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화
다섯 번째 괴담 -
끝나지 않는 4교시 (2)
우리 셋은 조용히 동아리방에서 나와 5층 복도 한가운데 서 봤다.
“조용해.”
“그러게.”
우리 학교는 1학년은 1층, 2학년은 2층, 3학년은 3층이라는 심플한 구 조이다.
4층에 과학실이나 음악실 등 여러
실습실들이 몰려 있고.
5층은 정독실과 각종 동아리방, 다 용도실이 위치해 있다.
학기가 시작하고 첫 CA 시간인 지금, 동아리방이 몰려 있는 5층은 그 어느 때보다 시끄러워야 할 텐데 오히려 정반대다.
정적만이 흐르는 복도.
“살펴보자.”
“···응.”
선아가 조심조심 다른 동아리방의 창문 너머를 들여다봤고, 경원이도 여기저기를 기웃거린다.
언제 말다툼했냐는 듯, 이 이상한
상황 앞에 자연스레 다시 협조적으로 변하는 우리 셋.
“계십니까.”
나도 바로 옆의 댄스부를 향해 나 지막이 불러 봤지만 돌아오는 소리는 없다.
“여기는 아무도 없는 것 같은데.”
“밑으로 내려가 보자.”
우리는 4층으로 내려가 봤다.
“여기도 조용하네.”
“다들 어디 간 걸까.”
이어서 3층, 2층.
역시 아무도 없다.
그리고 1층.
“선생님들을 찾아보자.”
1층으로 가자마자 우리는 교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 봤다.
드르륵-
“계십니까~”
경원이가 교무실 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선아도 머뭇머뭇 고개를 돌리며 살피지만 역시 아무도 없다.
조용.
우리 셋은 다시 교무실 입구에 모
였다.
“저기... 우리 반으로 다시......
“응, 그래 보자.”
별 소득은 없겠지만 우리는 선아의 의견에 따라 교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우리 반에도 아무도 없으면 그냥 짐 챙겨서 집에나 가자.”
“···그랬다간 나중에 불려 가는 거 아냐, 부장?”
“애초에 이미 다들 어딘가로 사라 졌잖아. 우리도 학교에 있을 필요는 없겠지.”
“다들 어디 간 걸까……
오후의 햇살이 내리쬐는 조용한 학교.
원래라면 고등학생들의 시끌벅적한 생기로 가득해야 할 이 공간이 이렇게까지 조용하다는 건 괜시리 긴장 되는 일이었다.
“학교가 이렇게 조용한 건 처음 보네.”
“응… 무서워……
우리 셋은 찰싹 달라붙은 채 반까지 이동했다.
그리고 우리 반 앞에 섰는데, 그 안에 한 여학생이 앉아 있었다.
“우, 우왓.”
누군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 못 했기에 우리는 흠칫 놀랐다.
내가 애들을 다독여서 다시 한번 찬찬히 살펴보니, 본 적이 있는 얼굴이었다.
투명한 피부의 여학생.
갸름한 얼굴에 긴 흑발.
교육을 잘 받은 듯한 아주 예의 바른 소녀.
선아의 짝꿍.
인하윤.
그 여자애가 아무도 없는 빈 교실에서 혼자 태연히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우리가 온 걸 눈치 못 챈 걸까.
나는 손가락으로 툭툭 선아를 찔렀다.
‘네 짝꿍이잖아, 빨리 말 걸어 봐.’
선아가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나를 본다.
설마 새 학기가 시작된 지 일주일이나 다 돼 가는데 아직도 짝꿍이랑 말을 못 해 본 걸까.
경원이를 슥 쳐다보자 녀석도 여자 한테 면역이 없는지 눈을 피하며 모른 체한다.
‘또 내가 나서야 하는 건가.’
오후의 햇살이 내리쬐는 아무도 없는 우리 반 교실.
그 속에서 혼자 태연히 책을 읽고 있는 하윤이의 모습에서 섣불리 건드리기 어려운 신비로움마저 느껴졌다.
“···저기.”
고개를 드는 소녀.
“하윤이… 맞지?
“응, 안녕. 왜?”
언제 책을 읽고 있었냐는 듯이 하윤이는 바로 고개를 들어 친절하게 대답해 줬다.
