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담 동아리-37화 (37/130)

37화

여섯 번째 괴담 - 수능 금지곡 (11)

긴장에 쌓인 채 적막만이 흐르는 분장실.

리더가 먼저 용기를 내서 천천히 그 소녀에게 다가갔다.

“저기, 있잖아.”

“언니! 가지 마요!”

뒤에서 만류하는 멤버들.

리더는 침착하게 뒤돌아보며 그녀

들을 타일렀다.

“괜찮아, 얘들아. 한 달 동안 우리 랑 함께였잖아. 괜찮을 거야.”

천천히 거꾸로 서 있는 소녀에게 다가가는 리더.

“저기, 너… 이름이 뭐야?”

“귀신, 이었니? 어디서, 어쩌다 가……

“우리가 도와줄게. 말해 볼래?”

스르륵-

소녀가 사뿐하게 자세를 다시 바로 한다.

무게감 없이 공중에 살짝 떠 있는 마냥 부자연스러운 동작으로.

몸이 돌아가는 와중에도 소녀의 얼굴은 정면으로 고정된 채 어설픈 CG처럼 쭈욱 딸려 왔다.

“네가 이 사건의 원인이니? 왜 그런 거야?”

다시 차근차근 타이르는 리더.

소녀 귀신은 가만히 정자세로 있더 니, 입을 벙긋거리며 소리 없이 무언가를 말했다.

[“ 포”]

[“ 린“]

『세“]

『스”]

“···포린세스? 그래, 우리 포린세스 잖아. 숨길 필요 없어. 말해 봐, 응?”

[“ 아”]

[“이“]

『돌“]

“···뭐? 응?”

다시 물끄러미 우리를 보는 소녀

귀신.

그녀의 모습이 점점 흐릿해지고 있다.

리더가 안타깝다는 듯이 다그쳤다.

“아이돌? 맞아, 아이돌인데 왜? 응?”

소녀는 슬픈 미소만을 지으며 가만히 서 있을 뿐이다.

영상이 페이드아웃 되듯이 점점 투 명해지는 그녀.

사라지고 있다.

“야! 리더인 내가 묻잖아! 말해, 어서!”

그 말에 소녀가 마지막으로 무언가

를 중얼거리고 사라졌다.

흐릿하지만 몇 글자나마 시스템이 그것을 읽어 냈다.

[“ 고”]

[“ ”]

[“ ”]

[“ ”]

그리고 눈앞에 떠오르는 메시지.

[E급 괴담 - 바닥에 묻혀 있는 연

습생의 귀신과 마주쳐서 살아남았습니다.]

[귀신이 스스로 세상에서의 미련을 풀고 승천하였습니다.]

포인트를 얻었다는 말은 없었다.

‘ 스스로?’

조용한 분장실.

소녀는 완전히 사라져 버렸지만, 멤버들은 여전히 허공을 가만히 응 시하고 있다.

그 가운데 나도 가만히 생각에 잠 겼다.

괴담을 해결했다는 메시지가 떠올

랐다.

이걸로 사건은 끝인 걸까?

그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방금 떠오른 메시지는 귀신에 대한 내용이었지, 노래에 대한 괴담이 아 니었다.

‘···그렇군.’

방금 사라졌다는 괴담.

스스로 미련을 풀고 승천했다는 연습생 소녀 귀신.

그건 아까 리더가 말해 준 이 방 송국에 얼마 전부터 떠돌았다는 괴담에 대한 것이었다.

-이 방송국 어딘가를 혼자서 걷다 보면 어떤 여자가 중얼거리는 소리 가 들린다는 소문이 얼마 전부터 돌았거든요. 그 작사가가 저번 달에 업무차 이곳을 돌아다니던 도중 그 걸 듣게 되었고…….

영문은 모르겠지만 그 귀신 본인은 세상에서의 미련을 풀고 이미 사라 졌다.

하지만 그 괴담에서부터 파생된, 귀신이 중얼거리던 단어들로 만든,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노래.

그 노래에 대한 괴담은 아직 남아 있다.

억울하게 죽은 귀신의 원한이 씌인 노래, 거기에 대한 괴담을 풀어내려면 아직 몇 가지 해야 할 게 남았나 보다.

나는 천천히 분장실 안을 둘러보았다.

포린세스의 네 소녀는 서서히 상황을 받아들였는지, 누군가 좀 설명을 해 주기를 바라며 서로 눈치를 보고 있었다.

