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세 번째 괴담 -
빨간 휴지, 파란 휴지 (1)
“알겠어? 요점은 햄버거가 건강에 나쁘다는 건 헛소문이란 말이야.
오히려 탄수화물과 단백질, 지방이 적당히 섞여 있는 완전식품이라고 봐도 무방해. 빵, 양상추, 토마토, 소고기가 왜 몸에 나쁘다는 거야?”
한가한 패스트푸드점 안.
엘리트를 표방하는 건방진 부잣집 도련님, 경원이가 햄버거를 앞에 두고 인터넷에서 본 지식을 자랑하고 있었다.
“색소와 첨가제들이 첨가되니 몸에 나쁘다고? 정말 무식한 소리지. 과거 MSG가 몸에 나쁘다는 헛소리가 유행한 이래로 이 나라는 미디어매체가 주는 선동에만 여전히 휘둘릴 뿐 지금정전인데어떻게이가게에는불 이들어온다거나 감자튀김과 콜라를 빼면 햄버거는 건강식품이란거야, 알겠어?”
나는 듣는 둥 마는 둥 우물거리며 알겠다고 대충 대답했다.
그 옆에서는 선아가 화장을 고치고 있었다.
마냥 친구로만 보였던 같은 반 여자애가 화장하는 모습은 사춘기 남자에게는 꽤 자극적이었다.
나는 어려 보이고 동그랗던 선아의 얼굴이 화장으로 점점 아름답게 물들어가는 걸 정신없이 보면서 햄버거를 먹었다.
“미디어매체가 제일 장난질 치기 쉬운 게 바로 음식이란 거야. 식품을 고발한답시고 방송 매체들이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민폐를 끼쳐 왔어? 근데 더 한심하게 생각되는 건 거기에 휘말리는 우매한 대중들 퍼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 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엉
경원이의 머리가 갑자기 터져 버렸다.
피와 살점들이 가게 안으로 흩어지며 쏟아져 내린다.
그 머리 폭발의 영향으로 경원이의 안경이 내쪽으로 날아오더니 정확히 내 눈에 씌여졌다.
그리고 눈앞에 떠오르는 메시지.
[후욱, 후욱! 패시브 능력 행운의 여신이 발동했다능~!]
뭐야, 행운의 여신이란 건 이런 능
력 이었나.
S급이라길래 기대했는데 겨우 손 안 대고 안경 쓰는 정도인 건가.
실망이 크다…….
선아는 그 와중에도 여전히 얼굴을 고치고 있었다.
“선아야, 너 화장하니깐 너무 예쁘 다……
내가 홀린 듯 중얼거리자 선아는 어깨를 빨리 감기 한 듯 두 배속으로 휘익 움직이며 화장을 계속했다.
그 속도는 점점 더 빨라지더니 어느새 파바바바바바밧 하는 기묘한 파공음을 내며 눈에 보이지 않을 속
도로 화장을 했다.
선아의 관절이 속도를 못 이겨 어깨가 덜렁거리는 게 보였다.
나는 순간 무서워져서 말했다.
“서, 선아야. 그만해. 여기 뭔가 이 상해. 우리 나가자.”
그러자 선아는 화장을 멈추고는 삐 에로처럼 기괴한 함박웃음을 지으며 나에게 말했다.
“ 나 가지 마아악 imiiiiimiimmmiiimiiiimiiii”
* * *
벌떡.
‘허억, 허억, X발……
일어나 보니 내 방 침대였다.
‘후우, 몇 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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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3월 6일 수요일, 02: 32]
[이준 - 2회차, 튜토리얼 중]
[괴담 포인트 : 5]
[인과율 : 5%]
‘아직 새벽이군.’
4시간은 더 잘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을 확인할 때는 핸드폰보다 시스템 창을 확인하는 게 훨씬 더 편 하다는 걸 알게 된 후 나는 이 방 법을 자주 쓰고 있다.
‘별 희한한 꿈을 다 꿨네.’
저번 생에서는 친구들의 머리가 폭 발하는 악몽만 꿨었는데.
이번 생에서는 더 기묘한 사건들을 겪으며 트라우마가 중첩된 결과, 시스템창에 웃는 여자까지 종합 선물 세트 악몽을 꾸었다.
‘ 젠장.’
그 사건들이 그만큼 나에게 충격이었다는 의미겠지.
나에게 인생에서 스트레스라고는 수험 스트레스뿐이었는데.
무언가에 죽을 만큼 시달려 악몽까지 꾸게 되는 트라우마는 처음이었다.