이 애는 저번에도 이러더니, 분명 친절하지만 너무 즉각적이라 뭔가 인위적이란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어, 다들… 어디 간 거야?”
“CA 시간이잖아. 동아리방에 있겠지.”
하윤이가 태연하게 대답했다.
이 애, 아직 모르는 건가.
“그게, 우리가 지금 막 거기서 내려온 참이거든.”
“응?”
“지금 학교 안에 아무도 없어.” 하윤이가 물끄러미 나를 바라본다.
아니, 그…….
아무도 없다고 하면 좀 놀래든가 아니면 나와서 확인을 하든가.
“ 진짜.”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강조한다.
“그래.”
하윤이도 태연하게 대답한다.
후, 젠장.
나는 내 자리로 가서 가방을 싸기 시작했다.
선아랑 경원이도 우리 눈치를 보며 각자의 자리로 가서는 짐을 챙긴다.
“우리는 집에 갈 생각이야. 넌 어떡할래?”
하윤이가 가만히 앉아서 우리를 봤다.
이윽고 가방과 신주머니를 챙긴 후 우리 셋은 교실 앞에 섰다.
“저기······
나가기 전, 선아가 머뭇거리더니 자신의 짝꿍 하윤이를 돌아보며 천
천히 말했다.
“···같이 가자.”
그러자 하윤이가 고개를 비스듬하게 기울이며 드디어 대답했다.
“그럴까?”
“그러자……
그 말에 빙그레 웃으며 짐을 챙겨 일어나는 하윤이.
“알겠어. 짝꿍이 말하는 거면.”
그렇게 우리 넷은 가방을 메고 어색하게 학교를 나섰다.
“정말? 벌써 동아리방이 생겼어?”
“응, 하하.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 네.”
“ 대단하다~”
“너는 왜 교실에서 혼자 책 읽고 있었어?”
“나 도서부에 지원했다가 떨어졌 어.”
하윤이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대답 했다.
“정말? 경쟁률이 높았던 거야?”
“그랬나 봐~”
그래서 CA 시간 당일, 동아리도 없이 붕 떠 버려서 혼자 교실에 남아 있었던 건가.
‘갈 곳이 없다면 우리 괴담 동아리에 들어오는 것도 괜찮을지도.’
조용한 운동장.
하윤이랑 나의 목소리만 공기에 울려 퍼진다.
선아랑 경원이는 어색하게 우리를 따라 걷고만 있다.
‘골치 아프군.’
내가 경원이를 툭툭 치며 뭐라 말 좀 해 보라고 눈치를 주자.
“흠흠.”
녀석은 헛기침을 몇 번 하더니 허공을 보며 책 읽듯이 딱딱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감기는 추워서 걸리는 게 아니라고 한다. 북극에는 오히려 감기바이 러스가 없다고 한다.”
갑자기 뭔 소리야 씨발.
“정말? 몰랐어~”
하지만 태연하게 미소 지으며 맞장구를 쳐 주는 하윤이.
이 여자애는 저런 주제에도 잘 반응해 주는구나.
존경스러웠다.
경원이가 다시 헛기침을 하더니 귀 가 새빨개져서는 또 뭔가를 말한다.
“인간은 대부분 오른손잡이지만, 북극곰은 반대로 대부분이 왼손잡이라고 한다.”
“정말? 신기하다~ 너는 어느 손 잡이야?”
“나,나는 오른손잡이.”
“나는 왼손잡이~”
“그, 그렇구나.”
경원이가 허둥지둥하며 뭔가를 내 뱉으면, 하윤이가 어머, 하며 태연하게 반응해 주는 식.
나는 이 어색함을 더 이상 내가
짊어질 필요가 없다는 것에 안심하고는 선아에게 다가갔다.
선아도 어색해하다가 구도가 둘로 나뉘어지자 반가운 기색이었다.
“선아야, 학교에 아무도 없는 거 어떻게 생각해?”
« 으음 ’
선아가 눈썹을 찡그리며 고민한다.
“다들 우리만 놔두고 일찍 퇴근한 걸까……
“하핫! 그런 거면 좋겠다.”
선아의 순진한 대답에 나는 웃을 수밖에 없었다.
