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담 동아리-10화 (10/130)

10화

막간 - 능력 개방

‘선아가 많이 기다렸겠다.’

시간을 확인해 보니 쉬는 시간이 끝나고도 15분이 더 지나 있었다.

그 괴물과 실제로 조우한 시간은 사실 고작 20분 정도.

한참을 싸운 듯한 착각이 들었었는 데 실제로는 긴 시간은 아니었나 보다.

시각과 청각이 차단된 만큼 다른 감각들이 예민해져 있어서 20분도 굉장히 길게 느껴진 것 같다.

조금 걷자 나타난 담벼락.

타고 넘어가니 선아가 바들바들 떨고 있는 게 보였다.

“선아야, 기다렸지. 미안하-”

“누구야?”

선아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나에게 묻는다.

“누구길래 너한테 그렇게 심하게 욕을 하는거야……?”

“응?”

겁에 질린 채 떨고 있는 선아.

그렇구나.

담벼락을 끼고 있기는 했지만 소리는 여기까지 들렸던 모양이다.

나는 청각을 차단해 놓고 있어서 못 들었지만, 그 여자가 뭔가 말을 했던 건가.

“그냥 정신이 좀 이상한 사람이었어. 괜찮아. 쫓아내고 온 참이야.”

“…그런 것 같아. 이상했어… 웃으면서… 엄청 심하게 욕을 했어… 너에 대한……

“응. 맞아. 난 처음 보는 사람이었는데 말야.”

사실 못 들었지만, 적당히 대꾸해

줬다.

‘…이 정도면 그냥 사실대로 말해 줘도 될 것 같은데?’

선아를 여기서 기다리게 해 놓고 혼자 몰래 뭘 하다 왔다고 할지 마땅한 변명이 안 떠올랐었는데, 다 듣고 있었다면 그냥 말해 줘도 되지 않을까 싶었다.

물론, 현실적으로 납득할 수 있을 정도로만.

“선아야, 어제 학교 안내문에 웃는 여자를 조심하라는 주의문 기억나?”

«으 e ,,

“아마 그건 잘못 인쇄된 게 아니라

진짜였던 것 같아. 오늘 아침 쉬는 시간에 우연히 창문 밖을 내다봤는 데, 엄청 괴상하게 웃는 아줌마 한 명이 커터칼을 들고 학교 담벼락 뒤 쪽을 서성이는 걸 봤거든.”

걱정스런 얼굴로 나를 보는 선아.

“그래서 수상해 보인다는 생각이 들어서 확인해 보러 잠시 갔다 왔던 거야.”

“왜 그렇게 위험한 짓을… 그냥 선생님한테 말하지……

“그러게. 하하.”

나는 멋쩍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그냥 그럴 걸 그랬다. 그치? 그래도 잘 쫓아냈으니깐 학교 근처엔 이 제 못 올 거야.”

“…간 거야?”

“응, 갔어.”

선아의 얼굴이 빨개진다.

그리고 내 시선을 피하며 옆을 본 채로 물었다.

“…안 다쳤어?”

“괜찮아. 멀쩡해.”

나는 팔을 붕붕 휘두르며 멀쩡하다는 의미의 농담스런 제스처를 취했다.

줄곧 심각하던 선아의 표정이 그제

서야 살짝 풀어지더니 곧 키득하고 웃는다.

“…바보.”

“하하하.”

“용감한 바보……

나는 기분이 좋으면서도, 민망해서 웃을 수밖에 없었다.

“고생했어.”

“하하, 아냐. 뭘.”

용감하다고! 고생했다고!

아무것도 모르는 선아를 속여서 뒤에 망보게 세워 놓은 내가!

기분 좋은 오글거림과 민망함, 그리고 쪽팔리기도 했지만.

‘···훗.’

날 인정해 주는 한마디에 오늘 하루 받은 스트레스가 싹 풀리면서 뿌 듯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렇다.

뿌듯하다.

“고마워. 그리고 사실 네가 같이 있어 줬기 때문에 난……

선아가 웃음기 띤 표정 그대로 갸 우뚱 나를 본다.

