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화
여덟 번째 괴담 - 저주받은 중간고사 (2)
[2019년 4월 23일 화요일, 09:00]
[이준 - 2회차]
[괴담 포인트 : 202]
[인과율 : 11%]
다음 날, 아침 9시.
중간고사의 첫날이 시작되었다.
오늘부터 해서 화, 수, 목. 이렇게 3일간 총 8과목의 시험을 봐야 한다.
‘첫 시간은 수학이구나.’
수학은 별로 자신 없었다.
과학이나 국사의 경우 하루 전에만 달달 외워도 꽤 성적이 나오는 반면, 수학은 응용문제를 풀려면 실력이 뒷받침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담임이 적당히 격려를 하며 조례가 끝났고, 잠시 후 감독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아, X발. 생각보다 어렵네.’
시험지를 받아들고 중간쯤 풀었을 때 느꼈다.
3년간의 수험생활을 마치고 회귀했기에, 1학년 1학기 첫 중간고사 문 제쯤은 가볍게 풀 수 있을 줄 알았는데.
하지만 막상 시험지를 보자 그렇게 녹록지는 않았다.
일단 문제들을 빠르게 훑으며 풀 수 있는 문제부터 풀었고.
응용이 필요한 문제들은 기상천외 한 방법을 동원하여 끄적여나가던 중 종이 쳤다.
“지금 컴퓨터 사인펜 만지면 안 됩니다. 부정행위예요.”
곧 뒷자리의 학생이 OMR카드를 걷으러 왔고, 나 역시 아쉬운 마음을 감추며 카드를 건네주었다.
그리고 쉬는 시간.
다음 시험을 준비해도 모자랄 시간에 반 학생들은 모여서 방금 시험이 어땠는지 저마다 떠들고 있었다.
나랑 선아와 덕훈이는 자연스레 경원이의 자리로 우르르 모였다.
“뭔데. 왜 갑자기 나한테 우르르 오는데.”
“네가 공부 제일 잘하지 않냐능.”
“어땠어, 경원아? 방금 수학 어려 웠던 것 같은데.”
다급하게 묻는 내 질문에 경원이가 고개를 끄덕여 줬다.
“어려웠던 게 맞아. 선생님이 난이도 조절에 실패한 것 같은데.”
“휴, 역시.”
선아도 마찬가지로 안도한 듯 가슴을 쓸어내렸다.
다들 같은 생각으로 시험 쳤나 보다.
하윤이는 조용히 다음 시험을 준비 하고 있었고, 진희는 조용히 자고 있었다.
2교시는 영어.
쉬는 시간이 끝났고, 종이 치자 다시 착 가라앉은 분위기.
조용히 다음 시험을 준비하던 학생들의 침묵 가운데, 교실 문이 열리더니 갑자기 낭랑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드르륵
“안녕, 얘들아~!”
장화은 선생님.
시험 때문에 예민할 학생들의 눈치를 보며 조용히 들어왔던 전 시간 시험 감독 선생님과는 다르게 굉장히 힘찬 인사 소리다.
우리는 뜻밖의 반가운 얼굴에 고개를 내밀며 아는 체를 했고 선생님도 슬며시 눈인사를 해 주셨다.
“이번 시간은 영어네; 못 보면 혼 날 줄 알아!”
동아리 외의 일로 선생님과 만나는 건 아마 처음이지 싶었다.
선생님은 우리보다 고학년의 영어를 담당하고 있어, 1학년과는 마주 칠 일이 없으셨기 때문이다.
‘영어쯤이야, 훗:
영어의 경우에는 정말로 자신 있었다.
응용이 필요한 과목도 아니었고, 공부하면 공부할수록 점점 지식이 쌓여 갈 수밖에 없는 분야였으니깐. 나는 여유롭게 시험지를 풀었지만, 문법이라는 의외의 복병에서 막혔다.
지문 해석이야 이미 3년을 더 공 부한 나에게 껌이었지만, 동사니 뭐 니 문법이 필요한 부분은 주의 깊게 안 봤기에 오랜만에 보니 헷갈리기도 했다.
