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담 동아리-14화 (14/130)

14화

네 번째 괴담 - 엄마 (2)

두근두근.

선아가 사는 아파트는 학교 바로 옆.

슬리퍼를 신은 채라 부끄러웠지만 그래도 사람들의 눈길을 피해 발걸 음을 서둘렀다.

‘같은 반 여자애 집에 놀러 간다 고? 내가?’

학교가 보이는 곳까지 도착하자 선아가 저 멀리 마중 나와 있는 게 보였다.

귀여운 여자애가 나를 자기 집에 초대하려고 마중을 나와 있다.

그런 건 인생에서 처음 겪어 보는 일

오래 살고 볼 일이었다.

‘후우, 진정하자. 이준!’

집에서 그렇게 무서운 일을 겪고 난 후지만, 또 사회생활은 사회생활인 법.

지금 나는 가방도 없고 교복에 슬 리퍼만 신고 있는 추레한 차림새.

행동거지라도 멀쩡해야 한다. 우린 아직 그렇게까지 친하지는 않으니 깐.

“어, 준아? 빨리 왔네!”

선아가 학교 정문 앞에 서 있다가 나를 발견하고는 웃음을 지었다.

“응, 있을 곳도 없고 마침 걷던 중 이어서 빨리 왔어.”

그러자 선아가 웃더니 뭔가 머뭇거렸다.

“저기, 있잖아……

“응?”

“우리 집… 엄청 어질러져 있어 서……

“아아, 괜찮아! 괜찮아!”

나는 급하게 손사래를 쳤다.

“굳이 집에 안가도 돼! 나도 그건 좀 민폐인데 어떻게 해야 하나 생각 하고 있었어. 하하.”

사실은 못내 아쉬운 마음이었지만!

흑흑.

“그냥 네가 이렇게 나와 준 것만으로 너무 고마워. 같이 수다라도 떨면 시간 금방 가겠지.”

선아는 대답 대신 머뭇거리며 망설 이더니, 곧 뭔가를 결심한 듯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아냐! 우리 집 가서 앉아 있자.

밖에 아직 추운데......

“저, 정말? 난 진짜 괜찮은데.”

“ 일루······

“그렇게까지 안 해 줘도 되는데, 정말로.”

그러자 선아가 앞서가며 주먹을 꾹 쥐며 대답했다.

“나, 고등학교 올라오면서… 성격 고치고 싶어서, 그래서……

“아아, 하하. 그렇구나~ 아니, 뭐 성격 괜찮은데 뭘~”

“이쪽이야……

나도 얼떨결에 선아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흠, 그렇구나.’

이 상황에서 왠지 괜히 들떠 있던 건 나뿐.

선아는 갈 곳 없는 친구가 정말 순수하게 걱정되기도 하고, 소심한 성격을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 새로 사귄 친구를 집에 데려와 보려는 생각이었던 것이다.

‘나도 참, 순수하지 못하구만.’

괜히 혼자 안절부절못한 내가 바보 같았다.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선아를 뒤 따라갔다.

선아가 사는 아파트가 보이자 나는 다시금 감탄하고 말았다.

‘이런 곳에도 사람이 산다고?’

물론, 사람이 살기야 하겠지만.

지금까지는 나와는 동떨어진 세계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런 곳은 인생에서 그냥 스쳐 지 나가는 배경 같은 곳, 깊게 생각해 본 적도 없는 장소.

옛날에는 경비실이었던 걸로 보이는 자그마한 초소는, 유리창이 깨져 폐허가 돼 버린 채였고 보도블럭은

다 뒤집혀서 잡초가 무릎까지 올라 오고 있었다.

아파트 건물은 5, 6층 정도.

고작해야 빌라 정도의 높이였지만 쓸데없이 옆으로 길쭉하게 지어져 있는 걸 보니, 그래도 여기가 아파 트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요새 신식 아파트들이 20층, 30층을 넘어가는 걸 생각해 보면 확실히 초라한 모습.

