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 화
막간 - 형사
《상태창》
이름 : 인하윤
나이 : 17
칭호 : 신붓감
성향 : ???
특수 능력 : 없음 기벽 : ???
이해도 : 5/100
[대상 인물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 합니다. 이 인물과 더 많은 상호작용을 해서 정보를 얻어 내십시오.]
한 손에 치킨을 든 채로 5층까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올라갔다.
‘그 아이, 뭘까.’
기묘한 성격은 둘째 치더라도, 어떻게…….
하윤이의 이해도는 저번에 확인했을 때와 똑같았다.
선아와 경원이의 이해도가 벌써 절 반을 넘어선 것에 비하면 낮아도 너 무낮았다.
‘정체가 뭐지.’
특히 칭호, 신붓감.
칭호란 건 뭘까, 하는 생각에 내 주변 인물들의 칭호를 다시 떠올려 봤다.
우선 내 칭호는 주인공.
선아는 흙수저.
경원이는 프로 꺼라위키러.
진희는 뒷자리 일진녀.
화은 쌤은 노처녀 여선생.
덕훈이는 오타쿠.
이렇게 쭉 나열해 봤을 때, 일단은 역시 그 인물의 특징을 한 단어로
나타내는 게 칭호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신붓감이라니.’
물론, 잘 몰랐을 때는 조용하고, 예의 바르고, 친절한 여자아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완전히 이미지가 바뀌었다.
‘음, 어떻게 신붓감이라는 칭호를 ’
튜토리얼 때나 동아리 생성 때 자기 마음대로 상황을 해석하는 메시지도 그렇고, 이 시스템의 센스는 내가 이해할 수 없는 타입이었다.
심각한 표정으로 계단을 오르다 보
니 어느새 동아리방이 있는 5층.
나는 고개를 저으며 생각을 털었다.
지금 고민해 봐야 알 수 없는 일.
대답해 줄지는 모르겠지만, 다음에 본인에게 돌직구로 물어보는 게 가 장 빠를 것이다.
지금은 부원들과 치킨을 먹으며 즐 겁게 시간을 보내자.
드르륵-
“치킨 배달 왔습니다~”
분위기를 바꾸려 가볍게 농담을 던지며 동방 문을 열어 봤지만.
“···부장.”
“···준아.”
그곳엔 더 심각한 표정으로 나를 보는 선아와 경원이가 있었다.
그리고.
잿빛 코트.
떡 벌어진 어깨.
위험한 분위기를 풍기는 중년의 남성이 등을 돌린 채 창가를 내려다보며 서 있었다.
‘저긴 내 자리인데.’
미동도 없이 창가에 서 있는 중년의 남성.
나는 무슨 일이냐고 경원이와 선아에게 고갯짓을 해 봤지만, 둘 다 심
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치킨 여기 두고 가겠습니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치킨을 내려 놓고 동아리방을 나가려던 찰나.
“네가 준이구나.”
남자가 슥 고개를 돌려서 나를 쳐 다봤다.
곰같이 생긴 무서운 아저씨.
방금 봤던 사람이다.
4교시 직업 설명회.
강단에 서서 강연하던 사람.
직업이 경찰이었던가.
“형사다.”
형사.
나는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형사가 왜 나를 찾아왔을까.
역시 생각나는 가능성은 하나뿐이다.
[인재 모집을 완료하였습니다.]
[형사 박강운이 괴담 동아리의 인재로 추가됩니다.]
얼마 전에 괴담 동아리의 인재 수 용력 능력을 해방하며 뜬 메시지.
그곳엔 분명히 형사가 우리 동아리의 조력자로 추가되었다고 떠 있었다.
나를 찾아온 건 아마 그것 때문이 아닐까.
“···무슨 일이시죠?”
문득 궁금해졌다.
시스템은 상황을 조작해서 형사님을 여기로 데리고 왔겠지만, 형사 본인은 무슨 생각으로 여기를 찾아 온 걸까.
시스템이 어떻게 형사를 나의 아군으로 만들어 줄까.
“요즘은 학교 안에서 치킨도 시켜
먹는구나.”
