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담 동아리-30화 (30/130)

30 화

여섯 번째 괴담 - 수능 금지곡 (4)

똑. 똑. 똑.

누군가가 조용히 동아리방의 문을 두드린다.

우리는 깔깔대며 웃다가 놀라서 급하게 숨을 멈췄다.

똑. 똑. 똑.

다시 한번 문을 노크하는 소리.

나는 천천히 뒤돌아보았다.

선아가 국사책의 한 면을 찢어서 붙여 놓은 동아리방 출입문의 유리 창.

복도에서 들어오는 빛이 종이를 투 과해 비치는데, 그곳에 사람의 인영 이 보였다.

검은 실루엣으로만 짐작해 보자면 머리가 긴 여성의 상반신.

똑. 똑. 똑.

다들 손으로 입을 막고는 필사적으로 소리를 죽여 보지만 소용없는 짓이다.

방금까지 우리가 낸 웃음소리로 이 미 들켰을 것이다.

나는 할 수 없이 문 앞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누구세요?”

“선생님이야.”

“선생님?”

어디선가 들어 본 적이 있는 목소리였다.

선아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화은 쌤……

그러고 보니 이 목소리는 우리 괴담 동아리의 담당 선생님이신 장화은 선생님의 목소리였다.

“여기는 어쩐 일이세요?”

그러자 종이 사이로 비치는 그 여인의 그림자가 천천히 창문에 얼굴을 갖다 대더니 속삭였다.

“좀… 니……?”

“뭐라구요?”

너무 작아서 잘 들리지 않는다.

나는 창문으로 천천히 귀를 가져다 댔다.

종이가 붙은 유리창을 사이로 서로 얼굴을 맞댄 상황.

“문 좀… 열어… 주겠니……? 후우

순간 선생님의 속삭임이 귀를 직격

했다.

‘히익.’

온몸에 기분 좋은 소름과 함께 피 부에 닭살이 돋았다.

ASMR이라고 하던가.

이런 상황에선 뜬금없지만 순간 다 리에 힘이 풀릴 뻔했다.

나는 꿋꿋하게 문밖의 인영을 향해 다시 물었다.

“왜요? 지금 밖에 위험해요?”

선생님도 지금 정신이 훼까닥 한 상태일지도 모르니 섣불리 열어 줘 서는 안 된다.

철저히 점검해야 한다.

“…이 ...이.”

“네?”

선생님께서 뭐라고 속삭이신다.

왜 저렇게 작게 말하는 걸까.

수상하기는 했지만, 바깥이 온통 정신병자 천지라면 저렇게 조심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뭐라구요?”

내가 귀를 기울이자 간신히 단어가 들렸다.

“가까이... 더 가까이……

“귀를 가까이 대라구요?”

내가 종이가 피부에 달라붙을 정도

로 유리창에 완전히 귀를 밀착하자.

“후우~”

갑자기 선생님이 귓가에 한숨을 불어 넣으셨다.

“히익.”

소름.

팔다리에서 힘이 쭉 빠지며 이상한 야릇함이 온몸을 관통했다.

정말 귀에 한숨이 들어온 건 아니지만, 사람은 소리만으로도 신경이 완전히 반응할 수 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잘 모르는 부원들은 갑자기 다리에 힘이 풀려

부들거리는 나를 궁금한 눈빛으로 쳐다봤다.

나는 부원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자세를 다시 고치곤 밖을 향해 말했다.

“밖에 무슨 일인데요? 왜 여기 들어오시려 해요?”

“여기… 귀 대봐……

선생님께서 천천히 속삭이셨다.

나는 선생님께서 제정신이신지 확인해 봐야 한다는 사명감과 어느 정도 이 상황을 즐기는 듯한 느낌으로 다시 한번 귀를 대었다.

잠시 정적이 흐르더니, 다시 한번.

“후우~”

“히이 잇.”

다시 온몸을 관통하는 짜릿함.

다리부터 손가락이 모두 오그라드는 기분 좋은 소름이 몸에 가득하다.

나도 몰래 올라가는 입꼬리를 부원 들에게 감추고는 물었다.

“선생님. 저, 저기. 제정신 맞으세요……?”

부원들은 선생님이 내뱉는 야릇한 한숨을 못 들었을 터.

그저 심각한 표정, 걱정하는 눈초

리로만 나를 쳐다볼 뿐이다.

“그럼... 선생님 멀쩡해… 얼른... 이 문 좀… 열어 줄래?”

선생님께서 나른하게 읊조리는 목 소리로 중얼거리셨다.