그마저도 건물 외벽에 담쟁이가 수 없이 타고 올라서 외벽의 동 숫자를 알아볼 수 없는 지경.

‘···굉장하군.’

곳곳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수상한 얼룩들.

지금이라도 당장 사진을 찍어서 ‘흉가 특집. 한국의 폐쇄된 아파트.’ 따위의 제목으로 인터넷에 올리면 베스트로 갈 게 분명한 이미지.

이런 곳에 내 친구가 산다니.

나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물론, 나도 잘사는 편이라고는 할 수 없는 중산층이었지만, 이런 오리 지널 폐흉가 같은 곳과는 인연이 없었다.

“ 이쪽······

응  ”

주섬주섬 가방끈을 붙잡고 걸어가는 선아를 뒤따라가니 저 멀리 이끼 낀 벤치에 정신이 온전치 못해 보이는 노인 몇 분이 멍하니 앉아 있는 게 보였다.

‘친구를 집에 데려와야 하나 고민 할 만하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초대해 준 선아가 고마웠다.

건물 안에 엘리베이터 따윈 존재하지 않았다.

계단을 올라가는 선아를 뒤따라가며 나는 최대한 부드럽게 말했다.

“초대해 줘서 정말 고마워, 선아야.

꼭 보답할게.”

“으응……

말끝을 흐리는 선아.

역시 친구가 실망하면 어쩌나 하는 조마조마한 마음이겠지.

좋다.

오늘의 목표는 전혀 실망하는 티를 내지 않고 선아가 원하는 대로 편하게 놀다 가는 모습을 보여 주는 거 다!

그렇게 결심한 순간, 아파트 복도에 장독대부터 쌀가마니, 빈 수레, 다 터진 축구공 따위가 계단을 막고 있는 게 보였다.

“조심해……

“그, 그래.”

선아의 집은 복도 제일 끝.

현관문에 배달책자부터 열쇠수리공 스티커, 부동산 도장, 배달 홍보 자석 책자 등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그 옆에는 당연하다는 듯 고장나 있는 초인종.

열쇠를 꺼내 문을 여는 선아를 보며 깨달았다.

‘요즘은 다 도어락일 텐데, 열쇠를 잃어버려 집에 못 들어간다는, 생각 없이 뱉은 변명이 통한 이유가 이건

가……

나는 선아의 집으로 들어가면서 일부러 큰 소리로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아무도 없어……

“하하, 그렇구나~”

나는 민망해져 웃었다.

“할머니는? 같이 사신다고 안 했어?”

“으응. 어떻게 알았어?”

“어제 지각했을 때, 할머니가 안 깨워 주셔서 지각했다고.”

“내가? 그랬었나……

아차.

순간 기억이 꼬인 걸 느꼈다.

그 대화 후에 웃는 여자한테 죽으면서 시간이 되돌아갔고, 할머니 얘 긴 그 이후로는 안 했구나.

헷갈리는구만.

다행히 선아는 갸우뚱할 뿐 그냥 넘어가는 눈치였다.

“할머니는 병원에 가셔서 저녁이 돼야 오셔……

“그렇구나~ 하하, 앗! 저기가 네 방이야?”

할머니 병원 얘기는 우울해질까 봐 난 급하게 주제를 돌렸다.

“응, 여기가 내 방……

“우와~ 들어가 봐도 돼?” 키득거리며 고개를 끄덕이는 선아. 선아의 방은 정말 평범했다.

여성스런 물품 같은 건 고사하고, 침대도 컴퓨터도 없었다.

오래된 책장에는 10년은 넘어 보이는 괴상한 유머집이나 때가 탄 중 학교 참고서 정도만 꽂혀 있을 뿐.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말로 별거 없다는 눈치면, 역시 친구 방에 놀 러온 매너가 아니겠지!

나는 빠르게 눈으로 훑어 그중에서 대화거리가 될 법한 무언가를 발견

해 냈다.