형사님은 대답 대신 내 손에 든 치킨 봉지를 바라봤다.
계속 그렇게 들고 서 있기도 민망해서 치킨을 천천히 책상에 내려놓았다.
“무슨 일이세요?”
다시 한번 묻자 가만히 나를 들여 다보는 형사님.
“무슨 일로 왔을 것 같니?”
내 조력자가 돼 주러 온 거 아냐?
하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거야 나만 아는 사실이니 언급할 수도 없다.
“잘 모르겠는데요. 무슨 일로……
“형사가 무슨 일로 찾아왔을까.”
빙그레 웃으며 나를 보는 턱수염 아저씨.
“아까 강연 때는 졸다가 못 들었을 테니 다시 소개하자면,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 소속이란다. 강력계라고 흔히 말하지.”
강력계.
영화에서 나오는 살인범들 잡고, 조폭들이랑 싸우는 그런 형사인가.
“그래도 짚이는 게 없니?”
“네. 모르겠어요.”
내 눈동자를 가만히 살피시는 형사
님.
아까는 몰랐는데 이렇게 가까이서 보니, 왠지 이 사람 어디선가 얘기를 나눠 본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오늘 말고, 좀 옛날에.
“살인 사건 때문에 왔단다. 자리에 앉아 보렴.”
그 말에 흠칫하는 우리 셋.
“치킨 식는 건 신경 쓰지 말고. 내 가 새로 시켜 줄 테니.”
“앉아 보렴.”
생긴 것도 무섭고 목소리도 걸걸하
니 다소 위협적인 분위기를 풍기고
있지만, 그래도 학생들이 상대라서 그런지 기운을 누르고 계시는 게 느껴 졌다.
‘살인 사건.’
무슨 일이지.
나는 긴장한 채로 천천히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가만히 내 눈을 보시더니 입을 여는 형사님.
“얼마 전, 한 방송국의 사장이 연습생을 살해 후 방송국에 매장한 혐 의로 경찰에 체포되었다.”
“그런가요?”
“그래.”
가만히 내 표정을 살피는 형사.
“알고 있었던 눈치구나.”
“···뉴스에서 유명하잖아요.”
“그런 표정은 아닌데.”
범죄자가 형사 앞에 서면 이런 기분일까.
왠지 모르게 다 털어놔야 할 것 같은 압박감을 받았다.
“어떻게 알았어?”
“뭘요?”
“그 사람이 죽여서 거기 묻은 거.”
“어떻게 알았냐고.”
추궁하는 말투.
사실 그냥 툭 물어보는 것 같기도 한데, 외모랑 목소리가 무섭다 보니 심문받는 것처럼 느껴졌다.
순식간에 가라앉는 동아리방의 공 기.
나는 긴장한 채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뉴스 보고요.”
“그 전에, 뉴스 뜨기 전에. 내가 뭘 말하는지 알잖아.”
다 알고 왔구나.
후우.
“막내한테 들으셨어요?”
대답 대신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는 형사님.
걸그룹 포린세스의 막내, 아직 중 학생인 다솜이.
예전에 원한이 씌인 노래를 퇴치할 때 연락했던 게 기억난다.
어떻게 된 건진 몰라도 그 애한테 서 알아냈구나.
“그 애가 뭐라던가요?”
“먼저 너한테서 대답을 듣고 싶은 데.”
나를 빤히 뚫어져라 보는 형사님.
“어떻게 알았니? 그 사람이 죽여서 거기 묻은 거.”
가만히 머리를 굴려 봤다.
지금 나는 어떤 입장인 걸까.
몰래 사람을 죽여서 땅에 묻은 방 송국 사장.
그걸 알고 있는, 어떻게 보면 최초 제보자의 입장인 나.
아무도 모르게 일어난 살인사건을 몇 블록이나 떨어진 누군가 알고 전 했다.
영화에서는 이럴 때 보통 최초 제 보자를 공범이나 용의자로 수사망에 올려놓고 수사를 하던데.
나는 그렇게 의심받고 있는 입장인 걸까?
이 사람은 나를 조사하려고 학교로 온 거고?
가만히 내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형사님.
