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화
막간 - 괴담, 시스템, 상태창
나는 운동장에서 입학식이 진행되는 동안, 선아랑 경원이와 교실에 앉아서 잡담을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물론, 일진녀는 시종일관 뒤에서 엎드려 자고 있었고.
고등학교에 막 올라와서 친구를 빨 리 만들어야 한다는 분위기에 더해, 선생님들 몰래 땡땡이를 치고 있다
는 동료 의식까지도 공유된 덕분인 지 우리는 금세 친해질 수 있었다.
어느 아파트에 사는지, 다들 집에 서 학교까지 몇 분 정도 걸리는지, 어느 중학교를 나왔는지, 공부는 어느 정도 했었고 학원은 다니는지 등 등.
학생들끼리 평범하게 나눌 법한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있으니, 어느새 입학식이 끝나고 학생들이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다시 떨어져서는 방금 착석한 듯 딴청을 피웠다.
이후 교실에서 대기하는 시간이 한 참 이어졌고, 나는 천천히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다.
여러 가지 많은 일이 있었지만 크 게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을 듯하다.
괴담, 게임처럼 보이는 시스템 그리고 내가 죽으면 과거로 가는 것.
첫 번째, 괴담.
아마 방금 내가 겪었던 사건은 괴담이 현실에 그대로 나타난 게 아닐 까.
괴담 속 내용과 비슷하게 사건이 흘러갔고, 괴담 속 인물들처럼 행동 하니 살아남을 수 있었다.
물론, 괴담이란 건 그야말로 떠도
는 이야기라서 같은 괴담이라도 여러 버전이 있었고, 핵심이 되는 줄 거리는 같지만 세세한 부분에서는 차이가 있었다.
하지만 어쨌거나 결론은 괴담이 현실에서 일어났다는 것.
그렇게 간단하게 정리할 수 있겠다.
두 번째는 게임 시스템.
우선, 나한테만 보이는 게임 같은 시스템 창이 존재한다.
그리고 이 시스템은 내가 처한 현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각종 정보를 주고 있는 것 같다.
실제로 처음에 뜬 메시지 창에서는 마왕이라 불리는 괴생명체가 3년 후 졸업식 날에 부활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려 주었고, 지금 내가 마주친 ‘괴담’이라는 현상을 미리 언급하고 있었다.
지금까지는 이해할 수가 없어서 대충 읽고 넘겼지만, 이제부터는 좀 더 꼼꼼히 살펴봐야 할 것 같다.
특히 지금 막 언급된 괴담 포인트, 이해도, 상태창 같은 여러 단어를.
괴담 포인트.
···경험치 같은 걸까? 아니면 포인 트라고 돼 있으니, 게임머니 같은 개념인 건가.
이해도.
내가 상대방에 대해서 무언가를 알 게 되거나 성격을 파악했을 때 올라 가는 수치인 것 같다.
실제로 선아가 자기가 행동이 느리다고 알려 줬을 때 이해도가 올라갔었고.
내가 경원이에 대해서 지식을 자랑 하거나 똑똑한 걸 내세우는 타입이라고 마음속으로 평가했을 때도 이 해도가 올라갔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상태창.
해금되었다고는 하는데, 어떻게 쓰는 거지? 음…….
나는 튜토리얼 메시지를 내 의지대로 여닫았을 때처럼 상태창을 마음 속으로 불러 보았다.
‘상태창!’
파앗-
《상태창》
이름 : 이준
나이 : 17
칭호 : 주인공
성향 : [양면성] NEW!! 〉 클릭 하여 펼치기
특수 능력 : 없음
기벽 : 벼락치기
오호, 하며 속으로 감탄했다.
게임에서의 캐릭터 스탯창 같은 느낌.
이름이랑 나이는 말 안 해도 알겠고, 성향은 양면성… 내 성격이 양 면적이다, 그런 의미인 건가?
‘NEW!!’ 라며 클릭하여 펼치라고 적혀 있어 펼쳐 봤더니 장문의 메시지가 뜨길래 우선 다시 접었다.