“어흠······

내 헛기침 소리에 천천히 돌아보는 그녀들.

놀라 입을 벌리고 있는 사람도 있고, 무언가 안타까운 듯한 표정을 짓는 사람도, 아직 이해가 안 돼서 멍한 표정을 짓는 얼굴도 있었다.

“집중해 주시겠습니까? 설명을 시작하겠습니다.”

시선이 모이는 걸 확인 후 나는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얼마 전, 한 여성이 누군가에게 살해당한 채 이 방송국의 3번 대기 실에 묻혔습니다.”

“아마도 아직 데뷔하지 못한 연습생 중 한 명으로 추측됩니다. 그리고 그쯤에 방송국 내에서는 괴담이 하나 떠돌게 되죠.”

“괴담······

누군가 중얼거렸다.

“네, 여러분들도 들어 봤을 테죠. 방송국 어딘가를 걷다 보면, 어떤 여자가 조용히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문득 들려온다는 괴담입니다.”

한 명, 한 명 눈을 마주쳐 봤다.

다들 기억을 곱씹으면서 나에게 집 중하고 있다.

“그리고 그 괴담을 실제로 겪은 사

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작사가 양반 이었습니다. 여기까지는 여러분들도 아시는 내용이죠.”

“그 작사가는 귀신의 중얼거림에서 영감을 얻어 곡의 가사를 완성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여러분들의 신 곡은 그야말로 대히트를 치고 말았죠.”

“그야 당연한 일. 이쪽 계열에는 작업 중 귀신을 보면 대박이 난다는 게 정설이니깐요. 하물며 여러분의 신곡은 귀신과 마주치는 걸 넘어서 서, 아예 귀신이 말한 문장을 노래

의 후렴구로 담아 버렸으니……

막내가 손을 덜덜 떨자 옆에 있던 다른 멤버가 그녀의 손을 꾸욱 잡아 줬다.

“그 노래의 후렴구. 역재생해 보면 어떤 문장이 완성됩니다. ‘저 3번 대기실 바닥 밑에 묻혀 있어요’ 라는 문장이죠.”

“세, 세상에……

한 달 동안 몇백 번이 넘게 부르면서도 전혀 몰랐던 사실이었는지 멤버들이 어깨를 부르르 떤다.

“억울하게 죽은 소녀는 자신이 묻혀 있는 3번 대기실을 끊임없이 알리고 있었고, 그게 노래로 만들어지

게 되자 결과적으로 이 노래는 억울하게 죽음을 당한 연습생의 ‘원한이 담긴 노래’가 되고 말았습니다.”

“일본의 공포 영화 링을 아시는 분이라면 이해가 빠를 텐데요. 죽은 소녀의 원한이 담긴 ‘저주받은 노래’가 탄생하고 만 겁니다.”

“저, 저주받은 노래……

“우리는 지금까지 그런 노래를 즐 겁게……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는 서로를 쳐 다보는 멤버들.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한이 서린 중얼거림. 그걸 담은 노래. 거기에 중독성 있는 멜 로디와 사람들의 열광적인 호응이 서로 무시무시한 시너지를 이루며 저주받은 노래는 빠르게 힘을 키워 갑니다. 듣는 사람들의 정신을 뒤흔 들어 놨을 뿐만 아니라, 묻혀 있던 연습생 장본인의 영혼 그 자체를 불 러오게 돼 버린 거죠.”

“여, 영혼……

“네. 방금까지 여러분들과 함께 있던 그 소녀입니다.”

멤버들은 아찔한 표정으로 서로를 돌아보며 한마디씩 했다.

“그, 그러고 보니… 그 여자애, 뭔가를 먹지도, 자지도 않았어……

“분명히 이름도 알고 친했다고 생각했는데, 어떤 애였는지 전혀 기억 이 안 나……

“어떻게 지금까지 모를 수가 있었지? 세상에……

웅성거리는 네 명의 소녀.

“홀려 있었다, 착각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표현하면 좋을것 같군요. 언뜻 보기엔 멀쩡해 보이던 여러분들도 사실은 저주받은 노래의 지배하에 있었던 겁니다.”

“그럴 수가……

아연실색하는 소녀들.

“그, 그럼 이제 다 끝난 거예요? 귀신은 방금 사라졌잖아요.”

마지막까지 그녀와 함께 물구나무를 섰던 멤버가 간절한 표정으로 나에게 묻는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창문을 봐요.”

