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담 동아리-47화 (47/130)

47 화

일곱 번째 괴담 - 싸이코패스 테스트 (6)

“그걸 혼자 다 먹다니, 믿을 수가 없군.”

“ 일어서.”

드디어 보내 주려는 걸까!

기대하며 헐레벌떡 일어서는 화은.

“다시 앉아.”

“ 일어서.”

“네, 넷.”

“앉아.”

“헥, 헥.”

“일어서. 앉아. 일어서. 앉아.”

달빛이 푸르스름하게 비춰 오는 한 밤중의 아파트 복도.

장화은 선생은 학생의 명령에 따라 운동을 시작했다.

“그만. 뒤로 돌아.”

“네.”

“팔굽혀 펴기 10회 실시.”

“시, 실시.”

엎드려 필사적으로 낑낑대 보지만, 두 개를 넘어가지 못하고 요지부동이다.

“헥, 헥.”

“뭐야. 평소에 운동 안 해?”

“선생님들끼리 운동하는 족구 동호 회 있는 거로 아는데.”

“저, 저는 초대 못 받아서…… 엎드린 채 낑낑대고만 있는 화은. 이준은 한숨을 내쉬고는 그녀를 다

시 일으켜 세웠다.

“다시 일어서.”

“네.”

“팔벌려 뛰기 50회 실시.”

66 | 99

“구령은 주민들이 깨지 않게 작게 말하고, 3의 배수는 붙이지 않는다. 실시.”

“시, 실시.”

펄쩍펄쩍.

“하나, 둘… 넷, 다섯… 일곱, 여덟……

“서른 하나… 서른 셋

“틀렸잖아. 다시.”

“하, 하나, 둘……

안 그래도 바바리코트로 온몸을 칭 칭 감싼 화은.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오, 오십……

“좋아. 뒤돌아서.”

“네... 헥, 헥.”

“이 정도면 오늘 먹은 치킨이 다 빠졌을 거다.”

그럴 리가, 하고 화은은 생각했다.

“지금부터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곧장 집으로 돌아간다. 실시.”

“시... 실시!”

허겁지겁 비상구 계단으로 뛰어 내려가는 화은.

다다다다.

이준은 가만히 그 모습을 지켜봤다.

그리고 집 안으로 조용히 들어가 베란다를 통해 선생이 아파트 단지를 헐레벌떡 벗어나는 걸 확인한 후 에야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동시에 이준의 눈앞에 떠오르는 메시지.

[C급 괴담 - 싸이코패스 테스트와

마주쳐서 살아남았습니다.]

[괴담 포인트 10을 획득했습니다.]

[현재 괴담 포인트 : 136]

어째서 처치했다는 메시지는 안 뜨는 걸까.

그렇게 똥개훈련을 시켰는데, 아직도 빙의된 상태란 말인지.

역시 하윤이가 했듯이 뺨이라도 갈 겼어야 했나, 골치가 아픈 그였지만 본인 역시 괴담 안에서 싸이코의 역할을 맡으며 감정이 무뎌진 상태.

쫓아냈으니 됐지 뭐, 하며 머리를 한 번 털고는 무신경하게 다시 방으

로 돌아가 침대에 누웠다.

그날, 선생에게 테스트를 받은 사람은 그 말고 한 명 더 있었다는 사실을 잊어버린 채.

* * *

“선아야, 밖에 누가 왔데이… 선아야……

어두운 거실, 선아를 부르는 할머 니.

“아무도 없어요, 할머니… 주무세요.”

방과 후 동아리방에서 이준과 노느라 에너지를 쓴 덕분에 오랜만에 푹 자고 있던 선아가 졸린 눈을 비비며 방에서 나왔다.

“밖에 누가 왔데이… 누가 왔데 이……

거실 전기장판 위에 누운 채 같은 말만 중얼거리는 할머니.

가만히 보니 고개를 현관문이 아니라 베란다 쪽으로 돌린 상태인 걸 그녀는 확인했다.

멍하니 할머니의 고갯짓을 따라 베 란다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선아.

그곳에는 할머니의 말처럼 정말로 누가 서 있었다.

바바리 코트.

깊게 눌러쓴 모자.

스타킹을 복면처럼 써서 가린 얼굴.

낡은 아파트 단지의 힘없이 들어오는 가로등 불빛을 받으며 괴한은 서 있었다.

선아와 눈이 마주치자 손가락을 들어 그녀를 가리키는 괴한.

‘층수를 세고 있어!’

그렇게 생각하며 위협을 느낀 선아는 재빨리 방으로 들어가 교복 주머 니에서 분홍색 커터칼을 꺼냈다.

교주가 선아의 부모님을 뺏어가고,

할머니의 정신까지 무너트린 이후로 그녀에게 생긴 기벽이다.

