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화
두 번째 괴담 - 웃는 여자 (3)
다음 날 아침.
엄마가 깨워 주기도 전에 저절로 눈이 떠졌다.
이런저런 희한한 일들이 많이 일어 났기에 나도 모르게 긴장하고 있던 탓인 것 같다.
덕분에 학교에도 일찍 도착했다.
어제는 입학식이라 임시로 배정된
위층의 교실을 썼지만, 오늘은 반 배정이 다 끝났는지 1층으로 안내를 받고 들어갔다.
낙성 고등학교.
서울시 관악구에 위치한 1984년 개교한 인문계 고등학교.
처음으로 졸업한 1기 선배들이 이미 50이 넘은 나이로 사회 여기저기에서 일하고 있으니, 나름 전통이 있다면 전통 있다고 할 수는 있겠다.
듣기로는 돈을 대 주는 재단이 있어서 자율형 사립고등학교, 즉 자사 고로 분류되기는 하는데 이상할 정도로 평범함을 추구하는 탓에 교과
과정이나 분위기는 일반 학교와 다를 바 없었다.
가까운 곳에 서울대학교가 위치한 탓에 자극을 받아 명문고로 거듭나려고 욕심이 날 법도 한데, 개교 후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딱히 그런 노력은 하지 않은 듯 학생들의 수준은 그럭저럭이다.
‘덕분에 보통 정도의 클래스인 나도 입학할 수 있었지.’
교실에 가만히 앉아 생각을 하던 나는 이번엔 학교 건물의 모습에 대해 떠올려 봤다.
건물 세 개가 ㄷ자를 이루고 가운데 운동장이 있는 심플한 구조.
정문에서 바라볼 때를 기준으로 가운데 건물이 본관.
왼쪽엔 급식소, 오른쪽에는 강당으로도 쓰이는 체육관이 있는 건물.
이상해 보이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튜토리얼 때 나온 메시지.
분명히 이 학교에 뭔가 ‘비밀’이 숨어 있었다고…….
‘···겉보기엔 그냥 평범한 학교인데 말이지.’
사실 내 기준에서는 이미 평범하지는 않지만.
이 학교 밑에는 4마왕’이라는 알
수 없는 괴수가 묻혀 있는 것이다.
‘후... 어디서부터 실마리를 풀어나 가야 하나.’
비밀이라든가 마왕이라든가 내게는 너무나 멀기만 한 목표다.
그래서 당장은 눈앞의 일들부터 풀 어나가기로 마음먹었다.
눈앞의 일이란 건, 바로 어제 안내 문에 나온 ‘웃는 여자’라는 학교 괴담.
이 괴담이라는 현상은 어떤 방식으로든지 내가 걸어가야 할 길과 연관 되어 있을 것이다.
‘안내문에 나온 ‘웃는 여자’, 거기
에 대해서 알아내는 걸 오늘의 목표로 삼자.’
그러기 위해서는 어제 배부된 안내 문 중 웃는 여자에 대해서 기록된 부분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는 사람을 찾아야 한다.
시간이 갈수록 학생들의 기억력은 흐려질 터.
오늘 안에 같은 반 애들에게 최대 한 말을 많이 걸어서 안내문을 기억 하는지 물어봐야 한다.
‘나, 일부러 친구를 만들러 다니는 그런 성격은 절대 아니었는데……
친구란 있으면 좋지만 또 너무 얽 매이게 되면 피곤함도 있는 법.
그런 내가 팔자에도 없는 인싸 짓을 해야 한다니…….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교실에 앉아 있으니 지각 직전에 선아가 헐레벌 떡 교실문을 열고 들어오는 게 보였다.
‘학교 바로 옆에 살면서 헐레벌떡 뛰어오네.’
가까이 살수록 지각할 확률이 높다는 어디선가 본 이상한 통계가 떠오른다.
“자~ 여러분. 앞사람씩 나와서 이 종이를 뽑아가세요.”
‘홋홋홋’ 하고 웃으며 기묘한 존댓
말을 쓰는 우리반 담임, 중년의 배 나온 아저씨.
우리와 만난 지 하루 만에 자기 페이스대로 마음껏 농담을 치는 사람이었다.
