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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 부부의 이혼 사정-153화 (153/160)

153화. 마물 출현 (5)

“전하, 그렇게 하시면…….”

“지금은 그 무엇보다도 빨리 저 1급 마물을 최대한 피해 없이 잡는 게 우선이다.”

황실 보호막을 해제하면 혼란한 틈을 타 누군가가 황족을 해칠 수도 있고, 보호 마법이 다시 구동되기 전에 숨어들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태자는 황실의 보호를 해제하겠다는 결심을 내렸다. 이런 혼란 속에서 황족을 노리겠다고 마법을 쓰고 무기를 휘두를 사람은 미치지 않고서야 없을 것이다.

다만 황실 호위대가 걱정하는 건 차후 벌어질 일이다. 황실 보호 마법을 다시 걸기 전까지 누군가가 악심을 품고 사술을 걸어 둘 수도 있는 일이다.

“보호 마력의 일부를 깨. 전체에 다시 보호 마법을 거는 건 어려워도 깨진 부분을 복구하는 건 쉽잖아.”

이는 도박에 가까운 일이었다. 만약 자칫 잘못해 1급 마물을 못 막는다면 황족과 피신해 있는 모든 이까지도 위험해진다.

“마력을 쓰게 되면 루이반에 있는 토벌전 기사들을 데려다 쓸 수 있다. 그들은 1급을 잡았던 경험이 있으니 전력에 도움이 될 것이야.”

태자가 최종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그 명은 아주 제대로 효과를 보았다.

루이반 기사들이 등장하자마자 분위기가 바뀌었다. 함께 토벌전에 참여했던 기사들은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눈빛을 교환하며 바로 이전의 기억과 감각을 되살렸다.

예전의 그 미친놈들처럼 간만에 일다운 일을 해 보겠다는 돌아 버린 눈을 한 루이반 기사들이 씩 웃으며 1급 마물을 바라보았다.

“대장! 괜찮은 거야?”

그 언젠가처럼 크레하를 향해 루이반 기사가 외쳤다.

“멀쩡하다!”

“그거 참 아쉽네.”

농담 한마디에 마치 이긴 것 같은 분위기가 형성되었고 이는 기사들과 마법사들의 사기를 올리는 데에 크게 한몫을 했다.

“가자!”

다시 토벌전이 벌어졌다.

그때보다 더 강하지만 날 수 없기에 더 약한 1급 마물과 지켜야 될 이들이 많아 조심해야 하지만 그 때문에 더 강해질 수 있는 인간들이 맞부딪쳤다.

기세가 바뀌자 감각이 더 예민한 마물이 그걸 느꼈다. 지금이 아니라면 자신이 죽는다는 걸 알았는지 마물의 반항이 더 거세졌다.

사력을 다해 분진을 퍼트리고 몸을 단단하게 만들었다. 기사들의 검이 1급의 몸에 닿을 때마다 이제는 철이나 돌을 베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큿!”

“양쪽 다릴 동시에 묶어!”

마법사들은 1급의 몸을 묶어 두는 데 열중하고 기사들은 베는 데에 치중했다. 1급이 긁는 듯한 소름끼치는 비명을 쉬지 않고 지르며 손톱을 휘저었다.

“캬아아악!”

그때, 드디어 1급의 등 부분에 가느다란 금이 갔다.

“틈이 보인다! 너희 쪽으로 몰아!”

“옙!”

라미엘은 그걸 보자마자 기사들에게 1급의 시선을 끌게 만들고 뒤로 다가가 그 틈에 검을 내리꽂았다.

콰직, 콰지직. 쩌억!

1급의 단단한 몸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라미엘이 몸을 찢어 내듯 어깨 쪽으로 검을 빼냈는데도 1급의 몸은 더 이상 복원이 되질 않았다.

“끝이다!”

“끝이긴 뭐가 끝이야? 이놈이 또 어찌 나올 줄 알아?”

“이제 썰 일만 남았으니 끝이지, 그럼!”

여기서 방심하고 조금의 시간이라도 생기면 다시 회복할 수도 있는 일이기에 기사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달려들어 남은 몸통을 잘랐다. 진득하고 끈적한 검붉은 피가 흐르며 1급의 몸이 조각났다.

