없던 헤덴이었음에도 지금 게이트가 막힌 것이다.

이는 곧 황실에 긴급한 사건으로 강력한 보호가 내려졌다는 말이었고 레이의 말이 사실이라는 방증이었다.

힘으로 밀어붙이면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보호가 겹으로 쌓여 예민한 중에 그걸 건드리면 혹여나 방어가 틀어질 수도 있어 섣불리 시도하긴 어려웠다.

“황실에서도 이쪽으로 도움을 요청하는 게이트를 열 테니 조금 기다려야겠구나.”

“그게 얼마나 걸리는데요? 지금 너무 급해요. 아! 예하, 루이반으로 게이트 설정 가능하시죠? 거기에서 어떻게든…….”

이곳에 올 때와 같은 방법으로 헤덴을 데려가면 되지 않을까를 생각했는데 푸둥이 나타났다. 연구 때문에 와 있던 푸둥은 본래의 크기였다.

“푸둥, 미안해. 지금 너랑 놀아 줄 시간이 없어. 나중에, 나중에 놀아 줄게.”

푸둥이 치맛자락을 물어 당겼다. 평소처럼 자신을 안아 주지도, 다정한 인사도 건네지 않으니 보채는 모양이었다. 애석하게도 지금은 푸둥을 얼러 줄 상황이 아니었기에 레이는 푸둥의 머리를 대강 쓰다듬어 주고 입에 물린 치맛자락을 빼냈다.

그런데 푸둥이 계속 무언가를 하려는 것처럼 레이와 헤덴을 바라보더니 몸을 조금 더 키웠다. 삽시간에 집무실만큼 거대해진 푸둥 때문에 두 사람은 당황했다.

“지금 너랑 뭘 할, 으앗!”

레이가 말리려는데 푸둥이 레이의 옷깃을 물어 올리더니 제 등에 태웠다. 그리고 이어서 헤덴도 등에 올렸다.

“푸둥아, 지금 뭐, 아아악!”

“으헉!”

와장창.

벽 한쪽을 차지하던 커다란 집무실 유리창을 박살 내며 푸둥이 하늘을 날았다. 두 사람은 갑작스레 이상행동을 보이는 푸둥에게 무어라 말도 못 하고 흰 털을 손잡이 잡듯 꼭 잡은 채 몸을 숙였다.

“이게 왜 이러느냐!”

“푸둥아, 너……. 예하!”

푸둥이 두 사람을 태우고 겅중겅중 하늘 다리를 밟고 있었다. 2단계 하늘 다리를.

푸둥이 하늘을 달리다가 어떤 특정 부분으로 뛰어내릴 때마다 배경이 휙휙 바뀌었다.

세 번의 장소를 지나 도착한 곳은 황실이었다. 한쪽 지붕이 불에 타고 있는 건물이 앞에 보이고 그 기괴하고 예쁜 인형과 기사들이 대치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아가 조련사야, 얼른 입 막아라. 1급 분진이다.”

반짝이는 붉은 빛가루 같은 것이 공기를 메우고 있었다. 막힐 것 없는 공간에서 붉은 안개처럼 1급 마물의 손끝을 따라 미세한 가루가 점점 더 퍼졌다.

‘이런.’

사람들이 없다면 성력으로라도 묶어 둘 수 있겠는데 여기저기 산재해 우왕좌왕하는 인파가 문제였다.

“그르르르르.”

푸둥의 몸이 울리기 시작했다. 커다랗고 넓은 통을 긁는 듯한 소리와 진동이 느껴지더니 푸둥이 입에서 검은 불을 토했다.

맹렬하게 뿜어 나간 불이 한순간에 모두를 삼켰다. 마물도, 그와 대적하던 기사들도 검은 불길에 휩싸였다.

“아아악! 푸둥아! 저기 내 남편 있어! 다른 사람도 있단 말이야!”

레이가 저도 모르게 비명을 지르며 푸둥의 털을 잡아당겼다.

마물을 처리하는 건 고맙지만 마물 잡겠다고 주변까지 다 태우면 어쩌자는 거야!

“라엘! 라엘, 대답해요!”

레이가 통신기로 라미엘을 찾았다.

“쯧쯧.”

헤덴이 혀를 차더니 아래로 뛰어내렸다.

“예하!”

심장이 떨어지는 것 같았다. 예하는 갑자기 왜 저 불구덩이로 떨어지시는 거야!

푸둥이 하늘 다리를 걷는 것처럼 헤덴이 발을 디딜 때마다 금빛 진이 발아래 빛났다. 마력 사용이 안 되니 헤덴은 성력으로 후방 지원이나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지상에 발을 디뎠다.

“무슨 일이냐.”

위에서 아가 조련사가 난리를 쳤던 것과 달리 라미엘은 옷만 더러워졌지 멀쩡한 모습이었다.

“저도 모르겠습니다. 4급 마물이 갑자기 1급이 되더군요.”

검은 불에 1급 마물이 뿌려 놓은 분진이 모두 타 버렸다. 가장 성가시고 처리가 어려운 부분이 해결된 것이었다.

사람들을 최대한 성의 중앙 건물로 피신시켰지만 분진을 들이마시고 죽은 자도 나왔다. 신종 1급은 슬슬 자신의 힘을 파악하고 있었다.