어느새 운동장을 지나 학교 정문에
이르렀다.
역시 경비실에도 아무도 없다.
“여기서 갈라서야 하나.”
우리 넷은 학교 정문 앞에서 마주 보고 섰다.
하교하기에는 너무나 이른 시간.
거리조차도 조용하다.
“정말 이상한 일이지만, 어쨋든 여기서 헤어져야겠네.”
“그러게……
선아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내 말에 맞장구쳐 줬다.
경원이는 분석하는 어조로 말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집으로 돌아가 보는 수밖에 선택지가 없겠지.”
“희한하구만.”
선아가 물끄러미 땅만 보고 있다.
나야 집에 돌아가면 게임도 하고 티브이도 보고 쉴 수 있어 좋지만, 역시 선아는 이 시간에 일찍 집에 돌아가 봤자 할 게 없기 때문이겠지.
나는 결심하고는 말했다.
“저기, 선아야.”
“응……?”
“나랑-”
나랑 같이 시간을 보내자고 말하려던 그 순간.
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 에에에엥-
사이렌 소리가 사방에서 울려퍼진다.
« 2”
“뭐야?”
“음?”
우리 넷은 놀라서 사방을 둘러봤
다.
그 순간, 사이렌 소리보다 더 큰 굉음이 우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부우우우우우웅-
비행기였다.
“전투기다!”
경원이가 소리쳤다.
그러고보니 평소에 보던 비행기랑은 다르게 생겼다.
그런 전투기 5대가 일렬 중대로 연기를 뿜으며 우리를 스치고 날아 갔다.
“왜 이렇게 낮게 날지?”
사이렌 소리와 전투기의 굉음 사이
에서 경원이가 소리쳤다.
“몰라! 무슨 일인 걸까!”
나도 귀를 막고는 소리쳤다.
지금 서 있는 위치에서는 건물들 때문에 시야가 가려져 잘 보이지 않았다.
“옥상이다! 옥상으로 올라가서 확인하자!”
“으응!”
그 말을 한 직후, 멀리서 폭발음이 들렸다.
쿠궁, 쿠우우웅.
그리고 전투기 몇 대가 더 굉음을 내며 우리 위 상공을 지나 날아간
다.
쌔애애애앵_
에에에 에에에에엥--
사이렌 소리와 전투기 소리, 그리고 멀리서 들려오는 폭발음이 얽히 고설켜 귀를 먹먹하게 만들었다.
갑작스런 상황 변화에 정신없는 와 중에도 우리는 근처에 올라갈 만한 건물이 있는지 주변을 살폈다.
휘이익-
바람이 강하게 몰아치기 시작한다.
폭발의 영향인 걸까.
근처의 아무 건물에나 들어가 보려 했지만 문이 잠겨 있다.
“학교로 다시 가자!”
“ 학교?”
“우리 동아리방으로! 거기서는 멀 리까지 보여!”
“그래!”
경원이가 악을 쓰며 대답했다.
쿠궁. 쿠구우웅.
멀리서 다시 폭발 소리가 들린다.
뜨거운 바람이 그 근원지에서부터 강하게 불어온다.
쓰레기와 알 수 없는 먼지들이 휘 날려 눈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선아와 하윤이의 머리카락이 마구
휘날린다.
둘은 눈을 찡그린 채 바람에 맞서 치마와 머리를 붙잡느라 속도를 높이지 못했다.
나와 경원이는 그런 둘의 등 뒤를 떠밀다시피 하여 간신히 학교 건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벌컥!
“허억, 허억.”
“헥헥.”
건물 안으로 들어오자 정신없던 소리와 바람이 좀 멎었다.
“괜찮아?”
하윤이의 부드러운 이마에 땀방울
이 맺힌 게 보인다.
“켁, 켁
선아도 마른기침을 하며 숨을 몰아 쉰다.
“자, 어서. 올라가자.”
우리는 서로를 추스려 주고는 다시 계단을 올라갔다.
5층까지 가는 도중에도 멀리서 끊 임없이 폭발음과 전투기 소리가 들려온다.
퍼펑, 펑.
그리고 그 소리와는 다른, 처음 듣는 소리가 섞여 온다.
구오오오오오 오오 .
커다란 무언가가 내지르는 듯한 낮은 저음.