분장실이라는 공간의 특수한 용도 때문인지 까맣게 코팅되어 거의 빛 이 들어오지 않는 창문.

그곳으로 막내가 밖을 확인하더니, 역시 어두운 표정으로 고개를 젓는

다.

도시가 여전히 난장판인 것을 확인 한 것이다.

“무당이 쓴 책에서 본 건데……

지금까지 뒤에 가만히 서 있기만 하던 경원이가 드디어 멤버들을 향 해 나지막한 목소리로 설명을 보충 했다.

“귀신이 이승을 떠돌다 미련을 풀고 승천, 성불하는 데는 여러 이유 가 있다고 합니다. 꼭 원한을 푸는 게 아니더라도 달래 줄 수 있는 어떤 것이라도 계기가 된다고.”

“달래 줄 수 있는?”

고개를 끄덕이는 안경원.

동갑인 친구들에게 하던 평소의 딱 딱한 말투와는 다르게 ‘요’자 체를 써 가며 조심스레 설명했다.

“생전에 좋아하던 물건이나, 가지고 싶어 했던 무언가, 위로가 되는 어떤 것이든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무당들은 말해요. 저도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 여자분은 뭔가를 만족하고 가 버린 상태……

“즉, 뭔가에 미련이 풀려 성불한 거지, 우리가 원한을 풀어 준 건 아 니에요. 애초에 그 가 버린 여자분과 원한이 씌인 노래는 서로 별개…

노래는 작사가가 멋대로 옮겨 적어 사람들이 만든 것……

“그, 그럼 원한을 푼다는 건 뭘 뜻 하는 건데? 뭘 해 줘야 하는 거야?”

말을 더듬으며 묻는 리더.

경원이가 가만히 안경을 매만지다 가 말했다.

“억울하게 살해당한 여자의 원한을 푼다… 그건 역시 범인을 잡아 줘야 한다는 얘기가 아닐까요? 그리고 3 번 대기실에 묻혀 있다는 가사로 짐 작해 볼 때, 역시 시체도 그곳에서 꺼내 양지바른 곳에 묻어 준다든가 해야 할 것 같고……

나는 녀석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슬슬 설명을 마무리 짓고 출발할 시간이다.

“아시겠나요? 이곳에 박혀서 군대를 기다리겠다니. 터무니없는 소리 입니다. 군대니 경찰이니 그런 게 지금의 상황을 해결할 수는 없어요. 우리와 함께 3번 대기실로 가는 것. 그게 유일한 해결책입니다.”

“3번 대기실……

리더가 창백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녀가 드디어 마음을 먹었는지 고

개를 끄덕이려는 순간.

"쿵 · '쿵 · "쿵 ·

누군가 분장실의 문을 두드렸다.

K | W

선아가 화들짝 놀라서 커터칼을 치켜든 채 잠긴 문 너머를 경계했다.

쿵. 쿵. 쿵.

“계십니까!”

어떤 남자가 문 너머에서 외쳤다.

“어라?”

아는 목소리인지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멤버들.

“누군가요?”

내가 빠르게 묻자 리더가 대답해 주었다.

“오늘 아침에 난동을 부리다가 방 송국 관계자들에게 끌려갔다는 우리 매니저예요.”

“매니저. 흐음……

'쿵 · '쿵 · '쿵 ·

“계십니까!”

다시 문을 두들기는 남성.

리더가 경계하며 천천히 문으로 다 가갔다.

그리고 닫혀 있는 문을 향해 조용히 묻는다.

“매니저님?”

“안내해 드리러 왔습니다!”

그녀가 의문형으로 묻자 돌아오는 우렁찬 대답.

“뭘 안내해요?”

“3번 대기실로 지금 가 주셔야 하겠습니다!”

“네?”

“친구분께서 찾으십니다!”

가만히 서로를 쳐다보는 멤버들.

“확실히 아직 정상은 아닌 것 같은 데, 어쩌죠?”

“뭘 어째요. 쫓아냅시다. 함정 같은 데.”

의논을 마치고 리더가 다시 문을 향해 말했다.

“저희끼리 갈 예정이니깐, 매니저 님은 다른 데 가 있으세요.”

“그럼 다른 분을 불러오겠습니다!”

그 말과 함께 어디론가 향하는 발걸음.

“뭐지.”

잠시 후.

쿵. 쿵. 쿵.

누군가 다시 닫혀 있는 분장실의 문을 두드렸다.

