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담 동아리-45화 (45/130)

45 화

일곱 번째 괴담 - 싸이코패스 테스트 (4)

번뜩-

[2019년 3월 19일 화요일, 02:00]

[이준 - 2회차]

[괴담 포인트 : 136]

[인과율 : 10%]

싸이코에게 배에 칼을 찔려 죽은

후, 회귀해서 꿈을 꾸던 도중으로 돌아가자마자 옥상에서 뛰어내린 덕 분에 나는 아까보다 7분이나 일찍 깨어났다.

새벽 2시.

7분 빠른 시간.

나는 생각 대신 단숨에 침대를 박 차고 일어나서 일단 방을 나섰다.

불이 꺼져 있는 집 안, 달빛만이 은은하게 거실을 비춘다.

‘ 없나?’

가만히 인기척을 살펴보았지만 조용한 집 안.

괴한은 아직 침입하지 않은 걸까?

서둘러 현관문을 살펴봤다.

현관문은 닫혀 있었지만, 잠겨 있지는 않았다.

가족 중 누군가 저녁에 들어오며 실수로 잠금쇠를 약간 걸쳐 뒀는지, 도어락이 반쯤 열린 채로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잠시 후.

문 바로 앞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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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윽-

나는 재빠르게 현관문의 손잡이를

잡아당겨 문을 잠갔다.

[삐리릭~]

동시에 밖에서 문고리를 돌려 당기는 누군가.

철컥. 철컥.

막았다.

놈이 못 들어오게 막았다.

침입하기 전 간발의 차로 문을 잠 갔다.

똑. 똑. 똑.

한숨을 내쉬려던 찰나, 문을 두드

리는 노크 소리.

똑. 똑. 똑.

어떻게 할까.

아무리 괴담이 만들어 낸 싸이코라 할지라도… 현대의 기술로 굳게 잠 긴 문이다.

놈이 따고 들어올 수 있을 리는 없다.

이곳은 안전하다.

‘그렇다면.’

똑. 똑. 똑.

나는 부모님이 깰까 봐 조용히 목 소리를 낮추고는 대답하며 반응을 보았다.

“누구세요?”

그러자 들려오는 중성적인 목소리.

“지나가던 사람인데요. 화장실이 급한데 좀 쓸 수 있을까요?”

“새벽 2시에요?”

“네.”

“얼마나 급하신데요?”

“좀 많이 급해서요.”

“큰 거예요?”

“둘 다요.”

“저희 집 화장실 쓰려면 돈 내셔야 하는데.”

“아, 그런가요? 혹시 얼마 정도

너, 눈치챘구나.

순간, 나도 모르게 흠칫하고 말았다.

뚜벅뚜벅.

놈이 현관문에서 멀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들켰으니 그냥 간다는 걸까.

‘근데 이 X발 새끼가 진짜.’

[삐리릭~]

나는 현관문을 열었다.

놈이 복도 저만치에서 가다 말고 흠칫하며 뒤돌아봤다.

“야, 병신아.”

“벌써 가니? 개 쫄보 새끼.”

괴한이 다시 성큼성큼 우리 집으로 걸어왔다.

“응, 꺼져~”

[삐 리릭~]

나는 잽싸게 현관문을 닫았다.

똑. 똑. 똑.

놈이 다시 현관문을 노크한다.

“왜?”

대답이 없는 괴한.

잠시 후.

뚜벅뚜벅.

놈이 다시 멀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타이밍을 잰 후, 다시 현관문을 연다.

[삐리릭~]

“간 줄 알았냐 이 쥐좆만 한 새끼야.”

괴한이 현관문 바로 옆에서 숨어 있다가 문을 열자마자 칼로 찔렀다.

나 역시 잽싸게 뒤로 물러서서 피 했다.

문틈으로 칼을 휘둘러 왔지만, 더 뻗지 못하고 허우적거리는 괴한의 손.

“그럴 줄 알고 안전고리 걸어 놨다, 병신아.”

“이... 이 새끼.”

구두를 벗은 양말 차림의 괴한.

