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화
여섯 번째 괴담 - 수능 금지곡 (7)
[저 삼 번 대기실 바닥 밑에 묻혀 있어요.]
단어의 의미를 이해한 순간, 등골에 소름이 끼치는 걸 느끼며 방 안 이 조용해졌다.
가만히 서로의 눈치를 보는 부원 들.
누구 하나 먼저 말을 꺼내는 기색 이 없다.
그 문장이 주는 불길함에 다들 머뭇거릴 뿐이다.
“저기
의외로 먼저 입을 연 것은 덕훈이였다.
“내가 뭔게 짚이는 게 있다능.”
얘기해 보라는 눈빛으로 고개를 끄 덕이자 턱살을 매만지는 녀석.
“사다코... 아는 사람?”
덕훈이가 식은땀을 흘리며 우리에게 묻는다.
사다코.
들어 본 것 같다.
“그 티브이 속 우물에서 기어 나오는 여자 귀신?”
“그거, 그거.”
내 대답에 빠르게 고개를 끄덕이는 덕훈이.
원본은 뭔지 잘 모르겠지만 CF라 든가 인터넷에서 패러디를 봤던 것 같다.
티브이가 우물을 비추고, 우물 안에서 한 여자가 기어 나와서는 티브 이를 뜷고 현실로 기어 나오는 장 면.
“나도 안다. 일본 공포 영화 ‘링’에
나오는 귀신이잖아.”
경원이의 맞장구에 덕훈이가 빠르게 설명을 시작했다.
“모르는 사람을 위해 설명해 주겠다능. 그 귀신이 나오는 공포 영화 링의 내용은 이렇다능. 보게 되면 죽는 귀신 들린 영상이 있는데, 그 영상을 본 사람들이 영상을 퍼트리면서 마치 전염병이 퍼지듯 저주가 퍼져 나가는 내용이라능……
덕훈이는 역시 일본 문화에 한해서는 빠삭한 모양이었다.
나는 뭔가를 캐치하고는 녀석에게 말했다.
“귀신 들린 영상이 전염병처럼 퍼
진다. 그거 영상을 노래로 바꾸면 지금의 상황이랑 비슷하네.”
“그렇다능! 그거라능!”
대부분 알아차린 것 같지만 아직도 갸웃거리는 선아와 진희를 위해 나는 다시 정리해 주었다.
“지금 문제가 되는 이 노래. 아마 도 귀신 들린 노래라고 생각해.”
“귀신 들린… 노래!”
“사람이 귀신에 씌이면 무언가를 거꾸로 하게 된다는 괴담. 노래에 씌인 사람들이 보이는 행동과 똑같이 들어맞아.”
그리고 문제의 그 거꾸로 된 후렴
구 가사.
아마도 사람이 지은 가사가 아닐 거라는 게 내 추측이다.
“덕훈아, 그 공포 영화 링 있잖아. 결국, 퍼져 나가는 저주를 막는 거야? 결말이 어떻게 되는데?”
“크음.”
덕훈이가 턱살을 뒤룩거리다 기억 이 떠올랐는지 대답했다.
“저주를 퍼트린 원인, 억울하게 죽은 여자 귀신이 영상에 나오는 우물 밑에 묻혀 있었는데, 실제로 그 장 소를 현실에서 찾아가 시체를 꺼내 주니 해결되었던 걸로 기억한다능.”
“그럼 우리도 노래에 나오는 ‘3번 대기실’을 찾아서 묻혀 있는 누군가를 꺼내 주면 해결되는 건가?”
물론, 그 누군가는 산 사람은 아니 겠지만.
3번 대기실로 가서 묻혀 있는 시체를 꺼낸다.
“깔끔하게 맞아떨어지는데.”
“확실히 비현실적이지만, 그래도 이야기의 흐름 안에서는 개연성 있는 결론이다.”
“3번… 대기실……
덕훈이의 추론에서 끌어낸 나의 결론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이곳에 남아 있어 봤자 할 수 있는 것도 없는 우리였다.
3번 대기실.
그곳으로 가야 한다.
“그런데 거기가 어디야?”
“한국에 3번 대기실이라는 곳이 한 두 개도 아니고.”
다시 눅눅해지는 분위기, 나는 단 호하게 말했다.