‘흠, 전 문제랑 전전 문제가 5번이 답이었으니깐 또 정답을 5번에 배치 해 놓지는 않았겠지?’
“어땠어? 방금 영어 어려웠던 것 같은데.”
“부장, 그만 촐싹대고 다음 시간 준비를 하는 건 어떨까.”
쉬는 시간이 되자마자 촐랑대며 부원들에게 뛰어가자 경원이가 핀잔을 줬다.
“맞아, 어려웠어.”
선아가 키득 웃으며 대신 맞장구쳐 줬다.
중간고사 첫날의 마지막 시간, 과학.
중간고사 기간에는 정규 수업 대신 하루에 보통 세 과목 정도를 시험 치고 점심 전에 빠르게 귀가한다.
지금 치는 통합 과학 시험만 풀고 나면 바로 하교인 것이다.
‘개꿀이야!’
시험도 중요하지만 역시 일찍 마칠 수 있다는 것에 상당히 즐거웠다.
드르륵-
놀랍게도 이번 시험의 감독으로는 우리를 가르쳤던 1학년 담당 과학 선생님 본인이 직접 들어오셨다.
항상 무뚝뚝하고 표정도 없는, 학생들과의 교류도 별로 없고 수업만 딱 하고 나가는 스타일.
어딘가 음침한 평소의 모습답게 과학 선생님은 인사도 없이 묵묵히 시 험지를 나누어 주기 시작하셨다.
‘과학은 정말 10분 컷이지.’
정말이었다.
아무리 개념을 알아도 실력이 있어야만 풀 수 있는 수학 문제들에 비 하면 과학의 경우에는 어느 정도 암 기의 성격을 띠고 있는 편.
전생에서도 과학만큼은 항상 탑을 찍었던 나였기에, 자신만만하게 문 제를 풀어나가기 시작했다.
2번, 4번, 1번, 3번….
‘좋아. 이 페이스면 30분은 잘 수 있겠군.’
문득 고개를 돌려 보니 벌써 자고 있는 진희가 보였다.
나보다 공부를 잘해서는 아닐 것이다.
‘3번, 2번, 4번, 5번……
빠르게 OMR 카드에 마킹을 해 나가다 보니 어느새 마지막 문제였다.
‘좋아. 속도 좋고!’
싸인펜을 치켜들고는 마지막 문제를 보았다.
[36]
이 문제를 20살까지 기억하고 있으면 20살이 되는 해에 갑자기 전화가 걸려와서는 답을 묻는다고 한다.
장님의 남자가 아내와 함께 무인도에 표류되었다.
굶어 죽기 직전, 아내는 간신히 갈 매기를 잡아서 남편에게 먹여 주었고 둘은 그렇게 구조를 기다렸다.
며칠 후 구조선이 왔지만 아내는 안타깝게도 이미 사망.
남자는 홀로 슬퍼하며 구출되었고, 세월이 오래 흐른 후 그때 아내가 해 주었던 갈매기 고기가 생각이 나 갈매기 고깃집을 찾았다.
남자는 고기를 한 점 베어 물고는 앞에 있던 포크로 자신의 목을 찔러 자살하고 말았다.
남자가 자살한 이유는?
뭐지, 이게.
순간 내가 잘못 봤나 싶어서 눈을 비비고 다시 문제를 읽어 봤다.
[36. 이 문제를 20살까지 기억하고 있으면……』
잘못 본 게 아니다.
시험지의 제일 마지막에는 과학 문 제 대신 이상한 괴담이 하나 적혀 있었다.
심지어 OMR 체크에 필요한 보기 조차도 없다.
가만히 주위를 둘러봤다.
시험을 다 친 몇몇 학생들이 문제 지를 앞으로 뒤로 팔락거리며 처음부터 다시 점검하는 게 보인다.
아무도 나처럼 갸웃거리는 학생은 없다.
“···선생님, 여기요.”
