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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 부부의 이혼 사정-155화 (155/160)

155화. 일상으로

마님이 주인 방에 들어서자마자 당연하게 크레하, 테일러, 케이, 엘 넷은 다들 밖으로 나갔다.

“다들 아셨던 거죠?”

케이의 질문에 크레하가 답했다.

“모를 리가 있나. 저걸 보고 누가 속습니까.”

테일러가 이어 말했다.

“굳이 우리들한테도 말씀 안 하셨던 건 아마 집안 전체를 속이기 위해서라고 생각이 됩니다. 진짜라고 여겨질 소문을 만들려면 안부터 소란스러워야 진짜 같거든요.”

“왜 이혼 소문을 내신 걸까 항상 궁금했는데 사람들 틈에 섞여 이야기를 듣자니 대강 알 것도 같았습니다.”

엘의 말에 다들 시선을 그녀에게 주었다.

“우리 마님께서 정말 대단한 집정관인 건 우리만 알고 있잖아요. 그걸 아무래도 모두에게 알려야겠다고 생각하신 것 같아요.”

크레하는 그게 뭐야, 하는 표정을 지었다. 팔불출, 팔불출도 저런 팔불출이 없다.

그런데 크레하를 제외하고 테일러와 케이 나머지 둘은 어떤 의미인지 바로 알아들었다. 루이반에 쏟아진 수많은 편지와 사람들의 시선을 보면 답을 찾을 수 있다. 가문의 이름에 마님의 날개가 짓눌리지 않게 잠시 이름표를 떼어 주신 거다.

“거참, 뭐라고 해야 할지…….”

“그 소문도 아마 이번 일로 깨끗이 사라질 겁니다.”

“그렇죠. 모두가 봤잖아요. 우리 마님께서 어떤 일을 하셨는지.”

서로를 위해 자기 자신을 아낌없이 내어놓는 부부를 보면서 이혼을 떠올리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외려 여느 부부보다도 더 부부 같은, 부부 이상의 존재같이 느껴졌다.

그때 엘이 생각났다는 듯 작게 탄성을 질렀다.

“아! 맞다. 로티 백작가에서 나중에 푸엥이 새끼를 낳으면 한 마리 데려갈 수 없겠냐고 물었었는데.”

이번 10급 마물 사태에서 루이반 가문 중 처음을 가장 화려하게 장식했던 용맹한 강아지를 향한 시선도 바뀌는 듯했다.

“푸엥도 관리를 잘 해야겠습니다. 누가 훔쳐 갈 수도 있겠어요.”

“아, 그럴 수도 있겠네요.”

“이제 더 이상 숨어서 마님을 지킬 필요 없으니 주의하겠습니다.”

“이혼으로 가문 자산이 나눠질 리도 없고, 제로석에 킹크랩도 있으니 두 분께 여러모로 귀찮은 일이 많이 생길 겁니다.”

“특히 우리 마님 보호를 강화해야 합니다. 제일 중요해요.”

모두가 동의하는 바였다. 제로석 일도 그렇지만 이번 사건을 계기로 레이에 대한 시선이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이는 직접적으로 표현하자면 몸값이 부쩍 올랐다는 이야기가 되고, 그럴 일은 절대 없겠지만 만약 레이가 루이반을 떠나기라도 한다면 누구든 그녀에게 손을 뻗을 것이라는 소리였다.

‘이혼한 여자’라는 세간의 흠은 남편을 향한 지고지순한 사랑, 자신이 쥔 사업을 잘 운영하는 능력과 재력에 비한다면 흠 같지도 않은 일이 될 것이다.

결혼을 했더라도 일각에선 아직도 라미엘을 탐내는 시선이 여전했다. 이제는 그 시선이 레이에게도 향할 수 있다.

레이는 라미엘이기에 열렬히 사랑하는 건데, 만약 자신이 레이를 얻으면 그 사랑을 저도 받을 수 있을 거라 착각하고 덤비는 불순한 종자가 튀어나올 수 있으니 라미엘이 알기 전에 미리 처리하는 것도 루이반 가솔들의 역할이 될 것이다.

마님께 꼬이는 날파리의 목을 주인이 날려 버릴 수 있다. 주인이 연쇄살인마가 되느니 가문 차원에서 먼저 나서서 처리하는 게 수월할 것이다.

