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담 동아리-3화 (3/130)

3 화

첫 번째 괴담 - 안내 방송 (3)

[다시 한번 알립니다. 현재 교내에 정전이 일어나 전기가 들어오지 않습니다. 티브이 송출이 불가한 관계로 신입생 여러분께서는 운동장으로 나와 주시기 바랍니다.]

학생들이 투덜거리며 교실 밖으로 나선다.

나는 멍한 정신에 움직이지 않고

앉아 있었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빠져나가고 교실 안에는 밍기적거리는 몇 명과 나만 남게 되자 문득 떠오르는 기억.

‘이제 곧 그 여선생님이 와서 우리를 교실에서 내보내는 건가……

벌써 3년이나 지난 일.

하지만 잊을 수 없었던 기억인지라 아직도 생생하다.

아니나 다를까, 복도에서 발소리가 들려오더니 젊은 여선생님 한 분이 우리를 발견하고는 멈춰 서서 교실을 들여다본다.

“너희는 왜 안 나가니?”

그 말에 교실을 둘러보니 나를 제 외하고 3명의 학생이 보인다.

아직 중학생티를 못 벗어난 듯, 어려 보이는 강아지상의 조그만 여자 아이 한 명.

그리고 범생이 타입, 부잣집 도련 님처럼 보이는 안경을 쓴 왜소한 남자 한 명.

마지막으로 제일 뒷자리 책상에서 엎드려 자고 있는 머리를 노랗게 염 색한 여학생 한 명.

이렇게 3명의 학생이 다시 눈에 들어왔다.

“자, 얼른 일어나서 나가자. 뒤에서 자고 있는 애도 깨우고.”

선생님은 우리가 나가는 걸 확인하고서야 가겠다는 듯 팔짱을 낀 채 교실 문 앞에 기대셨다.

강아지상의 여자애와 안경 쓴 남자 애는 쭈뼛거리며 서로 눈치를 봤다.

제일 뒷자리에서 자고 있는 저 여학생은 누가 봐도 일진처럼 보이는 타입.

노랗게 염색한 머리도 그렇고, 쓸 데없이 커다랗고 화려한 패딩도 그렇고.

‘저 여자애가 무서워서 깨우러 가

기 겁나는가 보군.’

나는 휴, 하며 한숨을 쉬었다.

저번 생에서는 어땠더라.

가만히 기다리니 알아서 일어났던 것 같은데.

3년 만에 다시 돌아왔다는 사실에 머리가 멍했지만, 이럴 때일수록 뭔가 행동이라도 해야 빨리 생각이 정리되는 법.

“···내가 깨울게.”

나는 우물쭈물하는 녀석들을 향해 말하고 뒷자리로 향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결국 나는 이 애들보다 3년 정도 더 살다 온 셈.

고등학교 생활은 이미 다 끝냈고, 대학교까지 붙은 상태에서 졸업식만 앞두고 돌아온 게 나다.

건드리지 말라는 포스를 풍기는 여학생이었지만, 일진들이니 뭐니 하는 급식들끼리의 서열 관계는 내겐 우스울 뿐이었다.

“저, 저, 저, 저, 저, 저, 저, 저, 저, 저, 저, 저, 저, 저, 저, 저……

그런데 목소리가 왜 이렇게 떨리지.

다시 한번 목청을 가다듬고 말을 이었다.

“저, 저······

크흠.

“저기… 선생님이 우리 보고 나, 나오라고……

반응이 없어서 용기를 내 패딩을 툭툭 건드리자, 그제야 찌뿌둥한 표정으로 부스스 고개를 드는 무서운 여학생.

결국, 우리 네 명은 선생님을 따라 복도를 나섰다.

‘젠장... 이대로 입학식을 하면 또 일이 똑같이 흘러가 버리는데……

이대로는 안 된다.

머리가 터져 버리는 고통을 느끼거 나, 기절할 때까지 헉헉대며 도망치

는 상황을 또 맞이할 수는 없다.

뭔가 변수를 만들어 내야 하는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역시 일단은 입학식을 피하고 봐야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먼저 들었다.

‘하지만 어떻게?’

