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 부부의 이혼 사정-156화 (156/160)

156화. 헛소문

한 달 뒤, 사건 후 처음으로 행사가 열렸다.

그날의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한 모임으로 앰버하트 백작가의 정원에서 진행되었다. 아직 공작의 컨디션이 좋지 않다며 루이반 부부만 불참의 소식을 알려 왔고 그 외의 거의 대부분의 귀족들이 참석했다.

행사는 희생자를 기리는 기도부터 올리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기도 신관이 추도사를 읊고 한쪽에서는 형편이 어려운 피해자들을 위한 모금도 했다.

행사는 비교적 고요한 분위기였지만 그간 작은 티파티도 하나 없이 조용하기만 한 라비던에서 간만에 열리는 행사였다.

게다가 워낙에 이야기할 거리가 많은 사건이었고, 리담에서 가장 뜨거웠던 소문의 당사자들이 불참했으니 마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나자 자연스레 루이반 부부의 이혼도 이야기 주제로 올라왔다.

“그 두 분, 이혼한 거 아니었나요?”

“아니, 한 게 아니고 할 거였죠.”

“지금 황실에 서류나 남아 있을까요.”

심리적으로 안정을 찾으니 평소처럼 흥밋거리의 가십이 공기를 떠돌았다.

“그런데 다들 보셨잖아요. 그때 공작 부인이 마물한테 몸 날린 거 보면…….”

누가 이제 곧 남이 될, 이혼 예정인 남편을 보호하겠다고 제 목숨을 날리나.

상대가 마물 같은 재앙으로 사망하면 이혼 후의 모든 처리가 살아남은 자에게 유리하게 돌아갈 수 있기 마련이다. 특히나 여자의 경우 이혼하고 나서 꼬리표처럼 붙는 좋지 않은 세간의 시선을 막아 낼 수 있다.

“그때 공작님도 공작 부인께 달려드는 마물을 막아서 다치신 거잖아요. 그런 거 보면 소문은 소문인 거 같은데.”

“맞아요. 본인도 아니라고 하셨잖아요.”

“마물이 나오고 가장 먼저 최전선에 서서 싸우신 분이 공작 각하셨잖아요. 그때도 민간인인 자기 전 부인이 다칠까 봐 그러신 건 아닐까요.”

“그렇다고 하기엔 그때 이후 계속 두 분이 같이 계신다고 하던데.”

“역시, 소문은 소문…… 이었던 건가 봐요.”

“당사자가 계속 아니라고 말씀하셨는데 당연히 헛소문 아니었겠습니까.”

“별거 중이셨잖아요.”

“맞아요. 그래서 말이 나온 게 아닙니까.”

“소포니악을 돌보느라 어쩔 수 없이 집정관인 공작 부인께서 거기 계셨던 게지요.”

“맞다. 집정관 일도 하시느라 워낙 바쁘시죠, 공작 부인께선.”

사람들이 이혼이 헛소문이라는 걸 인지했다.

“그런데 루이반 분위기도 장난 아니었다고 그랬단 말이에요. 공작 부인 전담 하녀들도 잘린 것 같다고 그랬고.”

대부분이 헛소문이었다며 해프닝으로 넘기려는데 조아나가 끼어들었다. 루이반 이혼 강경 진심파인 듯, 아까부터 계속 은근하게 부부의 이혼설이 사실임을 강조하는 듯한 말을 하던 그녀였다.

묵묵히 이야기를 듣고만 있던 케이틀린이 물었다.

“그런데 조아나, 그건 어떻게 알았어요? 루이반 분위기랑 전담 하녀가 잘린 건?”

“공작 부인이 전담 하녀들 없이 혼자 다닌다던걸요.”

“신기하네요. 헬라에 계신 분인데 그걸 봤대요? 거긴 수도도 아닌데.”

케이틀린의 말에 조아나가 설핏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풀었다.

“저 역시도 소문으로 들은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그런 건 왜 물어보시는지? 제가 없던 일을 소문으로 만들어 내는 것 같으세요?”

조아나가 발끈해서 외쳤다.