“누구시죠?”

“가수 표용일입니다! 안내해 드리러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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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표용일.

그는 대한민국 탑클래스의 가수로, 국내에선 그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가요계의 제왕이라 불리는 남자, 이른바 가왕으로 칭송받는 전설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이 지금 우리 앞에 와 있었다!

“서, 선배님! 안내라니, 어떤?”

깜짝 놀라는 포린세스의 리더 차지 원.

시간이 흐르면 그녀 역시 걸그룹 아이돌이라는 부문에서는 최고를 달 리게 될 테지만, 지금 시점에서는 반짝 뜬 신생 아이돌의 리더일 뿐.

머나먼 가요계의 대선배를 앞에 두자 명백하게 당황한 모습.

“3번 대기실로 안내해 드리라고 명 받았습니다!”

문 너머에서 다시 한번 우렁찬 목 소리가 들려왔다.

“3번… 대기실……

장소는 둘째치고, 이 사람의 이상

한 말투는 도대체 뭘까.

본인이 대선배일 텐데 오히려 우리를 향해 깍듯하게 말하는 걸 보니, 마치 윗사람을 대하는 것 같았다.

“친구분께서 부르십니다!”

“어쩌죠?”

난색을 표하며 우리를 쳐다보는 리 더.

“이거 끝이 없겠는데요. 한 명 보내면 한 명이 또 오고.”

“흠.”

나는 가만히 생각하다가 말했다.

“일단 함정이 아니길 빌며 한번 열어 보죠. 3번 대기실에는 어차피 가

려고 했으니.”

내 제안에 리더는 조심스레 끄덕이 고는 문으로 향했다.

문을 지키고 서 있던 선아가 옆으로 비켜 주자, 그녀는 잠금을 풀고 천천히 문고리를 돌렸다.

이윽고 문이 열리자 남자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체구는 크지 않지만 뿜어져 나오는 가왕으로서의 거대한 위압감.

한 분야의 경지에 다다른 사람에게 서 풍겨지는 알 수 없는 아우라.

포린세스의 멤버들은 그가 이미 제 정신이 아닌 걸 직감하면서도 90도로 허리를 숙이며 인사를 했다.

“안녕하십니까! 걸그룹 포린세스입니다! 꼭 한번 만나 뵙고 싶었습니다!”

다 같이 하나 된 동작과 구호로 합창하는 멤버들.

연예계는 선후배 간의 인사 군기가 심하다더니 평소에 연습했었나 보다.

하지만 남자는 그녀들의 인사는 들은 척도 안 한 채 더 큰 목소리로 다시 한번 우렁차게 외쳤다.

“3번 대기실로 안내해 드리라고 친 구분께 명 받았습니다!! 이쪽으로 오시면 됩니다!”

« 2”

갸웃거리며 고개를 드는 멤버들.

그제야 그녀들은 가왕 표용일의 공 허한 눈동자와 뒤돌아간 발목을 확인할 수 있었다.

뒤뚱뒤뚱.

어기적어기적 돌아간 발목으로 뒷 걸음질 치는 남자.

역시 노래에 맛이 간 상태였다.

“3번 대기실로 안내해 드리라고 명 받았습니다! 이쪽으로 오시면 됩니

다!”

가왕 표용일은 우리 보고 따라오라는 듯 천천히 복도로 이동했다.

분장실 안에 있던 우리는 잠시 서로 눈치를 봤지만, 별수 없이 따라 나서기로 했다.

안내를 하러 왔다는 가왕 표용일을 따라 우리 괴담 동아리와 포린세스 가 일렬로 이동했다.

복도의 코너를 돌아 비상구 계단 앞에 서자 물구나무 선 몇몇의 사람 들이 힐끔 우리를 봤지만, 놀랍게도 별 신경을 쓰지 않고 흥얼거리며 다른 길로 향했다.

“아, 안 건드리네?”

“흐음.”

나는 조용히 내 뒤에 있는 경원이를 향해 물었다.

“저기, 경원아. 이게 어떻게 된 걸 까?”

“잠시만.”

경원이는 뭔가 짐작 가는 게 있는 지 가만히 안경을 매만지며 길을 따라갔다.

계단을 올라가는 도중 무언가 시끄러운 합창 소리가 위층에서 들려왔다.

3번 대기실이 있는 5층이었다.

그곳에서 대기하던 가수들은 사태

가 터지고 아무도 내려오지 않았다고 들었는데, 줄곧 광신도처럼 여기 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나 보다.