나는 조심스레 손을 들었다.
선생님께서 천천히 내 쪽으로 오셨다.
고갯짓으로 무슨 일이냐고 묻는 선생님.
“여기 시험지에 마지막 문제가 내가 손으로 가만히 가리키자 선생님께서 가만히 내 시험지를 보시더 니.
“빈칸으로 해 놔.”
그 말만 툭 내뱉으시고 고개를 돌려 슥 가 버리셨다.
뭘까.
잘못 인쇄된 걸까.
‘그럴 리는 없겠지.’
나는 혼자 피식 웃었다.
‘한 달 만이구나. 오랜만인걸.’
띵~ 동~ 댕~ 동 ♬
드디어 중간고사의 첫날이 끝났다.
OMR 카드를 제출하고 선생님 이 나가시자마자 나는 재빨리 경원이의 자리로 갔다.
곧 선아와 덕훈이도 따라왔고.
그동안 다음 시간을 준비하느라 요지부동이던 하윤이도, 우리와 같이 채점을 하려는지 우리에게 합류했다.
진희는 자고 있지는 않았지만, 심 드렁한 표정으로 제일 뒷자리에 가 만히 앉아 있다.
“얘들아, 내 시험지에 이상한 문항 이 있었는데, 너희들 건?”
“이상한 문항?”
갸웃거리는 부원들.
나는 선아가 가만히 들고 있는 시 험지를 휙 뺏어서는 내 시험지와 대조해 보았다.
멀쩡했다.
다른 부원들의 시험지도 정상.
마지막 문제, 남자가 자살하는 이야기에 대한 문항은 내 시험지에만 있었던 것이다.
“얘들아, 내 시험지 좀 볼래?”
“뭐지, 이건?”
우르르 몰려서는 내 시험지를 들여 다보는 부원들.
“이, 이건....”
“오답투성이잖아.”
“준이 공부 못하는구나.”
“굉장하다능.”
나는 꽥 소리 질렀다.
“아니, 말고! 마지막 문제를 보라 니깐! 마지막 문제!”
“어디 보자, 36번 문제? 우리는 35번까지인데. 흠. 이 문제를 20살까지 기억하고 있으면 20살이 되는 해에 갑자기 전화가 걸려와서는 답을 묻는다고……
경원이가 읽다 말고 갸웃거리며 중 얼거렸다.
“괴담 같은데.”
괴담.
나를 중심으로 부원들이 웅성거렸다.
“괴담?”
“무슨 괴담이더라.”
“기억나는 거 있어?”
저마다 웅성거리던 그때, 덕훈이가 끼어들어 대답했다.
“그거, 일본 괴담. 일본.”
“일본 괴담?”
“‘돌고래 다리’라는 낱말을 어른이 될 때까지 기억하고 있으면 20세가 되는 날, ‘돌고래에 다리가 있을까’라고 전화가 걸려오는데 잘못 대답 하면 죽는다는 괴담이라능.”
“괴담······
경원이도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생각난다. ‘보라색 거울’이라는 괴담도 있어.”
“보라색 거울?”
“아까 돌고래 다리랑 똑같아. 어른 이 될 때까지 이 단어를 기억하면 불행해진다는 내용인데, 보통 잊어 버리려 애쓸수록 더 자세히 기억에 남는 심리를 이용하는 괴담류였던 걸로 기억해.”
“그런 게 왜 내 시험지에 적혀 있나는 물으려다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별로 의문이 들 일도 아니다.
지난 한 달간이 너무 편안해서 그 랬던 거지, 괴담이 이상한 타이밍에 나를 공격해 오는 건 딱히 놀랄 일도 아니다.
경원이와 덕훈이는 설명하며 뭔가 통했는지 으스대며 서로를 바라봤다.
“후후, 그나저나 덕훈이 너도 괴담 잘 아는데?”
“아아, 일본에 관련된 거라면- 뭐. 든. 지.”
일본에서 건너온 괴담이구나.
“그래서 이 문제 답은 뭐인 것 같아?”