일부러 가는 척 구두 소리를 낸

후, 구두를 벗고 다시 맨발로 소리 없이 잽싸게 현관문 옆에 숨어 있던 것이다.

“죽여 버린다!”

“목소리 낮춰라, X발놈아. 부모님 깨면 바로 경찰에 신고해 버린다.”

복면 속 놈이 싸늘한 눈빛으로 쳐 다봤다.

“안전고리... 이거 믿고 까부냐? 푸는 데 1초도 안 걸려.”

그러더니 문 앞에 놓여 있던 자석 책자 하나를 잽싸게 손에 들더니 대번에 안전고리의 틈을 찔러 해제시 키려는 남자.

철컥, 철컥!

“이거 이중 안전고리.”

“안 그래도 티브이에서 요새 효과 없다고 난리길래. 이중으로 바꾼 거야.”

“아, 그렇구나……

바바리코트에 복면을 쓴 괴한은 잠시 멍청히 서 있다가, 나를 한 번 노려보고는 다시 뒤돌아 가 버렸다.

뚜벅뚜벅.

“가냐? 벌써?”

“쫄보 새끼. 들키니 바로 튄대요.” 뚜벅뚜벅.

“고추 떼라, 병신아… 진짜 가네?”

이번엔 진짜로 간다

‘곱게 보내 줄 것 같냐, X발놈아.’

남의 집에 들어와서 아무렇게나 사람을 죽여 대는 미친놈.

부모님을 난도질하고 나를 찔러 죽인 싸이코 새끼를 이대로 놓아줄 생각은 없다.

하지만 일대일로 정직하게 싸우면 아마도 내가 질 것이다.

놈은 흉기를 들고 있고, 사람을 찌르는 데 망설임이 없는 정신병자.

상식적으로는 괜히 나서기보단 경 찰을 부르는 게 맞다.

하지만… 놈이 오늘 나타난 건 우연이 아닐 터.

‘사이코패스 테스트.’

동아리의 레벨이 올라가며 얻은 괴담 수집력, 그걸로 수집해 온 C급 괴담.

놈은 거기서 튀어나온 존재가 분명 하다.

그렇다면 흉기를 들고 치고받는 육 박전을 할 필요도 없이, 괴담을 역 이용하면 뭔가 다른 방법을 통해 조져 버릴 수도 있지 않을까.

그걸 위해서는 먼저 이게 어떤 내 용의 괴담인지 정확히 알아야 한다.

내가 한 거라고는 단편적인 심리 테스트가 전부.

이 괴담의 내용 자체에 대해서는 아직 모르는 상황이다.

‘···안경원!’

그러고 보니 경원이에게 사이코패스 테스트의 검사지를 찍어서 보냈었는데, 답장이 오기도 전에 일찍 잠들어 버렸다.

서둘러 핸드폰을 열자 아니나 다를 까, 내가 잠들어 있는 동안 녀석에게 카톡이 와 있었다.

나는 서둘러 경원이의 카톡을 확인 했다.

[답장이 늦어서 미안, 학원이 늦게 마쳤음.]

[부장이 보내 준 심리검사지, 아무 리 봐도 신경 쓰여서 찾아봤는데, 그거 사이코패스를 가려내는 테스트는 일단 아니야.]

사이코패스를 가려내는 테스트가 아니라고?

이게 무슨 소리지.

나는 곰곰이 생각하며 그다음 카톡

을 읽어 나갔다.

[그 검사지를 만들었다는 심리상담사 로버트 번디는 연쇄살인마.]

[미국의 워싱턴 대학교에서 심리학을 전공한 그는 테스트라는 이름하에 교묘하게 대상자들의 집 주소를 알아낼 수 있는 문항들을 검사지에 숨겨 놓은 후, 주위 사람들에게 심 리 검사를 하며 자신에게 알맞은 희 생자를 골랐다.]

[그 문항들을 자세히 살펴봐. 언뜻 보면 평범해 보이는 문항들 속에 옥 상이라든가 층의 수라든가 은근하게 집 주소를 특정할 수 있는 요소들을 숨겨놨어.]