‘너무 길다… 이건 나중에 집에 가 서 천천히 살펴봐야겠어.’
특수 능력과 기벽은 뭔지 감이 안
왔다.
스킬 같은 걸까.
어쨌거나 잠시 살펴본 결과 게임에 서의 캐릭터 스탯창, 정보창의 느낌과 비슷했다.
‘다른 사람한테도 쓸 수 있을까?’
나는 고개를 힐끔 돌려 벽에 붙어 앉아 있는 선아를 쳐다보았다.
선아는 책상에서 자기 손가락을 꼼 지락거리는 걸 보며 멍때리고 있었다.
‘윤선아 상태창!’
파앗-
《상태창》
이름 : 윤선아
나이 : 16
칭호 : 흙수저
성향 : ??? 〉 NEW! 클릭하여 펼치기
특수 능력 : ???
기벽 : ???
이해도 : 5/100
[대상 인물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 합니다. 이 인물과 더 많은 상호작용을 해서 정보를 얻어 내십시오.]
친해진 지 얼마 안 돼서 그런 걸 까.
이해도가 부족하다는 메시지가 떠 올랐다.
나 자신에 대한 상태창과는 다르게 성향도 기벽도 온통 물음표.
나는 ‘NEW!’라고 떠 있는 선아의 물음표로 된 성향을 클릭해 보았다.
클릭.
성향 : ???
- 행동이 느리다.
아까 선아가 자기 입으로 말했던 행동이 느리다는 내용 한 줄이 끝.
상대방에 대해 아는 게 많아지면 여기에 내용이 조금씩 추가되는 건 가 보다.
나는 이번에는 뒤로 고개를 돌려서 경원이를 쳐다보았다.
경원이는 알 수 없는 두꺼운 책을 읽고 있었다.
‘안경원 상태창!’
파앗-
《상태창》
이름 : 안경원
나이 : 17
칭호 : 프로 꺼라위키러
성향 : 설명충 〉 NEW! 클릭하여 펼치기
특수 능력 : ???
기벽 : ???
이해도 : 20/100
경원이의 경우에는 이해도가 선아 보다 상당히 높았다.
그래서인지 성향이 물음표가 아니라 ‘설명충’이라고 제대로 표시돼 있었다.
클릭.
성향 : 설명충
- 스스로가 똑똑하다고 생각하며, 그걸 내비치는 상황을 좋아한다. 말 투도 지식인의 문체처럼 딱딱하게 쓴다.
‘생각대로군.’
아까 내가 마음속으로 평가한 그대 로다.
알기 쉬운 성격인 탓일까?
내가 평가한 그대로 반영돼 있었고 이해도도 팍팍 올라가 있다.
이번에는 제일 뒷자리에서 자고 있는 일진녀를 쳐다보았다.
퀘스트에서 만들라고 한 친구의 숫 자는 총 3명.
시스템이 왜인지는 몰라도 저 일진 녀마저 내 친구로 인식해 버린 것 같다.
‘세상에. 쟤가 왜 내 친구야.’
기가 막혔지만 일단 상태창을 불러 봤다.
생각해 보니 이름을 모른다.
하지만 어쨌든 그녀의 상태창을 봐야 겠다는 의지를 담아 속으로 외쳤
다.
‘일진녀 상태창!’
파앗-
《상태창》
이름 : 이진희
나이 : 17
칭호 : 뒷자리 일진녀
성향 : ???
특수 능력 : ???
기벽 : ???
이해도 : 0/100
[대상 인물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
합니다. 이 인물과 더 많은 상호작용을 해서 정보를 얻어 내십시오』
‘ 역시······
아는 게 아무것도 없으니 당연한 건가.
‘그나저나 저 무서워 보이는 여학생의 이름은 이진희였구나.’
그건 내가 전혀 몰랐던 사실인데, 상태창에 버젓이 적혀 있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이 상태창은 내 인지를 초월해서 작용한다는 뜻일까?
그렇다면 한 가지 신경 쓰이는 게
있다.
선아의 나이에 적혀 있는 16살.