나는 머리를 한 번 털고는 침대에 서 일어나 주방으로 가서 물을 마셨다.
베란다 창문 너머 어두운 한강이 보인다.
‘그러고보니……
고요한 한밤중에 방금처럼 혼자 일
어나 한강을 봤던 전생에서의 마지 막이 오버랩된다.
그때 나는 졸업식을 앞두고 한밤중에 휴대폰의 재난 경보 문자를 받고 잠에서 깼다.
그리고 한강 너머로 마왕을 보았던 것이다.
그때 마왕이 서 있었던 위치가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신림동.
전생에서의 집과 지금의 집은 한강 하나를 두고 마주 보는 위치이다.
‘그건 도대체… 정체가 뭘까.’
마냥 거대 괴수라고 보기에는 상당히 이상했다.
도시의 불빛이 일렁거리는 한강 너 머, 그 사이로 움직이던 거대한 그 림자가 아직도 눈에 선해 소름이 돋았다.
그리고 내가 맞이했던 이해할 수 없는 죽음의 방식.
‘···그런 정체 불명의 괴생물체가 학교 밑에 웅크려 있다고?’
그리고 그 위에서 고등학생들이 아무것도 모른 채 웃고 떠들며 시간을 보낸다고.
오싹.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다시 침대로 돌아갔다.
어차피 그게 깨어나는 건 졸업식 날
지금은 입학식을 치른 지 이틀밖에 되지 않았다.
아직도 3년이나 시간이 남아 있고, 나는 이제 막 한 걸음을 내딛었을 뿐이다.
당장 고민해 봐야 알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하며 다시 잠을 청했다.
* * *
다음 날 아침.
교실에 들어서자 게시판에 시간표
와 급식표가 붙어 있는 게 보였다.
어제까지만 해도 입학식 후 첫날이라 다소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수 업 대신 비어 있는 시간이 많았는 데, 오늘부터는 슬슬 본격적인 학교 생활이 시작된다는 느낌을 받았다.
곧 8시가 되었고, 중년의 탈모남 담임 선생님이 교실에 들어오시더니 말했다.
“어라, 자리에 없는 사람은 뭐죠?”
아마도 지각생이겠지.
“자. 숫자를 확인해 봅시다. 자리에 없는 사람은 손 들어 보세요~”
“하하하.”
학생들 몇 명이 웃는다.
자리에 없는데 어떻게 손을 든다는 말인가?
하지만 아재 개그도 저렇게 걸맞는 사람이 대놓고 하니 유쾌했다.
고개를 돌려 창가를 내다보자 선아가 운동장을 뺑뺑이 도는 게 보였다.
이 학교에서는 지각을 하면 벌로 운동장을 돌게 시키나 보다.
“아, 그리고 이준이라는 학생 있나요?”
“네? 접니다.”
‘준이는 지금 나 따라서 잠시 교무
실로 가자. 그럼 아침 조례는 이걸로 끝. 다들 수고.”
나는 선생님을 따라 복도로 나섰다.
“그래. 여기 앉고.”
교무실로 들어가 앉아 있으니 담임 선생님께선 종이뭉치를 뒤적거리다 가 하나를 골라 꺼내 오셨다.
“음... 괴담 동아리.”
아, 이거 때문에 부른 거구나.
“우리 학교에는 아직 없는 동아리
라서… 그래도 ‘내가 꼭 하고 싶다!’ 싶으면 준이 학생이 새로 만들고, 부장이 돼서 운영해야 하는데, 괜찮 나요?”
의외로 괴담 동아리라는 요상한 콘 셉트 자체에는 별 신경 안 쓰시는 모양이다.
“네! 괜찮습니다!”
사실은 그런 이상한 동아리.
만들고 싶지도, 운영하고 싶지도 않지만.
시스템에서 하라고 하니 도움이 될 것 같아 하는 것뿐이지만…….
“자, 그럼 계획서를 하나 뽑아 줄
테니 오늘 내로 작성을 해 오면 돼요. 최소 인원이 4명이니깐 준이 빼고 3명 더 구해 오면 되고”
“네.”
“그리고 종이 위 칸 여기에 담당 선생님 이름을 적게 돼 있죠? 괴담 동아리의 담당 선생님을 말하는 건 데, 이건 학교에서 남는 샘 붙여 줄 테니깐 비워 두고~ 그럼 고생해 요~”
“네! 감사합니다!”
그렇게 교무실을 나와 교실로 가면서 생각했다.