나는 호흡이 거칠어지는 걸 느끼며 다시 한번 물었다.

“어떻게 증명할 건데요? 멀쩡하시 단 걸?”

그러자 선생님은 다시 한번 뭐라고 속삭이셨다.

나는 무언가를 기대하는 감각으로 유리창에 완전히 찰싹 귀를 갖다 붙였다.

귀에 달라붙은 선아의 뜯겨진 국사 책 페이지 너머로 차가운 유리의 온 도가 느껴졌다.

그리고 선생님의 야릇한 중얼거림 도.

“들여보내 주면... 선생님이 귀에 바람 불어 줄게… 응?”

유혹하듯이 속삭이는 목소리.

“자... 후우~”

“히 잇.”

우히힛, 하는 웃음소리가 마음에서 저절로 새어 나왔다.

“자... 후우~ 반대편 귀도... 갖다 대 봐… 기분 좋으니깐……

나는 부원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고개를 돌렸다.

“아~ 선생님이 뭐라고 하시는 건 지 잘 안 들리네. 다른 쪽 귀로

“자, 후우~”

“이힛. 우히힛

“기분 좋지? 응? 후후.”

이상하게 쳐다보는 선아의 표정을 보고 가슴이 철렁해서 올라간 입꼬 리를 내렸다.

“서... 선생님. 잘 안들리는데… 다시 한번……

“우후후… 문 열어 주면 더 해 줄

게… 귓가에 대고… 노래도 불러 줄 테니깐……

아기를 자장가 태우듯이 달래는 속삭임.

나는 헤벌쭉한 표정으로 귀속을 직격하는 연상의 목소리를 즐겼다.

“그러니까… 문… 열어 줄래? 응?”

남자가 어리광 피우고 싶게 만드는 말투.

그러고 보니 저번에 선생님과 화장 실에서 조우했을 때도 이런 말투를 쓰셨었다.

이 선생님은 무당 집안이라더니, 귀신에 빙의된 것처럼 괴담에 홀리

는 타입인 건가.

그리고 괴담에 홀리면 약간 이런… 이상한 방향으로 정신이 맛이 가는 걸지도.

황홀한 기분 가운데서 머릿속으로 문득 그런 생각이 스쳐 지나간 순 간.

파앗-

[인물 장화은에 대한 이해도가 20 올랐습니다.]

눈앞에 뜬 메시지에 간신히 정신을 차렸다.

“가세요, 선생님. 제정신 아니신 것 같아요.”

내가 흔들린 적 없는 척 단호한 목소리를 가장하며 창문에서 귀를 떼는 순간,

그 사이에 붙어 있던 선아의 국사 책 종이가 뺨에 달라붙은 채 그대로 딸려왔다.

순간 놀란 듯 숨을 들이켜는 부원 들.

나도 무슨 일인가 싶어 뺨에 붙은 종이를 뗀 후 유리창을 보고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문... 열어 줄래? 선생님도… 들어 가자……

“선생님.”

나는 침착하게 물었다.

“왜 뒤돌아보고 계세요?”

그렇다.

누군가 볼까 봐 막아 놓은 종이가 뺨에 달라붙어 떨어지며 보인 유리 창 너머엔, 뒤돌아선 선생님의 상반 신이 있었다.

똑. 똑. 똑.

장화은 선생님께서 다시 한번 문을 노크하셨다.

뒤돌아선 채 등 뒤로 손을 두드리며.

똑. 똑. 똑.

“주, 준아….”

선아가 덜덜 떨며 중얼거리는 게 들렸다.

유리 하나를 사이에 두고 바로 옆에서 속삭이는 것처럼 들렸는데, 어떻게 된 일인 걸까.

괴현상이다. 당장 쫓아내야 한다.

나는 애써 침착한 목소리로 다시 말했다.

“가세요, 선생님. 여기 비좁아서 공 간 없어요.”

“넓어... 보이는 걸... 나도 들어가 자……

뒤돌아선 채 중얼거리시는 선생님.

“아니에요, 좁아요. 가세요.”

“넓어 보이는데, 저번보다……

“그걸 뒤돌아선 채 어떻게 보시는 데요? 선생님 확실히 이상해요. 가세요.”

“분명히… 저번보다 넓어졌는데… 나도 들어갈 수 있겠는걸.”

나는 동아리방의 공간이 확장된 걸 부원들에게 들킬까 봐 허둥댔다.

“아니라니깐요. 그대로예요. 방이 어떻게 넓어집니까. 공사한 것도 아

닌데.”

“아닌데… 넓어졌는 걸… 두 배 정도……

“아 씨, 아니라니깐요!”

