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 부부의 이혼 사정-157화 (157/160)

157화. 평범하고 평안한

소포니악 사람들은 모두 무사했다. 조문을 하러 가는 사람들이 많아 수도가 이미 포화 상태라는 도베의 말을 듣고 역에서 방향을 돌려 다시 도시로 돌아왔기 때문이었다.

도베 역시도 황실 가까이에서 조문을 하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알렉스 집정관을 만나기는커녕 황실 입구는 구경도 못 했고, 수도 전체가 혼란스럽고 정신이 없어 소포니악으로 되돌아와야 했다.

선발대로 간 도베가 다시 돌아온 것을 보고 브리가 소포니악에서 추모를 하자는 의견을 냈다. 수도에 가도 어차피 황실 끝자락도 구경을 못 할 것이 뻔하니 사람들도 동의했다. 헬라 역에서 다시 소포니악으로 돌아온 이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황실의 슬픔에 애도를 표했다.

황실에서 일어난 전대미문의 마물 사건을 알게 되고 기함한 것은 나중의 일이었다.

“집정관님! 그, 그게 정말이세요?”

브리를 포함해 조용하기로 유명한 나움까지 다섯이나 되는 사람들이 관사로 우르르 몰려왔다.

“뭐가?”

레이를 만나니 막상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소식을 듣고 놀라서 당장 달려왔는데 그러고 보니 실례도 이런 실례가 없고, 무례도 이런 무례가 없다.

“아니, 아니에요. 실, 실례가 많았습니다.”

저들이 뭘 말하는지 알 것 같아서 레이는 웃음이 나왔다. 걱정이 해결되었다는 것 같은 표정이 여실히 보였기 때문이었다. 저들은 수도의 귀족들처럼 그녀의 이혼을 흥미나 재미로 소진하려는 게 아니었다.

“나 이혼 안 했어. 이혼 생각을 한 적도 없고 우리 부부 괜찮아.”

“그게 정말이세요?”

레이가 대답을 하자마자 바로 반응이 나왔다.

수도에서 퍼진 소문은 수도에서 잠들었다. 빠르게 퍼진 이혼 이야기에 비해 그게 헛소문이라는 사실은 느릿하게 퍼졌는지 소포니악은 이제야 소식을 들은 모양이었다.

자극적이고 안 좋은 건 기가 막히게 빨리 퍼지더니 수습은 영 지지부진하다. 이대로라면 루이즈같이 먼 곳에선 아직도 루이반 부부가 이혼을 한다고 믿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뭐 그게 그리 중요하진 않지.’

레이는 루이반 없이도 집정관이 됐고, 이후 일도 잘한다고 평판도 좋았다. 이제는 누군가가 레이의 소포니악 일로 루이반을 들먹이진 않는다.

“아이고, 이혼하신 줄 알고 그…….”

추천을 안 했다는 뒷말은 고요히 삼켜졌다. 저 말을 내뱉은 사람만이 그랬을 리는 없다. 많은 사람들이 그리 생각했을 것이다.

“이혼하건 안 하건, 나 일 잘하지 않아? 내 일에 루이반이 꼭 필요해 보여? 다들 어떻게 생각해?”

레이의 질문에 다들 멈칫했다.

잘하냐고?

“당연히 잘하시죠. 그때 추천 못 드린 게 후회가 될 지경입니다.”

거짓말 같지 않은 반응에 레이가 활짝 웃었다.

***

루이반 소식을 더 요구하는 조아나의 등쌀에 듀이는 난감했다.

루이반 공작의 이혼 소식을 전달하고 나서야 듀이는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감지했다. 저택 내 하인들은 다들 주인의 이혼을 눈치챈 분위기였으나 그들은 결코 내색하지 않았다.

당연하게도 주말만 오시는 마님을 극진하게 모셨고 주중 빨래방에 생기는 흔적 남은 빨랫감도 모른 척했다. 귀족가에서 일하면 입을 봉하는 건 기본 중에 기본이고 보고도 못 본 척해야 살아남을 수 있었다. 먹고살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아무리 서로 모른 척 쉬쉬한다고 해도, 업무가 끝난 뒤 개인적인 공간이나 다른 곳에서는 우리 주인은 어떻다 하는 주제로 수다를 떨면서 스트레스를 풀거나 소문도 접하고는 하는데 루이반은 일절 그런 일이 없었다.

듀이가 슬쩍 이야기를 하려고 해도 다들 화들짝 놀라며 득달같이 입을 막으려 들거나 안 들리는 척 귀를 막거나 때때로 아예 자리를 피하기까지 했다. 왜 이렇게 몸을 사리는지. 어차피 같은 곳에서 일하면서 다 아는 얘기를 하는 건데도 그랬다.

귀족의 이혼은 소문이 빨리 나는가 느리게 나는가의 차이지 주변 모두가 알게 되는 시끄러운 일 중의 하나였다. 아무리 황실이 침묵한다고 해도 그 가문 소속 사람들의 행동으로도 충분히 파악이 되는 일이었다.

