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담 동아리-15화 (15/130)

15화

네 번째 괴담 - 엄마 (3)

서둘러 집으로 가는 동안, 어느새 밖은 어두워져 저녁이 돼 있었다.

아파트 입구에 도착해서 우리 집을 멀리서 보자 껌껌한 베란다에 엄마 가 서 있는 게 보였다.

···아까와 같은 자리다.

‘아빠는? 아빠는 집에 안 오셨나?’

우리 동 입구에 도착하자 출입문

앞에 멍하니 서 계신 아버지가 보였다.

“아빠!”

나는 한걸음에 달려갔다.

“···준아. 지금 집에 돌아왔느냐.”

“아빠, 별일 없었어요?”

“무슨 별일……?”

아버지는 태연한 척 시치미를 떼셨다.

하지만 뜸 들이는 모양새에서 역시 집에 먼저 들어갔다가 엄마인 척하는 무언가를 보고 도망 나오신 것 같다.

아니라면 왜 집에 안 들어가시고

여기 입구 앞에서 서성거리고 계시겠는가.

“아빠! 집에 이상한 게 있어요. 막 엄마인 척하는데.”

U I 55

아버지가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보 셨다.

“언제부터 봤느냐?”

“오늘 학교 마치고 집에 와서요.”

“그렇구나.”

아버지는 한숨을 푸욱 내쉬시더니 말씀하셨다.

“나는 3일 전부터란다.”

아버지의 말씀을 들어 보니 3일

전, 그러니깐 내가 입학식을 하기 전날부터 그게 보였다고 하신다.

한밤중에 자다가 화장실에 가시려고 일어나니 어두컴컴한 거실 한가운데 엄마가 거꾸로 물구나무 서 있던 걸 본 게 시작이었다고 하셨다.

‘여보, 이 밤중에 뭐 해?’

‘다아른 남편드을은 다 차타고 데 에리러 와주던데 당신으은 그게 뭐 가 힘드을다고……

물구나무 선 채로 느릿느릿 그런 말을 내뱉더니 그 자세 그대로 두 팔만으로 슥슥 베란다 쪽으로 기어 가서 사라졌다고 한다.

그다음 날엔 회사에서 업무를 보시

던 중 집에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고 하셨다.

나는 입학식을 하던 중이고, 엄마 도 마트에서 일하고 있을 시간이라 집에는 아무도 없었을 텐데 전화가 걸려 온 것이다.

‘ 여보세요?’

‘다앙신 엄마만 어머니야? 나아도 친정 가서 우리 어엄마 얼굴도 뵈엡 고……

우리 엄마의 목소리라고 하셨다.

‘여보세요? 여보?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야?’

‘쉬이는날엔 빨래도 좀 너얼고…

당신만 돈버어는것도 아니자않……

뚝 _

뚜- 뚜- 뚜-

그 말을 끝으로 전화가 끊어졌다고 하셨다.

놀라기도 했고, 뭔가 이상해서 다시 집으로 전화를 걸어 봤지만 아무 도 받지 않았고, 어머니께 전화를 걸자 당연히 직장이라고 하셨다.

덧붙여 아버지는 굉장한 애처가로 맞벌이 와중에도 모든 집안일을 도 맡으려 하셔서 어머니랑 티격태격 하시는 타입이다.

내 아버지지만 정말 가정적이고 성

실하신 분으로, 어머니께 저런 불평을 들을 이유가 전혀 없는 분이시다.

친할머니와 어머니와의 관계도 내 가 알기로는 별일 없이 평범하다.

그리고 오늘.

퇴근하고 오는 길에 어두컴컴한 집 베란다에 엄마가 서 있는 걸 보시고는 놀래서 집까지 서둘러 가셨다고 한다.

현관문을 열기 전 낌새가 이상해서 문구멍으로 집 안을 보니, 반대편에 서도 똑같이 문구멍에 얼굴을 대고 중얼거리는 걸 보고는 뛰쳐나와 이렇게 앞에서 기다리고 계셨던 것이

다.

“그래서 요며칠간, 난 먼저 퇴근 하더라도 꼭 집 앞에서 너희 엄마를 기다렸다가 함께 들어가곤 했단다.”

