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화
두 번째 괴담 - 웃는 여자 (1)
“매뉴얼 괴담……
“처음 들어 봐? 둘 다 모르는 눈 치네.”
“응. 처음 듣는데……
“그럼 직접 보여 주는 게 빠르겠는 데. 번호 주면 링크 카톡으로 보내 줄게.”
“그래.”
우리 셋은 내친김에 서로 휴대폰 번호를 교환했다.
“자, 내 번호는 010……
“ 나는······
번호를 주고받는데 눈에 띄게 좋아 하는 한 명.
선아였다.
새 학기 첫날부터 이렇게 쉽게 친 구를 만들게 되어 기쁜 걸까.
홍조를 띤 채 발그레 웃으며 내 휴대폰에 번호를 입력했다.
“자, 방금 복사해서 보냈거든. 궁금 하면 읽어 봐.”
경원이가 보내 준 매뉴얼 괴담이란
건 회사에 입사한 신입 사원들을 위 해 사내 기숙사 같은 개념의 아파트 숙소를 제공하는 신청 안내서였다.
〈〈입사 안내문〉〉
클로버 기업 입사를 진심으로 환영 합니다.
사내 아파트 신청을 희망하시는 분들께서는 아래와 같이 신청해 주시기 바랍니다.
○ 대상자 : 19년도 입사 대상 자 중 신체 건강한 자.
○ 사내 아파트 입사 신청 기간 : 2019. 1. 28(월) ~ 1. 22(금)까지 기
일 엄수.
n 제출 서류 : ① 건강진단서(결 핵, B형간염), 사진 각 1부
입사 시 클로버제약 담당과로 팩스 제출 (필).
n 제출 방법 :어플 클로버-사원 메뉴-사내 아파트-사내 아파트 입사 신청.
신규입사원은 인사과로 전화 인증 하여 데이터 등록 확인 후 어플로 신청.
n 신청 시 주의사항
우 본 아파트는 클로버 기업에서 오직 직원들만을 위해 자체적으로
토지를 구입, 건설한 아파트입니다. 항상 감사하십시오.
※ 가족 중 종교인이 있을 시 심 사가 거부됩니다.
※ 서류를 제출하러 담당과를 방문 시, 시간을 확인할 수 있는 모든 소지품은 미리 보안요원에게 반납 후 방문하시기 바랍니다.
n 입주 후 유의사항
洪 본 아파트 입주 후 환각, 환청 및 건강상의 이유로 신청 반려는 불 허합니다.
洪 보안상의 이유로 각 복도의 끝 집은 항상 비어 있습니다. 불이 켜져 있거나 소리가 들리더라도 무시하십시오.
乂 본 아파트에는 종교상의 이유로 4층이 없습니다. 엘리베이터가 4층에 멈출 경우, 들키기 전에 자살하십시오.
凶 야간에는 계단으로의 출입을 금 합니다. 불가피하게 계단 이용 시, 반드시 기어 다니십시오.
n 기타 문의 사항 :
사내복지팀 ·文 Oxx)xxx-xxxx
클로버제약 S Oxx)xxx~xxxx
언뜻 읽어 봐도 수상한 구석이 한 두 군데가 아닌 공문.
내가 다 읽은 듯하자 경원이가 내 눈치를 보며 물었다.
“어디 어디가 이상한지 눈치챘어?”
“흠, 잠시만……
우선, 사내 복지를 위해 숙소를 제 공하는데 어째서 제약과를 방문해야 하는지가 수상하다.
그 밑의 내용들은 말할 것도 없이 이상한 주의사항들 투성이고.
“···숙소에 들어오는 신입 사원들을 대상으로 신체 실험이라도 하고 있는 걸까?”
“오호.”
경원이가 안경을 반짝 빛내면서 놀
란다.
“처음 읽어 본다는 것치고는 꽤 예 리한데.”
“하하, 뭐… 그냥 때려 맞춰 봤어. 근데 정답은 아닌 것 같은데.”
“생각하기 나름인 거지.”
이렇게 공식적인 안내문 속에 은근히 수상한 문장들을 숨겨 놓는 게 요새 유행하는 매뉴얼 괴담이라는 건가.
선아도 핸드폰을 뚫어져라 보며 여기저기 스크롤을 올렸다 내려 본다.