“그건 이 노래를 퍼트린 장본인들에게 물어봐야지.”
“누구?”
눈을 휘둥그레 뜨는 부원들.
“포린세스.”
그렇다.
대한민국의 신생 아이돌 걸그룹 포린세스.
이 노래를 부른 장본인들.
그녀들이라면 이 괴상한 사태에 대해 무언가를 알지도 모르는 일이다.
“자, 들어 봐. 3번 대기실이 어디 있는지는 나도 모르지만, 이 괴현상의 원흉인 포린세스가 지금 어디 있는지는 알 것 같아.”
“그걸 네가 어떻게……
말을 흘리는 선생님에게 내가 대충
둘러댔다.
“멤버 중 한 명이 SNS에 남겨 놓은 글을 봤어요. 오늘 저녁 음악 방 송 프로그램의 라이브 무대가 있는 데 포린세스가 거기 서요. 그 무대 가 있는 방송국의 돔 형태 건물. 그 곳의 분장실에 포린세스가 있어요.”
“그, 그렇니?”
사실은 독순술을 통해 알아낸 사실이지만, 그걸 설명할 여유는 없다.
“다들 뭘 해야 할지 알겠지? 짐 챙겨.”
“뭐, 뭐라고?”
웅성거리는 부원들.
“주방 가서 무기로 쓸 만한 거 다 가져와. 빨리.”
“아니, 부장! 그렇게 갑자기……
“상황이 더 악화되기 전에 서둘러야 해! 벌써 오후 3시가 넘었어, 곧 해가 질 거야!”
흠 ”
갑자기 학교를 떠난다는 사실에 웅 성거리는 부원들.
하지만 쉴 만큼 쉬었고 목적지도 확고하니 금세 수긍하는 눈치다.
“지금부터 포린세스를 잡으러 간다.”
잠시 후.
선아가 커다란 후라이팬을 들고는 이리저리 돌려 본다.
하윤이도 식칼 두 개를 양손에 들 고는 비교해 보고 있다.
잠시 후, 우리는 각자 주방 안에 있는 후라이팬, 냄비 등을 무기로 골랐다.
상식적으로는 날붙이가 가장 훌륭 한 무기가 되겠지만 부원 중 그걸 고른 것은 하윤이뿐.
평범한 사람이라면 상식적으로 누
군가를 찌른다거나 하는 행위에 거 부감이 있을 수밖에 없기에, 후라이 팬, 밀대, 냄비 같은 휘두를 수 있는 둔기류를 대체로 골랐다.
“선생님, 차 키 잘 챙기셨죠? 다들 무기 골랐으면 문 앞으로 와.”
4층 급식실의 잠궈 놓은 철문 앞, 나는 부원들에게 상황을 다시 브리 핑 했다.
“걸그룹, 노래, 음악 방송국, 분장 실, 3번 대기실, 저주, 시체… 다 하나로 연결돼 있을 가능성이 커. 그 래서 우리는 사건의 원흉인 포린세 스를 심문하러 출발하는 거야.”
“응!”
“각오하고 있다!”
고개를 끄덕이는 부원들.
각오라.
정말로 본인들이 무엇과 싸워야 하는지 알고 있는 걸까.
나는 그들에게 감당 못 할 말을 건넸다.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은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만 받아들여. 나는 시간을 되돌리는 능력이 있다.”
«
한창 학교를 나갈 준비로 결연한 각오를 세우던 부원들의 얼굴이 순 식간에 당혹감으로 물들었다.
“뭐, 뭐라고?”
“뭐?”
“전에 나랑 같이 몽중몽 괴담을 겪은 부원들. 거기서 우리가 죽을 때 마다 시간이 되돌아가던 것 기억 나?”
3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정확히 같은 현상을 몇 번이 나 겪어 왔어. 알겠어? 이대로 학교를 떠나 이번 일의 진상에 도달하게 되더라도, 나는 사건을 바로 해결할 생각이 전혀 없다.”
잠시 숨을 가다듬고는, 그들이 받아들이든 받아들이지 않든 결심한
것을 내뱉었다.
“진상에 도달해서 해결책을 확인한 후, 시간을 되돌려서 이 난장판이 생기기 직전으로 돌아갈 거야. 그리고 모든 게 아직 멀쩡할 때, 미리 싹을 잘라 버릴 계획이고.”
