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화
다섯 번째 괴담 -
끝나지 않는 4교시 (4)
“그리고! 일본놈의 새끼들이 우리 땅 곳곳에 말뚝을 박아서 정기를 죄 다 막아 버렸다! 요새 노 재팬 하고 있잖아! 일본한테 돈을 쓰지 말자, 우리 제발! 잘 알아보고……
국사 선생님이 침을 튀겨 가며 열 변을 토하는 가운데, 나는 조용히 생각에 잠겨 있었다.
‘이번에는 내가 생각해 내라니
‘내가 무슨 수로?’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먼저 녀석에게 그걸 강요했던 건 오히려 나다.
‘ 후우.’
선생님이 보든 말든 머리 위로 팔 짱을 낀 채 한숨을 쉬었다.
안경원.
기회가 된다면 한 대 때려 줄 테다.
‘하지만 당장은 어떻게 해야 하지? 난 괴담 같은 거 전혀 아는 게 없는데.’
그건 지금까지 옆에서 봐 온 경원이 본인이 더 잘 알 것이다.
그럼에도 나를 시험하기 위해, 생각해 내 보라는 말은 무슨 뜻일까.
설마, 지금 이 상황이 일반 상식만으로도 알아낼 수 있는 상황이라는 말인가.
그리고.
‘내가 틀렸다고? 전부?’
이 기괴한 상황에 대한 지금까지의 내 추측이 전부 틀렸다.
나는 내가 어떤 주장을 펼쳤었는지 다시 한번 곰곰이 되짚어 보기 시작 했다.
먼저 시계가 멈췄었다.
그리고 전교생이 사라졌다.
괴담들이 순서가 뒤죽박죽인 채 찾아왔고, 죽음을 맞이할 때마다 우리는 계속 시간을 되돌아가고 있다.
그걸 반대로 생각해 본다면?
시계는 멈추지 않았다.
전교생은 사라지지 않았다.
우리는 시간을 되돌아가고 있는 게 아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전혀 논리에 맞지 않는다.
아니, 논리에 맞지 않는 건 이것뿐
만이 아니다.
마왕은 3년 뒤에 나타났어야 했다.
정전 때 안내 방송을 듣고도 교실에 앉아 있다면 살았어야 했다.
웃는 여자는 또 어디서 튀어나온 건지.
그리고 왜 혼자가 아니라 넷이 함 께 회귀하고 있는…….
‘아니, 회귀가 아니다.’
나는 경원이의 말을 떠올리며 생각을 고쳤다.
그렇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우리는 지금 회귀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또 내가 어떤 말들을 했더라.
녀석의 멱살을 잡고는.
‘ 설마.’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닌텐도를 부수자… 응? 무슨 일인 가?”
“···학생?”
열변 중 갑자기 일어선 나를 보고 당황하신 선생님.
반 학생들의 시선도 내 쪽으로 확 쏠렸다.
쟤 뭐야?
이름이 이준이던가?
갑자기 왜 일어섰대?
몰라.
수근수근.
저벅. 저벅.
나는 개의치 않고 수군대는 학생들의 책상 사이를 가로질러, 제일 앞 자리에 있는 경원이에게 갔다.
“저기, 학생? 학생?”
말리는 선생님을 무시하고는 경원이의 뒤에서 멈췄다.
그리고 그 등에다 대고 말했다.
“이거, 현실이 아니구나.”
“···쿡쿡.”
경원이가 작게 웃으며 여전히 등을 돌린 채로 묻는다.
“그럼? 현실이 아니면?”
나는 숨을 들이쉬고는 대답했다.
“이거, 꿈이야. 여기 선생님도. 학교도. 반 아이들도.다.”
“쿡쿡.”
“너랑 나 그리고 선아와 하윤이. 우리 넷만 빼고 전부 다 꿈속 인물 이야.”
“증명할 수 있어?”
응
작게 웃는 녀석.
여전히 등을 돌린 채 말한다.
“해 봐.”
녀석이 인정할 수밖에 없는 방식으로 증명해 주겠다.
체험파니 뭐니 그딴 거 집어치우더 라도, 나한테는 너랑은 다른 재능이 있으니깐.
너같이 정직하게 지식의 양으로만 승부하는 타입은 절대로 흉내 낼 수 없는 나의.
“···저기, 학생?”
