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담 동아리-32화 (32/130)

32화

여섯 번째 괴담 - 수능 금지곡 (6)

“이거다, 부장. 다행히 아직 유튜브는 되는군.”

사무실에 있던 영양사의 노트북에 모여 우리는 포린세스의 영상을 보고 있었다.

매주 금요일 저녁마다 하는 음악 방송의 녹화본.

포린세스가 신곡 ‘오우예’를 부르며 화면 안에서 발랄하게 춤을 추고

있었다.

‘ 예쁘다.’

확실히 아이돌은 아이돌이었다.

포린세스라는 걸그룹은 지금 시점에서는 신생 아이돌이지만.

전생에서의 기억으로는 분명히 채 1년도 안 돼서 대한민국 가요계 인기의 정점을 찍게 될 그룹이었다.

갈수록 평균 연령이 낮아지는 걸그 룹답게 포린세스는 우리와 동갑이거 나 더 어린 중학생 멤버까지 있는.

리더를 제외한 전원이 10대인 아이돌 걸그룹.

덕분에 다른 세상에 살법한 이런

예쁜 여자애들이 우리와 똑같은 입시 제도를 겪으며 살아간다는 사실, 그건 많은 대한민국 수험생에게 왠 지 모를 위안을 주고는 했었다.

“정말이네. 얘네가 하는 안무, 여기 학교 애들이 발작하는 행동이랑 비슷해.”

“응.”

노래에 감염된 사람들이 하던 웃기는 안무는 바로 포린세스 신곡의 춤 이었다.

노트북의 화면 안에서 매력적인 다 섯 소녀가 무대 의상을 입은 채 발랄함을 뽐내며 팔을 파닥거렸다.

당연하지만 소리는 꺼 둔 채.

“별로 특이한 건 없네.”

“그러게.”

이윽고 영상은 문제의 후렴구로 넘어갔다.

화려한 메이크업의 미소녀가 안무를 하며 열창을 한다.

‘노래는 전생에서도 수도 없이 들었지만, 멤버들의 얼굴을 자세히 보는 건 처음이네.’

그러고 보니 멜로디 자체는 전생에 서도 짜증 날 정도로 들었기에 당연히 기억나는데 어째서 나는 멀쩡한 걸까.

‘멜로디가 아니라 가사가 문제인

건가?’

전생에서의 신곡 ‘오우예’와 이번 생에서의 신곡 ‘오우예’의 차이점은 아마도 가사뿐.

나는 이번 달라진 버전의 노래는 집중해서 들어본 적이 없다.

그 점을 곰곰이 생각하며 화면을 다시 응시했다.

‘이 목소리의 주인공이 이런 얼굴 이었구나, 예뻤네.’

‘이 파트를 부르던 목소리는 되게 청순하게 들리던데, 실제로는 기가 세게 생겼네.’

그런 생각을 하며 천천히 기억을

더듬어 봤다.

하지만 아이돌에는 취향이 없었던 나답게 역시나 모르는 멤버도 한 명 정도 있다.

‘하긴, 소녀시대가 아무리 전설이라지만 지나가던 사람 붙잡고 대뜸 멤버 이름 다 말해 보라고 하면 일반인은 반도 못 말하겠지.’

노트북 안에서 입을 빵긋거리며 춤을 추는 아이돌 소녀들.

우리 괴담 동아리 7명은 뭔가 단 서가 없을까 싶어 진지한 눈으로 그 걸 관찰하고 있다.

걸그룹의 영상을 남녀노소 우르르 몰려 앉아 이렇게까지 열심히 관찰

하는 건 웃긴 그림이었지만.

다들 심각하게 임하는 중이다.

“저기, 소리 없이 들으니깐… 좀 무섭다……

선아가 중얼거렸다.

나도 동감했다.

특히 알아들을 수 없는 가사의 후렴구를 부르는 한 소녀가 그랬다.

노래와 함께라면 정신없이 몸을 흔 드는 신나는 댄스로 보였겠지만.

소리 없이 조용히 보고 있으니 마치 시체가 관절을 비트는 듯한 기괴한 동작으로 보이는 것이다.

그런데, 뭔가가 신경 쓰인다.

“···저기, 하나 신경 쓰이는 게 있는데.”

“뭐가?”

“노래에 감염된 사람들이 따라 하는 이 신곡의 안무 말야.”

«응 ”

“가만히 보니깐 반대로 아냐?”

“흠… 그런가?”

고개를 갸웃거리는 부원들.