선생님과 진희, 덕훈이는 이해를 못 하겠다는 듯 어리둥절한 표정.
하지만 경원이와 선아는 당황스러 워하는 한편, 일단 고개는 끄덕이고 있다.
부모님이 연락이 안 되고, 세상이 요지경으로 될 때부터 이미 마음먹고 있었던 일.
지금까지의 내 경험으로 비추어 본 바, 대략적으로 하나의 사건을 해결 할 때마다 체크 포인트가 새로 지정 되는 것 같다.
이대로 사건을 해결해 버리면 죽었을 때 되돌아가는 지점. 즉, 체크 포인트가 현시점으로 새롭게 고정돼 버릴 수도 있다.
그 말인즉슨, 부모님이 죽고 사회 가 혼란에 빠진 지금의 상태로 내 인생이 쭉 흘러가 버린다는 말!
그건 결코 이겼다고 볼 수 없는 해결책이다.
게임에서 잘못된 선택을 해 버린 채로 저장을 눌러 버리는 것과 마찬
가지.
“내 말 이해했어? 이해 못 했어도 좋아. 이것만 명심해. 도망치다 남겨 지는 인원이 있다면 그대로 버리고 간다. 절대로 구하려고 뒤돌아보지 마. 누군가 우리 앞을 가로막으면 그대로 폭력을 휘둘러도 상관없어.”
선생님이 질린 표정으로 몸을 흠칫 떨었다.
“시간을 다시 되돌릴 거야. 누가 죽어 나가도 상관없어. 오로지 목표 지점에 전속력으로 도달하는 것만 생각해. 앞으로 한 시간 이내에 모두 마무리한다. 아무도 멈추지 마.”
설령 이해를 못 했을지라도, 생사
를 앞둔 내 결연한 분위기에 압도되어 모두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설명이 끝나면 이 철문을 열 거다. 그대로 1층까지 계단으로 내려 가서 급식실 옆 주차장에 마련돼 있는 선생님의 차를 타고 정문으로 빠져나간다.”
“응!”
“아쉽게도 정문은 지금 닫혀 있어. 차를 타고 운동장을 질주해서 정문 앞에 잠시 멈춰 섰을 때 누군가 문을 열어야 해. 거기가 첫 번째 고비다. 알겠어?”
다들 긴장한 표정으로 손에 든 무기를 꾸욱 쥐었다.
“잠시 멈춰서 문을 여는 동안 무슨 일이 생길지 몰라. 문을 열러 간 인원은 미처 합류하지 못할 수도 있어. 그래도 그대로 버리고 간다.”
“그리고 방송국이 있는 청담동까지 그대로 도심을 질주. 방송국의 돔 형태 건물에 주차 후 다시 분장실을 찾아간다. 설명 끝. 다들 준비됐 지?”
후라이팬을 쥐고 있는 경원이의 손 이 벌벌 떨리는 게 보인다.
“그럼 문 연다. 준비.”
부원들이 망설일 틈조차 주지 않고
나는 단호하게 철문을 열었다.
끼이익-
문을 열자말자 급식 자재를 배송하는 운전기사가 학교를 미처 빠져나 가지 못하고 당해 버렸는지, 계단 쪽 창가에 가만히 서 있다가 고개를 홱 돌려 우리를 봤다.
“@#……
그리고 입을 열어 멜로디를 부르려는 순간.
“이야아아아아아앗!”
내가 잽싸게 손에 들고 있던 커다 란 유리그릇을 내던졌다.
쨍그랑!
운전기사의 얼굴에 맞고 깨지는 유리 그릇.
입을 채 열다 말고 충격에 바닥을 뒹굴었다.
아무리 시간을 되돌릴 거라지만, 사람을 함부로 해쳐도 될까 하는 망설이는 분위기가 되지 않도록 내가 먼저 모범을 보였다.
“자, 따라와!”
내가 다시 앞장서서 신속하게 계단을 내려갔다.
뒤따르는 6명이 아무리 조심히 걷는다고 해도 들키지 않고 가기엔 인원수가 많기에 빠르게 움직였다.
3증.
2증.
급식실 안으로 몇 명의 학생들이 배회하는 게 보이지만, 빠르게 계단을 내려가는 우리를 눈치채지는 못 한 것 같다.
