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화
여섯 번째 괴담 - 수능 금지곡 (12)
돌아가면 제일 먼저 연락해야 할, 괴현상을 처음부터 눈치채고 있었던 막내의 전화번호.
그리고 시체가 묻혀 있는 위치.
범인과 그 증거.
외워야 할 모든 것을 중얼거리며 나는 방송국 옥상에 서 있었다.
어디쯤에서 뛰어내려야 확실히 죽
을지 위치를 찾던 중, 뒤에서 인기 척이 들렸다.
“···준아.”
자그마한 몸집에 교복을 입은, 나 이에 비해 어려 보이는 여학생 한 명이 서 있었다.
“선아야, 왜 따라왔어.”
“기다리고 있지, 왜-”
“지금 돌아가려는 거잖아……
역시 알고 있었구나.
이내 선아는 뭔가 할 말이 있다는 듯 머뭇거리며 나에게 다가왔다.
폐허가 된 도시.
곳곳에서 아직도 연기가 올라왔고, 비명 소리도 간간이 들려오긴 했지만.
그래도 이렇게 높은 옥상에서 석양을 받으며 서 있자 왠지 이곳만은 평화롭고 나른한 분위기다.
선아가 천천히 다가오더니 그대로 나를 지나쳐 내가 뛰어넘으려던 난 간을 살폈다.
높은 곳에서 불어오는 바람 때문에 선아의 머리를 흩날렸다.
경원이가 시체를 잘 지키고 있을 까.
혹시라도 갑자기 시체를 꺼내거나
뭔가 변수가 생겨서 괴담이 퇴치되면 안 될 텐데.
사실 아직도 체크 포인트가 어디를 기점으로 갱신되는 건지 정확히는 모르고 있다.
괴담을 하나 퇴치할 때마다일까?
아니면, 한 사건의 분기가 되는 시작점인 걸까?
“후……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뭐 이제 와서 시체를 건드릴 사람은 없겠지.
3번 대기실에선 경원이 말고도 멤 버들이 잘 지키고 있겠지, 그렇게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시간을 되돌리기 전, 이 고생을 함 께한 지금의 선아와 잠시 얘기를 나 눌 여유 정도는 가질 수 있지 않을 까.
“오늘 정말 고생 많았어, 선아야.”
하지만 선아는 난간을 붙잡고, 저 멀리 도시를 내려다보기만 할 뿐 말 이 없었다.
한참을 그렇게 가만히 있던 선아가 조용히 말했다.
“여기서 뛰어내리려는 거야?”
« 응
약간 슬픈 표정을 지으며 돌아보는 선아.
“나만 두고… 가 버리는 것 같아 서……
휴. 그게 걱정돼서 쫓아온 걸까.
나는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아니야, 시간을 되돌리려는 것뿐 이야.”
말은 그렇게 했지만, 물론 나 역시 신경 쓰이긴 한다.
하루.
짧다면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래도 잊을 수 없는 사건을 함께 겪은 것었다.
힘든 시간을 겪으며 우리는 그래도 조금이나마 정신적으로 성장했겠지.
서로에 대한 생각도 많이 달라졌을 거고, 좀 더 친해지거나 관계가 더 깊어졌을지도.
그런데 허무하게도 다시 그 전으로 돌아가게 될 거다.
사건을 겪기 전, 모두가 괴담에 대해서 면역이라곤 없었던 백지상태 로.
“미안, 선아야. 하지만 이런 세상에 서는 살아갈 수 없어.”
“사람들이 많이 죽었어. 부모님도
연락이 안 되고, 학교는 물론 나라 자체가 제 기능을 할 수 없을 거야.”
“이런 곳에서 살아간다는 건 고통 일 뿐-”
“소중한 사람과 함께라면 괜찮다고 생각해……
순간 할 말을 잃었다.
돌아가려는 나를 말리려고 따라온 거라면.
만일 그렇다면, 솔직히 선아를 설 득시킬 자신이 없다.