“선생님, 영상 처음부터 다시 좀 부탁드립니다.”

“알겠어.”

마우스를 움직여 다시 영상을 처음

부터 돌리는 선생님.

우리는 다시 집중하기 시작했다.

“정말이네. 노래에 중독된 사람들은 무언가를 엎어 올리는 동작을 계 속했었는데, 사실 원래 멤버들의 안 무는 위에서 양손을 내리는 동작이 네.”

“그렇네……

다시 한참 그렇게 영상을 보던 중.

“후, 모르겠다.”

진희가 먼저 기지개를 켜며 자리를 떠났다.

“츠마라나이.”

덕훈이도 고개를 저으며 뒤의 의자

에 털썩 주저앉았다.

선아도 계속 보니 눈이 아픈지 마른세수를 하고 있고, 경원이도 안경을 벗어서는 천으로 알을 닦는다.

“휴… 그래. 안무가 반대네. 그것 말고는 떠오르는 거 없지? 이거 말고 다른 것도 좀 보자.”

선생님이 포린세스의 다른 무대도 클릭해서 재생했지만, 역시나 똑같았다.

장소만 다를 뿐 다섯 멤버가 똑같이 반복해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영상들.

영 짚이는 게 없어 다들 지쳐가던 도중.

나는 멤버 중 한 명의 입모양이 노래 중간중간 다른 멤버들과 싱크 가 안 맞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뭐지?’

제일 어려 보이는 막내 멤버인 듯 한데, 다른 멤버와 입모양이 묘하게 다르다.

‘다 같이 부르는 합창 파트일 텐 데.’

내가 자세히 보려고 그 멤버의 입 술에 시선을 집중하는 순간.

[특수 능력 독순술이 발동합니다.]

[“제발 누가 좀 도와주세요.”]

나는 깜짝 놀라서 다른 멤버의 입 술을 확인했다.

[“다 함께 포 린 세 스 오이오우 에쉬에이 오·우예.”]

다른 멤버들은 평소대로 원래의 노래 가사만을 발음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막내 멤버만 노래를 부

르는 중간중간, 무언가를 끊임없이 호소하고 있었다.

[“아무나 알아챈다면 제발.”]

[”도와주세요. 누구든지.“]

[“팬이잖아요. 그러니깐.”]

덜그럭, 덜그럭.

덕훈이가 뒤에서 식판에 고기를 더 퍼 와서는 다시 식사를 시작하려는 소리가 들렸다.

“덕훈아, 선생님 거도 좀 퍼 놔 줄 래‘?”

나와 함께 모니터를 보며 외치시는 선생님.

이분도 꽤나 대식가이신 모양이다.

* * *

시간은 어느덧 오후 3시.

다들 영상을 관찰하다 지쳐 떨어졌고 노트북에 붙어 있는 건 나와 선생님뿐.

경원이는 구석에 앉아서 팔짱을 끼고 졸고 있다.

선생님도 뚫어지라 집중하는 나 때 문에 마지못해 앉아 계실 뿐, 사실

상 아직도 포기하지 않은 건 나 혼 자다.

“준아, 그냥 네가 노트북 쓸래? 선생님도 좀 쉬어야겠다.”

“아, 네. 마지막으로 제일 최신 영상 하나만 찾아주세요.”

“후우, 그래. 여깄네.”

선생님께서 공식 영상 중 제일 최 근에 올라온 것 하나를 클릭해 주셨다.

바로 오늘 아침에 올라온 멤버들의 인사 영상이었다.

[2019 라이브무대 전 인사! from

포린세스 (조회수 42만 회) (7시간 전)]

저녁 6시에 라이브 무대를 서게 되니 많은 시청 부탁드린다는 짧은 영상.

그 속에서 나는 막내 멤버의 입술을 집중해서 바라보았다.

[“팬이잖아요. 제발.”]

역시 무언가를 호소하고 있었다.

대체 뭐지?

뭐를 도와 달라는 거지?

[“생방송 전까지 분장실에 있으니 깐 찾아와 주세요, 제발.”]

‘분장실!’

그 말을 끝으로 멤버들이 인사하고 건물로 들어가며 영상이 끝났다.

‘어느 건물이지?’

그것까지는 보이지 않는다.

아마 추측건대 오늘 라이브 무대를 서게 되는 음악 방송국의 건물 중 하나일 터.

하지만 저렇게 커다란 방송국에는 자기네 소유의 건물들이 여러 개 붙

어 있고, 분장실이란 이름의 방 역시 한두 개가 아닐 것이다.