나는 다시 생각을 뒤집어서, 형사 님의 입장에서 생각해 봤다.
사건이 일어나고 범인이 잡혀간 지 벌써 일주일도 더 지났다.
이제 와서 나를 찾아올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이 사람이 애초에 여기 온 건 직업 설명회, 그것 때문이다.
분위기 때문에 쫄긴 했지만 어쩌면 딱히 위축될 필요가 없는 상황이 아
닐까?
“제가 수상한 사람이 아닌 건 알고 계시죠?”
반응이 없으신 형사님.
의문을 품고 여기까지 온 거라면 당연히 내 뒷조사까지 다 해 봤겠지.
그렇다면 더 위축될 게 없다.
왜냐면 나는 정말로 평범한 고등학생.
방송국 사장 따위와는 아무런 접점도 없는 위치다.
여기서는 그냥 당당하게 묻는 말에 다 대답해 주면 될 것 같다.
“포린세스의 막내한테 제가 보낸 문자, 읽어 보셨나요?”
그 말을 듣자 빙그레 웃는 형사님.
“그래, 읽어 봤지. 그래서 찾아온 거야.”
조금 누그러진 어조.
그 문자에는 살인사건 말고도 분명히 귀신이니 뭐니 하는 이상한 이야 기로 가득했다.
그러고 보니, 이 사람과 언제 한번 얘기를 나눈 건지 기억났다.
전생에서 낙성고 300인 머리 폭발 사건 후.
병원에서 나를 찾아왔던 곰같이 생
긴 무서운 형사.
이 사람이다.
그때도 처음에는 험악한 분위기였지만, 정말로 내가 아는 게 없자 그 냥 수긍하고 돌아갔었다.
막내는 나를 퇴마사로 알고 있었던 가?
그렇다면 그 컨셉 그대로 밀고 나 가면 되지 않을까.
“그럼 얘기가 빠르겠네요. 그 막내 한테 보낸 문자에서처럼, 저는 영감이 강한 편이라 죽은 연습생의 귀신 이 보였었거든요. 그 귀신이 가르쳐 줬어요. 자기가 그곳에 묻혀 있다고.”
어느 정도는 사실이다.
죽은 연습생의 귀신을 만난 것도, 친절하게도 그 귀신이 범인을 붙잡 아 대령시켜 놨던 것도 사실이다.
“됐나요?”
“사실을 적당히 섞어서 얘기했구 나.”
순간 놀라고 말았다
가만히 앉은 채 물끄러미 내 눈만 바라보는 형人}.
그렇게 하면 상대가 거짓말하는지 아닌지 알 수 있다는 건가.
들킨 건 아니다.
애초에 이 뒤에 얽혀 있는 사실은
게임 시스템이니, 회귀니 하는.
일반인이 절대 알아낼 수 없는 영 역
이 사람, 그냥 감이 예리한 거다.
내 표정이나 말투, 분위기로 짐작해서 그렇게 판단한 것뿐.
파앗-
[인물 박강운에 대한 이해도가 10 올랐습니다.]
그러자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
‘···맞혔나 보군.’
“눈앞에 뭐 떠 있어?”
순간적으로 움직인 내 동공을 형사 가 잡아냈다.
나는 안되는 걸 알면서도 또다시 움찔하고 말았다.
“무슨 소리예요. 적당히 하세요.”
“···정말로 뭐가 보이기는 하나 보네. 오래 살고 볼 일이구나.”
형사는 뭔가 납득한 듯 자리를 털 고는 일어섰다.
그리고 터덜터덜 내 앞으로 걸어왔다.
“머리 잘 굴러가는 친구 같으니깐 시원하게 말해 줄게. 수사는 끝났으
니 걱정하지 마렴. 관계없는 거 다 알고 왔으니깐.”
“···네.”
“멤버들의 증언도 오락가락하고 수 상해서 개인적으로 더 파보았더니, 네가 나오길래 염두만 해 놓고 있던 차에 마침 초청받아서 학교에 오게 됐지. 그렇게 안 놀라도 돼.”
별로 안 놀랐는데.
