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화
다섯 번째 괴담 -
끝나지 않는 4교시 (1)
낙성고등학교의 행정실 직원이자 두 살배기 아이의 엄마인 미진은 요즘 스트레스 때문에 돌아 버릴 지경 이었다.
월요일, 입학식 때 학교가 잠시 정전이 된 게 사건의 시작이었다.
정전된 틈에 입학식을 운동장에서 해야겠다며 누군가 멋대로 방송을 해 버렸고, 행정실 직원들은 공익까
지 총출동해 부랴부랴 장비를 세팅 하느라 그날 혼이 빠질 지경이었다.
게다가 간신히 입학식을 정리하고 나니, 이번엔 신입생들에게 나눠주었던 입학 안내문에서 웃는 여자를 조심하라는 괴상한 문구가 인쇄돼 버려 부랴부랴 다시 수거하느라 진 땀을 흘렸고.
‘이런 게 찍혀서 SNS에 올라가는 순간 학교가 난리가 나 버리잖아 요~!’
미진은 깐깐한 교감이 행정실로 찾아와 목에 핏대를 세운 덕분에, 산 후 우울증이 다시 도질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애초에 우리 행정실에서는 건네준 문서를 받아 인쇄한 죄밖에 없는데.
너희가 왜 우리한테 화를 내냐고, 입학식을 운동장에서 하자는 건 또 누가 방송한 거냐고!
확 뒤엎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결국 학교에선 선생이 갑인 법.
아이를 낳은 뒤 끊었던 담배 생각 만이 맴돌 뿐이었다.
안 그래도 3월은 새학기와 더불어 인사 이동 때문에 미친 듯이 바쁜 타이밍인데, 이상한 일들이 끝도 없이 일어나니 환장할 노릇.
목요일, 오늘 아침만 해도 그렇다.
‘마가 꼈다는 말은 아마 이럴 때 쓰는 표현이겠지.’
학교 5층에서 안 쓰던 창고 하나 가 발견된 것이다.
그것도 건물이 지어진 지 36년이 다 되어 가는 지금에서야.
‘미쳤어.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 돼.’
이번에는 선생들도 어이가 없었는 지 별말이 없었다.
하지만 시설 관리까지 병행하는 행 정실에서는 속이 타들어 갈 노릇.
미진은 너무 기가 막혀 옆자리 직원과 점심시간도 빼먹고 오래된 설
계도를 뒤적거리며 다시 확인해 보기까지 했다.
누군가 어젯밤에 몰래 연장을 들고 와서는 킬킬대며 공사를 하는 상상 이 그녀의 머릿속에 가득했지만, 슬 프게도 그 창고는 설계도에 ‘다용도 실3’이라는 이름으로 멀쩡히 기록돼 있었다.
‘정말로 아무도 이걸 몰랐다고?’
원래부터 있었지만 다들 ‘나는 잘 모르겠지만 저 방은 무슨 용도가 있겠지’ 하며 별 신경을 안 써서 몰랐던 것이다.
36년 동안.
이라는 결말을 행정실 직원들은 받
아들여야만 했다.
우리는 이 창고를 어떻게 쓸지 모르겠으니 선생들이 알아서 하라고 전달하고 손을 떼니, 어느 동아리의 동방으로 돌아갔다는 말만 얼핏 들었다.
‘육아 휴직을 두 번까지 나눠 쓸 수 있었던가.’
퇴근 중 이런 이상한 일들로 가득 한 학교에서 탈출할 궁리를 하며 운동장을 걷던 미진은, 문득 고개를 올려 문제의 그 ‘다용도실3’을 쳐다 보았다.
그곳에는 이준이 창가에 서서 자신의 미래를 걱정하며 부원들과 운동
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분명히 아침에 발견하고 잠궈 놓았는데 어떻게……
미진은 더 이상 생각하는 걸 그만 두기로 했다.
* * *
[2019년 3월 8일 금요일, 11:35]
[이준 - 2회차]
[괴담 포인트 : 110]
[인과율 : 8%]
‘휴, 시간이 왜 이렇게 안 가.’ 오늘은 금요일.
지금 4교시만 마치면 점심시간 후 기다리고 기다리던 첫 동아리 활동, CA 시간이다!
나는 교실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수업이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한복을 입은 국사 선생님께서 요즘 대학들이 점점 국사를 입시에 반영 하지 않는 추세에 대해 분통해하며 시간을 끌고 있었다.
수업이 일찍 끝난 다른 반 학생들이 눈썹을 휘날리며 급식실로 달려
가는 게 교실 문 너머로 보였다.