기억이라도 같이 공유된다면 아무
문제가 없을 텐데.
나 역시 그게 찔려서 슬쩍 해야 할 일만 하고 옥상에 올라온 건데, 결국 마주하고 말았다.
선아와 나는 석양을 배경으로 서로 마주 본 채 옥상에 서 있다.
잠시 말없이 침묵이 이어졌고, 내 가 먼저 입을 열었다.
“미안. 돌아갈 거야.”
“내가 너한테 뭔가 해 줄 게 있을 까?”
선아는 쓸쓸한 표정으로 잠시 머뭇 거리며 고민하더니, 이내 한 가지
부탁을 했다.
“돌아가면 나한테 모든 걸 말해 줘……
“그거야 나도 그러고 싶지만, 네가 믿어 줄지가……
“믿어 줄 거야. 반드시.”
확신을 담은 말투.
나 역시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알겠어. 다 말해 줄게.”
“푸훗.”
선아가 갑자기 피식 웃었다.
“준이, 미워……
허락한다는 뉘앙스.
아직 삐진 듯했지만, 아까보다는 마음이 조금 풀린 모양이다.
나 역시 살며시 선아 옆으로 다가 가서 난간 아래를 내려다봤다.
“우와. 진짜 높기는 높네.”
“그러게……
청담동의 화려한 대리석과 유리로 도배한 고급 빌딩들.
석양이 그 빌딩들을 비추며 옅은 역광을 만들어 낸다.
빵! 빵! 빠앙~!
문득 밑에서 자동차의 경적 소리가 들려서 살펴보니, 선생님의 차가 사
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게 보였다.
“선생님이다!”
선생님의 차를 둘러싼 사람들이 마치 스타크래프트의 유닛들을 보는 것처럼 조그만 게 현실감이 없다.
우리는 왠지 느긋한 마음으로 그걸 감상했다.
빵! 빠앙.
경적 소리가 잦아들더니, 차 문이 열리고 선생님이 뛰쳐나와서는 허겁 지겁 도망갔다.
그걸 뒤따라 방송국의 관계자들이 우르르 몰려서 뒤따라갔다.
“선생님 연예인 되셨네.”
« ”
선아가 입을 가렸지만, 손 사이로 웃음이 터져 나오는 건 막지 못했다.
이내 양심에 찔렸는지 샐쭉한 표정으로 나를 탓하는 선아.
“준이, 나빠.”
다시 한번 미지근한 바람이 우리의 머리칼을 흩날리게 했다.
선아의 검은색 반곱슬 머리칼이 살짝 붉어진 뺨 옆에 달라붙는다.
“부러워. 돌아가면 있을 윤선아……
“그게 너야. 같은 사람이야.”
“다른 애처럼 느껴진단 말야……
“너 맞다니깐. 질투할 필요 없어.”
“흥……
콧방귀를 뀌는 선아.
그러고 보니 그녀에게 한 가지 물어봐야 할 게 있었다.
선아와의 관계에 돌이킬 수 없는 영향을 끼칠까 봐 먼저 꺼내지 못했지만, 시간을 되돌리기 직전인 지금이라면 던져 봐도 괜찮지 않을까 싶었다.
“선아야, 혹시 ‘얀데레’라는 단어 알아?”
“양대레?”
선아가 갸우뚱했다.
“응, 얀데레.”
"으음..."
선아는 잠시 눈썹을 귀엽게 찡그리더니 곧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미안, 몰라……
“처음 들어 봐?”
« 응
“나도 덕훈이한테 들은 건데. 일본어래.”
“ 일본어……
“어떤 사람을 너무 좋아해서 집착
적으로 소유하려 들거나, 심하면 죽이기까지 하는 사람들이래.”
선아는 말없이 난간에 얼굴을 기댄 채 빌딩숲을 바라봤다.
“왜 그런 짓을……
“그러게. 왜 그러지.”