‘우리는 03년생, 17살인데……
빠른 연생도 폐지된 지 좀 되었는 데 입학을 빨리한 걸까.
이것도 나중에 확인해 보면, 시스템이 인지를 초월해 작용한다는 내 가설이 확실해질 것 같았다.
게임 시스템에 대해서 대략 살펴보았고, 이제 마지막으로 나의 반복되는 삶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순서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타임루
SF 소설에서 몇 번 본 것 같다.
회귀, 전생, 또는 타임루프.
아무래도 나는 죽을 때마다 입학식 때로 돌아가 버리는 듯하다.
‘골치가 아프군……
죽을 때마다 입학식으로… 이건 또 어떤 의미일까.
당장은 생각해 봐도 딱히 떠오르는 게 없었다.
몇 번 더 죽어 보며 경험해 봐야 감이 잡힐 것 같다.
‘왜 이런 일이 갑자기 나한테......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중.
배가 튀어나온 중년의 남■성이 교실에 들어왔고.
자신이 담임이라며 1년 동안 잘 지내 보자며 소개를 했다.
‘3년. 고등학교 생활 3년이 다시 스타트된 건가.’
죽을 둥 살 둥 3년 동안 공부해서 수능까지 다 쳤는데, 다시 고등학생 생활 3년이 시작된다고.
‘시발……
괴담이니 마왕이니 너무 황당한 사건들이 연달아 벌어져서 미처 생각 못 했는데, 가만히 곱씹어 보니 현실적으로도 상당히 골치 아픈 일이었다.
1년만 재수해도 성격 버리는 사람
이 얼마나 많은데, 나는 3년을 다 시… 후우…….
“그럼 안내서 프린트물 돌릴게요. 각 줄의 앞사람이 받아서 뒤로 넘겨 주세요.”
담임의 말에 각 줄의 앞에 있는 학생이 교탁으로 갔다.
“종이 뒷면에는 술, 담배를 하면 안 된다거나, 머리 길이 같은 교칙 이 적혀 있으니 꼼꼼히 읽어서 불이 익을 당하는 일이 없도록 하세요.”
한참 어린 학생들에게 존댓말을 쓰는 중년의 탈모 남성, 담임은 곧 프린트물을 돌리기 시작했다.
나는 앞사람이 건네주는 프린트물
을 심드렁하게 한 장 받고는 뒤로 넘겨 버렸다.
환영한다느니 뭐니 하며 학교 역사 랑 교칙들이 적혀 있는 뻔한 내용일 것 같아서 읽어 보지도 않았다.
내 머리는 이미 아까의 기이한 현상들을 논리적으로 정리하고 받아들 이느라 이미 포화 상태.
글자, 지식, 정보, 뭐든지 간에 당 분간은 어떤 것도 머리에 담고 싶지 않았다.
‘나는 멘탈이 약한 편이니깐.’
지난 생에서 수능 공부를 하며 뼈 저리게 느꼈다.
머리가 나쁜 편은 아닌데, 멘탈이 좀 심하게 조루라 무언가를 오래 하는데 금방 싫증을 느끼는 편이다.
순간순간 상황에 따라 빠르게 잔머 리를 굴리는 데에 모든 유전자가 몰빵된 타입.
수험에 있어서는 그야말로 벼락치 기밖에 모르고 살아왔다.
덕분에 짧은 시간에 암기해서 시험을 치는 내신은 잘 받았지만, 장기 적으로 꾸준히 공부해야 하는 수능에서는 죽을 쑤고 말았기에 대학도 그저 그런 곳에 합격했었다.
나는 코앞에 닥친 일들은 빠르게 머리를 굴려 어떻게든 해결하는 편
이지만.
결국, 무언가를 꾸준히 노력해서 대성할 그릇은 못 되는 것이었다.
‘빨리 집에 가서 쉬고 싶다......
이런 상황에서조차 무언가를 더 알 아보기보다는 일단 집에 가서 쉬고 싶은 마음이 먼저 들었다.
뇌 용량이 이미 포화 상태였기에 어쩔 수 없었다.