“그리고! 일본놈의 새끼들이 우리 땅 곳곳에 말뚝을 박아서 정기를 죄 다……
‘X발, 좀 마치라고……
띵동 댕동~♬
종이 치자 성격 급한 남학생들 몇 몇이 후다닥 교실 문을 열고 급식실로 달려가는 대열에 합류했다.
선생님은 할 말이 아직 많으셨는지 시무룩한 표정이셨지만, 학생들에겐 나라의 역사보다는 먹고 사는 게 더 급했던 모양이다.
나 역시 복도로 후다닥 뛰쳐나갔고
선아랑 경원이도 재빠르게 달라붙었다.
“빨리 점심 먹고 동아리방 가서 늘 자!”
“후후. 체통을 지켜, 부장.”
경원이가 안경을 치켜올리며 대답 했고, 선아는 발그레 상기된 얼굴로 미소 짓고 있었다.
내가 선아의 눈을 보며 장난스레 고개를 끄덕이자 선아도 키득거리며 답해 주었다.
셋이서 복도를 질주하며 달려가는 데, 뒤에서 어떤 아저씨가 더 빨리 달려오더니 우리를 휙 제치고 급식 실로 먼저 뛰어들어 갔다.
담임이었다.
셋이서 나란히 앉아 밥을 먹는데 급식실 창문 너머로 배달 기사들이 왔다 갔다 하는 게 보였다.
5, 6교시는 CA시간.
동아리들이 완전히 자율로 활동할 수 있게 학교가 정해 놓은 시간이다 보니, 아예 점심을 거르고 동아리방에서 음식을 배달시켜 먹는 선배들 도 많나 보다.
선아가 부럽다는 듯이 밥을 먹다 말고 그 장면을 멍하니 본다.
“우리도 다음에 꼭 시켜 먹자. 번 듯한 동아리방도 있으니깐.”
“응!”
밥을 먹고 급식실을 나서는데 담임 이 배를 쓰다듬으며 걸어가는 게 보였다.
담임은 우리를 발견하고는 ‘오훗’ 하는 효과음을 입으로 내더니 반갑 게 인사했다.
“준이 군과 친구들이군요. 점심은 맛있게 먹었나요?”
“네, 잘먹었습니다. 하하.”
“그래요. 바로 동아리방으로 가는 건가요?”
“네, 바로 가려구요.”
그러자 담임은 갑자기 진지한 표정
을 짓곤, 주위에 듣는 사람이 없는 지 고개를 살피며 조심스레 말했다.
“그렇다면 여러분들이 알아 둬야 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또 무슨 엉뚱한 소리를 하려고.
“그 동아리방엔 지금 사악한 무언 가가 도사리고 있습니다. 들어가기 위해선 아마 이게 필요할 거예요.”
담임은 뒷 주머니에서 동아리방의 열쇠를 슥 꺼내서는 우리에게 건네 주었다.
“아침 조례 때 준다는 게 깜빡했군요. 호호홋
그리고 다시 배를 두드리며 가 버렸다.
“저기, 우리 벌써, 어제 열었는 데……
선아가 중얼거렸다.
“하지만 이게 있으면 우리가 안 쓸 때 잠궈 놓을 수 있으니 나쁠 건 없겠네.”
경원이의 지적에 나도 맞장구쳤다.
“도둑이 들 수도 있는 거니깐.”
“그, 그렇네……
“담임이 분위기 잡길래 난 또 무슨 대단한 걸 주는 줄 알았네, 참나. 그치?”
“나도.”
나른한 점심의 햇살이 순백색 커튼을 뜷고 비치는 동아리방.
우리 셋은 앉아서 무작정 무서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어떤 사람이 산을 타다가 길을 잃고 오두막에서 밤을 새웠는데, 그 오두막에 무섭게 생긴 사람 얼굴의 초상화가 엄청 많이 걸려 있더래… 그런데 자고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났을 땐 초상화 대신 창문만 있었대.”
“음, 그렇구나.”
“그렇데……
선아에게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다음은 경원이였다.
“잠수부들 사이에서는 금기가 몇 가지 있다고 한다. 비가 올 때는 물에 들어가면 안 된다던가 하는 당연 한 내용들 빼고, 한 가지 특이한 것이 있는데 바로 물속에서 시체를 발견했는데 그 시체가 서 있다면 절대로 건드려서는 안 된다는 금기다.”
“음, 그렇구나.”
“그렇다네.”
다음은 다시 선아의 이야기.
“친구들끼리 놀러 가서 야영한 사진에 친구들 모두가 자고 있는 사진 이 찍혀있었대……
다시 경원이.