친화력이 굉장하신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나도 종이를 하나 뽑아 왔다.
‘어디 보자… 26?’
이 종이에 적힌 숫자대로 자리가 배치되고 짝도 정해진다.
칠판에 담임이 그려 놓은 자리 배 치도를 보고 26이라는 숫자가 적혀 있는 책상을 찾아갔다.
이왕이면 예쁜 여자아이와 앉고 싶다는 설레임을 안은 채 창가 쪽으로 이동하니, 웬 덩치가 산만 한 남학생 하나가 앉아 있는 게 보였다.
“후욱… 후욱……
얼마나 살이 쪘는지 숨 쉬는 것도 힘들어 보·이는 녀석.
안경을 낀 채 자신의 이어폰을 만지작거린다.
‘어제 본 것 같은데.’
어제 하교길에 경원이랑 같이 무언 가를 열심히 얘기하며 돌아가던 그 남자애라는 게 곧 기억났다.
“안녕, 반가워. 잘 지내 보자.”
“후욱... 반갑다능. 이 새끼 오타쿠네.
[오덕훈에 대한 이해도가 15 상승 하였습니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눠 보니 그렇게 나쁜 애는 아니었다.
책상밑에 초코바를 넣어 놓고 몰래 ‘부히잇’거리며 꺼내 먹기도 하고, 쉬는 시간마다 이어폰을 끼고 핸드폰으로 이상한 애니를 보는 것만 빼 면.
《상태창》
이름 : 오덕훈
나이 : 17
성향 : ???
특수 능력 : ???
기벽 : ???
이해도 : 15/100
일단은 묻고 싶은 걸 물어보기로 했다.
“덕훈아, 궁금한 게 있는데.”
« 2”
“혹시 어제 받았다가 바로 수거해
버린 학교 안내문 있잖아. 읽어 봤어‘?”
“···어.”
“거기 막 이상한 얘기들 적혀 있었다는데 기억나?”
덕훈이는 한창 애니를 보다가 내가 말을 걸자 이어폰을 빼고는 슥 내 근처 어중간한 곳에 시선을 둔다.
“아아, 웃는 여자 말하는 건가 ?”
애니를 너무 많이 봤는지 일본식 번역체로 말하는 녀석.
뭐라 지적하려다 초면이라 참고 고개를 끄덕였다.
“응, 맞아 그거. 기억나?”
덕훈이는 이어서 쿡쿡대고 웃으며 말해 주었다.
“웃는 여자와 마주치면 절대 알은 체를 하지 마루요……
“알은체를 하면 안 된다고?”
“다메.”
다메? 뭔 소리야.
“···그거 외에는 기억나는 낱말 없어?”
“젠젠.”
녀석은 그 말을 끝으로 다시 이어 폰을 끼고는 쒸익거리며 애니에 집 중했다.
‘후……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선아의 자리였다.
선아의 짝꿍은 책을 읽고 있는 안 경 쓴 여자애였는데, 얼굴이 인형처 럼 작았다.
긴 흑발에 투명한 피부가 눈길을 끌었다.
처음 보는 짝꿍 옆에서 선아가 어색한지 괜히 필통을 만지작거리다가 나를 보고는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안녕, 선아야. 오늘 지각할 뻔했던 데.”
“아하하……
선아가 어제보다는 한층 더 자연스러운 웃음을 보여 주며 말했다.
“할머니가 늦게 깨워 주셔서……
“할머니랑 둘이 살아?”
«응
부모님은 어디로 가신 걸까.
가정사가 복잡한 듯했다.
“짝꿍이랑은 인사했어?”
“아직……
선아의 짝꿍은 그 말을 듣더니 이 쪽을 힐긋 한번 쳐다보고는 다시 무표정으로 책을 봤다.
‘안내문에 대해 물어봐야 하는데.’
겸사겸사 둘이 말이라도 틀 수 있게 오지랖도 부릴 목적으로 선아의 짝꿍에게 말을 걸어 보았다.
“안녕, 난 이준이야.”
그러자 여자애는 곧바로 내 눈을 보더니 빙그레 웃으며 인사한다.
“응, 안녕. 난 인하윤이야.”