‘그렇구나, 그러고 보니 이번 주는

직장도 퇴근 시간도 다른데, 꼭 함 께 집에 들어오시던 부모님의 모습 이 생각났다.

나는 3년이라는 시간을 거슬러 왔다 보니, 막연하게 옛날에는 퇴근 시간이 겹치셨나 보다 생각했을 뿐.

“…어떡할까요, 아버지.”

“글쎄다, 후……

아버지는 이마를 잠시 문지르시더니 결정한 듯 말씀하셨다.

“일단은 집에 같이 올라가 보자. 어디 신고할 수도 없는 거고.”

“···괜찮을까요?”

“너희 엄마까지 위험에 빠트릴 순 없다. 엄마 오기 전에 우리 남자들 끼리 해결해 보자꾸나. 건장한 남자 두 명이면 어떻게든 되지 않겠냐.”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아버지를 따라 엘리베이터를 탔다.

그렇다. 여기는 우리 집이다.

집주인인 우리가 엄마 흉내를 내는 이상한 여자한테 자리를 뺏겨서, 언

제까지고 청승맞게 밖에 앉아 있을 수도 없는 노릇.

지금은 어쨌든 간에 저 괴상한 무언가와 대면해 보는 수밖에 없었다.

엘리베이터에 내리고 아버지께서 현관문 비밀번호를 입력하셨다.

[삐 리릭~]

나는 주먹을 꾹 쥐었다.

그런 괴상한 존재한테 주먹이 통할 진 모르겠지만, 여차하면 폭력이라도 휘두를 생각이다.

끼익-

아버지께서 현관문을 열고 먼저 들어가셨고 나도 뒤따라 신발장에 섰다.

여차하면 도망칠 수 있게 현관문은 활짝 열어 둔 상태.

완전한 저녁.

집 안은 빛 한 줄기 없이 어두컴 컴했고, 신발장의 센서등만 주황색으로 빛나며 어렴풋이 거실을 비추고 있었다.

그리고 거실 코너를 돌면 있는 주방 쪽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톡- 톡- 톡- 톡-

칼로 무언가를 써는 소리다.

톡- 톡- 톡- 톡-

“아버지.”

아버지가 확인하려 신발을 벗고 주방으로 들어가시려다 말고 뒤돌아보 셨다.

“이 거요.”

나는 신발장 옆에 꽂혀 있던 우산을 아버지께 건네 드렸다.

아버지는 말없이 우산을 받아 드시더니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셨다.

톡- 톡- 톡- 톡-

아버지가 천천히 한 걸음 앞서가시더니 나지막히 말하셨다.

“ 여보?”

톡- 톡- 톡- 톡-

우산을 꽉 쥔 손에 힘이 들어가시더니 다시 말씀하신다.

“…여보? 당신이야?”

나도 신발을 벗고는 대충 거실에 있던 유리병 하나를 무기 삼아 들고는 아버지를 뒤따랐다.

톡- 톡- 톡- 톡-

이윽고 아버지께서 먼저 코너를 돌아 주방을 확인하셨는데, 경악으로 물든 얼굴이셨다.

나도 무슨일인가 싶어 재빨리 주방을 보고 똑같이 경악하고 말았다.

톡- 톡- 톡- 톡-

엄마가 싱크대 위에 한 손으로 물구나무 서서 두 발을 찬장 위에 걸 친 상태로, 다른 손에 식칼을 들고는 도마를 톡톡 두드리고 계셨다.

아버지가 얼굴을 부들부들 떨더니 외치셨다.

“귀, 귀신이면 사라지고! 사람이면 나가라!”

톡- 톡- 톡- 톡-

엄마는 말없이 식칼로 무언가를 써는 흉내를 내며 도마만 두드릴 뿐.

아버지가 우산을 잡은 두 손을 부 들부들 떠시며 다시 외치셨다.

“귀, 귀신이면 사라지고오! 사람이면 나가라아!”

그리고 우산을 들어 올려 찌를 듯 이 자세를 취한 그 순간.