멤버들이 지금 어떤 건물로 들어간 건지 확인해야 한다.

다시 영상을 처음부터 돌렸다.

길거리를 배경으로 연예인 차라고 도 불리는 대형 밴의 문이 열린다.

그리고 멤버들이 차에서 내리는 장 면을 카메라가 잡는다.

일렬로 정렬해서는 팬들에게 구호와 함께 허리를 숙이는 포린세스.

짧은 인사와 함께 오늘 저녁 라이 브 무대를 함께해 달라는 부탁을 한 후 멤버들은 어떤 건물로 향했다.

안타깝게도 건물을 비추기 직전, 멤버들의 뒷모습만을 비추며 영상은 끝나 버렸다.

‘무슨 건물이냐고.’

다시 영상을 천천히 돌려봤다.

대형 밴.

차에서 내리는 포린세스.

그리고 팬들에게 인사를 하기 위해 멤버들이 허리를 숙이는 순간.

‘이거다, 이 건물이다.’

뒤에 있던 대형 밴의 불투명 유리 가 그 건물을 반사해서 비춘다.

커다란 돔 모양의 건물.

머릿속에 기억해 뒀다.

이 돔 모양의 건물 안, 분장실에서 멤버들은 저녁까지 있을 것이다.

“다들 잠시만 집중해 줄래?”

나는 늘어져 졸고 있는 부원들을 향해 말했다.

* * *

“뭔가 알아낸 거야, 부장?”

사무실 안의 테이블을 중심으로 다들 나를 보며 앉았다.

나는 상석이라고도 불리는 테이블의 끝쪽에서 일어서서는 설명을 시작했다.

“다들 알고 있겠지만, 지금 이 괴현상은 포린세스라는 걸그룹이 부른 신곡이 원인이야. 그 노래를 반복해 서 듣게 되면 노래가 점차 머릿속에 서 떠나지 않게 되고, 결국 노래에 잠식되어 미쳐 버리고 말아.”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까지는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런데 그 노래에 관해서 파고들기 전에, 나는 경원이에게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어.”

“음?”

“혹시 귀신 씌인 사람과 관련된 괴담 중에, 무언가 반대로 하는 행위 가 담겨 있는 이야기 있어?”

“반대로?”

경원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귀신 씌인 사람? 그게 지금 괴현 상과 연관이 있는 거야?”

“아마도.”

물론, 내가 스스로 생각해 낸 건 아니다.

아까 하윤이가 선생님의 뺨을 때리자 나타난 메시지.

그때 시스템은 분명히 하윤이가 ‘귀신 씌인 사람’을 격퇴했다고 표

시해 주었다.

그런데 애당초 귀신 씌인 사람이라는 괴담은 도대체 무슨 괴담인가?

얼떨결에 격퇴하며 포인트를 얻기는 했지만, 그게 뭔지 사실 난 모르고 있다.

‘난 괴담 같은 건 생초짜니깐.’

하지만 귀신에 씌인 선생님이 계속해서 뒤를 보며 얘기하고, 뒷걸음질 쳐서 들어오던 것.

그리고 노래에 씌인 사람들이 안무를 반대로 따라 하는 것.

분명히 뭔가 관련이 있을 것이다.

“흠, 부장. 어떤 괴담을 원하는 건

지 다시 얘기해 봐. 정확히 뭘 반대로 한다는 말이야?”

경원이가 안경을 매만지며 묻는다.

사실 나조차도 스스로 어떤 괴담을 원하는지 모르기에 애매했지만, 일단은 선생님의 행동을 곰곰이 떠올리며 말해 봤다.

“글쎄… 뒤로 걷는다거나, 뒤를 보고 얘기한다거나 뭐 그런 것들.”

“뒤로? 흠……

“뭐 짚이는 게 있을까?”

“귀신… 뒤로, 반대로… 흠.”

경원이는 잠시 생각하다 뭔가 떠올랐는지 안경이 반짝였다.

“혹시 부장, 지금 ‘거꾸로’라는 키워드를 말하고 싶은 거 아냐?”

“거꾸로?”

녀석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안경을 매만졌다.

“음, 거꾸로라면 하나 생각나는 게 있는데. 들어 봐.”

* * *

한 커플이 점집에 사주를 보러 갔다고 한다.

무당은 여자의 사주는 진지하게 잘 봐주었지만, 남자에게는 굉장히 대

충 봐주고는 돌아가는 길에 오히려 돈을 안 받겠다고 복채를 되돌려 주기까지 하였다.