방금 전까지만 해도 무표정이었어 서 ‘찐따 새끼가 왜 말걸지?’ 하고 무시할까 봐 약간 걱정했지만, 바로 미소 지으며 응대해 주는 여학생.
항상 우물쭈물한 태도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하는 바로 옆의 선아랑은 다르게 구슬이 굴러가는 듯
아나운서 같은 발음의 깨끗한 목소리였다.
“혹시 어제 안내문 나눠 줬다가 다시 수거해 간 거 기억나?”
“응. 왜?”
“거기 이상한 주의문 있었다는데 혹시 기억하고 있어?”
“기억나. 궁금해?”
“어어, 궁금해서. 좀 말해 줄래?”
하윤이가 가느다란 손가락을 입술에 대며 잠시 생각하는 제스처를 취 했다.
하얗고 투명한 손, 날씬한 손가락과 가지런하고 단정된 손톱.
관리를 안 하고 아무렇게나 막 쓰는 내 손이랑은 확실히 달라 나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학교 안에서 기이하게 웃는 여자를 발견할 시 못 본 체하고 지나갈 때까지 자연스레 행동하세요…였던 것 같아.”
굉장히 자세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세상에… 되게 섬뜩하다, 그치?”
“그러게.”
그런 섬뜩한 경고문이 교복 안내와 두발 길이 규정 같은 규칙들 사이에 아무렇지도 않게 끼어 있었다니.
정말 괴이하다고 밖에는 말할 수가 없다.
선아가 대화에 끼지 못하자 불안한 듯 시선을 이리저리 돌리는 게 보인다.
나는 시선을 돌려서는 선아에게도 말을 붙였다.
“선아야, 다음 쉬는 시간에 같이 매점 구경 갈래?”
“응. 재밌을 것 같아……
안심한 듯이 살짝 미소 짓는 선아.
다시 인사하고는 나는 자리로 돌아 갔다.
‘···전생에서는 남자고등학교에 다 녀서 여자애랑 친하게 지내 본 기억 이 없었는데, 말을 안 더듬어서 다 행이다.’
전생에서 낙성고가 폐교되며 전학 갔던 학교는 애석하게도 남고였다.
남녀공학은 최고라는 생각을 하며 자리에 앉아 다음 수업 시간을 준비 했다.
다음 시간은 영어 시간이었는데 별 게 없었다.
첫 시간이라고 각자 이름을 영어로 얘기 하며 소개 하는것뿐이었다.
그다음 쉬는 시간.
나는 약속한 대로 매점에 가려고 선아를 데리고 교실을 나섰다.
짝꿍인 하윤이도 시선이라도 한번 마주친다면 같이 가자고 말해 볼 요량이었는데 우리가 일어나서 갈 때까지 가만히 책만 읽고 있었다.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선아랑 단둘 이 매점으로 향했다.
매점에 도착할 때가 돼서야 선아가 갑자기 생각난 듯이 말했다.
“아, 맞다. 경원이……
“아, 맞다.”
머릿속이 온통 괴담과 학교에 대한 생각뿐이라 까먹고 있었다.
그래도 어제 셋이서 함께 입학식도 째고 히히덕거리며 친해졌었는데, 매점에 같이 데리고 올 걸 그랬다.
지금처럼 막 친해져 가는 단계에서는 최대한 소외되는 사람 없이 처음 그 멤버끼리 같이 뭉쳐 다녀야 트러 블이 없는 법인데.
“자기만 빼놓고 갔다고 삐지는 거 아냐?”
“그러게……
하지만 그 녀석, 곱상한 게 부잣집 도련님처럼 생겨서 매점에서 파는 싸구려 음식 같은 건 안 먹을 것 같은데.
라고 스스로를 변명하며 매점에 도착했다.
매점은 역시나 줄이 길었다.
“과자 구경도 못 해 보고 쉬는 시간 끝나겠는데.”
“그러게……
사실 정말 배고파서 왔다기보단 새로 사귄 친구와 더 친해질 겸 온 거라 딱히 상관은 없겠지만.
어쨌든 매점 앞은 완전히 아수라장 이었다.