“허억, 헉.”
“헥헥.”
쿠궁. 쿠구구궁.
쌔애앵-
퍼펑, 펑.
구오오오오오.
우리는 정신없이 5층으로 올라갔다.
그사이에도 누구와도 마주치지 않았다.
그리고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동아리 문을 열어젖히고는 창문으로 모였다.
마른 오후의 햇살.
청명한 하늘, 끊임없이 날아가는 전투기.
그리고 멀리 보이는 빌딩숲. 그 사이로.
“저게… 뭐야……?”
어마어마하게 거대한 무언가가 두 발로 서 있었다.
크다. 정말 크다.
아파트보다. 산보다.
“···미친.”
경원이가 벌벌 떨며 욕을 내뱉는다.
“주, 준아……
선아 역시 덜덜 떨더니 자리를 바꿔 내 옆으로 온다.
나는 말없이 선아의 손을 잡았다.
다시 전투기 몇 대가 굉음을 내며 하늘을 스치고 날아가는 게 창문 너 머로 보인다.
그리고 미사일을 발사, 그 발사체는 곧장 공기를 뜷고 날아가 마왕에게 직격한다.
쿠구구구구구궁.
순간 번쩍하더니 눈이 부실 정도로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지금까지의 폭발과는 다르다.
하늘이 붉게 물들며 거대한 버섯구 름이 천천히 피어오르는 게 보인다.
마왕에게 핵폭탄이 직격한 것이다.
창문의 순백색 커튼이 미친 듯이 펄럭인다.
충격파가 멀리서부터 퍼져 온다.
연기구름이 빠르게 이쪽 빌딩들까지 뒤엎으며 모조리 박살 내며 오는 게 보인다.
폭발의 충격이 땅을 타고 여기까지
오고 있다.
“주, 준아!”
선아가 내 손을 꽉 붙잡는다.
경원이도 숨을 들이켜며 뒷걸음질 친다.
하윤이는 머리를 흩날리며 멍하니 그 광경을 본다.
“준아! 준아!!”
폭발의 영향이 우리 쪽으로 점점 다가오고 선아가 비명을 지른다.
나 역시 선아의 손을 꽈악 잡아 준다.
“준아아!”
콰아아아아아아앙
번쩌어어어억-
건물이 몽땅 쓰러지고 무너져 날아 간다.
우리의 육체도 빠르게 소멸해 가는 게 느껴진다.
* * *
스윽-
천천히 눈을 떳다.
“그리고! 일본놈의 새끼들이 우리 땅 곳곳에 말뚝을 박아서 정기를 죄 다……
한복을 입은 국사 선생님께서 일본 얘기가 나오자 흥분해서는 침을 튀 기신다.
교실 나무 문에 달린 창문 너머로 수업이 일찍 끝난 다른 반 학생들이 눈썹을 휘날리며 급식실로 달려가는 게 보인다.
내 옆자리에는 덕훈이가 시종일관 기분 나쁜 웃음을 지으며 교과서 구 석에 이상한 캐릭터를 낙서하고 있다.
그리고.
옆 분단으로 고개를 돌리자 선아가 동그란 눈을 커다랗게 뜨고는 나를 쳐다보는 게 보인다.
« 2”
이번엔 고개를 앞으로 돌렸다.
제일 앞자리의 경원이가 식은땀을 흘리며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서로의 눈 치만 보는 우리 셋.
하윤이 역시 멍하니 앞만 보는 게 보였다.
띵동~ 댕동~♬
종이 치자 성격 급한 남학생들 몇
몇이 후다닥 교실 문을 열고 급식실로 달려가는 대열에 합류했다.
선생님은 할 말이 아직 많으셨는지 시무룩한 표정이셨지만, 학생들에겐 나라의 역사보다는 먹고 사는 게 더 급했던 모양이다.
반 아이들이 쏜살같이 교실을 빠져 나가는 가운데.
우리 넷은 가만히 반에 남아 있다.
“저기······
먼저 입을 연 것은 의외로 선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
경원이가 천천히 고개를 숙이면서 중얼거린다.
“어떻게, 어떻게 이런 일이……
우리는 그날 4교시로 함께 되돌아 왔다.
괴담 동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