하지만 모두는 알고 있었다. 1급 마물은 이대로 죽지 않는다. 목숨이 두 개인 특이 마물이다. 이전의 실전에서 경험해 봤던 사실이었다.

모두가 예상한 대로 조각난 마물의 몸은 여전히 살아 있는 듯 움찔거렸다. 잘려 나간 팔이 분진을 뿌리고 머리가 비명을 질렀다. 다른 몸통도 꿈질꿈질 살아 있는 것처럼 움직이며 피를 뿌리고 있었다.

조금씩 흘러나오는 분진은 푸둥이 바로 태워 버렸고 불길이 사라지자마자 기사들이 1급의 조각을 하나씩 맡아 칼로 찔렀다.

라미엘은 코앞으로 굴러온 1급의 머리를 세로로 베어 냈다. 내내 시끄럽게 귀를 울리던 쇠 긁는 소리가 뚝 멈췄다.

“저 녀석, 통증이 보통이 아닐 텐데.”

라미엘이 다친 몸으로도 계속 마물을 상대하는 걸 지켜본 헤덴이 고개를 저었다.

통증만 조금 가시게 하고 피만 멎게, 더 이상 상처가 커지지 않을 정도의 임시방편 치료만 해 놓은 상태였다. 헤덴도 후방에서 다른 부상자들을 돌보느라 정신이 없었기에 라미엘 하나만 특별히 챙길 순 없었다.

아무리 오른손으로 검을 휘두른다고 해도 반대쪽 어깨를 전혀 움직이지 않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다쳤으니 적당히 뒤로 빠져 방어에만 치중했어도 될 일이었다. 그럼에도 라미엘은 통증을 참아 가며 선두에서 맹렬히 검을 휘둘렀다.

이전처럼 자신이 나서서 쓸모를 증명해 보일 필요도 없고, 아가 조련사나 가문처럼 지켜야 될 것도 많은 놈이 굳이 왜 저런 미련한 짓을 하는지 헤덴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강자가 약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귀족 정신 그런 건 아가가 절대 지니고 있을 게 아닌데,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의 일은 이해가 안 됐다.

챙그랑.

라미엘이 검을 땅에 던지듯 내려놓고 제 왼쪽 어깨를 감싸며 미간을 찌푸렸다. 왼쪽 팔 전체와 몸통 절반이 피로 흠뻑 젖어 있었다. 그가 이제야 통증을 느끼는 듯해 헤덴은 혀를 찼다.

“미련한 놈. 너답지 않게 나대더니만 이 지경이 되었어.”

“……그렇습니까.”

라미엘이 희미하게 웃었다. 헤덴이 빛 덩이를 만들더니 라미엘의 어깨에 붙였다.

“신종 마물이니 여러 검사를 해 봐야 할 것이다. 저 마물하고 접촉한 적 있는 놈들 싹 나와.”

1급 마물의 사체와 메리엔의 몸도 모두 보존 마법을 걸어 당장 연구소로 보내야 했다.

“황실 연구소는 멀쩡하더냐.”

“네, 다행히도 여기 있는 모든 분들이 고생한 덕분에 그쪽은 전부 멀쩡합니다.”

그때 태자가 나타났다. 그는 엉망이 된 주변과 성, 마물의 사체를 눈으로 훑고는 피로가 진하게 묻은 표정으로 헤덴에게 인사했다.

“예하, 감사드립니다.”

게이트가 열리지도 않았는데 헤덴이 나타난 것을 보고 그는 눈을 의심해야 했다. 그리고 뒤이어 통신 게이트를 통해 보이는 하얀 울프 드래곤을 보고 나서야 겨우 상황을 파악했다.

헤덴이 후견을 하겠다더니 각인이라도 했는지 울프 드래곤이 인간들을 돕고 있었다.

“저건 루이반 공작 부인이 아닌가.”

그런데 화면 한쪽의 커다란 울프 드래곤 옆에 있는 루이반 공작 부인이 보였다. 무슨 일인지 도통 이해가 되질 않는 상황이었다. 나중에 상황이 수습되면 이것에 관해서도 알아봐야 했다.