그 예로 처음엔 여기저기 분진으로 폭파를 하는 것만 일삼더니 이제는 지상 가까이로 와서 사람들을 분진에 가둬 죽이고 폭발로 성을 부숴 대고 있었다. 이보다 더 사태가 커지기 전에 푸둥이 나타나 천만다행이었다.

“4급이 1급으로 변했다고? 그게 무슨 말이냐.”

“말 그대로입니다. 4급이 사람 속에 들어가서 그 사람 행세를 했던 모양입니다. 그게 사람 밖으로 나오더니 1급이 됐고요.”

기이한 일이었다. 이는 오랜 시간 살아온 헤덴도 처음 듣고 겪는 일이었다.

다만 지금 상황에서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없으니, 대강의 상황 파악만 해야 했다. 원인을 밝혀내는 건 차후에 하게 될 일이다.

***

푸둥이 하늘에서 천천히 내려오기 시작했다. 검은 불이 붙은 지상으로 점점 가까워지는데 신기하게도 전혀 뜨겁지 않았다.

“드래곤은 원래 이런 거야? 푸둥아, 오해해서 미안해.”

검은 불은 드래곤이 내뿜는 극강의 숨결이다. 불도 태울 수 있는, 영혼까지도 태워 없앤다는 강력한 검은 불꽃.

다만 이는 드래곤이 선택한 범위에서나 맹렬한 불이었다. 태우고자 하는 마음이 없다면 이 불은 조금의 위협도 되지 않았다. 푸둥은 자신과 헤덴을 여기까지 데려왔고 심지어 지금 사람들의 목숨을 구했다.

“정말 고마워.”

“그릉.”

가까이 다가가자 갑작스레 푸둥과 나타난 헤덴을 보며 다들 놀란 얼굴을 하고 있었다. 특히나 라미엘은 지금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애를 쓰는 눈치였다.

‘귀여워, 내 남자.’

그는 자신이 마물을 피해 멀리 떨어진 곳에서 엘과 함께 피신하고 있는 줄만 알았을 것이다. 헤덴을 데려오겠다고 혼자 뛰어나간 걸 알면 화를 낼지도 모른다.

헤덴이 하늘에서 서서히 지상으로 내려오고 있는 푸둥을 향해 외쳤다.

“푸둥아! 사체 남겨 둬라. 연구가 필요하겠구나.”

푸둥에게 명령하는 소릴 듣고 라미엘이 물었다.

“설마 예하께서 각인하신 겁니까.”

“아니.”

“그럼 누가 각인을, 아니 그전에 혹시 레이가 대신전에 갔었습니까?”

베롬까지 게이트가 열리지도 않았는데 헤덴이 푸둥과 나타났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레이가 개입했다는 가정밖에 떠오르질 않는다.

라미엘은 설마 하면서도 물었다.

“앞은 틀렸고, 뒤는 맞았다.”

각인도 안 했는데 푸둥이 브레스를 뿜어 사람들을 구했고, 레이가 게이트로 헤덴을 불러왔다는 말이다.

그런데 어떻게 레이가 게이트를 쓴 건지 의문이다. 분명 모든 마력이 차단되어 있을 것인데 말이다.

더불어 드래곤이 스스로 먼저 나서서 사람들을 위해 자신의 힘을 쓰는 건 들어 본 적이 없다. 각인을 하고 권속으로 부려야 자신의 힘처럼 드래곤의 힘을 쓸 수 있게 되는데, 푸둥은 온전히 자신의 의지로 이곳에 와 사람들을 구했다. 이것 역시도 의아하고 신기한 사실이었다.

“캬아아아악─!”

마물이 검은 불에 갇혀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거대한 분진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때, 딱 맞춰 나타난 푸둥이 나타나 분진을 날렸다. 완벽한 타이밍이었다.

그런데 검은 불에도 죽지 않는 마물은 계속 기괴한 소리를 냈다. 아무리 헤덴이 남겨 두라 했어도 그게 죽이지 말란 말은 아니었다. 헤덴의 말을 듣기도 전에 나간 불이었으니, 모든 것을 다 태우는 드래곤의 검은 불이라면 진즉 재가 되어 사라졌을 것이다.

그럼에도 마물이 살아 있다는 건 아마 푸둥이 아직 성장이 끝나지 않은 어린아이라 검은 불을 완벽하게 사용할 줄 몰라서일 확률이 컸다.

“아무래도 저 마물의 처리는 이쪽에서 해야 할 듯한데.”

헤덴도 그걸 눈치챘는지 마물의 처리를 논하고 있다.

“라엘!”

그때 하늘 가까이에서 레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레이?”

푸둥의 등에 타고 있는 건 헤덴만이 아니었는지 레이가 빼꼼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그리고 금세 하얀 네 다리가 땅에 닿았다.

“당신이 여긴 어떻게…….”

“푸둥 덕분에요. 우리 애기들 때문에 살았네요.”

그리도 비밀로 하고자 했지만 결국 푸둥의 존재는 화려하게 공개되어 버렸고 레이의 손에 있는 것도 알려지고 말았다.

“다행이다. 라엘, 당신 무사하구나.”

“레이, 대체 어떻게 대신전까지 다녀온 겁니까?”

그때 갑자기 검은 불길이 사라지면서 1급 마물이 라미엘에게 달려들었다.

레이는 마물이 달려오는 걸 볼 수 있었지만 라미엘은 그녀에게 시선을 주느라 마물을 등지고 있는 상태였다.

“라엘!”

레이가 몸을 날려 라미엘을 감싸듯 껴안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