[그 검사지는 사이코패스가 희생자를 고르기 위해 만든 테스트.]

이건 싸이코패스‘가’ 만든 테스트였다는 말이구나.

정리해 보자.

지금 내가 마주친 C급 괴담, ‘싸이 코패스 테스트’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대충 전체적으로 이런 이야기일

거다.

『싸이코패스인지 아닌지를 테스트 해 준다는 심리검사지. 누군가 해 준다길래 아무 생각 없이 하고 봤는 데, 알고 보니 테스트를 해 주는 사람 본인이 싸이코패스였다! 나는 싸이코패스의 희생자가 되고 말았다.』

“후우.”

이야기의 구조가 이렇다면 내가 할 일은 명확하다.

문항에 싸이코의 사고방식으로 답

변해 주면 되는 거다.

그럼 괴담의 내용은 아래처럼 변화하게 된다.

『싸이코패스인지 아닌지를 테스트 해 준다는 심리검사지. 누군가 해 준다길래 아무 생각 없이 하고 봤는 데, 알고 보니 테스트를 해 주는 사람 본인이 싸이코패스였다! 그런데 테스트한 나도 싸이코패스였다! 상황은 알 수 없게 흘러가는데…….』

···대충 이렇게 되려나.

문항에 반대로 답변하는 걸로 이야

기의 구조를 변화시킨다면, 나는 희 생자의 위치에서 놈과 대등한 관계까지는 올라설 수 있을 것이다.

잔머리 하면 나도 꽤 쓰는 편인데도 아까부터 놈의 페이스에 은근히 휘둘려지던 것도, 아마 이야기 구조 상 내가 희생자의 위치에 있기 때문인 게 클 것이다.

괴담에는 사람의 인식을 뒤바꾸고, 상황과 현실마저 조작해 버리는 힘 이 있으니깐.

‘···좋아. 한번 해 보자.’

나는 서둘러 화장실로 들어간 후, 어두운 가운데 거울을 마주 봤다.

[당신은 방 안에서 혼자 거울을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왜일까요?]

“거울이 더러워서 그래. 거울 때문 이야.”

혼자 다짐하듯 대답했다.

두근.

뭔가… 뭔가 느껴진다.

방금 전 괴한과 실랑이를 벌인 탓에 계속해서 가슴이 긴장 상태였었는데, 문항에 싸이코의 답을 재현하는 순간 머릿속이 차분해진 느낌이

다.

‘다음. 다음은 뭐더라.’

나는 이어서 재빨리 베란다로 가서 창문을 열고 아래를 내려다봤다.

드르륵-

아니나 다를까, 아까의 괴한이 이렇게 그냥 가기는 못내 아쉬웠는지 지상에서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며 위협하는 괴한.

[당신은 한밤중, 잠에서 깨 베란다로 나왔습니다. 아래를 내려다보자 어떤 남자가 칼을 들고 서 있는 것

이 보입니다. 남자와 눈이 마주친 당신. 그 남자가 갑자기 검지손가락을 들어서는 당신 쪽을 가리킵니다.

왜 그랬을까요?]

“내가 있는 층수를 세고 있는 거야.”

그렇게 중얼거리자 다시 가슴속에 서 뭔가 느껴진다.

점차 사고방식이 변화하는 기분.

나는 빠르게 주방으로 갔다.

[직후, 당신은 주방으로 제일 먼저 갑니다. 왜일까요?]

“배가 고파.”

냉장고를 열어 아빠가 술안주로 사 놓은 슬라이스 치즈 한 장을 재빨리 뜯어서 입에 넣었다.

이제 무서운 감정은 다 사라졌다.

점차 복수심만이 머릿속에 가득하다.

괴담을 역으로 이용한 탓에 천천히 싸이코의 사고방식과 뇌가 나에게 동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 문항들에 그렇게 답변하는 건 싸이코패스뿐일 테니깐.

“후우.”