반 아이들이 웅성거리며 나를 본
다.
“학생? 꿈 아니네. 자리에 앉게나, 크흠.”
선생님이 민망해하는 표정을 지으셨다.
“아무리 공부가 싫다지만 꿈이라 니. 허허, 참… 응? 앉아 주게.”
웅성웅성.
어이없어하며 나를 보는 반 학생 들.
선아 역시 놀란 표정, 그 옆의 하윤이도 나에게 집중하는 게 보인다.
“그렇게 서 있지 말고 돌아가려무 나. 진정하고. 일본 얘기 마저 해야
하니깐.”
“아니, 이거 꿈인데 제가 왜 돌아가야 하죠? 꿈이니깐 내 마음대로 할 건데요.”
“그, 꿈이 아니니깐 돌아가 앉으라는 말이라네.”
점잖게 타이르시는 선생님.
나는 당황한 기색을 띠며 묻는다.
“그런가요? 아니었나요?”
“그래, 아니라네. 뭘 착각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자리에 앉게나.”
“정말로 꿈 아니에요?”
“저기, 아니라니깐 그러네. 허허, 참.”
반 학생들도 나를 보며 수군대거나 키득댄다.
쟤 좀 봐.
뭐야, 이상해.
“진짜요? 꿈 아니에요?”
“사람 민망하게! 꿈 아니고 현실이 네, 현실! 제발 좀!”
“하지만 꿈이면 어떡해요! 꿈속에 서도 공부하기는 싫단 말이에요!”
“녀석아! 그럼 현실이면 어떡할 거 냐! 현실이니깐 자리에 돌아가 앉으라니깐!”
“선생님이야 꿈속 인물이니깐 그렇게 주장하시는 거겠죠!!”
“야 이놈아! 현실의 인물이니깐 이렇게 말하는 거다! 돌아가 빨리!”
“싫어 싫어! 나 그냥 꿈인 걸로 믿을래!”
“자리로 돌아가라니깐! 17살이나 먹은 놈이 뭐 하는 짓이야!”
“정말 꿈 아니고 현실이에요?”
“그래에에에에에! 현실이야아아아아아!”
“장담하실 수 있어요?”
“장담할 수 있네만.”
“정말요?”
“내 손에 장을 지지마! 꿈 아니고 현실이네 현시이일!”
“그럼 지금 몇 시예요?”
“그야 당연히 삼만육천오백팔십 시 아닌가아아아아아아아!!!!!!!!!!!!!”
“몇 시라구요?”
“이만팔천구백삼십육 시! 몇 번이고 말해 줄 수 있다네!”
“그렇군요. 그럼 몇 년 몇 월며칠 인지도 좀 가르쳐 주실래요? 제가 기억력이 안 좋아서.”
“그거야 당연히이이!”
선생님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달아오르셔서는 외치신다.
“삼만천구오백이십삼 년 일이사 월 공육칠십구백 일 아닌가아아아아아아아아앗!!!!!!!!!!!!!”
순간, 교실에 흐르는 정적.
하윤이가 천천히 손을 들더니 깨끗 한 목소리로 지적했다.
“선생님, 숫자가 이상해요.”
그러자 국사 선생이 멀뚱멀뚱 허공을 보더니 말한다.
“그런가? 들켰구만.”
저벅저벅-
드르륵-
선생님은 무표정으로 교과서와 짐을 챙기더니 교실을 슥 나가 버렸다.
어이없다는 듯 열린 교실 문을 바라보는 선아.
“후.”
나는 한숨을 쉬고는 교단을 빙 돌아 경원이의 옆자리로 이동했다.
그리고 어깨가 넓은 훈남, 경원이의 짝궁인 반장에게 말했다.
“야, 비켜.”
“어.”
반장은 무표정으로 대답하고는 슥 일어섰다.
나는 그 자리에 앉아서는 말했다.
“만족해?”
“···부장.”
경원이가 흡족한 표정으로 웃으며 대답했다.
“머리 좀 굴리는군.”
선아랑 하윤이도 자리에서 일어서서는 우리 쪽으로 왔다.
하윤이가 우리 뒷자리의 학생 두 명에게 나오라는 손짓을 하자 그들 도 멍하니 자리를 비켰다.
우리 넷은 의자를 돌려 서로 마주 보고 앉았다.