선생님 역시 입학식 때문에 운동장으로 가시는 모양인지, 동선이 우리 랑 겹쳐 중간에 빠져나가기도 뭐하다.

몰래 어디 짱박혀 있을 방법이 없을까,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리다가 결국 아픈 척을 해 보기로 했다.

“저, 선생님.”

“응?”

앞서 계단을 내려가시다 내 부름에 뒤돌아보시는 선생님.

“저 어릴 때부터 빈혈이 있어서 요…. 오래 서 있거나 햇빛을 많이 쐬면 자주 쓰러져 가지고……

“그렇니?”

선생님은 음, 하는 소리와 함께 관찰하듯 나를 쳐다보시더니 말씀하셨다.

“그렇게 말라 보이지는 않는데?”

“사실 빈혈이란 게 선입견이 많은 데 체중이랑은 상관이 없는 거

라……

“그래?”

다시 나를 찬찬히 훑어보시며 고민 하시는 선생님.

“그렇게 심하니? 입학식 동안 못 버틸 것 같아?”

나는 이때다 싶어서 아픈 척하며 좀 더 질렀다.

“네, 특히 오늘 머리가 많이 어지러워 가지고… 밖에 서 있으면 아마 좀 위험할지도……

벌써 현기증이 난다는 뉘앙스로 눈 썹을 찌푸리며 고개를 흔들어 본다.

그리고 선생님의 눈동자가 흔들리

는 틈을 타 잽싸게 몇 마디 더 내 질렀다.

“일단 나가면 보는 눈도 많아서 중 간에 쉬러 가기도 부담되고… 만약에 쓰러지면 어머니가 학교에 완전 난리 치셔 가지구요......

나 때문에 문제가 터지면 학부모가 노발대발 할 텐데 괜찮냐는 분위기를 팍팍 풍겨 줬다.

사실 이 사람한테 있어서 내가 입 학식에 참여하는 건 별로 중요한 문 제는 아닐 터.

그냥 지나가는 길에 애들이 땡땡이를 치려는 게 보이니 데리고 온 것 뿐, 딱히 책임감을 느껴야 할 일은

아니다.

선생님은 물끄러미 나를 위아래로 다시 한번 훑어보시곤 결정하셨는지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렇구나. 그럼 선생님이 양호실에 데려다줄게. 어딘지 모를 테니 같이 가자. 입학식 하는 동안 그냥 거기서 쉬고 있으면 돼.”

“네, 감사합니다.”

일단은 성공한 것 같다.

“너희 셋은 중간에 다른 길로 새지 말고 꼭 입학식 하러 가야 한다. 알겠지?”

“네……

무기력한 대답과 함께 운동장으로 향하는 나머지 세 명.

일진녀의 똥 씹은 표정이 볼 만했다.

선생님은 나를 양호실에 데려다준 후 운동장으로 가 버리셨고.

나는 침대에 누워서 잠시 쉬다가 지키는 사람이 없는 틈을 타 다시 교실로 올라갔다.

‘가만히 침대에 누워 있다 당할까 보냐.’

이 상황을 어떻게 바꿔야 할지… 뭔가 변수를 찾아내야 한다.

변수!

그러고 보니 저번 생에 살아남은 후 병원에서 티브이를 볼 때, 전문 가들이 이 사건을 두고 의견을 나누던 중 변수라는 단어를 언급한 게 생각이 났다.

[그렇다면 생존자들과 사망자들 간에는 어떤 차이가 있었던 걸까요? 생존자들 또한 현장에서 함께 입학 식을 하고 있던 걸로 밝혀졌는데.]

[그 점이 참 의문입니다. 우선은 현장에서 빠르게 도망친 인원들은 대다수 살아남은 걸로 보아 얼마나 빠르게 현장을 벗어났는지가 중요했다는 게 유력한 가설이지만, 실제로

는 먼저 현장에서 벗어난 인원들 중에서도 사망한 인원이 일부 있었다고 하네요.]

[단순히 현장에서 얼마나 빨리 벗 어났느냐가 다가 아닌, 변수가 더 있었다는 얘기군요.]

[그런 셈이죠.]

실제로 나는 첫 번째 때 정문을 뛰어넘어 학교를 벗어났음에도 머리 가 터져 죽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좀 더 멀리 도망친 덕인지 간신히 살아남기는 했지만.