저 새끼를 어떻게 조져 버려야 속

이 시원할지, 그런 음습하고 어두운 감정들이 마음속에 요동친다.

하지만 필사적으로 나 자신을 잃지 않으려 목표를 되새기며 입에 넣은 치즈를 삼켰다.

그리고 빠르게 현관문을 열고 복도로 나가서 엘리베이터를 탄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최상층에 내린 후, 나는 옥상층으로 뛰어 올라갔다.

철컥-

잡다한 청소 용품들을 치우고 잠겨 있는 옥상 문을 연다.

그리고 경치가 잘 보이는 가장자리로 빠르게 다가섰다.

[한밤중에 당신은 바람을 쐬러 옥 상에 올라갑니다. 경치를 구경하던 중, 갑자기 당신 뒤에서 무언가가 스윽 지나갑니다. 무엇이 지나갔을 까요?]

싸이코의 대답은 동물 또는 이성이었지.

동물은 너무 뜬금없으니깐 그냥 사람이 좋지 않을까.

“여자. 여자가 지나간다.”

그렇게 어두운 옥상에서 혼자 중얼 거린 후 뒤를 돌아보자.

하윤이가 서 있었다.

“안녕, 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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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 괴담과 동화되어 이미 정상적인 사고방식과 한참 벗어났음에 도, 너무 놀라서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네가 왜……

입을 뻐끔거리는 나.

달빛을 받으며 서 있던 하윤이는 아무렇지도 않게 빙긋 웃으며 나에게 다가왔다.

“여기 되게 높다, 그치.”

“···무슨.”

“우와.”

가느다란 목을 쭈욱 빼서는 위험하게 옥상 밑을 내려다보는 그녀.

흑발 몇 가닥이 귀에 걸린 채 날 씬한 목선 옆에 흩날린다.

“저기 봐. 선생님이야.”

“선... 생님?”

그 말에 나도 천천히 하윤이 옆으로 다가가서는 밑을 내려다봤다.

집에서 내려다볼 때보다 훨씬 높은 위치지만, 그래도 아까의 그 바바리 코트 괴한이 서성거리는 게 조그맣 게 보였다.

“선생님,이라고?”

“응. 몰랐어?”

몰랐다.

확인해 볼 방법은 하나뿐이다.

“···상태창.”

나는 저 멀리 아래 보이는 괴한을 향해 중얼거렸다.

그러자.

파앗-

《상태창》

이름 : 장화은 LV.1 [0/100]

나이 : 34

칭호 : 노처녀 여선생

성향 : 하이텐션 특수 능력 : ??? 기벽 : ???

이해도 : 40/100

또.

또 선생님이다.

또.

또!

[인물 장화은에 대한 이해도가 10 상승했습니다.]

[이해도가 절반의 수치를 넘어섰습

니다. 기벽에 대한 정보가 공개됩니다.]

[인물 장화은의 기벽은 ‘빙의’입니다.]

“빙의? 빨리도 가르쳐준다, X발! 진작에 알고 있었다고!”

히스테릭하게 버럭 외치는 나를 하윤이가 물끄러미 쳐다봤다.

“젠장, 뭐 이런……

후욱, 후욱.

잔뜩 짜증이 난 채 거칠게 숨을 몰아쉬는 나.

그 모습을 보더니 옆에서 장난스레

후훗, 하고 하윤이가 웃는다.

“힘내~”

기다란 속눈썹을 감으며 빙긋 웃는 그녀.

동네 아파트 옥상에서 달빛을 받고 있는 신비로운 같은 반 여학생. 전혀 현실감이 없는 장면이다.

“저기, 근데… 갑자기 네가 여기 왜……

더듬거리며 묻는 나에게 하윤이는 대답 대신 킥킥거리며 웃을 뿐이었다.

“짜증 나지?”

“뭐?”

“선생님.”

감정이 절제된 듯한 평소의 모습과는 다르게 즐겁다는 듯이 달빛을 받으며 마구 킥킥대는 하윤이.

“너희 부모님을 죽였잖아. 화나지 않아?”