“서울의 어떤 지역에서 라디오를 돌려 보면 여자가 끝도 없이 중얼거리는 이상한 난수 방송이 잡히는데, 아무도 그 내용을 해석할 수가 없다고 한다……
“방 침대 밑에 뭔가 느껴져서 살펴 봤더니……
“나사의 달 착륙, 조작했다는 음모 론이……
선아와 경원이가 이런저런 괴담들을 풀기 시작했다.
나는 그때마다 엄숙하게 고개를 끄 덕이며 이야기를 머릿속에 집어넣었
다.
선아는 주로 귀신 얘기를 많이 했고, 경원이는 도시 전설이나 음모론에 빠삭한 듯했다.
“부장은 안 해?”
나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미안, 난 사실 무서운 이야기 잘 몰라.”
“으음, 예상은 했었지만.”
경원이가 신음을 내며 말했다.
“그렇다면 어째서 많고 많은 동아리 중 하필 괴담 동아리 같은 걸 고른 건지… 계속 물어보고 싶었는
데.”
“···나도 궁금해.”
둘이 빤히 나를 쳐다본다.
“별로… 관심 없어 보이는데……
“아니, 관심 없는 건 아닌데. 뭐라고 설명해 주지, 흠.”
하긴, 이 둘을 끌어들인 건 나다.
당연히 뭔가 생각이 있어서 이런 괴상한 동아리를 만들었다고 여기겠지.
실제로는 퀘스트가 정해 주는 대로 따라온 것뿐이지만!
“ 으음 ’’
나는 고민했다.
동아리의 구심점이 되는 내가 아무 생각 없어 보여서는 안 된다.
소수라도 한 그룹을 이끄는 리더라는 건 그런 거다.
내가 바로 서 있지 않으면 부원들은 금세 흥미를 잃고 흩어져 버릴 터.
하물며 이런 마이너한 취향의 모임에서는 더더욱 리더의 역할이 중요 한 법이다.
나는 목소리에 힘을 주고 말했다.
“나는 무서운 이야기는 잘 모르지만, 이상한 일들은 꽤 많이 겪었어.”
“이상한 일?”
선아가 반문하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말하자면, 나는 체험파라는 얘 기야.”
눈을 동그랗게 뜨는 선아.
그 말에 경원이도 호기심 어린 표정이다.
하지만 더 깊게 얘기하기는 어렵다.
이 아이들이 지금 받아들일 수 있을까.
“···지금 설명하기는 좀 그래. 다음에 자세히 얘기해 줄게, 미안.”
일단 그렇게 대충 넘어가면서 결론
을 얘기했다.
“어쨌든, 이게 내가 동아리를 만든 이유야. 난 이상한 경험들을 많이 겪어 왔어. 그리고 나는 괴담을 더 욱더 파고든다면 내가 겪은 일들의 원인을 알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이 동아리를 만들게 된 거야.”
체험파라는 걸 어필하긴 했지만 결국은 미적지근한 대답이 불만스러웠는지 경원이가 팔짱을 끼고 의자에 몸을 기댄다.
“결국 말해 주지 못하겠다, 이거야?”
“···미안.”
그리고 우리 셋 사이에 잠시 정적 이 흘렀다.
왠지 불편한 분위기.
나는 화제를 돌리려 애써 말을 던졌다.
“무서운 이야기 계속할까?”
“별로. 안 그러고 싶은데.”
경원이가 살짝 선을 긋는 어조로 말했다.
“···왜?”
“부장은 듣기만 하잖아.”
역시 솔직하게 다 털어놓지 않아서 기분이 상한 걸까?
하지만 그렇다고 나에게 일어났던 일들을 다 말해 주는 순간, 미친놈이라고 할 게 분명하다.
낙성고 300인 머리 폭발 사건.
웃는 여자.
엄마를 흉내 내는 귀신.
미안하지만 지금은 침묵하는 수밖에 없다.
“내가 얘기를 숨겨서 불편한 거야?”
돌직구를 던져서 물어보자 경원이가 심드렁한 표정으로 나를 본다.
“뭐 그것도 있고. 그런데 그거야 뭐 개인 사정 아닐까. 말하기 싫으면 어쩔 수 없는 거지. 그건 이해 해.”
“그럼? 뭐가 또 마음에 걸리는데?” 후우, 하고 한숨을 내쉬는 녀석.
“부장, 나는 말야. 네 말처럼 특목 고에 합격했지만 내신을 노리고 일부러 이 학교로 진학한 거야. 용의 꼬리가 되느니 뱀의 머리가 되겠다는 생각으로.”
뭐 그거야 이미 알고 있었는데.
지금 분위기랑 무슨 상관인 걸까.