나는 허둥대며 아무 말이나 외쳤다.

“여기 진짜 좁아요! 다른 숨을 곳 찾아보세요!”

“넓어 보이는걸… 선생님도… 들어 가자……

“선생님은 살쪄서 여기 못 들어온 다니깐요!”

그러자 뒤돌아선 장화은 선생님께 서 갑자기 흠칫하고 몸을 한 번 떠

셨다.

“뭐라고?”

나는 침을 삼켰다.

제정신이 아닌 와중에도 살쪘다는 말에는 예민하게 반응하는 건가.

선생님은 표현하자면 어른의 매력 이 진하게 느껴지시는 아름다운 굴 곡의 소유자.

그 나이대에선 굉장히 인기가 많으시겠지만, 10대의 눈으로 본다면 여기 있는 슬렌더 타입의 하윤이라든 가 조그마한 선아에 비하면 확실히 몸집이 크신 편이다.

그걸 비꼬아서 살쪘다고 한다면 당 연히 상처받으실 수도 있는 것.

[인물 장화은에 대한 이해도가 10 올랐습니다.]

선생님께선 말이 없으시다.

잠깐의 정적이 흐른 후, 다시.

똑 똑 똑

여전히 뒷모습인 채 노크하신다.

똑 똑 똑

똑 똑 똑

“아~ 자리 없다구요! 자리 없어! 자리 없어! 자리 없다고오오! 좀 가세요! 진짜, 제발! 좀!”

내가 짜증 난 듯이 외치자 선생님은 다시 중얼거리셨다.

“저번보다 넓어 보이는 걸… 선생님도 좀 들어가자……

젠장, 이렇게 가다가는 끝이 없다.

나는 마음을 독하게 먹고는 외쳤다.

“선생님은 살찌셔서 못 들어온다니 깐요!”

“뭐라고……!”

선생님의 뒷머리가 다시 한번 부르르 떨렸다.

“그럴… 리가……

충격을 받은 듯 중얼거리시는 선생님께 내가 다시 쐐기를 박았다.

“진짜예요 여기 하윤이 좀 보세요! 얼마나 날씬합니까! 우리 동아리방에 들어오시려면 이 정도는 되어야 한다구요!”

“거… 짓말……

“가서 살 빼고 오세요! 그럼 문 열어 드릴게요!”

선생님은 말도 안 된다는 듯 천천히 중얼거리며 시야에서 사라지셨다.

66이 럴*** 수가··’ 이 ··· 럴 ·”

[D급 괴담 - 귀신 씌인 사람과 마주쳐서 살아남았습니다.]

[괴담 포인트를 5 획득하였습니다.]

선생님께서 완전히 사라지신 걸 확인하고서야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어휴, 무슨 일이냐능, 진짜……

경원이랑 덕훈이도 긴장을 풀며 중 얼거렸지만, 여성부원들의 반응이 심상치 않았다.

진희가 경멸하는 눈빛으로 나를 쳐 다보고 있고, 선아도 가자미눈을 하고는 나를 흘겨봤다.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을 짓고 있는 건 하윤이뿐이었다.

“저기······

내가 애써 분위기를 정리하려 하지만, 잘 안 됐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어.”

“지랄.”

진희가 차갑게 대꾸했다.

* *

꼬르륵-

점심시간이 다 지나간 1시 무렵.

우리는 여전히 동아리방 안에서 묵 묵히 앉아 있다.

“언제까지 여기 있어야 하냐능~”

덕훈이가 배를 붙잡으며 불평을 한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동아리방 창문에서 내려다보이는 운동장에는 폭행을 당해 기절해 있거나 미쳐 돌아다니는 학생들로 가득하다.

복도 너머에서도 아래층에서 들리

는 소리인지 간간이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사태가 막 일어났을 때만 해도 도로 사이로 경찰차와 구급차가 사이 렌을 울리며 돌아다니는 것도 보였지만, 그것도 시간이 지나자 잠잠해 졌다.

핸드폰으로 인터넷을 켜 봐도 도시 곳곳에서 폭동이 일어났으니 안전한 곳에 숨어 있으라는 말뿐.

커뮤니티나 SNS마저도 노래 가사를 아무렇게나 오타를 내며 도배하는 네티즌들로 가득했다.

“다들 미쳤군.”

나는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네, 엄마. 저는 잘 숨어 있습니다. 네……

경원이가 부모님과 조심스레 통화를 하는 모습이 보였다.

우리 엄마, 아빠는 전화를 받지 않으신다.