기사들은 가문과 두 주인을 지키기 위해 훈련을 강화하고, 저택 내에도 윌포프 같은 인재를 뽑아 내부 관리에 한층 더 신경 써야 했다.

황실뿐 아니라 루이반도 앞으로 할 일이 태산이었다.

***

“라엘!”

방으로 들어온 레이가 침상에 앉은 라미엘에게 달려왔다.

당장 품에 안길 것처럼 다가온 레이를 맞으려고 라미엘이 멀쩡한 오른팔을 벌렸으나, 레이는 침대 앞에서 우뚝 걸음을 멈추고는 그를 천천히 살피기 시작했다.

치료 때문에 하의만 입고 있는 라미엘은 어깨에 붕대를 칭칭 감고 있었다.

“레이.”

“……당신 정말 괜찮은 거예요?”

“이리 와요. 계속 그렇게 서 있을 겁니까.”

라미엘의 말에 레이가 조심조심 느릿한 동작으로 라미엘의 품에 안겼다. 라미엘의 가슴에 얼굴을 기대자 살결이 아니라 붕대의 감촉이 느껴졌다. 어깨 하나 다쳤다고 했는데 생각보다 심한지 가슴까지 붕대를 둘러 어깨를 감싸고 있었다.

“이 나쁜 놈이 사람 걱정돼 죽겠는데 들어오지도 못하게 하고.”

“레이.”

“안 울려고 했는데, 왜 이렇게 아파 보여.”

라미엘은 제가 치료를 받을 때 출혈이 심해서 애를 먹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본격 치료 중에 잠시 정신을 잃었다가 깨어났던 기억이 나는데 아마 출혈 때문에 그랬던 것 같았다.

그래서 더더욱 레이를 안에 들이기 어려웠다. 정말 아파 보이는 모습을 보면 이 사람은 분명 자기가 더 아파했을 것이기에.

“나 정말 괜찮아요.”

“라엘, 당신 안색이 창백해요.”

“레이가 오니까 좀 살 만한 느낌인데.”

“그럼 진작 안으로 오게 했어야죠!”

“그 결정은 절대 후회 안 해요. 나한테 뭐가 있을 줄 알고 당신을 불러.”

라미엘이 레이의 눈물을 닦아 주며 부드럽게 웃었다.

“뭘 잘했다고 웃어요? 웃기를. 그렇게 예쁘게 웃으면 내가 풀릴 줄…… 잘 아는구나.”

미남을 앞에 두면 화도 못 냅니다. 이렇게 잘생긴 얼굴이 웃는데 어떤 놈이 화를 내겠냐고!

“약았어. 누가 그렇게 잘생기래? 화도 못 내게.”

라미엘은 제 얼굴이 마음에 들었던 적이 없었다. 어렸을 땐 차라리 평범해서 사람들 눈에 띄지 않았다면 더 좋았을 것이란 상상도 많이 했었다. 보호받은 적 없는, 보호받을 일이 없는 자의 곱상한 얼굴은 독이 되곤 했다.

루이반을 손에 쥐고 사교계에 진출해서나 약간의 쓸모를 찾았지, 외모가 대단하게 이득이 되거나 엄청난 장점이 되는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그런데 레이 덕분에 그나마 봐줄 만한 제 얼굴이 다행이라 여겼다. 레이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요소를 갖추고 있는 자신이 조금은 좋아졌다.

“잠은 좀 제대로 잤어요? 통증은 이제 정말 없는 거죠?”

저 없으면 잠도 제대로 못 자는 사람이 아프기까지 하니 치료하는 닷새간 어떻게 지냈는지가 걱정되었다.

“아프지 않아요. 레이가 걱정할 일 없습니다.”

잠 이야기가 쏙 빠지는 걸 보니 알 만했다. 레이는 기대어 있는 자세에서 조금 힘을 주어 라미엘의 몸을 침대로 밀었다.

“자요. 라엘, 조금만 자고 일어나요.”

라미엘을 눕히려는데 그가 잠시 손길을 저지했다.

“그전에, 레이한테 할 말이 있어요.”

“무슨 말인데요?”