1층에 도달하자 익숙한 얼굴의 남자 선배 한 명이 보였다.
“얘들아 긴급 뉴스야, 긴급
“닥쳐!”
그대로 진희가 소리를 지르며 계단 위에서 펄쩍 뛰어올라 후라이팬으로 정수리를 가격해 버렸다.
터엉-!
시원한 울림과 함께 남자 선배가 바닥에 나뒹굴었다.
“이쪽으로! 여기 주차해 놨어!”
선생님이 앞장서서 급식실 옆 주차 장으로 뛰어가셨다.
우리는 최대한 주위를 살피며 선생님을 뒤따랐다.
벌써 운동장에 있던 몇 명의 학생 들이 우리를 발견하고는 멀리서 달려오는 게 보였다.
“반으로 나뉘자! 주차장 입구 막 아!”
싸울 수 있는 나랑 진희, 덕훈이가
주차장 입구에서 방어를 하고, 나머 지 인원들은 서둘러 선생님과 함께 차를 찾으러 주차장 안으로 뛰어갔다.
“노래 좀 꺼줘어어어어~ 계속 울려어 어어어 어어~”
한 남학생이 제일 먼저 달려오더 니, 갑자기 홱 돌아서서는 커터칼을 등 뒤로 휘둘렀다.
“병신.”
당연히 명중률은 제로.
나는 가볍게 옆으로 피하고는 녀석의 무릎을 걷어찼다.
퍽 -
“캬악!”
쓰러진 녀석의 머리를 그대로 덕훈이가 육중한 체중을 실어 발로 짓뭉 개 버린다.
“우세야가레~!”
우지끈.
100KG가 넘는 체중이 실린 발이 머리를 직격하자, 남학생은 그대로 부르르 떨더니 움직임을 멈췄다.
“언니이이이! 이 노래 좀 들어 봐 요오오오!”
이어서 한 예쁘장한 여선배가 블라 우스를 풀어헤친 채 휴대폰을 들고는 달려왔다.
휴대폰에선 시끄러운 멜로디의 후렴구가 울려 퍼졌다.
“큭! 젠장.”
진희가 머리가 띵한 듯 표정을 찡 그리고는 곧바로 자세를 취했다.
“언니이이이!”
신나게 달려오던 여선배를 향해 진희가 스텝을 밟더니, 곧바로 공중에 붕 뒤돌아서는 발차기를 날렸다.
퍼억-
여선배는 달려오던 속도에 더해, 진희의 깨끗하게 들어간 발차기에 그대로 턱이 돌아가 버렸다.
쿠당탕.
“다마레~~!”
덕훈이가 시끄럽게 울려 퍼지는 여선배의 핸드폰을 몇 번 짓밟자 소리 가 멈췄다.
부릉, 부릉-
뒤에서 자동차 배기음이 들렸다.
뒤돌아보니 선생님의 차가 보였고, 천천히 움직이는 차 옆으로 몇 명의 정신 나간 선생님들이 달라붙어서 창문을 두드리는 게 보였다.
“장화은 선새애앵! 이 노래 좀 들어 봐아아아! 최신 유행이라니까 안!”
“꺄악! 꺄아아악!”
자동차 안에서 무서워하는 여자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선생도 이런 유행만 잘 알면 결혼 할 수 있다니깐! 빨리 들어 봐!”
“진희야!”
내 외침에 진희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곧바로 차를 향해 달려갔다.
“장화은 선새애앵!”
“꺄아악!”
뒷좌석 창문에 달라붙는 선생의 손 등에 하윤이가 식칼을 내려찍고, 뒤 이어 진희가 차에 정신이 팔린 선생들의 뒤통수를 후라이팬으로 후려쳤
다.
3x JJL
=5三 =1三
터엉- 텅!
“크어 억!!”
“이노옴! 너 몇 살이냐!”
선생들은 손을 감싸 쥐거나, 코피를 흘리며 그대로 엉거주춤 쓰러졌다.
나랑 덕훈이가 그 틈에 재빨리 달려가 체중을 실어 선생들을 밀쳤다.
파악-
“아악!”
선생들이 바닥에 나뒹구는 틈에, 우리는 차 문을 열고는 탑승을 시도
했다.
“젠장! 자리가 부족해! 덕훈이 너는 앞자리로 가!”