기다리는 학생들의 수다 떠는 소리와 더불어서 ‘아줌마 이거 주세요, 저거 주세요, 여기 계산요’ 하며 외
치는 소리, 그리고 들어가려는 사람과 나오려는 사람이 얽히고설키며 그야말로 개판 오 분 전.
그 와중에 좀 껄렁해 보이는 선배 들이 우리를 확 밀치며 새치기를 해 서 난 넘어질 뻔하다가 무심코 선아의 손을 잡으며 중심을 잡았다.
우 | 99
순간 부드럽고 따뜻한 선아의 온도 가 손에서 확, 느껴지며 정신이 번 쩍 든다.
‘X발, 좆됐다……
선아도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란
하지만 변명할 새도 없이 학생들 사이에서 우리는 계속 여기저기 부 딪히고 떠밀리며 넘어질 뻔했고, 나는 결국 손을 잡은 채로 선아를 이 끌며 겨우 인파를 뜷었다.
그렇게 난장판인 입구를 지났고, 우리 역시 밀린 김에 새치기를 해서 매점 안에 들어서자 상황이 좀 나아 졌다.
우리는 과자 진열대 앞에서 서로의 손을 잡은 것도, 놓은 것도 아닌 어중간하게 슬며시 걸친 상태로 있었
“휴, 여기 진짜 정신없다. 그치?”
일단 아무렇지 않은 척 말을 건네 보았다.
선아는 대답이 없다.
주위는 시끌벅적한데 우리 둘 사이 에선 조용한 긴장감이 흐른다.
곧 선아가 먼저 살짝 손을 빼내려는 게 느껴져서 나도 손을 놓았다.
난 물건을 고르는 척 고개를 돌리며 선아의 표정을 슬쩍 봤다.
굳은 표정. 약간의 정색.
명백히 부담스러워 하는 얼굴.
‘아, X발… 역시 좆된 건가.’
이제 와서 뭐라 변명하기도 애매한 데…….
“먹고 싶은 건 골랐어?”
대답이 없다.
“··.선아야?”
선아가 눈썹을 살짝 찡그리면서 시선을 피했다.
···짜증 낸 건가?
영화 속 선남선녀들은 별의별 이상 한 우연이 겹쳐서 하루 만에 손도 잡고 하던데.
그런 건 정말 영화 속이니깐 가능 했던 일일까.
일반적이라면 만난 지 하루 만에 남자가 손을 잡으면 병신으로 보는 게 당연하겠지.
‘아니, 진짜 실수였다고……
아, 씨… 뭐라 말해야 하지?
친해져 가는 흐름은 괜찮았는데, 방금 이거 하나 때문에…….
안 그래도 선아는 자존감도 낮고 인간 관계에도 서툴러 보이고, 나 역시 여자랑 얘기를 해 본 경험이 많지 않은 상황.
이걸 어떻게 수습해야 하나 난감했
‘시간을 딱 5분만 뒤로 돌렸으면……
그때였다.
매점 입구 쪽에서 작게 꺄앗, 거리는 비명 소리가 들렸다.
« 2”
나는 대충 집어 든 조청유과 하나를 카운터에서 계산하려다 말고 반 사적으로 고개를 돌려서 입구를 쳐다봤는데, 그곳에 함박웃음을 짓고 있는 중년의 여성이 입구에 서 있는 게 보였다.
나는 그 여자를 보며 깜짝 놀랐다.
겉보기에는 그냥 평범한 동네 아줌 마처럼 생겼는데, 이목구비가 구분 이 안 될 정도로 얼굴을 새하얗게 덕지덕지 분칠을 해 놓았다.
그리고 눈과 입이 완전히 반달 모양으로 끝까지 찢어져 더 기괴하게 느껴지는 함박웃음.
누군가 아줌마를 보고는 놀래서 꺄 악 소리를 지른다.
“뭐야, 놀래라……
“아줌마 뭐예요? 여기서 길 막지
말고 비켜요.”
“아, X발, 길막……
안 그래도 혼잡한 행렬, 학생들이 매점을 나서려다 말고 가만히 서 있는 아줌마에게 부딪치자 짜증을 내며 비켜 섰다.