커플은 뭐 저런 무당이 다 있냐며 찜찜했지만 그대로 집으로 돌아갔는 데.

그 돌아가는 길에 사고가 나서 남자는 죽고 말았다.

장례를 치른 뒤 여자는 무당의 태 도가 생각나서 다시 한번 그 점집에 방문하였다.

“저기, 저번에 여기 왔었는데… 여쭤볼게……

무당은 말을 다 듣지도 않고 대뜸 물었다.

“장례는 잘 치르고 왔는가?”

“그, 그걸 어떻게……

“그때 내가 자네 남자친구에게 돌려준 돈은 저승길 가는 노잣돈이었네.”

“미리, 알고 있으셨단 말인가요? 남자 친구가 그렇게 될지……

“그래. 우리 같은 무당들 눈에는 곧 죽어 귀신이 될 사람은 좀 다르게 보이거든. 그때 자네랑 자네 친 구가 들어왔을 때, 자네 친구 말야.”

“물구나무 서서 들어왔다네.”

* * *

“…이게 이야기의 끝. 어때, 부장. 뭔가 짚이는 게 있어?”

나는 곰곰이 생각했다.

“다른 이야기는 더 없어?”

“그 외에도 귀신들은 거꾸로 행동 한다는 이야기들이 몇 개 있기는 해. 물구나무를 서서 뛰어다니거나, 손등으로 박수를 친다거나.”

귀신.

그리고 거꾸로.

이 두 가지가 이번 사건을 해결하는 데 핵심이 되는 키워드일 수 있

다.

나는 그 두 단어를 머릿속에 새기면서 다시 한번 경원이에게 물었다.

“똑같이 노래에 씌였는데, 왜 다른 사람들은 선생님처럼 거꾸로 행동하지 않았을까?”

“아니, 있기는 있었어.”

선생님께서 입술에 손가락을 대시고 가만히 기억을 떠올리셨다.

“교무실에 있던 선생님 중 몇 분이 물구나무선 채 돌아다니려 하셨던 게 기억나네.”

“으음, 우리 반에서 처음에 발광한 그 학생 있지 않냐능. 등 뒤로 샤프

를 휘둘렀다능.”

덕훈이도 턱살을 꿈틀거리며 생각 난 걸 얘기했다.

그래, 그러고 보니 기억이 난다.

처음에 반장과 대치하던 그 예민한 학생.

샤프를 뒤로 휘두르는 이상한 자세를 취했었다.

나는 곧 의문 하나를 얘기했다.

“그럼 다른 사람들은 뭘까? 모두가 거꾸로 행동하던 건 아니었잖아. 그 저 평범하게 핸드폰으로 노래를 전 파하며 다니거나 하는 사람들도 있었어.”

“글쎄… 논리가 너무 비약적이라.” 경원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정말로 거꾸로라는 키워드와 이 현상이 관계가 있을지는……

“관계가 있어야만 해.”

나는 단정 지었다.

“우선 그렇게 결론 내리고 가 보자. 노래에 휩싸이면 무언가를 거꾸로 한다, 그렇게 결론부터 내리고 출발해 보자.”

이 괴현상이란 건 평범한 인과관계 로는 도무지 설명이 안 되는 것투성이다.

논리의 비약일지도 모르겠지만 정

말 조그마한 단서라도 일단 존재한 다면 어떻게든 엮어서 추론해 보는 수밖에 없다.

“뭔가 떠오르는 게 있는 사람?”

내가 물었지만 다들 고개를 저을 뿐이다.

나는 다시 생각을 정리할 겸 중얼 거렸다.

“노래에 휩싸이면 무언가를 거꾸로 한다. 그런데 어떤 학생들은 딱히 거꾸로 행동하는 게 아닌, 그냥 평범하게 발광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다면……

예외가 있어서는 안 된다.

일단 결론부터 내리고 가 보기로 했으니 깐.

“그렇다면 그 학생들도 겉보기에만 평범한 발작이었을 뿐, 사실은 무언 가를 거꾸로 하고 있었던 거다?”

내가 의문형으로 중얼거리자 부원 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엇을 거꾸로 한 걸까? 그게 뭘 까?”

함께 고민하는 부원들.

잠시 그렇게 모두가 고민하던 도 중, 갑자기 진희가 툭 내뱉었다.

“노래 가사 아냐?”

“뭐?”