“경원이 너, 저번에 안내 방송 그 것도 그렇고 무서운 이야기 많이 아
네.”
내 말에 녀석은 안경을 치켜올리며 씩 웃었다.
“원래는 추리, 미스테리가 취향이었는데 파다 보니 옆 장르인 호러에 대해서도 많이 알 뿐이야.”
“그렇구나……
나는 다시 한번 그 매뉴얼 괴담이 란 걸 찬찬히 읽었다.
“그래서 이거, 답이 뭐야?”
“···답?”
녀석이 당황한 듯 움찔했다.
“응. 좀 이상한 공문이긴 한데. 결론이 뭐야?”
앞에 선 선아도 궁금하다는 듯이 경원이를 바라봤다.
그렇다.
이야기에는 결론이 있어야 하는 게 맞지 않을까?
이상한 구석이 여기저기 있기는 하지만, 그래서 이 공문은 뭘 말하고 싶은 걸까?
“그런걸 나한테 물어봐도……
경원이는 뭔가 쩔쩔 매는 느낌이었다.
“잘 들어. 몰라서 대답 못 해 주는 게 아니고, 괴담이란 건 말야 원래
결론이란 게 없는 거야……
“···그래?”
“그래.”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녀석.
“이 공문도 클로버 기업에 입사한 누군가 몰래 찍어서 인터넷에 올린 것뿐. 누군가 기승전결을 지어내서 만든 게 아니란 거야……
“아, 누가 찍어서 올린 거였구나.”
“그래서 결론을 물어보면 곤란해. 몰라서 그러는 게 아니고……
난처해하는 녀석.
본인이 지닌 지식에 대한 자존심 때문인지, 몰라서 대답 못 하는 게
아니란 걸 강조한다.
하지만 이해는 간다.
공포나 호러 같은 장르에는 전혀 조예가 없는 나였기에 너무 초보적인 질문을 하자 납득시켜 주기 곤란 해하는 상황.
“괴담이란 건 그냥 인터넷이나 어딘가에 떠돌아다니는 단편적인 이야 기일 뿐, 결론을 물어보면 곤란한-”
나는 쩔쩔매며 거듭 설명하는 녀석에게 알겠다는 듯 손사래를 쳤다.
“그렇구나, 이해했어. 미안, 미안. 난 이런 쪽에 아예 취미가 없어서 그런 질문을 한 거야.”
“그래… 내가 답을 몰라서 쩔쩔맨 게 아니고 그냥 그 답이 없다는 포인트를 설명해 주기 곤란했을 뿐이
“그래서 이렇게 공식적인 문서 속에 은근히 이상한 주의문들을 끼워 놓는 게 매뉴얼 괴담이라는 거지?”
녀석의 말을 끊고 내 결론을 얘기 하자 경원이가 흥미롭다는 듯 눈을 반짝 빛낸다.
“초심자치고는 핵심을 잘 파악했는 데. 정확해. 그게 바로 매뉴얼 괴담의 공포 포인트야.”
“흠.”
클로버기업은 세계를 주름잡는 대기업인데, 이런 괴담을 퍼트리면 고소 같은 거 안 당하는 건가…….
뭐, 그건 그렇고 방금 학교에서 나 눠 준 입학 안내문.
그곳에도 이렇게 매뉴얼 괴담의 형 식으로 수상한 내용이 적혀 있었다는 게 지금 생각해 봐야 할 핵심이구나.
‘웃는 여자를 조심해라.’
그렇게 경원이랑 선아와 잠시 잡담을 나눈 후 다시 자리로 돌아오니 교과서 배부가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감회가 새롭군.’
1학년 때 배우는 교과서들을 다시 한번 받아들자 기묘한 기분이 들었다.
‘이 중에 수능에 도움이 되는 책들은 거의 없었지.’
수학의 일부 내용을 제외하고는 사실상 수능에 반영이 거의 안 되는, 정말 기본적인 내용투성이.
‘…아니, 수능뿐만이 아니었던 것 같기도.’
수능을 넘어서서 사실 인생에도 별 도움이 안 되는 내용들이었던 것 같다.
고3 겨울방학 때 알바를 시작하려 했는데 아는 게 없어서 쩔쩔맸던 기억이 난다.
노동법이라도 배웠다면 훨씬 유익 했을 텐데, 하는 감상이 새롭게 수 험 생활을 앞두고 떠올랐다.