“이쪽입니다!”

가왕 표용일이 5층 입구에서 멈춰 서서는 공손하게 손을 모은 채 정자 세를 취했다.

닫혀 있는 비상문 너머로 가수들이 저마다 목청을 있는 힘껏 내지르며 포린세스의 신곡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건물이 무너질 듯 떼창을 부르는 가수들.

문 너머지만 귀가 얼얼할 정도로 시끄럽게 울린다.

저마다 다른 구간을 자기 마음대로 부르고 있었는데, 차마 돌림노래라 고도 봐줄 수 없을 정도의 웃기는 소음의 현장이었다.

“준아……

선아가 무서운지 내 손을 꽉 잡는다.

포린세스의 네 소녀도 서로 얼싸안 고는 덜덜 떤다.

“···괜찮을 거야, 아마.”

나는 마음을 강하게 먹고는 비상문을 열어젖혔다.

끼익-

순간, 시끄러운 합창이 멈추더니

시선이 일제히 우리에게 쏠렸다.

좁은 복도 가득 빼곡히 서 있는 가수와 연예인들.

나이 든 사람도 있고, 젊은 사람도 있다.

티브이에서만 보던 유명한 얼굴들 도 보이고 처음 보는 얼굴도 있었지만, 공통점은 하나같이 화려한 무대 의상이나 양복 따위를 갖춰 입었다는 것.

그리고 하나같이 공허한 눈을 한 채 팔이나 다리 등 몸의 한 부분이 뒤로 꺾여 있다는 점이다.

지나갈 틈도 없이 빼곡히 서 있던 사람들이 갑자기 스르륵 움직이더니

길을 터 준다.

우드득. 우득.

벽에 붙어 있던 사람은 뼈가 으스러지도록 사람들에게 눌리면서도, 서로가 서로의 발을 밟고 올라서며 홍해가 갈라지듯 길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과정은 놀라울 정도로 조용했다.

서로 압축해 가며 길을 터 주는데 누구도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

근원지에서 제일 가까이 있었던 사람들인 만큼, 홀리는 걸 넘어서서 아예 꼭두각시가 돼 버린 모양.

우득. 우드득.

이윽고 딱 우리가 지나갈 만큼의 공간이 생겼다.

마치 어딘가 중요한 무대로 이어지는 레드카펫 같은.

불안해하며 조심조심 인파 사이를 걷던 우리는 곧 목적지에 다다랐다.

[3번 대기실]

수백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기이한 침묵과 함께 길을 터 준 그곳은 3 번 대기실이었다.

우리 7명은 문 앞에 선 채 잠시 숨을 죽였다.

“그렇군. 모체(母體)인 건가.”

뒤에서 경원이가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전에 부장이 이 노래를 전염병으로 비유했었다. 우리는 바이러스의 모체로 인도받는 중이다.”

잘은 모르겠지만 일단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 연다.”

나는 낮게 말하고는 3번 대기실의 문고리를 돌렸다.

끼익-

대기실.

안에는 한 중년의 남자가 의자에

묶인 채 앉아 있었다.

검정색 무광으로 깔끔하게 디자인 해 놓은 인테리어.

프로그램의 출연진들이 평범하게 분장을 고치며 대기할 수 있는 장 소.

그 중간에 묶여 앉아 있는 남성.

“그래서… 했는데, 내가……

남성은 뭐라 뭐라 끊임없이 중얼거리는 중이었다.

이 사람도 확실히 제정신은 아닌 모양.

지나쳐서 둘러보니 대기실 구석에 타일 하나가 반쯤 파여 들려 있는

게 보였다.

나는 천천히 구석의 파인 타일로 이동했다.

안을 들여다보자 여자 시체 하나가 시멘트에 묻힌 게 보였다.

원래는 보이지 않게 단단히 묻혔었겠지만, 누군가 방금 파서 들춰 놓은 모양.

부패가 진행돼서 알아보기는 힘들었지만, 언뜻 외형을 보니 방금까지 포린세스에 숨어 있던 그 소녀와 비 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녀, 억울하게 살해당한 연습생의 시체다.

나는 천천히 일어서서 남성에게 다 가갔다.

“데뷔, 시켜 준다고, 꼬드겨서

의자에 묶인 채 횡설수설하고 있는 남성.

포린세스 멤버들이 그 남자를 보는 눈길이 예사롭지 않다.