“알겠어? 나는 학교 공부에 약간의 여유를 두는 대신, 대외 활동에 시간을 많이 투자해서 이것저것 스펙을 쌓고 입학사정관제로 명문대에 들어갈 계획이었다고.”
“···전에 얘기한 거잖아.”
“원래라면 전에 네가 한 설명처럼 1학년을 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다음 학년에는 학술 동아리의 부장을 맡 아서 스펙에 추가할 예정이었는데, 그런 내가 여기 괴담 동아리의 부원으로 들어왔어.”
“솔직히 말할게. 내가 괴담을 더 잘 아는데 내가 부장을 하는 게 더
낫지 않아?”
콧대를 세우며 조금 건방지게 말하는 곱상한 도련님.
“···싶은 마음이었지만. 하지만 신 입생은 동아리를 만들기 어려운데 그걸 네가 먼저 해냈고, 게다가 동아리방까지 얻어 낸 수완을 높이 사서 부장으로 인정해 주는 거야.”
···그게 불편한 건가.
“그런데 막상 들어와 보니 부장은 괴담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하나도 아는 게 없고, 동아리를 만든 동기조차도 미묘한 걸. 불만을 느끼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되지 않아?”
프라이드가 높은 이 녀석과 친구가 되려면 나 자신을 증명해 줘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끼긴 했지만 이 정도 일 줄이야.
자존심을 꺾고 들어와 줬다… 역시 그렇게 좋은 마음은 아니었다.
하지만 나 역시 살짝 짜증이 난 터라 구구절절한 설명 대신 날이 선 말투가 나간다.
“···말했다시피, 나는 체험파야. 지 식으로는 네가 앞설지 몰라도 나는 실제 겪어 가는 타입이라고. 그걸 깎아내리면 안 되지.”
“그거야 부장이 스스로 주장하는 거지, 내가 같이 겪은 것도 아니잖
아. 내가 지금 부원으로서 부장을 인정하는 건 오로지 신입생으로서 동아리를 만들고 방을 얻어낸 그 수 완뿐이라고.”
“···불만 있어?”
“좀. 많이.”
우리 사이에 미묘한 기류가 흐르자 선아가 안절부절못하는 게 보인다.
“후우.”
나는 한숨을 쉬고는 등을 기댔다.
결국, 부장으로서의 자질 같은 걸 증명해 줘야만 속이 풀린다는 건가.
‘···말투가 얄밉기는 해도, 어쨌든 그 부분만 납득시켜 주면 부장 부장
거리며 따라올 준비는 돼 있다, 이 거네.’
하지만 원래의 나보다 더 과대평가 된 게 지금의 나다.
내 자질이라 해 봤자 잔머리 잘 굴리는 것 하나뿐.
‘···밑천이나 안 드러나면 다행인 데.’
무언가 불편한 분위기 속에서 우리 셋은 그렇게 잠시 앉아 있었다.
‘상황이 이렇게 될 줄이야. 왜 이렇게 됐지?’
발단.
이 대화의 발단은 이야기거리가 다
떨어져서 서로 속에 있는 얘기를 하게 된 게 계기다.
그 말은.
“이렇게 얘기를 많이 나눴는데 아직도 5교시가 안 끝난 거야?”
우리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여전히 나른한 점심의 햇살이 순백 색 커튼을 뜷고 동아리방에 비치고 있었다.
“CA 시간에는 원래 종이 안 치 나?”
“으음, 글쎄.”
그 말을 듣고 문득 고개를 돌려 운동장을 내려다보았는데 뭔가 이상
했다.
“저기, 얘들아. 운동장 좀 볼래?”
“응?”
선아가 먼저 일어나서 왔고, 경원이도 삐진 표정으로 팔짱을 끼고 있다가 슬쩍 일어나서는 창가로 왔다.
“어떻게 생각해?”
운동장에는.
아무도 없었다.
“왜 아무도 없지?”
축구부라든가 농구부라든가 산책부 라든가.
가득은 아니어도 왁자지껄해야 하는데 이상하게도 텅 비어 있다.
‘상태창.’
‘상태창?’
평소 습관처럼 상태창을 꺼내서 시간을 보려 했는데 웬일인지 나타나 지 않았다.
나는 할 수 없이 휴대폰을 꺼내서 시간을 확인했다.
“설마... 우리가 얘기에 푹 빠져서... 시간이 너무 늦은 건... 다 집에 가 버렸고……
선아가 걱정스레 중얼거린다.
“아니. 정반대인 것 같아.”
“응?”
나는 휴대폰을 돌려 둘에게 화면을 보여 주었다.
“시간이 전혀 안 흘렀어.”
[2019년 3월 8일 금요일, 11:35]
괴담 동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