모두 놀라서 진희를 쳐다보자 진희는 시크한 표정으로 다시 말했다.

“노래 가사. 그거 되게 이상하잖아.”

“음, 하긴.”

경원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이상한 가사 말인데. 기다리는 동안 신경 쓰여서 검색해 봤더니 외국어조차도 아닌 것 같다, 부장.”

“정말?”

“응, 정말. 인터넷에서도 무슨 가사 냐고 묻는 말들이 많았어. 혹시 거기 뭔가 숨겨져 있는 건 아닐까.”

나는 재빨리 선생님께 지시를 내렸

다.

“선생님, 당장 노래 가사 검색해서 후렴구 부분 종이에 적어 주세요.”

“으, 응? 아, 알겠어.”

선생님은 학생인 나에게 명령을 받자 당황하신 듯했지만, 분위기에 휩 쓸려 빠르게 노트북에 앉으셔서는 종이에 글자를 적어 나가셨다.

나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선생님을 부려 먹다니.

죄책감이 든 건 아니지만, 뭔가 묘 한 감정이 느껴졌다.

“자, 여기.”

선생님께서 모두에게 보이도록 종

이를 테이블 가운데 놓으셨다.

“어디 보자.”

[다 함께 포린세스 오우예 오이오 우에쉬에이텀 에텀커대브 리시제드 니브머즈 오우지]

이게 그 이상한 후렴구 노래 가사의 전문이었다.

다들 읽어 봤지만 아리송한 표정만 지을 뿐이다.

“이걸 거꾸로 읽어 보라는 말이야?”

“지우오… 즈머브… 니드제… 시

리... 브대커텀에

“거꾸로 읽어도 딱히 말이 되는 것 같지는 않다능.”

선아가 가사를 중얼거리자 덕훈이가 불평을 내뱉는다.

하지만 여기엔 분명히 뭔가가 있을 거다.

전생에서는 분명히 이런 가사 따윈 존재하지 않았다.

나 역시 신음을 흘리며 머리를 짜 냈다.

“노래... 거꾸로......

경원이가 중얼거리더니, 갑자기 손

뼉을 쳤다.

“아! 혹시! 부장, 설마……!”

“왜 그래? 뭔데?”

다들 경원이 쪽을 쳐다봤다.

“노래에 관한 괴담이 너무 많아 미처 생각 못 했지만 그게 있었다.”

“그거?”

“백워드 마스킹. 자, 직접 들어 봐. 그래야 이해가 빠를 거야.”

“백? 뭐?”

어리둥절한 부원들 사이로 경원이가 핸드폰을 꺼냈다.

그대로 뮤직 플레이어 어플을 켜더니 어떤 노래를 검색해서 재생했다.

“호, 혹시… 지금 그 문제의 노래는 아니냐능.”

덕훈이가 지레 겁을 먹고 귀를 막으려 하자, 경원이가 고개를 젓는다.

“아냐, 한참 예전 노래야. 어떤 락 가수의 후렴구인데 일단 들어 봐. 그다음에 설명해 줄게.”

경원이의 최신 휴대폰에서 옛날 락 노래의 시끄러운 후렴구가 울려 퍼졌다.

♬왜 바꾸지 않고 마음을 졸이며 젊은 날을 헤맬까, 왜 바꾸지 않고 남이 바꾸길 바라고만 있을까♬

“다들 잘 들었어?”

경원이가 부원들을 향해 묻자 다들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 서태지 노래네. 반가워라.”

“···서태지 노래예요? 처음 들어 봐요.”

“와, 서태지? 언제적-”

“시끄멋!”

무슨 노래인지 아는 건 30대이신 선생님 혼자뿐인가 보다.

“후후.”

경원이는 조용히 웃더니 어플을 만

지작거렸다.

“그럼 이번에는 거꾸로 들어 봐.”

경원이는 그렇게 말하고 노래를 역 재생하기 시작했다.

♬피가 모자라 배고파 피가 고파 아 애를 안 주면 재미없을 줄 알아 ♬

“ 끼 o]: c〉} 아 아 아 아 아 아 아 아 아 아 o]* 아

아아아아아아악!”

순간 선생님께서 펄쩍 뛰어오르시며 비명을 지르신다.

“아, X발! 깜짝이야!”

“놀랐잖아요, 쌤!”

“귀 떨어지는 줄 알았네, 미친.”

우리는 노래보다는 비명을 지르시는 선생님 때문에 더 놀랐다.