그 와중에 줄을 서 있던 학생들 몇몇은 아줌마의 기괴한 화장과 웃음에 놀래서 작게 비명을 지르기도 했다.
그리고…….
‘저 아줌마, 키가 도대체 몇이야?’
정신없는 와중이라 다들 눈치를 못 챈 모양이다.
이곳 매점 앞은 학생들이 몰려 난 장판.
그런 상황인데도 다들 아줌마를 보며 놀래거나 욕지거리를 내뱉을 수 있었던 그 이유.
바로 옆 사람도 분간하기 힘든 지금 상황. 하지만 저 아줌마의 얼굴은 성장이 끝난 고등학생들 사이에 서도 머리 하나 크기만큼 더 툭 튀 어나와 있었다.
“서... 선아야……
나는 무의식적으로 선아를 찾았다.
선아도 그 여자를 보았는지 방금까지 우리 사이에 흐르던 어색한 기류
는 온데간데없고 파랗게 질린 표정을 지으며 내 곁으로 왔다.
"으, 응..."
“어, 어떻게 하지, 저거, 그… 맞 지? 웃는 여자……
나는 당황하자 엉뚱하게도 선아에게 대답을 묻고 있었다.
“어, 어, 응… 저기……
선아가 파랗게 질린 표정으로 이어서 말했다.
“저기, 그냥 있자……
나는 선아의 눈을 보면서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웃는 여자를 보면 못 본 체하고 자연스럽게 행동해라.
학교 안내문에는 분명히 그렇게 적혀 있었다.
웅성웅성.
매점을 뚫으려 정신없이 움직이던 학생들의 시선이 어느새 활짝 웃고 있는 아줌마에게 모아졌다.
소리를 낮춰 불안해하며 다들 수군 거렸다.
“뭐야, 저거……
“미친 사람 아냐?”
“ 아니야 아악/////////////////////////////////”
순간 여자가 찢어지는 괴음을 지르더니 손에 들고 있던 무언가를 이리 저리 휙휙 날쌔게 휘두르기 시작했다.
아마 커터칼인 것 같다.
그것도 일반 학생들이 쓰는 게 아닌 공업용 커터칼.
커터칼을 휘두르는 방향에 따라 여자 앞을 지나가려던 학생들의 목이 이리저리 기이한 각도로 꺾이면서 검붉은 액체가 튀었다.
“꺼, 어어어억……
휙- 촥.
“어, 엄마, 내 목……
잠시 정적.
그리고.
“꺄아아아아악!”
“으아아아아악! 살려 줘!”
“허어어억! 으아아아! 미친 사람이 다!”
학생들은 비명을 지르며 도망가려 했다.
하지만 지금 매점 근처는 이미 학생들로 가득 차 포화인 상태.
도망가려는 학생들과 줄을 서 있던
사람들이 얽혀 넘어지며 완전히 엉 망이 되었다.
그 중심, 매점 입구에서 여자는 미 친 듯이 커터칼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 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 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하
“으아아아악! 사람 살려!”
“헉... 허어억! 비켜! 비켜!”
“꺄아악! 도망가! 도망가!”
웃는 여자에게 목이 잘린 근처 학생 대여섯이 기우뚱거리며 몸에 힘을 잃고 쓰러지는 게 보인다.
쓰러지는 것 마저도 제대로 바닥에
널부러지는 게 아닌, 학생들의 밀도 때문에 옆사람에게 기대는 형태가 되었고.
옆에서 엉겁결에 쓰러진 학생을 받은 남학생은 시체의 목에서 나오는 피로 정신을 못 차렸다.
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
여자는 미친 듯이 웃으며 팔을 인간의 속도와 힘이라고는 볼 수 없을 정도로 세게 휘두르며 난도질을 시작했다.
“으아아아악, X발!”
“허어어억!”
여자가 입구에서 살인을 하고 있었기에 매점 안에 있던 우리들은 나가 지도 못하고 점점 카운터 쪽으로 몰리며 궁지에 든 쥐의 행색으로 두리 번거리기만 하고 있다.
“크아아아아아악-”
휘익-
“꺼어 억……
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
“꺄아아악-”
휘익-
"끄르르륵……
“서... 선아야.”