‘3명이라… 선아랑 경원이한테 먼저 부탁해 보는 게 좋겠고, 나머지
한 명은 누구한테 말해 보지?’
내가 우리 반에서 말을 나눠 본 사이라고 해 봐야 내 짝꿍인 덕훈이와 선아의 짝꿍인 하윤이뿐이다.
‘아니, 잠시만. 하윤이랑 얘기 나눈 건 시간이 되돌아가기 전이었나. 지금은 나랑 모르는 사이겠군.’
그럼 남은 건 내 짝꿍 덕훈이뿐인 가.
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리고 교실로 들어가려던 찰나, 저 멀리 복도 끝에서 여학생 두 명 이 이쪽으로 걸어오는 게 보였다.
한명은 선아, 다른 한 명은 노란머
리에 성깔 있어 보이는 여자.
지각한 벌로 운동장을 돌던 게 끝 나고 이제 교실로 들어오나 보다.
‘…저 염색한 여자애 이름이 진희였었나.’
입학식 때 시종일관 엎드려 자고 있던 그 무서운 여학생이다.
그때 상태창으로 이름을 확인했을 때 이진희라고 적혀 있던 게 기억이 난다.
‘가만. 제일 처음 받았던 퀘스트에 쟤가 내 친구라고 돼 있지 않았었나?’
동아리를 만들기 위해 친구를 3명
모으라는 퀘스트를 받았었는데, 그 때 같이 있던 저 무서운 여학생이 내 친구 숫자에 포함되어 목표를 달 성할 수 있었다.
시스템이 친구로 인정한 거라면 한 번 믿어 봐도 좋지 않을까?
‘좋아.’
내 괴담 동아리에 들어와 보라고 제안해 보기로 결심했다!
나는 교실 문 앞에서 잠시 기다리 다가 그 애가 이쪽으로 오자 말을 건네 봤다.
“저기 혹시-”
그 여학생은 오던 기세 그대로 쳐
다보지도 않고 휙 나를 지나쳐 교실로 들어갔다.
뒤따라오던 선아가 자기에게 말을 건 줄 알고 헤실헤실 웃는다.
“아, 안녕.”
“오늘도 지각했구나, 선아야. 반가 워.”
선아가 민망한 듯 키득거리며 웃는다.
이후 선아에게 권유를 해 봤고, 선아는 남이 이끄는 대로 따라가는 성격인지 동아리에 들어오겠다고 시원 스레 대답해 주었다.
‘남은 건 경원이랑 덕훈이인가.’
경원이는 학구파답게 제일 앞자리에 앉아 있었다.
나는 우선은 가까이 있는 내 짝꿍 덕훈이에게 말을 꺼내 봤다.
“덕훈아, 너 동아리 어디에 들어갈 지 정했어?”
‘우움?’ 하는 효과음을 입으로 내 뱉으며 나를 쳐다보는 덕훈이.
사람이 물어보면 대답을 하던가.
“내가 이번에 동아리를 새로 만들려고 하거든. 무서운 이야기를 연구 하는 그런 콘셉트인데, 혹시 생각
있어?”
덕훈이는 내 말을 듣더니 안경을 슥 치켜올리며 기분 나쁘게 웃었다.
“야레야레.”
이어서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혼잣말을 중 얼거린다.
“올해는 조용히 지내고 싶었는 데……
“학기 초, 먼저 말을 건네 오는 친 구가 될 법한 짝꿍이라~ 현실에선 없는 일인 줄 알았지만. 인생은 굉 장하네요.”
“데모, 와타시는 애니 동아리에 들어가려고 했기 때문에. 고멘~”
덕훈이가 두 손을 착 모으면서 사과를 한다.
‘후우, 빡친다.’
* * *
“괴담 동아리?”
다음 쉬는 시간.
나는 경원이에게 동아리에 들어오라고 권해 봤다.
“네가 새로 만드는 거라고?”
«으 =.
“ 흐음
의외로 고민하는 표정.
무서운 이야기를 많이 알길래 흔쾌히 승낙할 줄 알았는데 아닌가 보다.
여기선 어떤 멘트를 던져서 설득하는 게 좋을까.
“원래는 어느 동아리 들어가려고 했는데?”
“학술 동아리나 도서 동아리. 입시에 도움이 되는 동아리로 들어가려고 했지. 스펙에 대외 활동으로 몇
줄 추가할 생각이었거든.”
“그렇구나.”