다른 학생들은 무표정으로 가만히 우리만 쳐다보고 있을 뿐이다.
“저기, 어떻게 된 거야? 난 이해가 잘……
선아가 그런 학생들의 눈치를 살피며 땀을 삐질삐질 흘린다.
나는 선아에게 떠올려 보라는 듯이 차근차근 설명했다.
“처음에 우리가 이상한 걸 눈치챈 게 언제였지 선아야?”
“그야... 동아리 방에서 무서운 얘 기를 하다가, 시계를 봤더니 멈춰 있길래……
나는 끄덕였다.
“우리는 그 동아리 방에 어떻게 갔지?”
선아가 내 질문이 이상한지 고개를 갸웃거린다.
“밥 먹고 CA 시간이니깐… 올라간 거 아니야?”
“아니야.”
“CA 시간이라 올라간 거라면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어.”
선아는 잠시 고민했지만 이내 알 수 없다는 듯 궁금한 표정을 지었다.
“이상한 점? 뭔데?”
“다른 부원들.”
“다른... 부원? ...아!
선아가 뭔가를 눈치챈 듯 눈을 크 게 떴다.
“진희!”
“맞아.”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덧붙였다.
“그리고 우리 동아리 담당이라는 장화은 선생님도.”
그렇다.
아직 뵌 적은 없지만, 그분은 우리 동아리에 공식적으로 이름이 올려진 담당 선생님.
첫 동아리의 활동 시간이라면 당연히 오셔서 지도를 해 주셨어야 한다.
그리고 진희.
아무리 몰래 빼돌려진 인원이라지만, CA 시간이라면 하윤이처럼 특별한 사정이 있지 않는 이상 다들 자기 동아리로 가야만 한다.
그런데 그 두 사람이 없다.
이번 한 주 동안 셋이 자주 어울려 다녀 위화감을 못 느꼈지만, 사실 그 시간이 정말 CA 시간이었다면 진희랑 화은 선생님이 자리에 없는 건 분명히 이상한 일이었다.
“꿈속의 꿈이야.”
내가 간단하게 정리해 줬다.
“영화 인셉션 혹시 봤어?”
“아니.”
“꿈속에서 또 꿈을 꾼다는 주제를 다룬 영화인데. 안 봤구나. 그럼 혹시 가위는 눌려 봤어?”
“응, 가위는 몇 번……
“그럼 혹시 꿈속에서 분명히 깨어 난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꿈속이었던 적 있어?”
“꿈… 속.”
선아가 시선을 위로 향하며 곰곰이 생각하더니 대답했다.
“몇 번… 아니, 자주. 아침에 분명히 일어나서 세수하고… 양치까지 다 했는데 꿈이었던 적이… 근데 일
어나서 허겁지겁 준비했더니, 또 꿈이고……
선아가 말을 하다 말고 얼굴을 붉 힌다.
수면 패턴이 엉망이라 아침에 자주 지각하는 선아에게는 흔한 일이었나 보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현상이 바로 그거야. 깨어날 때마다 다시 꿈의 시작점으로 돌아가고 있어. 그리고 꿈에서 가장 쉽게 깨어나는 방법은 바로 죽는 거지.”
“우리는 몇 번이고 죽으면서 시간 이 되돌려졌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은 꿈속의 꿈속에서 깨어나며 같은 꿈을 반복해서 꾸고 있을 뿐인 거야.”
선아가 놀란 표정으로 입을 벌린다.
그렇다. 우리는 회귀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 대표적인 단서가 바로.
[체크 포인트에서 다시 시작합니다.]
[로딩중…….]
죽음을 맞이하며 의식이 희미해질 때마다, 흐릿한 기억 너머로 저런 문구가 몇 번이고 떠오른 후에야 되돌아왔었는데.
하지만 이번에는 그 문구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몇 번이나 죽었는데도.
“꿈? 다 같이? 어떻게 그런 일이……
“미안. 그것까지는 모르겠어.”
나는 어깨를 치켜세우며 경원이를 쳐다봤다.
경원이가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후훗, 부장. 잘 설명해 주었어.”
그리고 바통을 이어받아 나머지를 설명하려는 듯 안경을 치켜세웠다.
“시계가 멈춘 것처럼 보였던 것과 방금 선생의 이상한 반응. 그건 RC 체크라고 불리는 거야.”