루이반의 상황은 누가 봐도 이혼 확정인데도 이리도 조심하고 있는 것이다. 하여튼 범상치 않은 저들의 분위기를 보아 자신도 입조심을 해야 할 것 같다고 여겨 차마 빨래방 흔적까진 조아나에게 이야기할 수 없었다.

이제나저제나 눈치만 보는데 마물 사건이 터지고 난 후, 듀이는 입조심한 걸 천만다행이라 여기게 되었다.

‘울프 드래곤을 다루는 마님이라니!’

루이반 안주인이 애지중지 키우는 두 마리 개 중 흰 개가 사실은 개가 아니라 울프 드래곤이었고, 이번 사태에 큰 역할을 했다는 사실이 널리 퍼졌다.

드래곤답게 하늘길을 이용해 게이트 사용하듯 공간을 자유로이 이동하는 푸둥이 마님을 태우고 있었다는 말에 그제야 루이반 하인들은 흔적의 출처를 알게 되었다.

“그럼 그렇지, 두 분이 얼마나 금실이 좋은데 무슨 이혼이야.”

“공작님께서 다른 사람을 만날 사람이냐. 바람이라니. 말도 안 되는 일이었어.”

다시금 저택은 이전처럼 평온을 찾았고, 안주인께서 여전히 이곳에 있다는 사실이 확실시되자마자 뻣뻣하고 차게 굳었던 저택 내의 분위기가 삽시간에 풀어졌다.

“듀이.”

“예?”

앞으로 절대 입조심을 해야겠다며 다짐한 며칠 후, 하녀장이 듀이를 찾았다.

듀이는 직감적으로 무슨 일로 저를 찾는지 알 수 있었다. 앞으로 귀족가에서 일하기는 영 어렵게 되었다는 소식일 게 분명했다.

듀이는 눈을 질끈 감았다.

***

“푸둥아, 오늘도 고마워. 내 새끼.”

종종 푸둥은 소포니악에 있는 레이를 푸엥과 함께 등에 태워 루이반까지 데려다주곤 했다. 커다란 울프 드래곤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모습을 신기해하던 루이반 하인들은 이젠 익숙해진 듯 이전처럼 호들갑 떠는 일 없이 평소와 같았다.

각인도 하지 않은 울프 드래곤이 레이의 명령을 듣고 사람들을 지켰다. 푸둥이란 이름의 울프 드래곤이 루이반의 소유인 걸 모르는 이는 없었다. 각인 없이도 드래곤을 부리는, 리담의 유일무이한 존재가 된 것이다.

이제는 레이가 푸둥과 함께 있는 모습을 보여도 아무도 놀라지 않았고, 그녀가 푸둥을 이용해 게이트를 오가도 당연하게 여겼다.

푸엥의 산책 범위도 한층 넓어졌다. 가끔 레이가 시장에 가거나 역에 놀러 갈 때 푸엥을 데리고 가기도 했기 때문이다.

푸엥의 용맹함과 영리함을 알게 된 이후 이전에 아예 보이지 않던 검은 개가 동네 여기저기서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전처럼 검은 개가 모습을 보여도 사람들이 함부로 하지 않고 여느 개처럼 대하니 겁 많던 검은 개들도 조금씩 사람들과 어울리기 시작했다.

아직도 검은 개를 불길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더 많지만 그래도 일부에서는 검은 개를 위해 목소리를 내 주는 사람들이 생겼다.

“마님, 어서 오십시오.”

다들 푸둥에서 내리는 마님을 맞이했다. 푸둥은 오늘은 워크산으로 가지 않는 모양인지 몸 크기를 줄여 레이와 함께 저택으로 들어왔다.

“라엘! 어떻게 됐어요?”

저택에 들어가자마자 레이가 다녀왔다는 인사를 하기도 전에 오늘 하루 종일 궁금하던 것을 물었다.

어제 테가푸스 회원 일부가 정식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수도 귀족 지위의 회원들로, 지금의 공석들을 채울 때 작위 승계 가능성이 있는 여성들도 염두에 두라고 황실에 정식으로 탄원을 넣기 위해서였다.

10급 마물의 일로 공석이 여럿 생긴 상황이었다. 후계까지 잃은 자들도 상당했으니 그들 중 안주인이었던 사람과 후계 중에서 딸도 작위를 이을 수 있게 하라는 공개적인 요청을 했다.

마그스너 가문이야 다들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케이틀린 외로 생각지도 못한 많은 가문의 여성들이 목소리를 냈다. 그들은 회원들을 정확히 밝히진 않았지만, 우리들은 전 대륙 곳곳에 있으며 그 수는 당신들이 상상하는 이상으로 있다는 말로 기선을 제압했다.

사람들의 나쁜 시선도 두렵지 않은 것처럼, 그런 것들은 결코 자신들을 해하지 못한다는 다부진 자신감이 느껴졌다. 자신들이 발견해 낸 여성 능력자들과 앞으로 더 발전할 리담을 위해서, 라는 포부를 내세운 그녀들과 함께 최전방에 서 있는 건 라미엘이었다.