“끝나면 말이지…….”

마물을 처리하고 난 후의 할 일들이 벌써부터 목을 조르는 느낌이었다.

아비의 장례, 1급 마물이 황실 한가운데 오게 된 연유와 그와 관련한 일들, 황실 보호 체계를 다시 정비할 것까지 생각하니 파르베제는 아찔해졌다.

“그래도 멀쩡히 살아서 하게 되는 것도 다행이지.”

르누아가 너무 크게 놀란 것 같아 걱정이지만 황실 주치의는 태자비와 황녀가 모두 건강하다고 전했다.

“루이반 공작, 이번에도 자네 공이 컸네.”

“감사합니다, 전하.”

“많이 아파 보이는데 빨리 치료부터 받게나.”

처음엔 아픈 것도 몰랐다. 레이가 멀쩡한 것을 확인하고 나자 그제야 통증이 몰려왔다. 불에 지진 것 같은 아픔이었다.

하지만 머리카락 한 올 다치지 않은 레이를 보니 고통을 겪을 가치가 충분히 있었다. 레이가 조금이라도 다쳤다면 자기 자신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았다.

평생 마물 보는 일 없게 해 준다고 했는데 레이는 지독한 걸 보고 겪었다. 더 이상 그녀가 놀랄 일은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 마음이 반영되는지 표정은 살짝도 찡그려지는 일 없이 평온했다. 웃을 수도 있었다.

“라엘!”

보호받았다. 자기 목숨 따윈 조금도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제 눈앞에 놓인 마물이 얼마나 끔찍한 건지도 모르면서 저를 지키겠다고 몸을 던졌다. 그런 이가 조금도 다치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었다.

갑자기 레이에게 일어난 빛이 마물을 밀어 버린 건 무슨 일이었을까. 그 덕에 레이를 지킬 시간을 벌어 다행이었지만 당시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마물을 밀어낸 것이 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레이가 멀쩡하다는 사실만 있으면 됐었다.

이제야 레이에게 벌어진 일이 궁금해졌다.

“레이가, 제 아내가 아까 절 지켰던 게 무엇입니까.”

“내가 내린 축복이다. 삿된 것에서 몸을 지켜 주지. 일회성이긴 하지만.”

환자들은 근처에 있는 멀쩡한 건물 중 가장 넓은 공간인 회장에서 진단을 받고 임시 치료를 받게 되었다. 심각하게 다치거나 1급 마물과 접촉한 자는 황실에 남아 정밀 검사를 받고 위중한 정도에 따라 황실에 마련된 병실에 머무르기로 했다.

분진 때문에 다들 원거리에 있었기에 마물과 직접적인 접촉을 한 자는 다행히 그리 많지 않았고, 그중 가장 상태가 심각한 자가 루이반 공작이었다.

라미엘은 황실의 특실에 배정을 받았고, 마찬가지로 가까이서 마물 메리엔과 접촉한 푸엥도 검사를 받아야 했기에 주인인 레이도 황실행이었다.

“그건 언제 주셨습니까.”

라미엘의 어깨는 생각보다 심각했다. 옷을 벗겨 내고 나니 움푹 파여 있어 치료 신관들과 의사가 처음 봤을 땐 놀라서 고개를 슬쩍 피할 정도였다.

“푸둥 데려갈 때.”

그 말 이후 헤덴은 더 이상 별말 없이 라미엘의 상처를 돌보는 데에만 전념했다.

‘……푸둥.’

레이에게 푸둥을 넘기면서 헤덴이 보상으로 축복을 준 듯했다. 가벼이 내려 준 축복이 이런 식으로 크게 보호를 해 줄 줄은 본인도 예상 못 했을 것이다.

레이가 애지중지 키운 두 마리 동물이 제 주인을 지키겠다고 큰 활약을 했다. 레이가 항상 가족이라고 하던 동물들은 정말로 ‘가족’처럼 자기 주인을 지켰다.

자신이 살아 있는 것도 결국, 레이의 애정이 만든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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