“네가 그걸 어떻게……

“조져 버려. 분이 풀릴 때까지.”

고상한 평소의 하윤이라면, 절대 내뱉지 않을 저급한 단어.

하지만 그 단어가 주는 쾌감이 내 욕망을 자극한다.

아무 죄도 없이 착하게 살아오신 부모님을 재미 삼아 찔러 죽인 미친

놈.

그런 새끼를 가지고 노는 건 도덕 적으로도 괜찮은 일이 아닐까.

하윤이는 점점 빨갛게 변하는 내 얼굴을 보며 더 광기에 차서 킬킬댔다.

“똥오줌을 지려 버리게 만들자, 준아. 다시는 빙의돼서 개짓거리를 못 하게.”

“···잠시, 잠시만.”

“다시는 지랄을 못 하게 선생님을 피 터지게 조져 보자, 준아!”

“시, 시끄러! 잠시, 잠시만 있어 봐, 잠시만……

허억, 허억.

하윤이가 말을 못 하게 간신히 손으로 제지했다.

아까부터 저런 저급한 단어들을 들을 때마다 머리가 어질거려서 참을 수가 없다.

피가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기분.

선생님을 어떻게 가지고 놀지.

상상만 해도 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 재밌을 것 같아 손이 덜덜 떨린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필사적으로 고개를 휘저었다.

“잠시만. 잠시만… 기다려, 잠시

만……

안 그래도 문항들에 반대로 답하며 천천히 사고방식이 싸이코의 그것으로 변해가던 도중.

그녀가 욕망을 부추기자 점차 돌이 킬 수 없는 짓을 저지를 것만 같은 위험한 기분이 든다.

“너... 조용히 해, 잠시만......

“마음에 뭔가 걸려? 그럼 나중에 시간을 되돌리면 되잖아.”

“그럼 괜찮아. 시간을 되돌리면 괜 찮아. 그러니깐 다 해 보자, 준아. 아하하.”

이제는 무릎까지 쳐가며 깔깔 웃어 대는 하윤이.

“짜증 나는 사람이 있으면 다 죽여 버려. 열 받게 하는 사람이 있어? 조져 버려. 찌르고 때리고 마음껏 치면서 분 풀어. 스트레스를 발산해. 여기저기 마구마구마구! 시간을 되돌리면 없던 일이야!”

“세상을 구원하는 데 그 정도는 즐 겨도 되는 거 아냐? 준이는 용사님 이잖아! 아하하. 아무도 피해 보는 사람 없어! 가서 다 터트려 버리자 사춘기의 욕망을. 미쳐 버릴 만큼-”

“시끄러! 닥쳐!”

어두운 옥상.

달빛을 받으며 저급한 단어들을 쏟 아내는 하윤이의 모습은 평소보다 더 신비스럽고 아름다웠다.

“너, 뭔데. 누군데.”

대답 대신 웃기만 하는 하윤이.

“상태창.”

반응이 없다.

“상태창!”

“아하하. 준아, 준아.”

반응이 없다.

역시 허상이다.

아까의 선아가 진짜가 아닌 무의식

이 만들어 낸 꿈속의 존재였듯이, 지금의 하윤이도 진짜가 아닌 괴담 이 만들어 낸 허상일 뿐이다.

[한밤중에 당신은 바람을 쐬러 옥 상에 올라갑니다. 경치를 구경하던 중, 갑자기 당신 뒤에서 무언가가 스윽 지나갑니다. 무엇이 지나갔을 까요?]

그 문항에 대해서 여자라고 대답하며 나는 무의식적으로 내가 아는 인물 중 가장 여자라는 이미지와 가깝다고 느꼈던 하윤이를 떠올렸고, 그 게 그대로 현실에 튀어나와 버린 것

이다.

“꺼져 버려.”

“준아, 준아. 아하하.”

“꺼져 버려!”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얼굴까지 빨 개져 가며 웃는 그녀.

나는 그대로 하윤이를 옥상에 내버려 두고 서둘러 집으로 내려갔다.

괴담 동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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