“남자가 자살한 이유.”
갑자기 대답이 없는 둘.
“예전에 한번 본 것 같기는 한데, 기억이 잘 안 나네.”
경원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드르륵-
“답안지 나왔다~”
그렇게 잡담을 나누고 있으니 우리 반의 반장, 어깨가 넓은 훈남이 답 안지를 들고 교실에 들어와서는 칠 판에 정답을 크게 써 주기 시작했다.
소란스럽게 자신의 문제지와 비교 하는 학생들 가운데, 누군가의 휴대
폰이 음산하게 울렸다.
[ 》··· ♬… .]
영화 착신아리의 벨소리처럼 오르골이 울려 퍼지는 불길한 멜로디.
누구 거지?
[ ... )... ♬… .]
가만히 보니 내 주머니에서 나는 소리다.
“뭐지.”
시험 때문에 줄곧 꺼 뒀던 핸드폰.
어째서 울리는 걸까.
심지어 원래의 내 벨소리도 아니다.
주머니에서 꺼내 가만히 액정화면을 살펴봤다.
[발신자 표시 제한]
[ …♬… .]
섬뜩한 멜로디가 서서히 커져 간다.
“…얘들아.” 심상치 않은 내 표정을 눈치챈 안 경원.
“어떡할래, 부장. 받아 볼 거야?”
긴장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는 선아.
채점을 하느라 소란스러운 교실. 그 와중에 불길하게 울려 퍼지는 멜 로디.
왜 빨리 전화를 받지 않냐는 짜증 난 눈초리로 몇몇 학생들이 나를 쳐 다봤다.
“받아 볼게. 같이 있어 줘.”
당연하단 듯 고개를 끄덕이는 부원 들.
[ … 으… ♬… .]
띡_
휴대폰의 화면 속 수신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서 눌렀다.
그리고 천천히 휴대폰을 귀에 갖다 댔다.
잠시 정적이 흐르고.
[남자가 자살한 이유는?]
기계음으로 기묘하게 변조된 목소리가 휴대폰 너머로 들려왔다.
잠시 기다려 보았지만 다른 말은 없다.
정적이 흐르는 그 가운데.
[오]
[사]
[삼]
[이]
[일]
기계음이 카운트를 시작했다.
나는 왠지 대답해야 할 것 같은 분위기에 서둘러 부원들을 바라봤다.
“저, 정답을 묻는데?”
경원이가 서둘러 핸드폰을 열어 인터넷 검색했고, 선아도 뭐라 말을 하려 입을 여는 순간.
[시간 끝.]
지끈-!
순간 가슴이 꽉 조여 오는 듯한 느낌이 들더니, 심장에 강한 충격이 느껴졌다.
우 Q W
눈을 까집고 가슴을 부여잡은 채 쓰러지는 나.
선아랑 경원이가 놀란 채 나를 부 축했다.
“준아! 준아!”
“부장! 무슨 일인데!”
소란을 피우는 부원들을 뒤로한 채 의식이 천천히 사라진다.
“부장! 부장……
“준아아... 아아......
[당신은 죽었습니다.]
[체크 포인트에서 다시 시작합니다.]
[로딩중…….]
낙성고 5층.
동아리방.
나른한 점심시간.
진희가 의자 네 개를 동아리방 구 석에 이어 붙이고는 누워 자고 있다.
“후욱, 후욱.”
덕훈이는 정독실에서 양손 가득 의자를 훔쳐 복도를 걸어오고 있다.
“잠시만, 덕훈아. 지나갈게.”
하윤이가 양치 도구를 들고는 덕훈 이를 지나쳐 들어온다.
그리고.
“준아, 시험 공부 잘 돼가?”
가만히 서 있는 내게 선아가 와서 묻는다.
대답 대신 멍청하게 서 있을 뿐인 나를 물끄러미 보는 선아.
나는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저기, 얘들아.”
가만히 고개를 드는 괴담 동아리의 부원들.
“내가 방금 죽었는데 말야……
괴담 동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