“하, 하이!”
운전석에는 선생님, 보조석에는 덕훈이.
뒷좌석에는 선아, 경원이, 하윤이, 진희 그리고 나. 무려 5명.
공간이 부족해 제일 뒤늦게 탑승한 나는 얼떨결에 선아를 깔고 앉는 격 이 되었다.
“으윽, 준아……
“선아야, 미안! 여기만 벗어나면 자리 바꾸자!”
나한테 깔려 캑캑대는 선아를 뒤로 하고 앞 시트를 잡으며 자세를 고정 하자, 선생님이 액셀을 밟으셨다.
“다 탔지! 정문으로 달린다!”
순간 차에 가속도가 붙으며 모두의 몸이 뒤로 쏠렸다.
“꺄아아악!”
“으아아아악!”
와장창!
주차장 입구의 차단기를 시원하게 박살 내 버리고, 7명을 실은 차는 운동장을 질주했다.
“야! 노래 들어라!”
멀리서 학생들과 선생들이 앞다투
어 우리를 향해 쫓아왔다.
차가 갑자기 속력을 올린 탓에 무게가 뒤로 쏠려 정신을 못 차리는 와중에도, 간신히 눈을 들어 누군가 정문을 열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
“선생님! 정문! 누가 여는데요! 바로 가도 될 것 같아요!”
“뭐? 정말이네!”
선생님께선 핸들을 꺾어 바로 정문으로 진입하려 하셨지만, 달려가던 속도의 관성 때문에 각도가 안 나왔다.
“각도가 안 나와! 한 바퀴만 돌게, 얘들아! 꽉 잡아!”
뒤로 좀비 떼처럼 우르르 몰려드는 학생들을 따돌리며, 자동차가 먼지 구름을 일으키며 운동장을 한 바퀴 돌았다.
“으으윽!”
“꺄아악!”
자동차가 코너를 꺾을 때마다 급격하게 무게가 쏠리며 부원들이 뒹군다.
“안전벨트! 안전벨트!”
필사적으로 안전벨트를 외쳤지만, 다들 급하게 타느라 안중에도 없던 상황.
“커 억!”
경원이가 앞 쿠션에 머리를 쿵 박았다.
쿠웅, 쿠웅!
“꺄아아아악!”
선생님께서 하이 톤으로 꽥 소리를 지르시며 핸들을 꺾어 코너를 도셨다.
교원 몇 명이 우리 차의 진행 방 향으로 달려오다가 그대로 받고는 지붕 위로 굴러떨어져 나가는 소리 가 들렸다.
쿠웅!
쿵, 쿠궁, 쿵.
쿠웅!
“으아아아악!”
앞 유리에 쩌적 금이 갔다.
하지만 다행히 시야를 가릴 정도는 아니었다.
“뺑소니야! 뺑소니야아! 노래를 들으면 용서해 주마!”
여전히 쫓아오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학생들과 선생님들.
“간다아아아! 꽉잡아아아!”
자동차는 교장이 연설하는 단상 앞에서 직각으로 드리프트했다.
그리고 그대로 정문 쪽으로 각도를 잡고 다시 액셀을 밟아 정문으로 질 주했다.
부웅! 부우우우웅-!
다시 뒤로 몸이 쏠리고 선아가 나에게 깔려 캑캑거렸다.
“켁, 케엑.”
“미아아안!”
정문 옆에서 경비 아저씨가 힘차게 손을 흔드는 게 보였다.
아마도 문을 연 것은 경비였나 보다.
사태를 피해 경비실에 숨어 있다 가, 누군가 차를 끌고 나오자 도망 치라고 곧바로 문을 열었나 보다.
“간다아아아아악!”
선생님은 눈이 뒤집히셔선 정문을
돌파하기 위해 속력을 올리셨다.
부우우우우우웅-
쿠궁, 쿵.
경비를 지나쳐 정문 앞의 과속방지 턱을 지나가며 우리는 잠시 공중에 떴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
잠시 정적 후.
콰당, 쾅!
거친 충격과 함께 바닥에 착륙하는 자동차.
드디어 학교를 벗어났다!
하지만 눈앞에 보이는 도시의 풍경은 이미 정상이 아니었다.