엄마의 형상을 한 괴인이 이쪽으로 얼굴을 휙 돌렸다.

“치우는 사람 따로 있고 정리하는 사람 따로 있어?”

아버지랑 나는 무기를 치켜들었다.

“왜 어지르고 사는 건데 도대 체!!!!!! 왜!!!!!!!!!!!!!!!!!!!!”

그리고 싱크대에서 거꾸로 선 채로

펄쩍 뛰어서는 괴성을 지르며 달려 왔다.

“나도 숨 좀 쉬면서 살자 제바아아 알!!!!!!!!!!!!!”

“이놈! 어디 남의 집에 들어와서 행패냐! 썩 나가라!”

아버지도 자세를 취하며 고함을 지르셨다.

엄마가 거꾸로 선 자세로 한 손으로만 펄쩍펄쩍 뛰며 달려왔고, 다른 손으로는 식칼을 휘둘러 아버지의 발목을 노렸다.

아버지는 우산을 펑 펼쳐 아래로 갖다 대며 찔러 오는 식칼을 막으셨다.

우산 비닐을 뜷고 식칼이 들어왔지만, 철사가 어지럽게 얽혀 다행히 어떻게든 막고 계신다.

“맨날 술만 처먹고 당신이 그러고 도 인간이야아아아아아앗”

“이런 미친년이! 당장 우리 집에서 나가지 못할까! 혼나고 싶으냐!”

아버지도 지지 않고 강하게 소리치 셨지만, 아마도 허세일 거다.

우리 둘 다 굳이 입 밖으로 내뱉 진 않을 뿐, 저건 분명히 사람이 아니다.

그럼에도 아버지께선 이 집을, 가 정을 지키시려고 맞서 싸우고 계신

것이다.

엄마와 아빠가 난동을 부리는 동안 나도 돕기 위해 서둘러 뒤로 돌아갔다.

멀쩡한 자세였다면 머리를 노렸겠지만, 물구나무로 서 있어 그러진 못하고, 할 수 없이 유리병으로 허리 한가운데를 옆으로 후려치며 외쳤다.

“엄마 흉내 그만 내고 꺼져 씨바아 알!”

퍽!

“아아아악! 스마트폰에 전자파가 얼마나 많이 나오는 줄 아니!”

그게 얼굴만 180도 뒤로 부우욱 꺾더니 거꾸로 나를 쳐다본다.

“반장훈이네는 앉은 자리에서 3시간은 집중한다는데. 너 같은 꼴통은 낳지 말았어야 했어.”

“닥쳐!”

내가 발로 머리를 퍽 올려 까자 엄마 귀신이 드디어 중심을 잃고는 기우뚱 옆으로 쓰러졌다.

털썩.

아버지랑 나는 숨을 몰아쉬며 재빨 리 뒤로 물러서 자세를 다잡았다.

“허억, 허억… 준아, 괜찮냐?”

“네, 괜찮아요. 아버지는요? 안 찔

리셨어요?”

“나도 조금 스친 것 말고는 안 다 쳤다. 헉헉.”

엄마가 누운 채로 잠시 몸을 비틀 다가 천천히 일어서는데, 사람이 일어서는 모양새가 아니었다.

허리부터 부자연스럽게 스윽 꺾여 올라오더니 공중으로 천천히 떠올랐다.

그 자세로 팔을 천천히 위로 들더 니, 마치 춤을 추듯이 흐느적흐느적 몸을 좌우로 흔들었다.

머리카락도 중력에 영향을 받지 않는 듯 공중에 떠서는 이리저리 나풀 거렸다.

“여보, 우리 이렇게는 못 살겠어요. 그냥 다 같이 목매달고 죽읍시다.”

“···주, 준아, 이리로.”

아버지께서 식은땀을 흘리시며 나를 뒤에 두고는 말하셨다.

“낌새가 이상하다, 준아. 아빠 뒤에 있거라.”

“네……

나도 분위기가 달라진 걸 느꼈다.

아까까지는 괴물 같긴 해도 남자 두 명이서 어떻게든 힘으로 제압할 수 있었던 수준이라면, 지금은 공기가 다르다.