“···혹시 나한테 위험한 일이 생기면 네가 주위에 알리면 되니깐. 그 래서 나도 안심하고 뭔지 확인해 볼 수 있었던 거야.”

대답 대신 킥킥거린다.

“그나저나 벌써 수업 시작한 지 한 참 됐는데, 우리 어떡하지?”

그 말에 선아가 갑자기 빵 터져서는 크게 웃기 시작했다.

“아하하, 아하하.”

지금까지 소심하게 키득거리던 웃음과는 다른 정말 기분 좋은 웃음.

“왜~ 왜 웃는데!”

“아하하, 하하하하. 그냥… 우리 또 땡땡이 쳤어. 아하하하.”

허리를 들썩거리며 웃는 선아의 모습에 나도 왠지 기분이 좋아져 같이 웃어 줬다.

“맞네, 크크크큭.”

서로 어깨를 툭툭 쳐 가며 장난스레 한참 웃다가 본관 건물로 돌아갔다.

왠지 아까보다 훨씬 더 친해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 * *

“둘이 어디 갔다 온 건데? 이번 시간엔 각자 들어갈 동아리를 생각 해 놓으라고 담임이 프린트물만 던져 놓고 바로 나가서 망정이지, 정말 대책 없는 놈들이었네.”

경원이가 질책하는 말투로 교실에 들어서는 우리에게 말했다.

“뭐, 어쩌다 보니.”

다행히 이번 시간은 수업이 없었나 보다.

아직 첫날이라 선생님들끼리도 스케줄 조정이 한창이라서 그런 걸까.

자율 학습이라는 명목 아래 새로 사귄 친구와 잡담을 나누거나, 핸드폰 게임을 하는 우리 반 아이들의 모습이 보인다.

내 자리를 찾아 창가 쪽 분단으로 들어가자 역시나 쒸익쒸익 대며 애 니를 보고 있는 옆자리의 덕훈이.

‘들어갈 동아리를 생각해 놓으라 고?’

경원이의 그 말을 생각하며 책상을 보니 아니나 다를까, 종이 하나가 놓여져 있었다.

우리 학교에 있는 동아리 목록과 소개문이 쭉 나열돼 있는 프린트물 이었다.

그걸 읽어 보려고 슥 고개를 갖다 대는 순간!

파앗-

메시지창이 내 눈앞을 가로막았다.

『당신은 학교의 동아리 목록을 쭉

살펴보았으나, 마음에 드는 동아리 가 없었습니다. 당신은 이렇게 된 이상 직접 동아리를 만들어 보기로 결정했습니다.』

[퀘스트를 받았습니다.]

〈퀘스트 - 튜토리얼〉

O괴담 동아리를 만드세요.

O보상 : 동아리 관리 메뉴 잠금 해제, 10 괴담 포인트, 동아리방.

“뭐, 뭣?”

갑자기 눈앞에 뜬 퀘스트창.

어이가 없었다.

아직 읽어 보지도 않았는데 누구

맘대로 원하는 동아리가 없다고 판 단을…….

‘기가 차는군.’

튜토리얼 때 뜬 괴상한 메시지도 그렇고 이 시스템은 상당히 제멋대로 이야기를 진행하는 듯하다.

일단은 자리에 앉아 프린트물을 쭉 훑어봤다.

이 학교는 동아리 활동에 많은 지 원을 해 주는 모양인지, 매주 금요 일 오후는 아예 수업을 안 하고 동아리 특성화 시간으로 지정까지 해 놓았다는 설명이 가장 먼저 적혀 있었다.

그리고 소속된 동아리가 없어 특성

화 시간에 노는 걸 방지하기 위해, 모든 학생이 꼭 ‘1인 1동아리 활동’을 해야 한다는 규율도 함께 공지되어 있었다.

동아리 목록과 소개문을 지나쳐 제일 아래를 보·자, 이름과 신청하고 싶은 동아리 이름을 적는 칸이 있었다.

‘여기에 적어서 내는 건가.’

잠시 생각하고 있자, 갑자기 담임 선생님이 교실 문을 열고는 홋홋홋 웃으며 들어오셨다.