거리 곳곳에 쓰레기가 휘날리고, 창이 깨진 건물들과 연기가 피어오르는 가게들이 보인다.
엉망이 돼 버린 서울.
부르릉-! 부르르릉~!
선생님께선 다시 액셀을 힘차게 밟으시고는 도로를 질주하신다.
“서, 선생님! 길 어딘지 알고 가시는 거죠?”
“선생님한테 다 맡겨어어어어어어 어!”
좆됐다.
이 사람, 이미 제정신이 아니다.
“얘들아 꽉잡아아아아!”
아이들의 정신없는 비명 소리와 함 께 자동차가 다시 시내를 질주한다.
도로 한복판에서 앰프를 설치해 놓고 시끄럽게 신곡을 틀고 있는 무리 가 보인다.
콰당! 쾅! 콰광!!
자동차가 앰프를 시원하게 박살 내 고는 전기선을 질질 끌며 나아간다.
“이노오옴, 천만 원짜리… 앰프를
창밖으로 누군가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그대로 자동차는 전기 불꽃을 일으키며 신림역을 지나쳤고, 서울대입
구역을 가로지른다.
“서, 선생님! 조금만 천천히 가요!” “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 ” 쓰레기가 휘날리고 사람들이 스쳐 지나간다.
창밖으로 풍경이 휙휙 뒤바뀐다.
“앞에! 장애무우우울!”
부원 중 누군가 외쳤다.
선생님께서 급하게 인도로 핸들을 꺾으시고는, 다시 우체통과 가판대를 부수며 질주했다.
“선생님! 속도 줄여요!”
“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비명을 지르며 액셀을 더 힘차게 밟으시는 선생님.
34살의 노처녀는 브레이크가 없는 나이였다.
쿠궁, 쿵.
인도에 있던 시민 몇 명이 자동차에 부딪혀서는 멀리 튕겨 나간다.
“선생님! 방금은 멀쩡한 사람들 같던데!”
“인도가 더 넓잖아아아아아아아아 앗!”
“아하, 아하하하.”
이 정신없는 와중에 누군가 웃고 있다.
누군지 고개를 돌려 보니 하윤이었다.
“선생님 너무 웃겨요, 아하하하.”
옆에서 하윤이가 손잡이를 있는 힘 껏 쥐면서도 얼굴이 새빨개져서는 웃고 있는 게 보인다.
선아는 내 뒤에서 눈을 감은 채 나를 꼭 껴안고 덜덜대고 있다.
덕훈이는 정신없이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속도감을 못 이기고는 히익 하는 소리와 함께 안전벨트만 붙잡고 있다.
진희조차도 식은땀을 흘리며 천장의 손잡이를 꼭 쥔 채 긴장한 눈초
리.
경원이는 벌써 기절했는지 차가 움직이는 대로 그저 몸이 흐느적거릴 뿐이다.
자동차는 그대로 순식간에 현충원을 지나쳐 한강 도로변에 접어들었다.
“후우우우우.”
“허억, 허억.”
부응~
다행히 한강 도로변은 한가했다.
도로도 시원하게 뜷려 있었고, 장 애물도 많지 않았다.
강변 산책로에는 라디오를 든 채
달려가는 중년들과 도망가는 청년들이 간혹 보였지만, 그래도 오후의 햇살이 내리쬐는 강변도로를 따라 달리며 우리는 숨을 돌렸다.
“허억, 허억.”
선생님도 조금 진정하셨는지 속력을 천천히 줄여서 운전하셨다.
끼이익-
이윽고 도착한 청담동, 음악 방송 국의 건물 앞.
부응. 부웅.
거의 반파돼 버린 자동차가 배기음을 토해 내며 천천히 건물 앞에 섰다.
하지만 누구 하나 움직이는 사람이 없다.
우리는 멍하니 제자리에 앉아 있다.
원래라면 30분은 걸릴 거리인데, 느낌상으로는 10분 만에 도착한 것 같다.
다들 머리가 산발이 돼서는 넋이 나간 표정.
하얗게 불태웠다.
가만히 운전대를 잡고 계시던 선생님이 천천히 뒤돌아보셨다.
“얘, 얘들아… 도착했어.”
고개를 힘없이 들어 창문 밖을 내 다보자, 웅장한 돔 형태의 건물이 보였다.
괴담 동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