아까는 악을 쓰며 불평을 내뱉더

니, 지금은 묘하게 차분한 목소리인 것도 오히려 위협적이다.

엄마가 천천히 흐느적거리는 속도를 높이더니 어느새 버둥거리는 모양새가 되었다.

그리고 공중에서 미친 듯 팔다리를 휘적거리더니, 어느 순간 케엑 하는 목소리를 내며 축 늘어졌다.

목매달아 죽는시늉을 한 것일까? 대충 그런 느낌이다.

공중에 뜬 채로 축 늘어져 있던 엄마가 서서히 고개를 들더니 말했

다.

“엄마가 주위 엄마들한테 다 물어 봤는데 너같이 부모 힘들게 하는 자식은 없더라. 난 더 이상 너 안 키울 테니 그냥 집에서 나가.”

나도 욱해서 말했다.

“지랄하지 마. 여기는 우리 집이다. 나가야 할 건-”

“야!!!!!!!!!!!!!!!!!!!!!!!!!!!!!”

순간 크게 괴성을 지르며 손톱을 세우고는 나에게 붕 날아왔다.

“준아! 도망가라!”

아버지가 퍽 나를 뒤로 밀치고는 엄마를 막아섰다.

엄마 귀신은 그대로 아버지의 목을 콱 졸랐다.

“커억, 컥!”

힘이 어찌나 센지 70킬로그램이 넘는 아버지의 몸이 공중에 반쯤 끌려 올라갔다.

“다 죽자! 다 같이 목매달고 죽자 그냥!”

“켁, 케엑, 준아… 도망가라!”

“아버지!”

그 순간이었다.

현관문에서 누군가가 외쳤다.

“준이 아범!! 무슨 일인가!!”

옆집에 사는 아저씨였다.

“어, 어머! 세상에!”

아내분도 현관문 뒤에 같이 서 계 셨다.

옆집 부부가 우리 집에서 일어나는 소란을 듣고는 무슨 일인지 보러 온 것이었다.

여차하면 도망치려 현관문을 열어 두었던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아저씨! 아줌마! 도와주세요!!”

“이, 이럴 수가! 그만두게! 준이 어멈! 이게 무슨 짓인가?”

아저씨가 한걸음에 달려오시더니 아빠의 목을 조르는 엄마 귀신의 팔

을 붙잡고 낑낑거리신다.

“켁, 케엑, 켁

“맨날술만먹고노름만하고이런집에서못살아요우리가족은다목매달고죽기로했어요말리지마세요.”

그게 무표정으로 중얼거리며 여전히 아빠의 목을 조른다.

“그게 무슨 말인가, 준이 어멈! 이 양반이 언제 술을 먹고 노름을 했다는 건가! 정신 차리게 제발! 젠장, 무슨 힘이….”

아저씨가 낑낑대며 팔을 붙잡고 애를 쓰지만 미동도 없다.

나도 급하게 내 방으로 달려가서

책상을 뒤져 커터칼을 가져왔다.

그리고 아빠의 목을 조르고 있는 그 여자의 팔 한가운데를 있는 힘껏 푸욱 베어 버렸다.

피가 퍽 얼굴에 튄다.

“꺄아아악! 어, 어떻게!!”

뒤에 있던 아주머니가 놀래셔서는 비명을 지르신다.

나는 그러거나 말거나 다시 한번 칼을 있는 힘껏 푹 꽂아 내렸다.

“갸아아아악!!!!!!! 너는 밖에서 선생님한테도 그딴 식으로 대하니!!!! 엄마가 우습지 아주!!!!”

그제야 엄마인 척하는 괴물은 손을

놓고는 이리저리 몸을 비틀었다.

“컥, 커억! 컥;”

아버지가 주저앉아 마른기침을 몇 번 하시더니 숨을 고르고 외치셨다.

“준아! 너는 아주머니랑 같이 옆집으로 숨어서 경찰에 신고부터 해 라!”

“아, 아빠! 하지만!”

아저씨와 아빠만으로는 위험하지 않을까 싶어 머뭇거리던 찰나에, 뒤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현관문을 돌아보니 복도에 이웃 사람들이 소란을 듣고는 모여 있는 게 보였다.