“그럴 리가요. 직접 본 것같이 확고해 보여서 우리가 모르는 뭔가를 제대로 알고 계시나 싶어 물어본 거예요.”

케이틀린은 조아나의 어조가 워낙 신뢰감이 높아서 그런 거라고 덧붙이긴 했지만, ‘너 뭘 알고 떠드는 거냐.’라는 공격임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요즘 루이반 공작 부인하고 자주 놀더니 아예 거기로 돌아선 건가?’

사실 저 소문은 조아나의 추천장을 받아 루이반에 들어간 하녀가 고맙다며 알려 준 정보였다. 일은 잘하지만 입이 너무 가벼운 데다가 글을 안다는 게 찝찝해서, 널 위해 더 좋은 곳으로 보내 준다는 명목으로 내보낸 아이였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루이반 가문이라면 그 어디서든 대단한 경력이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아나가 노린 건 이와 같이 루이반 소식을 몰래 들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계산이었다.

하녀 듀이는 들어가서도 몇 달 별말이 없더니 어느 날 덥석 공작 부부의 이혼 소식을 알려왔다.

“정말이에요! 제가 봤다니까요. 숨기시려고 한 것 같은데 실수로 흘린 것 같았어요.”

공작 부인 전담 하녀들이 공작 부인도 없는 저택에서 모습을 보이고 일주일에 한 번만 저택에 나타나는 공작 부인이니 아무래도 확실한 것 같다고까지 알려 줬다.

하녀가 소식을 알려 준 이후 루이반 부부를 잘 보니 항상 붙어 다니던 공작 부부는 따로 떨어져서 다니고 왠지 서먹해 보이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헛소문 같아요. 그렇게 사이좋은 두 분인데요.”

지금 케이틀린이 모두 앞에서 헛소문을 듣고 와서 함부로 지껄이지 말라며 추가 경고를 한 것이다. 조아나는 서서히 달아오르려는 얼굴을 부채로 가리며 억지로 웃음을 지어 보였다.

‘도대체 케이틀린은 어쩌다 이렇게 변했을까.’

이전엔 바바라, 클레어와 함께 꼭 넷이 붙어 있었는데 어느 날부터 조금씩 거리감이 느껴지더니 지금은 자신을 망신거리로 만들고 있다.

“사이가 좋다고요? 별거를 하는 부부가?”

지지 않겠다는 듯 조아나가 눈을 부릅뜨며 대꾸했다.

“네. 전 좋아 보이던데요. 이번 사건 다들 겪으셨잖아요.”

케이틀린의 말에 수긍한다는 사람들이 맞장구를 쳤다.

마물 건을 보고도 저런 말을 하나, 게다가 지금 이혼하면 오히려 공작께 손해 아닌가 하는 두둔의 말이 나왔다.

“그리고 못 보신 건가요? 두 분께서 귀걸이 나눠 차고 계시던데.”

갑작스러운 정보에 케이틀린 당신이 공작 부인과 친하니까 좋아 보이는 거라며 반박하려던 이들이 다들 물음표가 떠오른 얼굴로 고개를 갸웃했다.

“한 쌍의 귀걸이를 나눠 찬 것만 봐도 두 분의 사이를 알 수 있을 것 같아서 애초에 전 안 믿었어요, 그 소문.”

“그게 무슨 말입니까? 귀걸이를 나눠 차다니요?”

“공작 부인께서 귀걸이를 하나만 하셨길래 집정관 일이 워낙 바쁘셔서 나머지 한쪽을 까먹으셨나 했는데, 루이반 공작 각하께서 다른 한쪽을 차고 계시더군요.”

다들 기억을 곱씹어 보기 시작했다. 루이반 부부가 뭘 착용했던가. 미녀 미남 두 사람 얼굴만 생각나지 장신구는 떠오르지 않는다.

“못 보셨습니까? 그걸 못 보신 분들이 저는 더 신기하네요.”

케이틀린이 방긋 웃고는 잠시 자리를 벗어나겠다며 양해를 구했다.

‘이 정도면 다들 알아듣겠지.’

사실 케이틀린도 레이의 관사에서 가까이 쭉 마주하며 이야기를 나눠 보지 않았다면 모를 일이었다.