“곧 점심시간이네요. 다들 원하는 동아리는 결정했나요? 시간은 충분히 줬으니 이제 걷어 가도록 하겠습

니다~”

‘버, 벌써?’

“각 분단의 제일 뒷자리 학생들이 일어나서 걷어 옵시다~”

젠장.

조금 전에야 프린트물을 확인한 탓에 제대로 살펴보지도 못했는데.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며 일단 퀘스트창에 뜬 대로 괴담 동아리라고 신청서에 급하게 적어서 제출했다.

그리고 곧이어 점심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반 아이들 틈에 섞여서 본관 건물과 연결된 통로를 따라 급식실로 이

동하니, 선생님들이 안내를 하고 있는 게 보였다.

이 학교에선 혼잡하지 않도록 급식 실과 연결된 통로가 각 층마다 따로 있다고 들었는데, 선배들이 보이지 않는 걸 보니 다른 층의 통로로 이 동 중인 모양이었다.

“신입생은 급식소 건물 1층에서 식 사하시면 됩니다. 2학년은 2층, 3학 년은 3층~”

그 말을 따라 우르르 안으로 들어 서니 별다를 것 없는 평범한 급식소 내부가 보였다.

한 학년 전체인 300명 정도가 앉을 수 있는 공간.

곳곳에 기다랗게 놓여져 있는 테이 블과 의자들.

잠시 살펴보고는 줄을 서서 식판을 받아 밥과 반찬을 퍼담았다.

‘야채소시지볶음, 맛있겠다.’

줄여서 야쏘라고도 불리는, 어느 곳에서나 인기인 메뉴.

소시지를 보자 갑자기 배가 무척이 나 고팠다.

웃는 여자에게 죽으며 두 번이나 시간이 되돌려졌으니, 나는 지금 남들보다 4시간은 늦게 밥을 먹는 셈 이었다.

물론, 시간이 돌아갈 때 육체의 상

태도 되돌아가는 게 분명하니 실제 배고픔은 비슷하겠지만, 그래도 밥을 보자 눈이 돌아갈 것 같은 정신적인 허기가 느껴졌다.

웅성웅성-

300명이나 되는 학생들이 한 층에 몰려서 밥을 먹다 보니, 사람들 사이에 떠밀려서 선아랑 경원이를 놓치고 말았다.

어떤 신입생들은 기어코 친구랑 밥을 먹으려고 요리조리 이동해 가며 자리를 만들어 내기도 했는데, 나는 그렇게까지 요란 떨 건 없다고 생각 했기에 그냥 적당한 곳에 앉아서 먹 기로 했다.

급식판에 음식을 가득 담고 이동을 하면서 천천히 둘러보자 빈자리가 하나 보였고, 옆에는 덕훈이가 앉아 있었다.

이 녀석, 인연인지 유난히 나랑 계 속 얽힌다.

‘뭐, 아예 모르는 학생들 사이에 끼여서 먹는 것보다는 나으려나.’

밥을 먹으면서도 이어폰을 끼고 있는 덕훈이.

옆에 앉아 이어폰에서 새어 나오는 소리를 가만히 들어 봤는데, 여자애 가 일본어로 정신없이 옹알대는 걸

보니 애니 노래인 모양이다.

그렇게 밥을 먹고 다시 교실로 돌아와서 앉았다.

점심시간이 끝나기까지 30분 정도의 여유.

그 시간 동안 나는 아까 얻었던 괴담 포인트라는 것을 사용해 보기로 했다.

‘메인 화면.’

« 메인 화면 »

[2019년 3월 5일 화요일, 12:32]

[이준 - 2회차, 튜토리얼 중]

[괴담 포인트 : 105]

[인과율 : 4%]

① 상태창 ② 동아리 관리(잠금)

③ 통계 ④ 설정

‘ 흐음.’

어느새 105포인트나 쌓여 있다.

아까 알림창에서는 이 포인트를 사용하여 능력을 얻을수 있다고 했었는데.

‘어라? 인과율. 이것도 올라가 있네. 이건 정말 뭐 하는 수치지?’

언젠가는 알 수 있으려나.