나는 전생에서 입시 생활을 하며 보냈던 3년을 떠올리며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1학년은 그런 동아리에 가 봤자 손해야. 왜냐하면 입시에 반영되는 대외 활동에 나갈 때 1학년은 절대 끼워 주지 않기 때문이지.”
“···뭐?”
역시 이 녀석, 머리에 든 건 많지만 부모님이 시키는 대로만 살 뿐, 본인이 직접 경험해 본 건 없는 타 입이다.
여기선 3년 더 뺑이 치고 온 내가 유리하다.
“선배들 때문이야. 학교 입장에서는 당장 입시가 급한 2, 3학년 위주로 대외 활동을 돌리거든. 동아리 단위 대회를 나가서 수상하더라도 이름을 올리는 건 선배들이 먼저고 나중에 칸이 남아야 선심쓰듯 1학년을 올려 준다고.”
“···너, 뭔데 나한테 조언하는데?”
내 말을 다 듣고는 기분이 나쁘다는 듯 쏘아붙이는 녀석.
‘뭐지.’
순간 울컥했다.
하지만 너무 티 내지 않고 가만히 고개를 들어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아무래도 내가 녀석의 자존심을 건드린 모양.
이 녀석, 가르치는 건 좋아하지만 가르침 받는 건 싫어하는 괘씸한 타 입이었던 걸까.
특히 본인이 자신 있어 하는 공부 나 성적, 입시라는 분야에서만큼은.
[인물 안경원에 대한 이해도가 5 올랐습니다.]
하지만 녀석의 건방진 태도에 살짝 약이 오른 나는, 나도 모르게 도발 하듯 말이 나왔다.
“조언할 만하니깐 하지. 너 공부 잘하냐?”
“···너보단 잘한다고 생각하는데.”
새끼 말투 개싸가지 없네.
근데 그거 무슨 의미지.
나 공부 못해 보이는 이미지라는 소리인가.
팩트였지만 왠지 한번 이겨 보고 싶은 마음에 허세를 부려 봤다.
“나보단 잘한다고 생각된다고? 너
중학교 때 몇 등 했는데.”
“10위권 안에는 항상 들었어. 넌?”
“난 항상 3등 안에는 들었는데.”
“…거짓말.”
녀석이 살짝 얼굴을 떤다.
“···그런데 이런 학교에는 왜 왔어? 특목고 가야지.”
“그야 너랑 같은 목적으로 왔지.”
“나랑 같은, 목적……?”
의문스러운 표정을 짓는 부잣집 도련님.
수험 생활 3년을 뺑이 치고 온 나에게는 다 보인다. 이 녀석이 무슨 목적으로 이 학교에 온 건지.
전교 10위권 안에 드는 돈도 많은 집안의 자제가 명문고를 때려 치고 이런 평범한 학교에 올 이유는 하나
용의 꼬리가 되느니 뱀의 머리가 되겠다는 생각이겠지.
“어차피 안경원 너도 내신 잘 받으려고 여기 온 거 아냐? 특목고 가서 쥐똥 싸느니 좀 덜떨어지는 학교에서 탑 먹고 서울대 가는 게 목적 이잖아.”
“…카이스트 갈 생각이었어. 잘 모르면서-”
“그거나 그거나. 똥통 학교에서 성적 쓸어 담고 명문대 가려는 거. 나
도 똑같다고.”
미심쩍은 눈초리로 쳐다보는 녀석.
슬슬 ‘이 녀석이 그렇게 공부를 잘 한다고?’ 하면서 의혹이 생기는 눈 치다.
“그러니깐 잘 들어 봐. 절대 손해 보는 얘기 아니니깐.”
녀석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듣고 있어. 뭐를 말하고 싶은 건데?”
“우선 네가 들어가려고 하는 입시에 도움이 된다는 동아리. 1학년은
무쓸모라고. 선배들 뒤만 닦아 주다 가 1년을 버리게 된다고.”
“엄마는 그런 말 안 했는데……
새끼, 17살이나 처먹고 엄마 찾기는.
“학부모가 아무리 밝아 봐야 입시에 밝은 거지, 학교 안에서 돌아가는 정치는 잘 모르니깐 그래. 들어 봐. 학술 동아리 가면 1년 무조건 버린다. 그런데 내가 만드려는 괴담 동아리는 어떻냐?”
“우리가 ‘최초’ 멤버다 이거야. 학교 사정 따위 신경 안 써도 돼. 실력만 된다면 경진 대회에서 상을 타든 뭘 하든 우리끼리 다 해먹는 거야. 병신들 똥 닦아 준다고 1년 안 버려도 된다고.”