똑. 똑. 똑.

다시 한번 노크 소리가 들리길래 돌아보니, 문 앞에 선생님이 또 와 계셨다.

“살 빼고 왔어……

여전히 뒤돌아선 채 중얼거리셨다.

나는 짜증 섞인 목소리로 대꾸했다.

“아, 뭔 소리예요! 한 시간 만에 무슨 살을 빼요!”

“점심… 굶었단 말야……

다들 기가 찬 표정으로 서로를 돌아봤다.

“어떡하지?”

“선생님 불쌍해……

선아가 걱정 어린 목소리로 말했지만, 경원이가 단호하게 부정했다.

“하지만 들여보내긴 위험하다. 아 까 그 사람들처럼 깽판 치거나 노래 라도 부르면 어쩔 건가.”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안으로 들여보내자.”

“뭐?”

놀란 채 나를 보는 부원들.

차근차근 설명을 해 줬다.

“아까는 잠시 이러다 말겠지 싶었지만, 인터넷을 살펴보니 지금 상황은 국가적 재난 사태야. 이곳뿐만 아니고 서울… 아니, 노래의 영향력 이 끼치고 있는 대한민국 전체가 지금 마비가 돼 있어.”

“알고 있다.”

고개를 끄덕이는 경원이.

그건 다들 동아리방에서 기다리는 동안 스마트폰으로 이미 질릴 만큼 확인한 사실이다.

“이 상황은 점점 더 심각해질 거야. 조만간 정부 관계자들까지 다 점령돼 버리면, 우리가 어디에 틀어 박혀 있든 방방곡곡 안내 방송으로 노래를 틀고 다닐지도 몰라. 그때가 되면 우리도 제정신을 유지할 수 없겠지.”

« 응

다들 침울한 표정.

“더 이상 여기서 기다려 봤자 별수 없어. 선생님을 들여보내자.”

“그러니깐 선생님을 왜……

“노래에 감염돼 있잖아. 심문하든 두들겨 패든, 어떻게 해서든 정보를

캐내 보자는 거지.”

이 노래를 전염병으로 비유한다면, 마냥 병을 피해 도망만 다닌다고 해 결될 게 아니다.

환자를 연구해서 해결책을 찾아내 야만 사태가 해결되는 법.

그리고 지금의 상황은 분명히 괴담 이 원인이다.

환자, 이 노래에 중독된 사람들을 연구하는 데 그렇게까지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한 일은 아닐 거다.

선생님을 잘 살펴보면 무언가 실마 리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

었다.

“이해했어?”

부원들도 동의하는 분위기인지 천 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선생님이 난동을 부리면 진희 너 한테 좀 맡길게.”

“ 나?”

“응. 싸움 잘할 것 같아서.”

우고: ”

"百’.

피식 웃었지만, 알겠다는 표정이다.

“다들 동의했지? 그럼 연다.”

“후욱, 도키도키.”

나는 천천히 문 앞으로 다가섰다.

“선생님, 문 열어 드릴 테니깐 노래는 부르지 마세요.”

“선생님… 노래 잘하는데……

“아, 시끄러워요.”

끼익-

잠금을 풀고 문을 열어 드렸다.

선생님께서는 뒷모습 그대로 슬금 슬금 뒷걸음질 치며 동아리방으로 들어오셨다.

드디어 앞을 보인 선생님의 얼굴은 여전히 아름다웠지만, 눈동자가 공 허했다.

철컥.

나는 다시 문을 걸어 잠궜고, 동아

리방 한복판에 선 장화은 선생님은 아니나 다를까, 갑자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오... 오우예... 오이오우~ 에쉬 이~”

“아씨, 하지 말라니깐. 진짜……

불이 꺼진 동아리방.

그 한가운데서 학생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아름다운 30대 장화은 영어 선생님이 이상한 율동을 추며 노래를 부른다.

“텀… 에텀^- 오우예-”

내 부탁에 따라 선생님을 제압하려 주먹을 풀며 다가가던 진희가 우뚝

서더니 차갑게 단언했다.

“선생님, 음치시네요.”

“푸핫!”

“풉

아이들이 키득거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선생님은 팔을 파닥거리며 스텝까지도 살짝살짝 밟으시며 흥에 겨운 채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셨다.

“다 함께 포~ 린~ 세~ 스~ 오우 예~ 오이오우~ 에쉬에이~”

씰룩이는 선생님의 엉덩이를 보며 경원이가 씩 웃었다.

“선생님이 음치셔서 다행이군. 무

슨 멜로디인지 전혀 모르겠어.”

괴담 동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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