곧이어 담임이 들어와서 대충 종례를 했고.
모두 짐을 챙겨 일어섰다.
무거운 교과서들을 낑낑대며 가방에 쑤셔 넣는 신입생들.
‘역시, 아무것도 모르고 있군. 귀여운 꼬맹이들.’
오늘 받은 1학년 교과서들.
집에서 예습하거나 복습할 일 따위는 없다고, 훗.
나는 책들을 집에 가져가는 대신 사물함에 죄다 넣었고.
가벼워진 가방을 들어 메고 슬슬 하교 준비를 했다.
시간을 보니 아직 점심시간도 안 된 11시.
입학식 날이라 그런지 굉장히 일찍 마치는 듯하다.
교실 문을 나서려는데 선아가 내 눈치를 보며 머뭇거리는 게 보인다.
“···저기.”
“어, 그래.”
뭔가 안절부절못하며 나를 바라보는 선아.
아마 같이 갈 친구를 찾고 있나 보다.
‘집에 갈 때는 생각 좀 정리할 겸 혼자 가려고 했는데.’
약간의 귀찮음을 느꼈지만 그래도 오늘 새로 사귄 친구이니.
굳이 매정하게 굴 필요는 없지 않을까.
“선아야, 같이 가자. 경원이는?”
“저기, 다른 애랑……
선아가 가리키는 방향을 보자 경원이가 덩치 큰 ‘안경+여드름+돼지’
남자애 한 명이랑 같이 뭐라 쑥덕쑥덕 얘기에 열중하며 가는 게 보였다.
덕후는 덕후끼리 어울린다는 걸까?
아마 나는 잘 알지 못하는 마이너 한 취미에 대한 얘기들을 열중해서 나누고 있는 듯하다.
가방을 매만지며 나를 보는 선아의 눈길이 애처롭다.
나는 기운차게 선아에게 말했다.
“가자! 집이 주공아파트라고 했었나?”
“웅, 맞아……
“학교 나서자마자 방향이 다르네~ 그건 아쉽다.”
“그러게……
능청스레 대화를 주도하자 선아가 금새 안심했다는 듯 미소 지었다.
어쩌다 보니 여자애랑 단둘이 같이 하교하게 되었지만 크게 신경 쓰는 기색이 없는 주위의 학생들.
고등학생이 되고 첫날이다 보니 다들 자기 이미지 챙기느라 바쁘기도 하고.
아직 서로 누군지 몰라서 그런가 보다.
만약, 얼굴을 좀 튼 후에도 선아랑
단둘이 다닌다면, 쟤네 사귀는 거 아니냐며 수군거릴지도 모르는 일.
‘급식들은 정말 가볍다니깐.’
나는 졸업은 못 했지만, 그래도 대학교 합격 통지서까지 손에 쥐고 돌아왔으니 급식이라는 범주에 속하지는 않겠지 싶은 마음으로 녀석들을 깔봤다.
“이쪽으로, 운동장 가로질러 가자.”
«응. ”
자연스레 같이 발을 맞춰 걷는 선아와 나.
여자와 남자를 철저하게 이성으로 보며 수군거리는 것도 사실 고등학
생까지다.
대학교에 가면 다들 자연스레 같이 밥도 먹고 어울려 다닌다던데, 경험도 못 해 보고 온 내가 한스럽지만…….
일단은 낙성고는 남녀 공학.
괴담이니 마왕이니 회귀니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넘쳐나는 와중에도, 남녀 공학 학교에서 선아같이 귀여운 여자아이와 첫날부터 친해져서 함께 하교한다는 건 마음 설레는 일이다.
“담임 선생님은 어때 보여?”
“그, 글쎄……
“좀 재밌는 분 같던데.”
«응 ,,
선아는 내 예상대로 말수가 많은 타입은 아니었다.
주로 내가 대화를 주도했고 선아가 더듬거리며 대답하는 식.
어쨌든 그렇게라도 대화를 이어 나 가며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운동장을 지나쳐 정문까지 다다랐다.
정문 근처에서 경비 아저씨가 서성 거리며 이곳저곳을 살피는 게 보였다.
‘···저 사람도 3년 만이네.’
악연이라고 해야 하나.
나랑은 꽤 인연이 있는 아저씨.
그때는 생존에 급급하다 보니 짜증 나기만 했었는데.