마물 앞에서 서로의 목숨을 구한 걸 본 사람들이 너무도 많았다. 그러니 이혼이 헛소문이라는 걸 눈치챌 것이다.

라미엘이 잠시 뜸을 들이다 말했다.

“우리 이혼, 안 했어요.”

무슨 말을 하려고 라미엘답지 않게 주저하나 했더니 사실을 이야기하고 있다.

“알아요. 우리 이혼 안 할 거.”

“그게 아니라, 실은 황실에…… 황실에 올 일도 없습니다.”

“네?”

“서류, 낸 적 없어요. 그냥 소문만 그렇게 난 거예요.”

“황실에 아예 이혼 접수도 안 했다고요?”

레이의 반문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황실이 난리가 나서 자연스레 이혼 확인이 미뤄지겠거니 짐작하고 있었는데 아예 서류 자체를 낸 적이 없다니.

“차마, 도저히 당신과 내 이름이 적힌 그딴 종잇조각을, 이혼 서류를 밖에 내놓을 수 없더군요.”

화를 낼 수도 뭐라 할 수도 없는 이 묘한 기분.

날 속였는데, 아니 속인 건가. 딱히 속인 것 같지는 않고. 어유, 이걸 뭐라고 해야 하나.

“미안해요, 레이.”

지그시 라미엘을 바라보던 레이가 이윽고 작게 한숨을 쉬고 말했다.

“다음에 또 이런 일…….”

“없습니다.”

라미엘의 즉답에 웃음이 나왔다.

에고, 뭐 어쩌겠나. 누나가 너무 좋아서 그딴 종이를 차마 못 꺼냈다는데.

“잠이나 좀 자요. 며칠간 제대로 못 자서 많이 피곤할 텐데.”

레이가 라미엘을 다시 침대에 뉘었다. 그리고 그의 품 안으로 파고들었다.

언제나 그랬듯 먼저 잠드는 건 레이였다. 며칠간 걱정으로 레이 역시도 제대로 자질 못했을 테니 그만큼 피곤할 터였다.

쌕쌕대는 레이의 숨소리를 자장가 삼아 라미엘도 눈을 감았다. 평온한 오후였다.

***

황제의 장례는 기존 관례보다 작은 규모로 치렀다. 무너진 건물들 때문에 많은 인원이 모였다가 혹시 모를 추가 붕괴 사고가 생길까 봐 염려되었기 때문이다.

가족을 잃은 자들도 있고 다친 이들도 있기에 태자의 대관식은 약식으로 진행되었다. 국정 운영을 해야 하고, 황제 자리를 마냥 비워 둘 수는 없어 사관들과 헤덴만 불러 황제의 관을 물려받고 황실의 인장을 받았다.

사후 검진에서 메리엔의 몸엔 장기가 하나도 없는 것이 발견되었다. 인간을 먹지 않는 4급 마물이 살기 위해 인간을 먹으면서 조금씩 자랐고, 인간 흉내를 내며 살았다.

4급의 몸이 점점 자랄수록 껍데기는 인간에서 멀어져 갔고, 덩치는 자라는데 인간의 몸은 한없이 작아 구겨지듯 들어 있으니 움직이기 불편해 거동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지능이 낮다 보니 메리엔의 입 밖으로 손을 내밀기 전까진 그 몸을 찢고 나갈 생각도 하지 못했다.

동물이나 마물을 먹지 못하니 배가 고팠고, 그 때문에 더더욱 기력이 없어 몸을 움직일 수가 없게 되었다. 메리엔의 몸이 잠시 차도를 보인 건 이 때문이었다. 몸속 4급 마물이 활동을 멈추고 몸체를 최대한 웅크리고 있어서였다.

억지로 먹던 말랑한 장기가 다 떨어지자 더 이상 먹을 게 없는 마물은 생명의 위협을 느꼈고, 그 간절함과 그간 먹어 온 인간의 장기가 결합되어 다른 종이 되었다.

4급 마물이, 모든 마물이 인간을 먹는다고 다른 종이 되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그야말로 우연의 산물이었다. 10급 마물은 특이 마물 종으로 결론이 났다.

어느 정도 사태가 수습되고 나자 사람들은 다시금 원래의 삶으로 돌아갔다. 일상은 빠르게 돌아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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