“아는 얼굴인가요?”

내가 묻자 리더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여기 방송국 사장이야.”

“ 사장······

“전에 공개 오디션을 볼 때 한 번

참관 왔었는데, 내 다리를 끈적하게 훔쳐보던 게 기억나.”

바로 눈앞의 우리를 알아보지도 못 하고 정신없이 뭔가를 횡설수설하고 있는 남자.

“소속사로, 바로, 데뷔시켜 준다 고……

남자가 하는 말을 가만히 귀 기울여 들어 보니, 대충 맥락을 알 수 있었다.

“이 사람이 죽였군요.”

방송국의 사장이라는 직위를 이용 해 연예 기획사나 오디션 자리에 이 리저리 기웃대던 그.

한 연습생에게 데뷔를 시켜 준다고 꼬드겨 욕망을 치르려다 잘 안 풀리자 홧김에 살해해 버렸고.

아마도 지금 우리가 있는 곳이 그 살해 현장.

보는 눈이 많은 방송국의 특성상 시체를 밖으로 꺼내기 어려워, 업자를 불러 시체를 바닥에 매장해 버린 것.

그게 저번 달의 일.

내가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한계 치인 입학식보다 더 전의 일이다.

돌아가도 막지 못한다.

“데... 데뷔 시켜 준다고… 꼬드겨

서……

나는 횡설수설하는 남자를 뒤로하고는 시체에게 다가갔다.

무릎을 숙여 앉고는 그녀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봤다.

남자가 어찌나 잘 묻어 뒀는지 그 동안 벌레도 꼬이지 않았다.

전생의 기억에서는, 이 연습생은 결국 발견되지 않은 채로 3년이 흘러 갔었다.

“친구가 부른다는 안내를 받고 따라왔어요.”

“다 준비해 두었군요. 범인도, 당신

이 묻힌 곳도.”

부패가 시작되었는지 시체에서 악 취가 풍긴다.

하지만 언뜻 보이는 여성의 갸름한 얼굴선은 아주 아름다웠다.

살아 있었다면 굉장한 미소녀였을 거다. 물론, 이미 분장실에서 확인했지만.

나이도 아마 나와 비슷했을 것이다.

“돌아가도 당신을 구하지는 못할 것 같아 미안해요.”

“저 사람을 넣어 줬으면 해요? 감옥에?”

“당장은 어려워요. 법을 집행할 사람들도 모두 제정신이 아니거든요.”

“당신이 너무 잘해서 그래요. 춤도, 노래도. 열심히 했잖아요.”

“어땠나요? 대한민국 최고의 아이 돌이 된 기분은… 미련이 조금 풀렸나요?”

나는 다시 일어서서 남자에게 향했다.

“이 여자를 네가 죽였다는 증거가 필요해.”

뒤룩뒤룩 살이 찐 중년의 남성은 횡설수설하며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렸다.

“정액. 내 정액이......

“X발!”

리더가 결국 참지 못하고 남자의 뺨을 철썩 때렸다.

“더러운 새끼!”

"으음..."

남자를 구타하는 리더와 소극적으로 말리는 포린세스의 멤버들.

나는 조용히 막내 소녀를 불러냈다.

“당신의 핸드폰 번호가 필요합니다.”

“제, 제 번호요?”

“네.”

당황해하면서도 선뜻 가르쳐 주는 그녀.

나는 그 번호를 읊조리며 대기실을 나서기 전 경원이에게 말했다.

“아무도 시체에 손 못 대게 잘 지 키고 있어. 해야 할 게 있어서.”

“지금 하러 가는 건가? 그 시간을 돌린다는 거.”

“그렇다면 부장, 한 가지 부탁할 게 있다.”

뭐냐는 눈짓으로 묻자 녀석이 안경을 매만지며 대답했다.

“내가 처음으로 산 핸드폰은 클로버의 아몰레드 피쳐폰이다. 나에게 그걸 말하며 설득하면 아마도 얘기가 통할 거다.”

“···그걸로 믿어 줄까?”

“아마. 믿어 줄 거다.”

녀석은 재차 고개를 끄덕였다.

“부탁한다, 부장.”

“알겠어. 내가 고맙다.”

대기실을 나서자 빼곡하게 들어차 있던 가수들이 무릎을 꿇고 있었다.

가요계의 대선배들이 새롭게 탄생 한 아이돌의 여왕을 향해 경배하고 있었다.

괴담 동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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