나도 같이 궁금해하며 난간에 팔을 기댔다.
“그런데 실제로 그런 사람들이 있다고 하네.”
“이해는 잘 안 가지만.”
“그렇구나……
“응, 그렇대.”
저 멀리 선생님이 보인다.
도망가다가 하이힐을 집어던지고는 맨발로 뛰셨다.
나는 아찔한 높이의 바닥에서 고개를 돌려 선아의 옆모습을 빤히 쳐다 보았다.
“왜 사랑하는 사람을 아프게 하려는 걸까?”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 선아.
“그러게……
나는 목소리를 가다듬고는 다시 물어보았다.
여기에 대해서는 확실히 하나라도 짚고 넘어가야 다음의 인생이 안전 할 것이다.
“뭔가 짐작 가는 게 있다면 말해 줄래, 선아야?”
“으음... 왜 나한테.”
“그냥. 여기저기 의견을 듣는 중이 거든.”
“글쎄. 흐음……
곰곰이 생각하는 듯한 선아.
그리고 어렵게 한 단어를 내뱉는다.
“뺏길까 봐… 아닐까?”
그 순간, 떠오르는 메시지.
파앗-
[인물 윤선아에 대한 이해도가 10 올랐습니다.]
“흠!”
뺏길까 봐!
그게 정답인 모양이구나.
잘 이해는 안 가지만, 뭐 얀데레인 본인이 해 준 말이라면 아마 정답일 테지.
밑을 내려다보니 드디어 사람들이 선생님을 붙잡은 게 보였다.
“선생님 드디어 잡혔다.”
“···아.”
시민 몇 명이 선생님을 붙잡고는 라디오 같은 걸 귀 옆에 갖다 대었다.
선생님은 필사적으로 저항하는 듯 보였지만, 저항하는 몸부림이 서서히 안무로 바뀌어 가더니 결국 엉덩 이를 들썩이며 춤을 추기 시작하셨다.
“신나 보이네.”
“준이, 진짜……
하지만 올라가 있는 선아의 입꼬 리.
“읏차. 그럼 슬슬 가 볼까.”
이 정도면 충분히 쉬었다.
나는 난간 위에 다리를 걸쳐 올리고 반대편으로 몸을 넘겼다.
난간의 반대쪽에는 발을 디디고 서 있을 틈이 얼마 없었다.
‘어라?’
손으로 난간을 붙잡아 몸을 지탱하자 갑자기 간담이 서늘해지는 기분 이 느껴졌다.
막상 뛰어내리려고 서 보니 상당히 무서웠다.
‘아, X발. 좀 아닌데……
바람이 서늘하게 불어와 등골을 오
싹하게 만들자 정신이 번쩍 든다.
밑을 슬쩍 내려다보자 먼 풍경을 바라볼 때와는 다르게 아득한 높이가 체감이 나서 다리가 후들거렸다.
‘어? 무섭네?’
발 조금 삐끗하면 그대로 추락해 버리는 아슬아슬한 자세.
그대로 그냥 추락해 버리면 되는 건데 모골이 송연해지며 발을 떼기가 어렵다.
가만히 나를 보는 선아에게 말을 걸어 봤다.
“서, 선아야.
“같이 안 뛰어내릴래?”
어이가 없다는 듯이 나를 보는 선아.
“안 오면, 나 먼저 간다?”
“응, 잘가……
“진짜 간다?”
“그래……
“흐읍!”
“···하고 기합 한 번 넣어 주고.”
나 바이킹도 잘 못 타는 쫄보인데.
갑자기 맨몸으로 고공 점프라 니…….
“이렇게! 이랴앗! 하고 준비를 잡 아 주는 거고, 사실은 지금! 하고 기합 한번!”
선아가 난간에 몸을 기댄 채 키득 거렸다.
“준비 자세. 준비 자세.”
팔을 오므렸다 폈다 하며 몸을 흔 들다가, 다시 한번 기합을 외쳤다.