나랑 비슷한 거리까지 도망친 인원 중에서도 일부는 머리가 터져 죽은 사람이 있다고 들었다.

멀리, 빨리 도망쳤다고 다가 아니다.

살아남은 데는 뭔가 더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게 뭘까… 나는 그때 어째서 살아남았던 걸까.’

드르륵

머릿속으로 이런저런 궁리를 하며 교실 문을 열자 뜻밖의 상황이 보였다.

아까 운동장으로 나가는 것처럼 보

였던 세 명.

어려 보이는 여자애와 안경남 그리고 일진녀.

그 녀석들이 교실 안에 다시 앉아 있던 것이다.

뭐지 이 상황은.

“너희 왜 여기 있어?”

“아, 음……

내가 대뜸 묻자 어려 보이는 여자 애가 당황해서 우물쭈물하더니 엎드려 있는 일진녀를 가리키며 대답했다.

“그게, 가려고 했는데… 갑자기 쟤 가 다시 교실로 가서 우리도……

선생님이 나를 데리고 양호실로 가는 사이, 보는 눈이 없자 일진녀는 쿨하게 다시 교실로 올라와 버린 모양이다.

그리고 이 여자애와 안경남도 슬며시 그냥 따라와 버린 모양이고…….

“너희 은근히 담력 세구나.”

“그게……

눈에 띄게 안절부절못하는 여자아이.

물론, 동갑이겠지만 생긴 것도 하는 짓도 왠지 나보다 어려 보인다.

나야 명분이 있어서 쉬는 거지만 얘네는 몰래 땡땡이를 치는 거니깐

불안해하는 걸까.

그래도 그렇게까지 안절부절못할 필요는 없는데.

‘나 역시 같은 입장이라고.’

기왕 이렇게 된 거 얘네랑 이야기 라도 나누며 뭔가 단서를 찾아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평소 내 성격과 달리 먼저 인사를 건네 보았다.

“나는 이준이라고 해. 이름이 외자야.”

그러자 여자아이도 쭈뼛거리며 이 름을 말해 줬다.

“내 이름은 윤선아……

작게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반가 워,라고 덧붙이고는 얼굴이 빨개졌다.

사람들이랑 얘기하는 게 많이 서툰 모양이다.

이어서 옆에 있던 안경남도 딱딱한 말투로 나를 쳐다보며 인사를 건넸다.

“나는 안경원. 빈혈이라고 하던데 여기 있어도 괜찮아?”

안경을 쓰고 있길래 안경남이라고 멋대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설마 이 름에 안경이 들어갈 줄이야.

“응, 괜찮아. 빈혈은 그냥 구라 친

거야.”

“뭐?”

놀라는 안경남 경원이와 작게 키득 거리며 웃는 어려 보이는 선아.

“담력이 센 건 우리가 아니라 너인 것 같은데.”

“뭐... 어쩌다 보니깐.”

‘얘는 왜 이런 딱딱한 말투를 쓰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학기 초에는 원래 다들 컨셉잡는 법이니 깐 뭐, 하고 대충 생각했다.

뒷자리에 앉은 일진녀는 이 대화에 참여할 생각이 없는지 시종일관 엎드린 자세로 자고 있을 뿐이다.

나는 혹시 단서가 될까 싶어서 경원이랑 선아에게 물어보았다.

“그런데 너희는 처음에 왜 안 나가고 교실에 앉아 있었던 거야?”

“ 나는······

선아가 우물쭈물하며 먼저 대답했다.

“원래 행동이 느려서……

“… 그렇구나.”

아무래도 별 이유는 없었나 보다.

그때였다.

내 눈앞에 떠오르는 메시지.

[윤선아에 대한 이해도가 5 상승했습니다.]

[자세한 내역은 상태창 해금 후 확인가능합니다.]

‘뭔가 또 알 수 없는 게임 같은 시스템이……

내가 침음을 흘리며 메시지를 젖히자 경원이가 이어서 대답했다.

“나는 학교 안내 방송 괴담이 떠올라서 안 나갔는데……

“뭐라고?”

“안내 방송 괴담. 정전이니깐.”