평범한 상황에서 3년 만에 다시 보니 반갑기까지 하다.
‘물론, 저 사람은 나를 모르겠지만.’ 하고 생각하며 휙 지나쳤다.
정문을 나서서 얼마 안 가 선아랑 작별 인사를 했다.
“잘 가! 내일 또 보자~”
“응, 잘 가~”
선아는 가방을 맨 채 쓸쓸한 뒷모습을 보이며 학교 옆 주공아파트 방
향으로 걸어갔다.
저 아파트는 지은 지 30년이 넘은 다 쓰러져 가는 아파트다.
재개발한다는 소문에 사람들이 살고 있기는 하지만, 정말 오늘내일하는 노인네들밖에 안 사는 흉가 같은 곳이었다.
건물 외벽 곳곳에는 나무덩굴이 타고 올라 있고, 아스팔트도 성한 게 없이 다 부서져 풀들이 자라나 있고…….
안에는 들어가 본 적 없지만 훨씬 끔찍하겠지.
선아는 저런 곳에 사는구나, 하는 느낌을 받다가 문득 떠오른 게 있었다.
이해도 시스템.
확신을 가지지 않더라도 마음속으로 지레짐작을 하거나 대충 넘겨짚 어도 어느 정도는 반영이 되던 게 생각났다.
‘지금까지 내가 관찰한 선아의 모습으로 뭔가를 유추해 낼 수 있을 것 같은데?’
잠시 마음을 가다듬고 문장을 마음 속으로 떠올려 보았다.
‘윤선아는 가난하다.’
반응이 없었다.
‘윤선아는 못 산다.’
이번에도 반응이 없다.
좀 더 심한 단어를 말해 볼까 잠시 고민이 된다.
선아에게는 미안했지만 시스템을 파악하기 위해 혼자 마음속으로 되뇌는 일.
본인이 들을 리도 없고 진심도 아니니 질러 봐도 상관없지 않을까.
‘윤선아는 흙수저다. 윤선아는 돈 이 없다. 윤선아는 거지다. 윤선아는 빈털터리다. 윤선아는……
아무렇게나 말해 봤지만 역시 반응 이 없었다.
너무 대충 짐작해 보는 건 안 된 다는 걸까?
나는 멀어져 가는 선아의 뒷모습을 보면서 다시 한번 생각을 가다듬었다.
‘어디 보자, 우선 선아는 말과 행 동이 느리다.’
아니, 단순히 느린 걸 떠나서 대인 관계가 좀 많이 서툰 것 같다.
별것 아닌 일에도 묘하게 허둥지둥 하거나 우물쭈물하는 모습을 많이 보였다.
‘···오랫동안 혼자 지내 온 걸까?’
원래 성격이 그랬던 건 아닌 것 같다.
혼자가 편하기에 대인관계가 서툰 사람들이 있는 반면, 선아의 경우에는 명백히 친구들이 생기자 좋아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선아가 이렇게 대인관계에 서툰 이유는 후천적인 원인이 있다는 뜻.
‘그 원인이 혹시 가정 형편은 아닐 까?’
어차피 시스템의 이해도를 나름대로 익히기 위해 혼자 마음속으로 지 레짐작하는 일.
한번 단정 지어 본다고 죄책감을 느낄 필요는 없지 않을까?
나는 결론을 내려 보기로 했다.
‘윤선아는 집이 가난하다. 그래서 학창시절을 보내며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여러가지 애로사항이 많았을 것이다. 그것이 선아의 자존감을 갉 아먹었고 지금의 이렇게 소극적인 성격의 원인이 된 것이다.’
띠링-
[윤선아에 대한 이해도가 30 대폭 상승했습니다.]
성공했다!
그것도 대폭 상승!
“···이게 되네.”
소 뒷걸음질 치는 격으로 우연히 맞혀 버린 모양이다.
나는 선아의 상태창을 켜서 무엇이 달라졌을지 확인하고 싶었지만.
선아는 이미 아파트 단지 안으로 들어가서 모습이 보이지 않았기에 상태창을 띄울 수 없었다.
‘내일 학교에서 확인해 봐야겠다.’
우선은 빠르게 이 시스템들을 자세히 파악하는 게 내가 할 일이라고
마음먹으며 나도 집 방향으로 발길을 돌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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