“죽으러 간-”
삐끗.
생각했던 타이밍보다 빠르게 발 한 쪽이 미끄러지며 흘러내렸다.
“엄마, 씨바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아 아 아 아 아 아 아 아 아 아 아 아 아
알!!!!!!!!!!!!!!!!”
다급하게 손아귀에 힘을 줘 몸을 일으켜 세웠다.
이번에도 뛰어내리지 못했다.
“서, 선아야……
“왜?”
선아가 헤실거리며 놀리는 듯한 웃음을 짓는다.
“나 좀 도와줘……
문득 매뉴얼 괴담 속 웃는 여자를 마주했을 때가 생각났다.
그때도 혼자 가기 무서워서 뒤에 선아를 세워 놓고 갔었는데.
읏쌰.”
즐거운 듯 웃음을 지으며 가볍게 난간을 넘어오는 선아.
“아, 안 무서워?”
“ 별로……
너무 듬직해!
이내 넘어온 선아는 내 옆에서 똑 같이 아슬아슬하게 몸을 지탱한 채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준이한테는 역시 내가 필요하구 나……
“이대로 나랑 같이 죽자, 준아
살며시 올라가는 선아의 입꼬리.
“아무도 우리를 뺏어가지 못하게……
“캬아악!”
나는 꽥 소리 질렀다.
“드디어 본색을 드러냈구나!”
“후후……
나는 급히 난간을 타고 모서리로 도망갔다.
“얀데레야, 사람 살려~!”
허겁지겁 옆걸음질 치는 나를 배시 시 웃으며 쫓아오는 선아.
“나를 토막 내서 먹어 치울 속셈이
다!”
선아가 나를 쫓다 말고 웃음을 터트렸다.
“꺄하핫! 장난친 거야, 장난… 진짜 무슨 소리야 아까부터! 아하핫….”
“냉장고에 가두려 한다!”
“아하, 아하하하하.”
한 손을 떼서는 눈물을 닦으며 웃는 선아.
“아하하, 진짜, 바보… 가만히 있어 봐.”
천천히 옆걸음질 쳐 나에게 달라붙어 오는 선아.
다리를 내 허벅지 위로 올려서 기어들어 오더니, 내 위에 걸치고 누운 형태로 자세를 잡기 시작했다.
“서, 선아야… 무슨.”
선아의 부드러운 엉덩이가 하체를 누르는 형국이 되었고, 검은색 반곱 슬의 머리칼이 내 코를 간지럽힌다.
순간 확 풍기는 선아의 체취에 머리가 아찔해진다.
“이렇게 안 밀어 주면 못 뛰어내릴 거잖아……
“으음, 인정.”
뒷모습이지만 배시시 웃는 선아의 입꼬리가 보인다.
“좋아. 셋 하면 뛰어내리는 거다! 자, 셋……
“에잇!”
파악-
숫자를 채 세기도 전에 선아가 있는 힘껏 난간을 발로 밀어냈다.
“우, 우와아아아아아아아앗!”
나는 허공에 붕 뜬 채 있는 힘껏 비명을 내질렀다.
잠시 무중력을 느꼈고, 우리는 곧 밑으로 추락했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악!”
“꺄아아앗.”
나는 정신없이 소리를 질렀고, 선아도 얼굴이 빨개진 채 눈을 질끈 감고 있다.
“살려 줘어어어어어어어어어!”
손을 아무렇게나 휘두르다가 잡히는 대로 선아를 꽉 안아 버렸다.
“꺄아아앗!”
“선아야아아아아, 살려 줘어어어어 어어어!”
“그냥 죽어… 진짜……
“으아아아아아아아.”
그렇게 허공에서 서로 머리까지 박아 가며 꼭 끌어안은 채 한참을 떨어 졌고.
쿵!
몸이 부러지는 강한 충격과 함께 나는 죽고 말았다.
[당신은 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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