그렇게 말한 경원이는 멀뚱멀뚱한

내 표정을 보더니 이어서 설명했다.

“어느 날 학교에 정전이 일어났는 데, 갑자기 방송실에서 운동장으로 모이라는 방송이 흘러나왔다는 내용의 괴담이다. 이거 엄청 유명한 건 데, 몰라?”

“괴담······?”

괴담.

그 단어가 여기서 나오다니.

나는 눈앞에 메시지창을 띄웠다.

『미스테리와 비밀이 가득한 낙성 고등학교에 오신것을 환영합니다. 학교에 숨겨진 음습한 비밀들을 밝

혀내거나, 도시 전설과 괴담들에 맞 서…….』

몇 번이나 죽음을 거듭하며 봐 왔던 단어, 괴담.

이게 지금의 상황이랑 연관이 있는 걸까.

“···미안한데 조금 더 자세히 설명 해 줄래?”

“응?”

내가 너무 진지하게 부탁하자 경원이는 잠시 당황하는 눈치.

“뭐 어떤 부분을?”

“그 괴담이라는 거. 자세히 듣고

싶어.”

으음.

녀석은 두리번거리며 황당해했지만, 곧 고개를 끄덕이고는 책 읽듯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어느 날, 야자 시간에 학교에 정전이 일어났다. 갑자기 어두컴컴해져서 학생들은 놀랐지만 곧이어 안 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정전으로 인해 귀가를 일찍 할 예정이니 다들 운동장으로 모이라는 방송이었다.”

아무래도 이런 지식 자랑을 좋아하는 타입인지, 경원이는 어색해하지도 않고 이야기를 줄줄 이어 나갔다.

[안경원에 대한 이해도가 10 상승 했습니다.]

[자세한 내역은 상태창 해금 후 확인 가능합니다.]

어느새 선아도 옆에 슬쩍 붙어서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 안내 방송 괴담이라는 건 다음과 같았다.

정전이 일어났으니 운동장으로 나오라는 방송.

학생들은 좋아하며 서둘러 짐을 챙

겨 운동장으로 나갔지만, 전교 1등은 교실 안에 그대로 앉아 있을 뿐 이었다.

전교 2등은 1등에게 너는 왜 안 나가냐고 궁금해서 물었다.

그러자 전교 1등이 대답했다.

‘정전인데 어떻게 안내 방송이 나 와?’

나는 다음 문장을 가만히 기다리다 가 물었다.

“···끝이야?”

“응, 끝. 처음 들어 봐‘?”

“아니, 옛날에 들었던 것 같기는 한데……

무서운 게 딱 좋아였나.

어릴 때 그런 책에서 한 번 읽었던 것 같기도 하다.

“뒷이야기는 없어?”

“응, 원래는 여기서 끝일 거야.”

“···그렇구나.”

진지해 보이는 내 표정을 살피더니 경원이가 헛기침을 한 번 하고는 내 용을 덧붙인다.

“그런데 이거 버전이 워낙 여러 가 지라서, 이 뒤에 전교 1등과 2등이 창문 밖을 내다보니 운동장이 피바

다가 돼 있었다는 내용이 붙어 있는 버전도 있고……

운동장이 피바다.

그 단어를 곱씹으며 나는 이어서 물었다.

“전교 1등이랑 2등은 어떻게 됐 어? 살아남은 거야?”

“글쎄, 흐름상 아마 살아남은 게 아닐까. 그런데 나한테 물어봐도 몰라. 실제로 일어난 일도 아니고 무서운 이야기일 뿐인데 뭘.”

경원이는 이런 쓸데없는 이야기를 파고들려는 내가 이상한지 웃으며 대답했다.

“이런 영양가 없는 얘기를 그렇게 진지하게……

그리고 웃는 녀석.

“너도 그 이야기를 진지하게 생각 했기 때문에 안 나갔던 거 아니야?”

“뭐, 신경 쓰이긴 했는데. 꼭 그것 때문은 아니고.”

경원이는 약간 쑥스러워하면서도, 자기가 똑똑하단 걸 자랑할 수 있는 이 상황이 마음에 드는지 줄줄 얘기 하기 시작했다.

[안경원에 대한 이해도가 10 상승 했습니다.]