그러한 탄원을 받은 후, 오늘이 정식 법안 회의가 열리는 날이었다. 이곳에서 과반 이상을 확보하면 다음 회기까지 가승인된 상태로 임시 법안 자리를 얻게 된다.

“과반, 넘었습니다.”

한 명 차이로 간신히 넘기긴 했지만 통과였다.

아마 이전처럼 평온하기만 한 상황이었다면 와닿지 않았을 테지만 10급 마물을 겪고 공석이 많아졌기 때문에 한시라도 빨리 작위 승계가 절실한 상황이었다. 귀족 수가 모자라면 황실을 견제할 힘도 그만큼 줄어든다는 말이었다. 권력욕이 많은 자들이니 어떻게든 그 수를 유지하고자 할 것이다.

이러한 귀족 심리를 잘 알기 때문에 테가푸스의 귀족 회원들이 자신을 드러낸 것도 있었다. 신종 마물은 많은 것을 파괴하고 앗아갔지만 이면에선 지금처럼 새로운 상황을 맞이할 기반을 만드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꺄아아! 어, 어떡해! 라엘, 정말 축하해요! 당신 고생 많았어요.”

레이가 폴짝폴짝 뛰며 제 일처럼 기뻐했다.

“축하! 케이틀린한테 축하 편지 써야겠어요! 파티도 열어야겠죠? 테가푸스 회원들 다 초대할 수 있으려나?”

라미엘을 꼭 껴안고 방방 뛰던 레이가 포르르 품을 빠져나가 집무실로 향했다.

라미엘이 웃으며 그 뒤를 따랐다. 마님께선 오늘 저녁, 또 바쁘실 예정이다.

***

파티 주제는 봄이었다.

여름이 다 저물어 가는 계절이었지만 새로운 시작을 축하한다는 의미를 주기 위해서였다.

푸른 잎이 풍성한 나무를 꽃으로 장식해 꽃나무처럼 만들었고, 파티장 입구에 예전 황실 연회 때처럼 마법으로 꽃잎이 머리 위로 하늘하늘 떨어져 내려오도록 했다.

최대한 많은 테가푸스 회원들을 초대하고 싶었지만 개인 사정이 있어 못 오는 사람들과 거리가 멀어 올 수 없는 사람들을 제외하고 수도 귀족들과 가까운 거리의 헬라 회원들이 루이반 정원으로 모였다. 너른 정원의 절반이 찰 정도의 인원이었다.

회장인 케이틀린이 호언장담한 대로 정말 전국 회원이 다 모인다면 루이반 정원만으로는 모자랄 게 분명할 것이다. 눈에 직접적으로 보이지 않았지만 수면 아래에서 라미엘과 케이틀린이 그간 열심히 달려온 결과가 한눈에 보이는 듯했다.

“어서 와요.”

“어머나. 환대 감사합니다.”

연분홍 드레스를 입은 레이가 입구에서 들어오는 회원들을 일일이 맞이하며 분홍 꽃을 한 송이씩 선물했다. 회원들이 활짝 웃으며 선물 받은 꽃을 머리나 옷에 장신구처럼 꽂으며 하늘에서 떨어지는 마법 꽃잎에 잠시 시선을 주었다.

레이와 같은 옷을 입은 푸엥이 행사장 여기저기를 뛰어다녔고 라미엘이 정원의 파티장 가운데에서 손님들을 다시 한번 맞이했다.

“어머!”

회원들을 맞이하던 레이가 조금 큰 소리를 냈다. 놀라서 동그랗게 뜬 레이의 눈을 보며 나움과 브리가 크게 웃었다.

“집정관님, 짜잔!”

“나움, 아무래도 집정관님이 우리 예상보다 많이 놀라셨나 보다.”

“두 사람이 어떻게……. 아니, 언제부터야? 어쩜 이렇게 날 감쪽같이 속이고!”

레이가 찰싹찰싹 두 사람의 팔뚝까지 쳐 가며 묻자 둘이 다시 웃음을 터트렸다.

“나움이 헬라 지역 첫 가입자일걸요. 저는 최근에 나움 이야기를 듣고 나흘 전에 가입했어요.”

나움은 레이가 임시 집정관으로 있을 때 가입을 했다. 매번 집에서 여자가 뭘 하냐는 소릴 들었지만 그녀가 양성소에서 몰래 글을 배울 때 읽었던 책은 여자도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했고, 실제 그녀 동네의 리더도 레이였다.

“알렉스 님께 뭔가 더 배우고 싶은데 제가 용기가 안 나서…….”

무턱대고 레이 뒤를 좇다가 우연히 테가푸스를 알게 된 나움은 그 길로 회원 가입을 했다고 했다.

브리는 두 딸이 자신과는 다른, 더 넓고 좋은 세상에서 살길 바라는 마음으로 합류했다. 아직 잘 모르지만 자신을 위해, 딸을 위해 뭐든 열심히 하고 싶다며 오늘 받은 꽃은 잊지 않고 딸들에게 전해 주겠다고 웃었다.

혼자가 아니다. 모두 함께 달리고 있다. 레이도 두 사람과 함께 활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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