‘1번, 상태창 클릭.’

파앗-

《상태창》

이름 : 이준

나이 : 17

칭호 : 주인공

성향 : [양면성] 특수 능력 :

1. - 없음-

2. -없음-

3. -없음-

기벽 : 벼락치기

‘여기 이 특수 능력을 포인트로 살 수 있는 건가?’

나는 ‘없음’으로 표시돼 있는 칸 중 첫 번째를 클릭해 보았다.

팟-

[현재 첫 번째 능력은 비어 있습니다. 100포인트를 사용하여 능력을 개방하실 수 있습니다.]

[능력 개방(100) / 뒤로 가기]

‘100 포인트나 든다고?’

머리가 아찔했다.

언제 써 봤다고 아쉽겠냐마는, 어쨌든 몇 차례나 죽어 가며 겨우 얻어 놓은 게 이 정도다.

다른 사용처 따위는 모르겠지만 이 대로 한 번에 몽땅 써 버린다고 생각하니 피가 말린다.

‘어휴, 아까워.’

그러고 보면 모바일 게임에서도 튜 토리얼 때 강제로 비싼 캐쉬템 하나를 주고는 써 보라고 강요하던데.

어쨌든 이왕 써야 하는 거, 괜히 아쉬운 마음 가지지 말고 부어 보기로 결정하고는 화면을 클릭했다.

파앗-

[괴담 포인트 100을 소모하여 첫 번째 능력을 개방합니다.]

그러자 16비트 기계음으로 된 경 쾌한 멜로디가 울려 퍼지더니 첫 번 째 칸에 여러 단어들이 휙휙 스쳐 지나가기 시작했다.

☆ 띠딩 띵 디딩 띵~♬

‘···뭐야, 설마 랜덤인가?’

모바일 게임에서는 가챠라고도 불리는 랜덤 뽑기 시스템.

지금 내 눈앞에는 여러 능력이 적 힌 단어들이 룰렛머신의 숫자처럼 휙 휙 정신없이 오가고 있다.

[···귀-인생설계-신분위장-독순출- 동…]

〉띠딩 띵 디딩 띵~♬

휙.

[···생설계-신분위장-독순술-동반 회귀-]

휙.

[.··위장-독순술-동반회귀-빠른걸 음-]

휙.

···빠른 걸음은 뭐 하는 능력이지. 설마 빨리 걸을 수 있는 능력인 걸 까?

‘빨리 달리는 것도 아니고……

첫 시작부터 저런 덜떨어져 보이는 능력이 걸려서는 절대 안 된다.

나는 어쨌거나 좋은 능력이 걸리길 간절히 기도할 뿐이었다.

〉띠딩 띵 디딩 띵~♬

[···손재주-동반회귀-빠른걸음-초 연함 -…]

휙.

제발, 제발!

어느새 속도가 눈에 띄게 느려졌다.

곧 멈췄다.

휙- 휙 -

[···주-동반회귀-빠른걸음-초연함

- 행운…]

‘빠른걸음 X발 새끼야 꺼지라고!’

》띠딩 띵 디딩 띵~♬

휙-

도저히 못 보겠어서 질끈 눈을 감았다가 멜로디가 멈춘 후에야 눈을 떴다.

그러자 그곳에 보이는 것은…….

[···음 - 초연함 - 행운의여신 -

밥빨리먹기 -…]

》띠디딩!!!!♬

[특수 능력 : 행운의여신을 획득하였습니다.]

« 행운의여신〉〉

등급 : S 급

조건 : 자동

능력 : 모든 상황을 계산하여 당신에게 가장 이득이 될 것 같은 순간에 단 한 번, 커다란 행운이 발동합니다. 한번 발동한 후에는 사라지는 소모성 스킬입니다.

“우왓!!”

뭔가 굉장히 좋아 보이는 게 걸렸다.

S급 특수 능력!

소모성 스킬이란 게 마음에 걸리지만, 그런 걸 감안해도 S급이라는 건 일단 굉장히 좋다는 의미겠지!

‘운이 좋군.’

만족스런 마음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남은 오후를 보냈다.

괴담 동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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