“RC 체크?”
“‘Reality Check’ll 약자다. 번역하자면 현실 검사라는 거지.”
설명충의 본능이 서서히 발동되는 지 경원이가 안경을 빛낸다.
“뇌는 잠을 자는 동안 여러 기능이 쉬게 되는데, 특히 인지 능력이 굉 장히 부정확해져. 꿈속에서 아무리
멀쩡히 판단하고 말하는 것 같더라 도, 깨고 나서 다시 떠올려 보면 정상적인 논리의 흐름이 아닌 걸 알 수 있지.”
“···그래서?”
“그게 가장 극단적으로 나타나는 게 바로 숫자다. 숫자를 통해 지금 이 꿈인지 현실인지 검사해 볼 수 있는 거야.”
경원이가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 냈다.
“자, 지금이 몇 시지?”
핸드폰 시계에는 11시 35분이라고 적혀 있었다.
“11시 35분… 역시 멈춰 있잖아.”
“멈춘 게 아냐. 이번에는 연속해서 확인해 봐.”
경원이가 숫자를 슬쩍 가리더니 잠시 후 다시 손을 뗐다.
시계의 숫자는 12시 28분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05시 73분.
13시 24분.
75시 52분.
잠시 고개를 돌리고 다시 시계를 볼 때마다 숫자가 바뀌어 있었다.
“알겠어? 뇌는 잠을 자는 동안 숫 자에 굉장히 약해진다고. 감정적인 흐름은 현실과 똑같이 흘러갈지 몰라도, 수학적인 사고에 있어서 만큼은 부정확해지는 거지.”
“세상에, 어떻게……
선아가 아직도 믿기지 않는 듯 시계를 보며 눈을 껌뻑거렸다.
“11시 35분은 아마 우리 중 누군 가가 꿈을 꾸기 전 가장 최근에 확인한 시간일 거야. 그게 기억에 남
아 꿈속에서도 그 숫자가 우선 뜨는 것뿐이고, 이렇게 연속해서 보면 자꾸 달라지는 걸 알 수 있지.”
“신기해.”
“그래서 꿈속에서는 가족의 핸드폰 번호가 생각이 안 나 쩔쩔매기도 하고, 집 현관문 비밀번호를 까먹거나 계좌번호를 계속해서 잘못 누르는 현상들이 벌어지는 거야.”
“우와아.”
선아가 신기하다는 듯이 설명을 듣고 있다.
“방금 부장이 선생을 쫓아낼 수 있었던 것도 발상을 전환해 RC 체크를 역이용한 덕분이지. 훌륭해. 이건
인정할 수밖에 없군.”
“준이는 알고 있었구나……
경원이가 흐뭇하게 말하자 선아가 대단하다는 눈빛으로 나를 봤다.
하윤이도 턱에 손을 괴고는 시선을 내 쪽으로 향했다.
나는 머쓱해하며 대답했다.
“뭐, 별거 아냐. 중요한 건 지금부터 어떻게 할 거냐는 거지.”
“그래, 그게 문제다.”
경원이가 후우 하고 한숨을 내쉰다.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 부장?”
“뭐?”
경원이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나에 게로 쏠렸다.
뭐지.
왜 나한테 묻지.
“나한테 왜? 너는 진작에 꿈인 걸 알고 있었잖아. 나보고 알아맞혀 보라며. 빠져나갈 방법도 네가 아는 거 아냐?”
“그게 말야.”
경원이가 다시 한숨을 내쉰다.
“내가 아는 꿈속의 꿈 괴담들은 하나같이 그냥 어쩌다 보니 깨어났다는 결말밖에 없어.”
“응?”
우리가 놀라서 반문하자 경원이가 안경을 매만졌다.
“그냥, 악몽 속에서 헤매다 보니깐 깨어났다, 온통 그런 결말이다.”
“인마, 너……
서서히 열이 뻗치기 시작했다.
자기도 모르면서 나를 시험해 본 거였다니!
“기고만장해서 맞혀 보라고 하더 니.”
“…사과할게, 부장. 자존심이 앞섰 어.”
“사과는 그렇게 하는 게 아니지.”
나는 팔을 걷어붙였다.
“안경 벗고 어금니 꽉 깨물어.”
U | 99
무언가 각오했다는 듯 순순히 안경을 벗더니, 두 눈을 꽉 감는 녀석.