“앗! 졸업 앨범이다! 이거 구경해 도 돼?”

“킥, 해도 돼.”

선아의 중학교 졸업 앨범!

나는 곰곰이 뒤적거리며 선아의 중학교 모습을 찾았다.

어려 보이는 얼굴, 동그란 눈. 어딘가 자신 없어 하는 미소.

지금과 다를 게 없었다.

“똑같네. 아니, 당연한가. 바로 작 년 사진이니.”

“맞아, 푸후후……

“중학교 때는 어떻게 보냈어?”

선아가 갑자기 말이 없다.

나도 뭔가를 눈치채고는 바로 앨범을 덮고 책장에 꽂혀 있던 괴상한 유머집을 꺼냈다.

왕따라도 당했던 게 아닐까. 빨리 넘어가자.

“푸하하하. 뭔데 이 책은? 이거 도대체 언제 건데?”

“그거 재밌어.”

때가 탄 유머집을 보고는 다시 키득거리며 웃는 선아.

나는 책을 펼쳐 보았다.

“어디 보자. 할아버지가 좋아하는

“할머니.”

“그럼 둘리가 재학 중인 고등학교 이름은?”

“빙하타고.”

“하하하하. 잘 아네? 여러 번 읽었나 봐~”

“푸훕

집에서 혼자 할 게 없어 외롭게 옛날 유머집이나 읽으며 시간을 때우는 선아의 모습이 갑자기 떠올라 슬퍼졌다.

‘젠장, 텐션이 낮아지는 것 투성이 잖아! 이것도 빨리 넘어가자. 뭐 하

나 섣불리 건들지를 못 하겠네.’

방을 나와서 좁은 주방을 지나 거 실로 가 보았다.

할머니가 쓰시는지 전기장판이 깔려 있었고, 고물 선풍기 한 대가 보였다.

다행히 티브이가 있었는데 요즘엔 보기 힘든 옛날식 브라운관 티브이였다.

“티브이 보자 선아야! 영화 뭐 하고 있으려나~”

리모컨을 눌러 봤는데 먹통이라 직접 채널을 조작한 후에야 깨달았다.

선아네 집 티브이는 영화 채널이 안 나오는 것이다.

공중파 채널 몇 개 빼고는 모조리 지직 거렸다.

방금 영화 얘기를 하자 대답이 없던 건 그래서였나.

“아, 하하. KBS… KBS……

6시 니고향이 방송되고 있었다.

다른 채널에도 청소기를 파는 홈쇼 핑 방송뿐.

‘이런 씨발, 진짜 뭐 하나 이렇게 안 도와주냐.’

스치기만 해도 치명타.

별수 없이 6시 니고향을 틀어 놓고 우리는 앉았다.

월남전에 참전했다가 치질이 걸린 할아버지의 인터뷰가 흘러나온다.

한숨을 내쉬며 결국 티브이를 껐다.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만 들리는 조용한 집 안.

선아랑 나는 말없이 전기장판 위에 앉아 있다.

늦은 오후의 햇살이 들어오는 가난 한 집 안. 한참을 그렇게 묵묵히 앉

아 있던 도중, 선아가 먼저 입을 열었다.

“우리 집, 못살지? 재밌는 것도 없고……

뭐라고 대답해야 하지.

나는 침음을 흘리다가 그냥 솔직하게 궁금했던 걸 묻기로 했다.

“저기, 선아야. 보통 학교 마치고 뭐 하면서 시간 보내?”

“정말 순수하게 궁금해서 그래. 나

그냥 솔직해지자.

“나는 네가 뭘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지 궁금해. 뭘 하면서 놀고, 어떤 취미를 가졌는지..”

꺼져 있던 티브이만 보던 선아가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봤다.

“학교를 마치고 잠 들기 전까지 뭘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 건지, 그냥 알고 싶어. 그냥… 그게 궁금했어.”