[자세한 내역은 상태창 해금 후 확인 가능합니다.]

“어차피 정전이면 단상의 마이크 장비들도 못 쓸 텐데 무슨 수로 입 학식을 진행한다는 건지, 불러모았다가 안 되면 다시 교실로 돌려보내는 게 아닐까 싶었지.”

쓸데없이 왔다 갔다 하는 건 싫었다, 이건가.

“그래서 처음부터 안 나가는 게 편 할 것 같아 앉아 있었어.”

“···그렇구나.”

달리 말하면 그냥 귀찮았다는 내

용.

이 녀석도 역시 딱히 진지한 이유 가 있었던 건 아니었다.

“그런데 정전인데 실제로 스피커가 울려 퍼진 건 어떻게 생각해?”

최소한 나보다는 아는 게 많아 보이는 경원이.

나는 머리에 떠오른 의문점을 물어 봤다.

농담으로 한 이야기라고는 하지만, 실제로 정전인데도 스피커는 울려 퍼졌다.

과연 어떻게 된 일일까.

“흠, 그건……

내 질문에 잠시 생각해 보는 녀석.

이윽고 눈썹을 약간 찡그리더니 대답했다.

“그냥 전기를 끌어오는 원전이 다르다거나 하는 건 아닐까?”

“···정말?”

“추측이야. 사실 잘 몰라.”

전기를 끌어오는 원전이 다르다고.

그게 가능한가?

물론, 나는 전기 기술자가 아니라 모른다.

하지만 이 괴현상에 대해 대충 과학 원리를 가져와서 답을 내리고 넘어가는 건 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

다.

이 뒤에는 멀쩡한 사람의 머리가 폭발한다든가 하는 분명히 설명할 수 없는 괴이('怪異)가 엮여 있다.

나는 허공에 메시지를 띄워서 다시 한번 읽어 보았다.

『미스테리와 비밀이 가득한 낙성 고등학교에 오신것을 환영합니다. 학교에 숨겨진 음습한 비밀들을 밝혀내거나, 도시 전설과 괴담들에 맞 서 .』

괴담.

그 단어가 무척이나 신경 쓰인다.

그게 지금 벌어지는 이 사건이랑 관련이 있는 걸까.

‘만일, 그렇다면……

정전이 일어났음에도 방송이 흘러 나올 수 있었던 이유가 괴담이 엮여 있기 때문이라면.

지금부터 벌어질 ‘낙성고 300인 (人) 집단 머리 폭발사건’과 ‘학교 안내 방송 괴담’이 서로 관련이 있는 거라면, 내가 우선 시도해 볼 방 법은 간단하다.

괴담 속에 나오는 전교 1등과 2등처럼 그저 교실 안에 앉아 있기만

하면 된다.

이야기 안에서 그 사람들은 그렇게 살아남은 모양이니깐.

“저기······

갑자기 선아가 우물쭈물하며 말을 꺼냈다.

“나도 재밌는 이야기라고 생각 해……

갑자기 뭐지.

몇 박자나 느리게 감상평을 말하는 선아.

행동이 느리다지만 이 정도라고?

‘아, 그렇구나.’

허공에 메시지창을 띄워 놓고 생각

하느라 눈치를 못 챘지만, 이 메시지창 바로 너머에는 선아가 마주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이 창을 읽고 있었던 거지만 선아는 내가 자신을 물끄러미 쳐다 본다고 느낀 모양이다.

그러다 결국 우물쭈물 감상평을 내 뱉은 모양.

“미안, 미안! 대답하라고 쳐다본 건 아니었어.”

“응……

그때였다.

창문 쪽에서 교장이 연설하는 소리 가 들리기 시작했다.

“아아, 사랑하는 낙성고등학교 신 입생 여러분.”

아무것도 모른 채 허허 웃으며 연설을 시작하려는 교장.

원래라면 교장은 지금부터 세 문장도 채 말하지 못하고 머리가 터져 버리고 말 것이다.

“정말로 반갑습니다.”

부디 가만히 앉아 있으면 된다는 이 방법이 통해야 할 텐데.

“우선 본교에 입학하신 것을 진심으로 환영드리는 바입니다.”

제발…….