“세상에, 무슨 일이래?”

“부부 싸움인가 봐. 심하네.”

나는 생각했다.

‘이 정도로 사람들이 많이 있으면 안전하다!’

“네, 아빠! 지금 바로 신고할게요!” 내가 핸드폰을 꺼내려던 찰나, 아 버지가 다급하게 소리치셨다.

“옆집으로 숨어서 신고해라! 준아 어서! 네가 안전한 게 먼저다!!”

“아버지! ···네, 알겠어요! 조심하세요!”

그렇다. 저 귀신이 엄마의 형상을 하고 있어 아빠까지 같이 도망가면,

이웃 사람들에게 무슨 엉뚱한 소리를 하며 날뛸지 모른다.

저게 비상식적인 힘을 발휘하는 귀 신이라는 걸 아는 건 여기서 아빠와 나 둘뿐, 아버지는 이 상황에서도 나를 먼저 걱정하셔서 일단 내가 안 전한 곳으로 숨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여자가 칼에 찔린 팔을 붙잡고 난 동을 부리는 틈에, 나는 서둘러 뒤 돌아 현관문을 지나쳐 웅성거리는 사람들을 뚫고 옆집으로 갔다.

옆집은 다행히 열려 있었고, 아주머니도 엉겁결에 나를 뒤따라 왔다.

아까는 놀래서 발만 동동 구르시던

아주머니도,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자 안심하셨는지 약간은 진정된 모습으로 나에게 물으셨다.

“준아, 너희 어머니 갑자기 무슨 일이래? 그렇게 금실이 좋으시더 니……

“죄송해요. 나중에 설명해 드릴게요.”

나는 문을 잠그고 안전장치까지 다 걸었다.

“···그렇게 할 것까지 있니?”

남의 집 현관문을 태연하게 2중, 3 중으로 잠그는 모습을 보고, 아주머 니가 약간 어이없어하며 물으셨지만, 나는 무시하고 바로 경찰에 신

고했다.

[아, 101동 502호 말씀이십니까? 거기는 벌써 주민분이 신고하셔서 저희가 출동했거든요.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아니나 다를까, 전화를 끊자마자 파란빛이 번쩍이는 게 보여서 창문 밖을 내다보니 경찰차가 와 있는 게 보였다.

하지만 단순한 부부 싸움이라고 신 고한 건지, 경찰들은 3명 정도밖에 안 보였다.

‘저 숫자로 될까.’

띵띵디딩~♬ 띵띵디딩~♬

경찰들이 아파트 안으로 진입하는 걸 보던 중, 갑자기 벨소리가 울려서 핸드폰을 보니 엄마였다.

이번엔 진짜 엄마.

“여보세요? 엄마! 엄마 어디예요?”

[준아! 엄마 지금 아파트 동 입구! 무슨 일이니? 여기 경찰이 위험하다고 막아서 못 들어가고 있어!]

“들어오지 마세요, 엄마! 지금 집에 강도가 들어와서 난리났어요!”

[강도? 부부싸움 났다던데?]

“아니에요! 강도예요! 흉기 들고

있어요 위험해요! 오지 마세요!”

[세상에!! 너는 괜찮니? 아빠는?]

“저는 옆집에 숨어 있고요! 아빠는 사람들이랑 같이 있어서 괜찮을 거 예요!”

[그, 그래! 알겠다! 조심해야 한 다!]

전화를 끊자 옆에서 아주머니가 이 해가 안 된다는 표정으로 쳐다봤다.

“엄마랑 통화한 거니? 근데 너네 엄마는 방금 저기서……

띵동-

순간 초인종이 울렸다.

아주머니가 먼저 다가가셔서 인터

폰을 확인하시더니 놀란 표정을 지 으셨다.

어버버거리시며 나를 쳐다보시길래 나도 인터폰을 확인하러 갔다.

인터폰에는 아버지가 눈을 위로 치켜뜨고 혀를 쭉 내밀고는 화면 가까 이 얼굴을 들이밀고 계셨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수화기를 집었다.

“…아빠?”