워낙 바쁘니 한쪽을 깜빡했나 보다 생각했는데 지난 연회에 라미엘이 혼자 등장해서 온갖 시선을 다 받을 때, 그때 그가 레이가 찬 귀걸이와 같은 것을 한쪽에 차고 있는 것을 보고 눈치를 챘다.

루이반 정도 되는 가문의 의상을 관리하는 하인들이 주인이 차다 만 액세서리를 발견 못 했을 리 없다. 케이틀린은 그게 헛소문이 아니라는 걸 알리는 용도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다만 자신은 레이를 자주 만나서 알게 되었다고 하지만 그 누구도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했다. 귀걸이 이야기를 하면 누구 하나라도 자기도 봤다고, 맞다며 동조할 법도 했는데 다들 모르는 눈치였다.

남의 불행을 흥밋거리 삼아 귀만 열린 사람들에겐 진실을 찾아보는 눈은 닫히는 모양이었다.

케이틀린이 떠나고 남은 자리의 사람들이 그녀의 말을 곱씹었다.

“만약 소문이 사실이라고 해도 워낙 바쁘셔서 별로 신경 쓰지도 않으실 것 같은데…….”

어떤 사람이 누구라고 콕 짚지 않고 두루뭉술하게 이야기했지만 슬쩍 레이를 두둔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공작 부인에게 이혼은 대수도 아니라는 의미였다.

“소포니악이 살기 좋아진다는 말을 들었어요.”

“휴일도 집정관으로 있으면서 만드셨다죠?”

이전보다 더 긍정적인 평가가 흘러나왔다.

“아, 맞다! 그것도 있었잖아요. 울프 드래곤! 여태 루이반 공작가에서 돌봤던 건가요?”

“후견인을 구한다더니 결국 처음 발견한 루이반 공작이 데려갔군요. 역시 처음에 거부했던 건 보여 주기용 쇼였나.”

“각인 안 했다는데요.”

“각인도 안 했는데 드래곤이 인간의 명령을 들어요?”

이혼 소문이 일단락되는 것 같자 슬쩍 사람들이 울프 드래곤으로 주제를 돌렸다.

“케이틀린 영애.”

조아나가 무리에서 벗어나 케이틀린에게 조용히 다가와 할 말이 많은 표정으로 그녀를 불렀다.

“어찌 저한테 그렇게 망신을 줄 수가 있어요? 저도 그저 다른 사람들처럼 소문을 듣고 그 말을 한 것뿐인데.”

아까 헛소문을 퍼트리지 말라고 돌려 말한 게 영 기분이 나빴던 모양이다.

“아까 전 일로 마음 상했다면 사과할게요. 전 그저 조아나를 돕고 싶어 그런 건데.”

“절 도와요? 절 돕는 게 망신을 주는 건가요?”

“루이반 공작 각하께서 회복하시면 소문을 퍼트린 자를 가만히 두시겠습니까. 그래서 막은 거예요.”

“요, 요즘 저희랑은 잘 만나지도 않고, 루이반 공작 부인과 자주 만나시더니.”

조아나의 본심이 나왔다. 예전과 달리 소원해진 관계가 불만인 것이다. 이건 예상하던 일이었기에 케이틀린은 레이처럼 씩 웃어 주며 말했다. 조아나가 원하는 대답은 아니겠지만.

“그래서 제가 소문의 진상을 더 잘 알고 있지 않겠어요. 이혼은 헛소문이에요. 조아나도 기도관에 있었으니 잘 봤잖아요. 눈으로 본 게 가장 확실하지 않겠어요?”

케이틀린이 자리를 벗어났다. 이전부터 제 친위대를 자처하며 나서던 사람이니 그 정을 생각해 그냥 두려고 했는데, 앞으로 조아나와의 친분은 끊는 게 나을 것 같다.

“이미 알고 계실 것 같지만 편지 써야겠네. 앰버하트 백작가에서 추천을 받아 들어온 하녀를 찾아보시라고.”

다시 사람들에게 향하는 케이틀린의 발걸음이 가벼웠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