“저는 이 학교의 교장을......

두근두근.

“맡고 있…”

«1 V

· · ·

1__

“···신문협이라고 합니다. 저희 낙 성고등학교는 1984년 개교한 이래로 유수한 인재들을 배출하며 40년을 달려온 나름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관악구의 으뜸가는 학교이지요, 21세기의 글로벌 인재가 될 여러분은 바른 인성을 갖추고 유비쿼터스 네트워크 미래를 주도할 창의적인 사람으로……

살았다!

살아남았다!

[D급 괴담 - 학교 안내 방송 괴담과 마주쳐서 살아남았습니다.]

[괴담 포인트를 5 획득하였습니다.]

동시에 눈앞에 파앗 하고 떠오르는 메시지.

“후우우우... 젠장......

가슴을 푸욱 쓸어내렸다.

이걸로 끝이라니!

교실 안에 한 명이라도 가만히 있으면 되는 건데 여태껏 그 지랄을 한 거라니!

‘지금까지 신입생 중 아무도 교실 안에 남아 있었던 사람이 없었단 말 야……?’

곧 그 이유도 떠올랐다.

여선생.

그 망할 여선생이 복도를 돌며 교실 안에 있던 학생들을 다 데리고 나갔기 때문이다…….

어이가 없기도 했지만 동시에 긴장 감이 풀리며 몸이 이완되는 게 느껴 졌다.

나는 세 번째 죽음을 앞두고 몸도 마음도 너무나 긴장해 있었던 것이다.

이야기처럼 모두 죽고 우리만 살아 남는 건 아닐까 싶었는데.

튜토리얼은 튜토리얼이라는 걸까,

아니면 경원이의 말처럼 이야기의 버전이 여러 개이기 때문일까.

어쨌거나 이걸로 해결된 듯싶다.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하면 되는 것을 지금까지… 후.’

문득 멍청해진 기분을 느꼈다…….

경원이와 선아는 욕에는 별로 내성 이 없는 타입인지, 내가 갑자기 ‘젠 장’ 하고 내뱉었을 때 약간 흠칫했다.

하지만 이내 별 신경 쓰지 않고 넘어가는 눈치다.

가슴을 쓸어내리자 이어서 다른 메시지들도 파바밧 떠올랐다.

[튜토리얼 - 입학식]

『당신은 평범하고 숫기 없는 학생으로, 그다지 잘하는 것도 없고 매력도 평범한 탓에 심심한 학교 생활을 보내 왔습니다.

오늘은 고등학교의 3년을 시작하는 첫날.

다른 사람들에게는 설렘이 가득한 날이겠지만 당신은 지금까지처럼 딱히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았고 크게 감흥도 없을 예정이었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입학식을 하게 되며 3년을 보내게 될 이곳은 아무래도

평범한 공간이 아닌 것 같다는 예감을 가지게 됩니다.

그리고 이런 불길한 예감은 당신이 이곳에서 겪게 될 사건들은 단순히

범죄적인 것들이 아닌.

보다 더 미쳐 있고 괴담스러운 것들을 마주하게 될 것이라는 걸 암시하고 있지만, 어쨌거나 오늘은 길고 긴 3년의 첫 하루일 뿐입니다.

당신은 이런 예감을 대수롭지 않게 넘기고 맙니다.』

〈퀘스트 - 튜토리얼〉

○동아리를 창설하기 위해 3명의

친구를 만드세요. (현재 3/3)

○보상 : 10 괴담 포인트, 상태창 잠금 해제.

[퀘스트를 클리어하였습니다.]

[괴담 포인트를 10 획득하였습니다.]

[상태창이 잠금 해제되었습니다.]

게임 시스템 같은 여러 메시지가 파바밧 떠올랐지만 살펴볼 여력이 남아 있지 않았다.

“너흰 내가 방금 무슨 일을 겪었는 지 상상도 못 할 거야.”

이상한 눈초리로 나를 쳐다보는 둘.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나는 우선 눈앞의 새로 사귄 두 친구와 즐겁게 대화를 나누며 이 시간을 보내기로 마음먹었다.

정신 건강에는 친구와의 쓸데없는 잡담만 한 게 없으니깐.

괴담 동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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