“호오.”
솔깃해하며 관심을 보이는 녀석.
선배들을 후배 등쳐 먹는 무능한 사람으로 깎아내리며 녀석의 엘리트 주의를 부추겨 준다.
“학교의 지원도 선배에게 갈 것 없이 우리 소수 인원이 풍족하게 나눠 먹는다. 또 내가 동아리장인 만큼 어떤 불필요한 관습도 없다. 동아리 시간도 완전히 우리 자유 시간. 어때?”
분명히 먹힌다.
이 녀석이 학교에 들어온 목적, 엘리트 주의를 표방하는 성격.
모든 요소를 다 섞어서 던진 제안이니깐.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던 경원이가 입을 떼는 순간, 알림창이 번쩍 떴다.
[안경원에 대한 이해도가 20 상승 했습니다!]
“···너 좀 생각이 돌아가는 편이었네. 섣불리 무시한 건 사과할께.”
좋아! 들어맞았군!
그래도 남의 밑으로 들어간다는 게 크게 마음에 들지는 않았는지 썩 좋아 보이는 표정은 아니었지만, 이내 내 계획을 천천히 음미해 보자 자신의 기준에 합당했는지 턱을 손으로 괴며 감탄했다.
“괜히 어줍잖은 동아리에 들어가서 선배들 뒤치다꺼리나 하며 1년을 보낼 바에는 우리 실력되는 사람들끼 리 다 해먹자… 훌륭해.”
“뭐, 그런거지. 시간 낭비할 필요는 없는 거지.”
“괴담 동아리라는 게 이상한 콘셉 트인 게 조금 걸리긴 하지만… 뭐 포장은 자유고, 특이한 만큼 콘셉트
가 겹치는 동아리도 없을 테니 경진 대회에서도 눈에 띌 거고.”
생각을 가다듬던 녀석이 갑자기 뭔가 떠오른 듯 물었다.
“···그런데 신입생이 동아리 만드는 게 가능한 거야? 되는 거면 내가 하는 게 차라리 나을 텐데.”
이놈. 어딜 감히. 내가 먼저 생각 해 낸 거다.
“원래 신입생은 동아리 못 만들어. 근데 나는 선생님 쪽에 연줄이 있어 서 가능한 거야.”
가만히 나를 보던 경원이가 와, 하
고 감탄사를 내뱉었다.
“첫인상이랑 너무 달라. 너 전혀 그렇게는 안 보였거든.”
어, 씨발아. 전부 구라야~
경원이의 감탄사를 들으면서 나는 계획서에 이름을 적어 넣었다.
동아리장: 이준
부원1: 윤선아
부원2: 안경원
부원3:
점심을 먹고 나머지 한 명을 누구를 섭외해야 하나 고민하며 화장실을 가던 중이었다.
누군가 홋홋홋 하고 웃음소리를 내 길래 쳐다보니 담임이 서 있었다.
“준이 군이군요. 계획서 작성은 잘 돼 가나요?”
배 나온 중년, 담임 선생님.
양치하러 갔다 오셨는지 손에 칫솔 이 들려 있었다.
“네, 그럭저럭요.”
“후후, 괴담 동아리라, 흥미로워요. 무서운 이야기를 좋아하나 보군요.”
“뭐, 좋아한다기보다는 좀 연구해 봐야 될 필요가 있어서요. 이제부터 알아가 보려구요.”
선생님은 내 말을 듣고는 잠시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아무도 없나 확인하신다.
그리고 조심스레 나에게 묻는다.
“복도 끝 남자 화장실로 가는 길인 가요?”
“네.”
“거기 4번째 칸에서는 귀신이 나오거든요.”
“빨간 휴지를 줄까, 파란 휴지를 줄까 물을 건데, 대답을 잘 고르세요. 그럼 이만.”
그 말을 끝으로 쌩 하고 사라지는 담임.
‘언제적 이야기야.’
그건 내가 유치원생 때 홍콩할매, 빨간마스크나 유행하던 시절에 들었던 이야기다.
오늘 아침 농담도 그렇고 우리 담임은 좀 너무할 정도로 아재 센스를 가지신 것 같다.
컨셉이신 걸까?
하지만 중년의 배 나온 탈모남.
그 이미지와 맞물리니 아재 감성은
기괴한 매력을 발산했다.
‘멋있다. 나도 저렇게 남 눈치 안 보고 내 페이스대로 살아가 보고 싶네.’
나는 피식 웃고는 남자 화장실로 향했다.
괴담 동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