34세의 예쁜 여선생은 주책을 부려서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살짝 웃으셨다.

“미, 미안 얘들아... 놀라서.”

“어휴.”

다시 시선이 경원이에게 집중됐다.

“어떻게 된 거야, 이게?”

“백워드 마스킹이라고 불리는 기법

이야.”

녀석이 안경을 반짝이며 설명했다.

“노래 안에 역방향으로 재생되어야만 정상적으로 들리는 메시지를 삽 입하는 기법이지.”

“세상에.”

“사실 방금 서태지의 노래는 우연히 역재생하니 발음이 그렇게 들리는 것뿐이긴 하지만 비교적 요즘 노래 중에는 빅뱅의 ‘우리 사랑하지 말아요’ 등이 백워드 마스킹 기법을 차용해서 중간에 메시지를 숨겨 놓았어.”

“그렇구나.”

“이 포린세스의 신곡 ‘오우예’의 이해할 수 없는 후렴구. 어쩌면 같은 기법이 쓰였을지도 몰라.”

“같은 기법!”

“응. 단순히 거꾸로 읽는다고 되는 게 아닌, 음원 자체를 역재생해야만 들리는 단어가 숨어 있을지도 모른 다는 거지.”

경원이의 설명에 다들 고개를 끄덕 이면서도 불안한 눈초리를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그걸 확인해 보려면 결국 그 신곡을 틀어야 하는 거 아냐? 역재생이라도 그 노래를 듣는 건 위 험할지도 모르는데.”

“굳이 거꾸로 틀어 볼 필요도 없어.”

내 지적에 녀석은 자신 있게 대답 하더니, 선생님께서 써 놓으신 가사 가 적힌 종이를 낚아채선 무언가를 빠르게 써 내려갔다.

“국제 음성 기호다. 실제로 발음이 나는 대로 음성을 알파벳으로 바꿔 적는 거야.”

“국제 음성 기호?”

“원래는 한국어에 익숙하지 않은 외국인에게 발음 그대로 쉽게 읽을 수 있게 해놓는 용도지.”

부원들이 흐름을 따라가기 어려운

지 기계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게 보였다.

나는 경원이의 말에 설명을 덧붙였다.

“그러니깐, 발음 그대로 알파벳으로 적어 놓는다 이거야?”

“그래. 안녕이라는 단어를 발음 그 대로 적는다면 ‘annyeong’이 되는 거야.”

“그렇군.”

지하철역의 영문 표기에 자주 쓰이는 방식인가 보다.

서울을 ‘Seoul’로, 신림역의 신림을 ‘Sillim’으로 적어 놓는 것처럼.

“나는 지금 이 노래의 후렴구를 발음 그대로 알파벳으로 적고 있어. 자, 봐.”

종이에는 경원이가 써 놓은 후렴구의 음성 기호가 적혀 있었다.

오이오우에쉬에이텀 에텀커대브 리 시제드니브머즈 오우지.

oyoessioeyhtum etimkadab lisigeadnoebmas oej.

“자, 이걸 이제 반대로 뒤에서부터 다시 적을 거야. 이렇게 해서 읽으면 역재생해 볼 필요 없이도 거꾸로

하면 어떤 소리가 나는지 바로 확인 해 볼 수 있어.”

“그걸로도 되는구나.”

녀석은 그 알파벳들을 다시 한번 거꾸로 적어 나가기 시작했다.

최종적으로 종이에는 아래와 같은 세 문장이 적히게 됐다.

오이오우에쉬에이텀 에텀커대브 리 시제드니브머즈 오우지.

oyoessioeyhtum etimkadab lisigeadnoebmas oej.

=〉 jeo sambeondaegisil badakmite muthyeoisseoyo.

“이걸 거꾸로 읽어 보면 될 거다. 아이고, 팔이야.”

마음이 들떠 서둘러 적느라 손목이 아팠는지 관절을 푸는 경원이.

가까이 있던 선아가 고개를 숙여 글자를 봤다.

“저... 삼... 변? 번... 대......

선아가 더듬더듬 영어를 읽어 나갔다.

“흠. 여기 음절로 생각되는 부분마 다 빗금을 한번 쳐 보자.”

나는 볼펜을 들고는 글자 단위로 빗금을 쳐 보았다.

jeo / sam / beon / dae / gi / sil / ba / dak / mit / e / mut / hyeo / is / seo / yo

저/삼/번/대/기/실/바

/닥/밑/에/묻/혀/있/ 어/요

괴담 동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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