분홍색 커터칼.

선아는 항상 그것을 주머니에 넣고 다녔다.

사람들이 마음을 진정시키려 볼펜을 똑딱이거나, 머리를 꼬거나, 손가 락을 꼼지락거리듯이.

선아 역시 누군가 자신에게서 무언 가를 뺏어가려 한다는 알 수 없는 불안감이 들 때면, 가만히 주머니에 손을 넣어 그것을 만지작거리고는 했다.

그러고 있으면 불안해서 타들어 갈 것만 같았던 마음도 어느새 차분해

지고는 했다.

‘뺏어가게 놔두지 않을 거야.’

정신이 온전치 못한 할머니였지만, 그래도 그녀에게 남아 있는 유일한 혈육.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저벅저벅.

아까의 그 괴한이 어느새 아파트 안으로 들어와 복도를 걷는 소리가 들려온다.

방음이 하나도 되지 않는 오래된 아파트.

바로 눈앞에 있는 것처럼 소리가 선명하다.

선아는 천천히 현관문 뒤에서 괴한을 맞이할 준비를 하며 기다렸다.

그러다 문득 현관에 걸린 낡은 거 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봤다.

젖살이 덜 빠진 어린애가 얼굴이 빨개진 채 커터칼을 잡고 있는 모습.

‘···마음에 안 들어.’

날씬한 턱선에 갸름한 얼굴을 지닌 그녀의 짝지 하윤이에 비하면 어딘 가 퉁퉁하고 늘어져 보인다고 생각 했다.

외모뿐만이 아니다.

정상적인 또래 여자아이에 비해 그녀의 심리는 어딘가 일그러져 있고, 뒤틀려 있는 구석이 많았다.

자기 탓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선아는 눈을 이글거렸다.

하윤이 같은 여자애는 틀림없이 집도 부자라서 어릴 때부터 가지고 싶은 건 다 가지며 살아왔겠지.

금수저. 금수저. 흙수저. 흙수저.

선아는 분노를 품은 채 이글거리는 눈동자로, 화장실을 빌리러 온 척 막 노크하려는 괴한을 문 너머로 쏘 아 봤다.

똑. 똑. 똑.

“죄송한데, 제가 급해서 화장실을

좀……

퍽.

* * *

“선생님.”

잠시 뒤, 낡은 아파트의 복도에 쓰러져 있던 화은은 어리둥절하며 일어섰다.

“여긴 왜 오셨어요?”

현관문에 부딪혀 어질어질한 머리로 선생은 필사적으로 생각했다.

분명히 다 가렸는데, 어떻게 또 알 아챘지.

“선생님 아닌데.”

“거짓말.”

차갑게 비웃는 선아.

“아까요… 오후에… 동아리방에서요... 준이랑 둘이서만… 있었잖아 요……

“무슨 얘기 나눴어요?”

지금 그게 궁금하다고?

화은은 역습할 기회를 노리는 도중에도 어이가 없어서 되물었다.

“그런 건 알아서 뭐 하게?”

“말해 줘요, 빨리……

천천히 커터칼을 화은의 목 아래까지 가져다 대는 선아.

선생의 이마 위로 식은땀 한 줄기가 주륵 흐른다.

‘또 당했다.’

왜지?

자신은 분명히 희생자들을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아야 할 사이코패스 일 텐데.

한참이나 어린 꼬맹이들한테 또 제 압당했다.

“빨리 말해요……

목젖까지 커터칼을 쿡 찌르며 위협 하는 선아.

“서, 선아야? 진정하고, 일단 칼 내려놓자.”

다시 가볍게 선아의 커터날이 목젖을 쿡 찌른다.

조금만 더 힘을 주면 피부를 파고 들 정도의 간격.

“아, 알겠어. 말해 줄게… 그냥… 심리 테스트 하고 있었어… 너한테 도 했던 똑같은 거 말야.”

“···그런 걸 갑자기 왜 한 거예요?”

“선생님 그때 정독실 감독을 하고 있었거든. 노닥거리는 학생들 거 뺏어서 온 거야. 응? 다 말했어. 그러니깐……

그제야 서서히 커터날을 집어넣는 선아.

하지만 다시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묻는다.

“그런데 한밤중에는 준이 왜 만났어요……?”

“뭐, 뭐라고?”

허둥지둥하며 무슨 의미인지 묻는 화은.

“선생님의 옷에서 준이 냄새가 나요……

미친년이 다!

화은은 허겁지겁 복도를 둘러보며 탈출구를 찾는다.

왼쪽은 막다른 길.

오른쪽으로 가서 가운데의 비상구 계단으로 내려가야 한다.