잠시 정적이 흘렀다.

멍하니 있던 선아가 이윽고 고개를 살짝 들더니 으음, 하는 신음소리를 내며 고민하는 표정을 짓는다.

“어제는… 집에 와서 옷 갈아입 고… 그냥 동네를 서성이다가? 저녁 먹고 바로 잤었나……

“너무 일찍 자서 새벽에 깻다가, 다시 못 자서… 아침에야 다시 잤 고……

오늘 아침에 지각한 건 그래서였나.

어쩌면 그저께 지각한 원인 역시 같을지도 모른다.

“그 전날에는… 뭐 했더라……

선아가 눈썹을 찡그리며 고민하다가 이내 한숨을 쉬었다.

“미안. 잘 기억이 안 나……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항상 무기력한 표정의 선아.

그냥 흘러가는 대로 생각없이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는 것 같다.

[윤선아에 대한 이해도가 10 상승 했습니다.]

“선아야.”

“응?”

“우리 괴담 동아리가 안 되더라도 꼭 같은 동아리에 들어가자.”

선아는 살짝 놀래는 눈치였지만 이 내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 지었다.

“응! 그러면 좋겠다……!”

“꼭 그러자! 하하하.”

“아하하.”

어떻게든 흙수저녀 선아의 역린을 건드리지 않고 편안한 모습만 보여 주고 가는 게 목표였는데, 결국 피 할 수 없었나 보다.

하지만 서로의 마음을 털어놓자 오

히려 한층 자연스러워진 분위기.

나는 그 후로는 마치 시골의 할머 니 집에 온 것처럼 익숙한 듯 장난을 치며, 선아네 집 장롱을 열고 이 불 사이에 몸을 파묻거나 냉장고에 붙은 포켓몬 스티커를 보고 추억을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 * *

“아하하하, 조심히 가! 오늘 너무 즐거웠어!”

“나도 정말 재밌었어! 선아야, 고마워!”

“아냐, 아하하.”

아파트 입구까지 바래다주러 나온 선아한테 크게 손을 흔들며 인사를 했다.

“다음에 맛있는 거 사 줄게, 내일 또 보자!”

“응. 조심히 가~ 안녕~”

기분 좋게 집으로 돌아가면서 생각 했다.

‘지금쯤이면 엄마랑 아빠 둘 중에 한 분은 슬슬 집에 도착하셨겠지.’

그 엄마인 척하는 무언가.

부모님과 함께 가면 당연히 괜찮겠지?

영화에서 보면 귀신은 보통 혼자 있을 때 나타나 놀래키고, 가족들이 랑 다시 갔을 땐 사라져 있지 않던 가.

그러니까 부모님과 함께 집을 들어 서면, 그냥 아무 일도 없던 평소의 집이 기다리고 있을 거다.

‘···정말 그럴까?’

여긴 영화가 아니고 현실인데.

나에게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이상한 일들.

다시 생각해 보니 관념적인 귀신의 모습으로는 설명이 안 된다.

낙성고 300인 폭발 사건이나 매뉴

얼 괴담 속 웃는 여자를 떠올려보면 그렇다.

이 괴담이라는 현상.

혼자 있을 때뿐만이 아니고, 사람 이 몇 명이 있든 모습을 감추지도 않고 영향력을 발휘한다.

‘그렇다면 설마……

부모님이랑 함께라면 별일 없을 거라고 막연하게 생각했지만, 착각일 수도 있다.

지금까지처럼 아무렇지도 않은 듯 이 엄마의 모습을 하고는 우리 앞에 나타나 해코지를 할 가능성도 크다.

‘···부모님이 위험하다.’

나는 서둘러 핸드폰을 꺼내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준아?]

엄마는 다행히도 아직 마을버스를 타고 집에 가던 중이었다.

이번에는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뚜- 뚜-

신호음만 울렸다.

뚜- 뚜-

전화를 받지 않는 아빠.

나는 급히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괴담 동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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