라고 속으로 말하며 쿵쾅대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영감이라, 후후… 영감……
형사님은 웃으시며 코트 윗주머니에 손을 넣어 뭔가를 꺼내셨다.
“물론, 그걸 믿는 건 아니고. 네가 거짓말을 하고 있지 않다는 건 알겠다, 이준.”
그렇게 말하고 내 어깨를 탁탁 두 드리시더니, 자신의 명함 하나를 꽂 아 주셨다.
“전화번호가 적혀 있다. 또 ‘영감’ 이 발동할 것 같으면 연락하렴.”
“그럼 또 보자. 계산은 내가 했다.” 그 말을 끝으로 저벅저벅 동아리방을 나서는 형사님.
계산을 본인이 했다니, 무슨 말이지.
지금 손에 든 치킨은 우리가 산 건데.
그 대답은 잠시 뒤 동아리방을 찾아온 배달기사를 통해 알 수 있었다.
“괴담 동아리 맞나요? 가성비 짱 와우치킨이요. 원래 건물 안에는 배 달이 안 되는데, 추가 요금을 왕창 내셔서 왔거든요. 다음부터는 이런 거 부탁하시면 안 돼요. 돈 많이 받아도 학교 관계자한테 걸리면 우리 큰일 나요.”
“네, 죄송합니다.”
얼떨결에 사과하자 배달기사는 양 손에 다 들지도 못할 만큼 어마어마 한 치킨 봉투를 책상 위에 놔두고
돌아갔다.
“세상에, 이게 몇 마리야.”
“우와.”
아까의 심각했던 분위기가 치킨을 보자 순식간에 풀어졌다.
후라이드, 양념, 간장, 깐풍, 스노 우치즈, 어니언, 파닭…….
거기에 사이드 메뉴로 치즈볼, 양 념감자, 어니언링, 대게튀김까지.
책상이 미어터질 정도로 한가득 진열해 놓고 멍하니 서 있자, 곧 CA 시간을 준비하러 나머지 부원들이 모였다.
“우와, X발! 뭔데 이거!”
펄쩍 놀라며 들어오는 진희.
“대, 대박.”
군침을 흘리며 들어오는 덕훈이.
“준아, 많이도 시켰네.”
무표정으로 들어오는 하윤이.
“얘들아! 이게 뭐니! 세상에!”
꺄아악 소리를 지르며 달려오는 선생님.
덕분에 우리는 CA 시간 내내 치킨을 먹으며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그렇게 하고도 양이 많이 남아 우리는 바닥에 뒹굴었고, 덕훈 이와 선생님만 마지막까지 입을 오물거렸다.
마지막 한 조각은 장화은 선생님의 몫이었다.
“너무 맛있다!”
“쿳소.”
선생님, 건강한 체격이기는 했지만, 예뻐서 몰랐는데 진짜 많이 드시는구나.
* * *
방과 후, 나 역시 추궁해야 할 사람 이 생겼기에 조용히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아, 오랜만이네요… 잘 지내셨어요?]
“못 지냈어요. 형사가 찾아와서 심 문받았거든요.”
[세, 세상에…….]
찔리는 게 있는지 기어들어가는 목 소리의 포린세스 막내 다솜.
[죄, 죄송해요. 그 형사가 계속 집 요하게 물어봐서… 모른다고 계속 했는데, 안 먹혀서… 그래도 그 사람 혼자뿐이에요! 다른 경찰은 아무도 모르고, 혼자만 알고 있겠다
고…….]
“활동 언제 끝나요?”
[아, 아마 여름쯤이면 다음 컴백 준비 전까지 좀 시간이 날 것 같아요. 그때 제가 반드시 약속 잡고, 저번에 못다 한 대접까지 다 해 드릴게요! 정말 죄송해요! 지금 또 가 봐야 해서… 끊을게요, 미안해요!]
띡_
“휴.”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은인에 대한 대접이 뭐 이럴까.
‘하지만 뭐, 중학생이기도 하고 워
낙 바쁜 입장이니 어쩔 수 없겠지.‘
여름이면 아직 세 달은 더 남았구 나, 하는 생각을 하며 조용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괴담 동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