“간다.”
“준아······!”
선아가 말릴 새도 없이 나는 크게 팔을 휘두르며 녀석의 이마로 손을 날렸다.
부웅-
딱콩-!
“아얏!”
움찔하더니 이마를 문지르며 어리
둥절한 표정을 짓는 경원이.
내가 세게 때릴 줄 알았나 보다.
“서로 그만 재고 친하게 지내 보자, 경원아.”
가만히 나를 쳐다보는 부잣집 도련 님.
잘난 맛에 사는 범생이보다는 게으른 잔머리꾼이 상성상 위에 있기에 내가 질 일은 없겠지만, 그래도 이렇게 기싸움이나 하다가는 조직이 제대로 돌아갈 리가 없다.
이건 여기서 매듭짓자.
“악수하고 끝내자.”
“자.”
손을 내밀자 가만히 쳐다보더니, 천천히 오른손을 내밀어 악수를 하는 녀석.
“끝. 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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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던 설명 계속해. 왜 내가 답을 알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래. 그건 말야……
잠시 멍하니 있던 녀석이 설명을 할 시간이 되자 정신이 드는지 안경을 매만진다.
“···부장이라면 어떻게 할지 알 거
라고 생각한 이유. 그건 부장이 지금까지 나한테 던졌던 질문, 그 사고방식 때문이야.”
질문? 혹시 그건가.
안내 방송 괴담 때도 엄마 귀신 괴담 때도.
그리고 본인은 기억 못 하겠지만, 매뉴얼 웃는 여자 괴담 때도.
나는 경원이에게 얼척 없는 질문 들을 던진 적이 꽤 많다.
호러에 대한 이해도가 없다시피 한 사람이기에.
“나 같은 타입은 그저 주어진 정보
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지식을 쑤셔 넣기 바빠. 그래서 부장이 이야기의 빈 부분에 대해 질문했을 때 매번 굉장히 당황할 수밖에 없었지.”
“나처럼 그저 머리에 단순히 구겨 넣는 타입은 절대 생각해 내지 못 할, 부장만의 관점이 있다고 생각해. 그걸 발휘해 줬으면 하는 거야.”
어느샌가 페이스를 되찾은 녀석이 안경을 고쳐 쓰자 창문으로 들어온 햇빛이 반짝 반사되어 비쳤다.
프라이드는 높지만 인정할 때는 또 빠르게 인정할 줄 아는 녀석이다.
“재료는 다 갖추어져 있어. 괴담의 정체도, 이야기도, 상황도, 전부. 이 제 이 재료들을 섞어서 해결책을 제 시해 줬으면 해.”
“당황스럽겠지만, 잘 생각해 봐.”
“내가?”
“왠지 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런 예감이 들어.”
녀석이 분석한 정보로 내린 결론이 그거란 말인가.
‘나라면 할 수 있다……
나는 침음을 삼키며 고개를 뒤로
젖혔다.
선아가 두근두근하는 표정으로 나를 본다.
하윤이도 흥미롭다는 듯 나를 살핀다.
녀석이 주장하고 있는 나만의 관점 이란 것은, 아마 내 타고난 잔머리를 두고 하는 말.
갑자기 인정받으니 쑥스럽기는 하지만.
틀린 말은 아니다.
이렇게까지 모든 게 명백히 드러난 상황에서는, 더 이상 지식을 늘어놓기보다는 있는 단서들을 이리저리
꼬아 섞을 줄 아는 사람이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내가 그 역할에 제격이라는 건가.’
흠.
어쩌지.
반복되는 꿈.
어떻게 해서 깨어날까.
죽는 건 답이 아니다.
그래 봤자 다시 거짓 깨어남을 겪을 뿐이다.
그렇다고 여기서 아무리 깽판 쳐 봤자 답이 없다.
이미 우리는 숨이 찰 때까지 달려
도 보고, 충격도 먹어 보고, 사지도 잘려 보았지만 꿈에서 깨지 않았다.
그렇다면.
방법은 그것뿐인가.
“한 가지 떠오르는 게 있는데.”
“어떤 거?”
선아가 궁금해하며 묻는다.
나를 돌아보는 세 사람.
“우리 반대로 한 번 생각해 봐야 할 듯싶어.”
괴담 동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