[준아, 아빠다. 문 열어라.]

“…거짓말.”

성인 여성이 억지로 낮은 음색으로 남자를 흉내 내는 목소리.

[사업이 망하고, 빚쟁이에 쫓기고, 너도 위가 쓰릴 때까지 라면만 먹는 삶, 지겹지 않니?]

“…아버지 사업하신 적 없잖아요. 그리고 우리가 라면을 언제 먹었다고.”

[이제 지쳐서 아버지는 엄마랑 같이 목매달았단다. 너도 같이 목매달고 죽자. 얼른 문 열어라.]

“지랄하지 말고 꺼져 미친 새끼야!”

내가 부들부들 떨면서 외치자 화면 가득 비추던 아버지가 풀썩 쓰러지 셨다.

그 뒤로 복도가 보였는데 아까 구 경하던 그 많던 사람이 전부 공중에 떠서는 발버둥을 치고 있었다.

상반신은 인터폰 화면이 비추는 시야에 들어오지 않아 가려졌지만, 버둥거리는 하반신을 봤을 때 영락없이 목매달려 발버둥 치는 모습이었다.

위에는 아무것도 없는데 어떻게 목을 매달았는지는 보이지 않아 모르겠지만, 그 수많은 사람이 다 매달려 컥컥거리고 있는 것이다.

“우리 아빠 어떻게 했어, 이 X발 놈아!”

내가 울면서 악을 쓰자 엄마가 화

면 가득히 얼굴을 슥 들이밀고는 말 했다.

[너 이 새끼 엄마한테 말버릇이 그 게 뭐야! 혼날래? 여기 아무 일도 없구만! 빨리 문 열어!]

순간 너무나 멀쩡해 보이는 엄마의 얼굴과 목소리에 움찔했지만, 곧 그 럴 리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거기에 속아서 움찔한 내 자신에게 더 화가 나서 소리쳤다.

“죽여 버릴 거야! 그만 좀 해 X 발!”

나는 눈물과 콧물이 뒤범벅될 정도로 질질 짜면서도, 분노에 차 무기가 될 만한 걸 찾았다.

옆집 아저씨가 쓰시던 골프채가 거실 한 귀퉁이에 놓여져 있었다.

나는 골프채를 집어 들고 벌벌 떠는 아주머니를 지나쳐 현관문을 열었다.

[삐리릭~]

“그렇게 살이 쪄서 어떻게 시집갈래 이 돼지 같은 년아아아!!”

“닥쳐 X발 새까!!”

문을 열자마자 부우웅 달려드는 엄마 귀신을 향해서 골프채를 휘둘렀다.

머리를 정통으로 시원하게 타격하는 골프채.

뇌수와 무언가가 머리 옆으로 파악 튀는 게 보인다.

하지만 그것은 전혀 속도를 멈추지 않고 날아와서는 내 목을 졸랐다.

“그런병신같은성격이니깐친구도없이맨날혼자지내지그런썩어빠진정신머리로어떻게살래공부가도대체뭐가어렵다고그러니너엄마가밖에서얼마나고생하는지알어앉아서책만보는그걸못해서어유하루종일게임만하고게으르고나태하고안일하고그냥엄마고생시키지말고목매달고죽어라죽어……

“켁, 케엑… 켁.”

안간힘을 쓰며 버둥거렸지만, 택도 없었다.

눈알이 터져 나올 것 같은 압력과 함께 혀를 쭉 내밀고, 나는 의식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당신은 죽었습니다.]

[체크 포인트에서 다시 시작합니다.]

[로딩중

*

“조심히 가! 오늘 너무 즐거웠어!”

선아가 석양을 등지고 나를 보며 웃고 있었다.

그 뒤로는 오래된 아파트가 있었고, 붉은빛 석양이 늦은 오후를 비 추는 게 보였다.

“저기······

선아가 나를 물끄러미 보더니 말한다.

“우리, 내일 또 보자.”

발그레 물든 선아의 얼굴은 노을빛 때문일까.

그 꿈같이 애틋한 광경 속에서 나 도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응, 선아야. 우리 내일도 꼭 보자.”

괴담 동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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