“허억… 허억……
너무 두려운지 숨을 헉헉 하며 몰아쉬는 선아.
미친 듯이 깔깔거리며 웃는 여자가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는 학생들 사이를 거치며 점점 가까워진다.
이런 상황에서 못 본 체하고 자연 스레 있으라고?
‘개소리 마, X발.’
이미 두려움에 우리 둘 다 어깨를 덜덜 떨고 있는 상황.
못 본 척 가만히 있는 건 불가능 하다.
“흐읍!”
나는 선아를 재빠르게 카운터로 밀 어붙였다.
작게 비명을 지르는 선아.
그리고 무릎을 꿇고는 두 손을 깍 지 껴서 선아의 발 하나를 올려 줬다.
‘넘. 어. 가. 창. 문. 으. 로. 도. 망.’
선아는 내 입모양을 보고는 흠칫하다가 이내 알겠다는 듯 내 깍지 낀 손을 밟고 카운터를 넘어 창문 쪽으로 헉헉거리며 갔다.
입구를 저 여자가 틀어막고 있어
나갈 수 있는 길은 카운터를 사이에 두고 입구와 정반대에 위치해 있는 창문.
탈출구는 그곳뿐이다.
나도 선아를 따라 카운터의 유리판을 밟고 넘어서니 카운터 뒤쪽 구석에 매점 아주머니가 쪼그려 숨어서 경찰에 신고하는 모습이 보였다.
“겨, 경찰이죠? 여기 낙성고등학교 매점인데요! 빨리 좀 와 주세요! 살인 사건, 살인 사건! 빠, 빨리 와요 빨리!”
우리는 숨어 있는 아주머니를 지나 쳐 창문으로 향했다.
창문은 내 어깨높이 정도.
약간 높긴 하지만 남자인 나에게는 충분히 짚고 넘을 수 있는 높이다.
하지만 키가 작은 선아에게는 힘들 것이다.
선아가 헉헉 숨을 몰아쉬며 창문 앞까지 먼저 도착했고, 나는 그런 선아를 다시 안아서 창문에 손을 짚고 넘을 수 있게 올려다 주었다.
선아가 낑낑대며 간신히 창문을 넘어서고 난 후, 이제 내가 넘을 차 례.
“주, 준아……
선아는 넘어서자마자 몸을 돌렸고, 창문을 사이에 둔 채 나를 쳐다보며
다급하게 말했다.
“나 화난 거 아니었어…! 알지…?”
아까 손잡았다고 정색한 걸 말하는 건가.
나는 잽싸게 고개를 끄덕이며 창문에 손을 짚고 힘껏 점프했다.
버둥거리며 다리 하나를 걸쳐 보려 했지만, 정말 아쉽게도 힘이 약간 모자라서 다시 땅에 내려왔다.
후욱, 후욱…….
다시 한번 점프하려고 호흡을 가다 듬고는 다리를 구부려 자세를 취하는데, 선아가 내 뒤를 보며 눈이 휘 둥그레지더니 다급하게 비명을 질렀
다.
“주, 준아 준아! 준아!! 안
돼!! 꺄아아아악!!”
«
뒤를 돌아봤다.
여자가 우리가 나가려는 걸 눈치채 고는.
갑자기 2배속 빠르게 있는 힘껏 인파를 헤치며 함박웃음을 띤 채 미 친 듯이 달려온다.
다다다 다다다 다다다 다 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
“ 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 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깔
깔깔깔깔깔깔깔!!!!!!!!!!!!!!!!!!!!!!”
지금까지는 마치 장난이었다는 듯.
쌔애앵, 쌔앵, 여자의 어깨 관절이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날아다니자 학생들은 목이 꺾이는 걸 넘어서 아예 머리가 분리된 채 날아갔고.
여자가 미친 듯이 깔깔 웃으며 카 운터를 훅 뛰어넘고는 그대로 공중을 날아와 내 대가리에 칼을 꽂기까지 1초.
“ 나 가지 마아악!!!!!!!!!!!!!!!!!!!!!!!!!!!!!!!!!!!!”
공업용 커터칼이 내 머리를 쪼개고.
시야가 까매진다.
[체크 포인트에서 다시 시작합니다.]
[로딩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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