“그, 그렇구나. 그럼 반가웠어, 선아야. 안녕.”

오른쪽으로 달려가려 훅 발을 내딛는 화은.

하지만 다음 걸음을 내딛지 못하고 선아가 잡아당기는 바바리코트 옷깃에 걸려 발이 꼬인 채 쓰러졌다.

쿠당탕.

“대답해요, 선생님… 준이랑 밤에 만나서 뭐 했어요?”

화은은 속에서 부글부글하는 감정

을 느꼈다.

왜! 왜!

애새끼들이 왜 오늘따라 이렇게 당 해 주지 않는 거야!

그녀는 마침내 또 당했다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그만 잘못된 판단을 하고 말았다.

“너 미쳤어? 지금 내가 칼 들고 한밤중에 너 찾아온 거 무슨 상황인 지 파악이 안 돼? 왜 그런 걸 묻는 건데?”

“그래. 대답해 줄게.”

씨익 웃으며 잘못된 대답을 하는

화은.

“밤에 남자랑 여자가 만나면 뭐 하고 놀겠니? 너 같은 꼬맹이가 절대 못 해 주는 거. 준이한테 듬뿍 선물 해 주고 왔단다.”

선아의 입꼬리가 천천히 올라간다.

그리고 내뱉는 한마디.

키득.

“선생님… 저한테 좀 혼나셔야겠어요……

* * *

[당신의 부원이 놀라운 기지를 발휘하여 오히려 싸이코패스를 격퇴하고 말았습니다!]

[괴담 포인트를 50 획득하였습니다.]

[함께한 부원들 한 명당 10%의 보너스 포인트를 얻습니다.]

[참여한 부원 : 윤선아]

[총 획득한 포인트 60에 대해서 10%의 보너스 포인트 6을 추가 획 득합니다.]

[현재 괴담 포인트 : 136 + 60 + 6]

[현재 괴담 포인트 : 202]

동틀 무렵, 빙의가 풀렸고.

화은은 평소처럼 모든 기억을 잊은 채 쓰레기더미 사이에서 깨어났다.

“으음, 여기가 어디야.”

주민들이 몰래 쓰레기를 버려 놓는 아파트 단지의 구석.

어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화은은 천천히 일어섰다.

“바바리코트? 무슨……

주위를 둘러보며 처음 보는 동네인 걸 확인하고는 놀라는 화은.

“미친, 나 어제 얼마나 마신 거야.”

두 마리 치킨을 맥주와 함께 먹으며 넷플릭스를 틀어놓고는 킬킬거리던 게 마지막 기억.

그때 맥주를 많이 마셔서 필름이 끊겼다고만 생각하는 화은이었다.

하지만 밤새도록 어떤 무서운 존재에게 정신없이 쫓겨 도망가는 악몽을 꾼 것만은 어렴풋이 기억난다.

“아 씨, 더워.”

괴상한 바바리코트를 벗어 던지고 얼굴의 스타킹 복면도 치워 버린 그 녀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너무 무서운 악몽을 꾼 탓이었을 까.

축축해져 있던 바지.

땀으로 젖어 있는 줄로만 알았는데 코트를 벗고 보니 올라오는 쉰내가 무언가 다른 것임을 암시했다.

허겁지겁 아래를 가리며 주위를 둘 러봤지만 다행히 인기척은 없었다.

‘선생이라는 사람이 술에 취해서 노숙이나 하고, 시집은 다 갔구나.’

화은은 서둘러 벗어 던진 바바리코 트를 다시 입고 옷깃을 여미며 서서히 떠오르는 태양, 아침 속으로 사라졌다.

누군가 그녀의 몰골을 비추기 전, 서둘러 집으로 가는 길을 찾는다.

* * *

[당신의 부원이 놀라운 기지를 발휘하여 오히려 싸이코패스를 격퇴하고 말았습니다!]

[괴담 포인트를 50 획득하였습니다.]

[함께한 부원들 한 명당 10%의 보너스 포인트를 얻습니다.]

[참여한 부원 : 윤선아]

뭐지.

아침에 눈을 떠 보니 앞에 선아가 괴담을 퇴치했다는 메시지가 떠 있었다.

‘ 설마.’

나한테 그렇게 혼나고도 또 정신을 못 차리고 선아한테 갔던 걸까.

그러고 보니 테스트를 받은 사람은 나뿐만이 아니고 선아도 있었다.

“···맙소사. 선아는 ‘진짜’인데.’’

괴담에 엮여 흉내만 내던 우리와는 달리 선아는…….

나는 부디 선생님이 많이 다치지 않으셨기만을 빌었다.

어쨌거나 이렇게 싸이코패스들의 때아닌 달밤의 체조는 막을 내렸다.

괴담 동아리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