‘…그러고 보니 3년 전으로 되돌아 온 거면 집도 옛날 집이겠네. 그립 구만.’
웅성웅성-
갑자기 반 아이들이 웅성거리는 소
리가 들려왔다.
서로를 쳐다보며 불안한 눈빛을 주고받는 우리 반 학생들.
‘···뭐지?’
심상치 않은 분위기.
그때, 학교 방송이 울려 퍼졌다.
[아아, 방송실에서 알립니다. 방금 여러분들에게 배부된 교칙 안내서가 인쇄가 잘못된 것이 확인되어서 급하게 다시 회수하도록 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알립니다. 방금 여러분들에게 배부된 교칙이 적혀 있는 프린 트, 프린트를 회수하도록 하겠습니
다. 각 반의 담임 선생님들께서는 빠짐없이 프린트를 다시 거둬 주시기 바랍니다. 이상.]
웅성웅성-
이어서 담임이 급하게 무언가를 전 달받고는 허겁지겁 다시 교실 안에 들어왔다.
“아, 프린트 인쇄가 잘못되었다네. 이번에는 뒤에 있는 학생이 앞으로 걷으면서 옵시다.”
나도 뭔가 싶어 프린트를 살펴보려 종이를 들었지만, 걷어 오던 학생이 들었던 그 각도 그대로 내 프린트를 휙 가져가 버렸다.
자기가 걷어 가기 편하라고 내미는 줄 알았던 모양.
‘뭐가 적혀 있었길래 그러지?’
귀찮아서 안 읽었는데 그냥 훑어볼 걸 그랬나 싶어서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뭐 친구가 없는 것도 아니고.
오늘 새로 사귄 경원이랑 선아한테 물어보면 내용을 알 수 있겠지.
그리고 잠시 후.
“미안. 읽어 봤자 뻔한 내용일 거라 생각해서 안 읽어 봤다.”
경원이가 담담하게 내뱉었다.
그러자 옆에서 선아가 쭈뼛거리며 나에게 말했다.
“난 읽어 봤어. 그런데 빨리 걷어 가서 자세히 기억은 안 나고……
오오!
“어떤 내용이었는지 기억나? 뭐가 잘못 인쇄되었길래 다들 웅성거린 거야?”
내가 묻자 선아는 천천히 기억을 떠올리는 듯 눈썹을 찡그렸다.
“사실 인쇄는 문제 없었는데… 좀 이상한 내용이……
“이상한 내용?”
“그게……
선아는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는 듯 몇 번이나 입을 벙긋 거렸다.
“다른 내용은 평범했는데, 학교 교칙들 사이에… 어떤 여자를 만나지 말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어……
“여자?”
나와 경원이가 동시에 반문했다.
여자?
학교 교칙에서 여자가 왜 나오는 거지?
“어떤 여자를 만나면 조심하라 고……
“어떤 여자?”
“으음, 웃는 여자?였던가……
웃는 여자!
“학교 안에서 웃는 여자를 만나면 조심하라고?”
선아는 다시 곰곰이 생각해 보더니 이내 얼굴을 찌푸렸다.
“미안, 어떻게 조심하라는지도 적혀 있었는데… 그건 기억이 안 나……
학교 안에서 웃는 여자를 만나면 조심해라.
그런 내용이 교칙들 중에 있었다는 말인가.
“누가 장난친 걸까?”
경원이를 슥 쳐다보며 말을 건네 보자 녀석은 골똘히 생각에 잠긴 모습이다.
“뭐, 장난일 수도 있고. 근데 일단 요새 유행하는 매뉴얼 괴담을 인용 한 것 같네.”
“매뉴얼, 괴담……?”
괴담!
여기서 다시 괴담이라는 단어가!
“최근에 인터넷에서 유행하기 시작 한 괴담인데, 평범해 보이는 안내문 속에 알 수 없는 기괴한 경고문들이
섞여 들어가 있다는 종류의 이야기.
처음 들어 봐?”
매뉴얼 괴담…….
괴담 동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