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담 동아리-53화 (53/130)

53화

여덟 번째 괴담 -

저주받은 중간고사 (4)

다시 아까와 비슷한 풍경이 재현됐다.

내 얘기를 바탕으로 빠르게 의견을 주고받는 경원이와 덕훈이.

물끄러미 나만 보고 있는 선아와 하윤이.

상황을 이해 못 하겠다는 듯 눈썹을 찌푸리는 진희.

나는 그 광경을 바라보며 가만히 기다리다가, 문득 덕훈이가 적응이 빠르다는 생각을 했다.

진희처럼 괴담과는 처음 마주치는 백지상태일 텐데 오히려 같이 어울리지 못해 안달이 난 느낌이랄까.

‘역할 놀이처럼 생각하고 있는 건 가? 하긴, 맨날 애니 보고 게임 판 타지 좋아하는 녀석이니깐.’

“부장, 우리 생각은 이래.”

어느 정도 의견이 정리됐는지 경원이가 안경을 빛내며 나를 불렀다.

“방금 전 부장의 죽음에서 신경 쓰이는 건 크게 두 가지. 먼저는 정답을 맞혔는데도 어째서 또 질문이 들어오는가. 그리고 과학 선생은 어떻게 괴담의 존재를 알고 있는가.”

“흐음.”

머릿속이 혼란스러운 가운데 경원이가 상황 정리를 시작했다.

“하지만 그 두 가지는 어떻게 보면 괴담 외적인 부분이야. 우리도 당장 답을 내릴 수는 없는 상황이니 일단은 제쳐 놓아도 좋아. 그보다 집중 해야 할 건 바로 이 괴담 자체야.”

“이 괴담 자체?”

내 말에 경원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시험지에 적혀 있던 그 이상한 이야기.

대충 어떤 류의 괴담인지 기원부터 정답까지 이미 다 알고 있는 거 아닌가?

거기서 더 파고들게 있다는 말일 까?

“그 괴담에 대해서 전 시간대의 우리가 설명했었어?”

“응. 설명했었어.”

간단명료한 내 대답에 덕훈이와 경원이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로를 쳐다봤다.

“어떻게 설명했지? 모르는 괴담인 데.”

“그러게.”

어리둥절한 건 오히려 나였다.

바로 전 시간대만 해도 신나서 둘 이 큭큭대며 아는 걸 늘어놓지 않았던가.

“너희가 분명히 다 설명했었는데? 일본에서 건너온 괴담이라는 거랑 20살까지 기억하면 불행해진다는 괴담이랑 막 이것저것.”

“흐음.”

경원이가 가만히 듣더니 이내 나에게 묻는다.

“그 정도는 당연히 알기는 하는데. 부장의 시험지에 적혀 있는 이 마지 막 문제, 이 이야기 자체에 대해서 우리가 설명했다고?”

“그야 당연히 설명……

말을 하다 말고 문득 깨달았다.

‘설명 안 했었구나!’

이 녀석 둘, 잘난 척하다가 진희에게 엎드려뻗쳐를 당한 채로 분명히 나에게 말했었다.

[그, 그렇다, 부장… 문제의 형식인 건… ‘처음’ 보지만… 기본적으로 그런 골자다……』

[어쨌거나… 부장이 접한 문제… 부분부분 요소들은 어디서 읽은 것 같기는 한데… 이런 형태는 우리도 처음 봐… 사실은 잘 모르겠어… 세 세한 건 너무 신경 안 써도 될 것 같… 은…….]

그것뿐만 아니다.

그 전 시간대, 제일 처음 문제를 보고 죽었을 때도 이 녀석들은 돌고 래다리니, 보라색거울이니 생각나는 다른 괴담들만 늘어놓았고.

정작 이 문제 자체에 대해서는 미처 의견을 나누지 못했던 것이다.

나는 가만히 기억을 떠올려보다가 침음을 흘리며 녀석들에게 대답했다.

“안 했어. 그러고 보니 안 했던 것 같아.”

“역시.”

빠르게 고개를 끄덕이는 둘.

“부장의 과학 시험지에 적혀 있는 마지막 문제. 부분부분 요소들은 어디서 읽은 것 같기는 한데, 이렇게 못 맞히면 죽는다는 식의 형태는 처음 봐.”

“이해했는가, 이준.”

덕훈이가 말을 이어받더니 무게 잡으며 말했다.

“우리도 ‘처음’ 보는 괴담이라는 소리다.”

이 녀석들이 처음 보는 괴담이라고.

이 세상에 그런 게 존재할 수가 있나?

“아니, 잠시만! 역시 이해가 안 돼. 분명히 돌고래다리니, 보라색거울이 니, 이것저것 너희들 늘어놓지 않았어? 그럼 그건 뭔데?”

“비슷할 뿐이지 부장이 접한 문제 와는 다른 괴담들이야. 하나씩 적어 가면서 설명해야 이해가 빠를 것 같은데.”

경원이가 자리에서 일어서서는 화이트보드로 걸어갔다.

그리고 자리를 잡고는 안경을 치켜 세우며 나를 향해 씨익 미소 지었다.

“너무 그렇게 심각한 표정을 짓지는 마, 부장. 이 세상에 우리가 모르는 괴담 같은 건 없어.”

그 말에 덕훈이가 팔짱을 낀 채 쿡쿡거리며 웃는다.

“혹시 우리가 전혀 모르는, 들어 본 적도 없는 괴담이 나온다면. 그 건 말이다, 부장.”

마카펜의 뚜껑을 열며 안경을 빛내는 녀석.

“이 세상에 없는 괴담이기 때문이지.”

그 말에 부원들이 당황한 표정으로 서로를 돌아봤다.

“ 없다고?”

“그래, 부장. 이 세상에 그런 괴담은 없어. 부장이 접한 그 마지막 문 제. 여러 괴담의 요소들을 짜깁기해 놓은 일종의 ‘기출 변형’ 같은 문제라는 얘기야.”

거기까지 말한 녀석은 화이트보드에 무언가를 적어 나가기 시작했다.

1. 기억하면 불행해지는 괴담 (돌 고래다리, 보라색거울)

2. 바다거북 스프 문제 (갈매기고기 괴담)

“기출 변형, 심화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먼저 무엇을 공부하는 게 좋을까? 역시 변형되기 전의 원판이 되는 문제들부터 알아보는 게 시험 공부의 정석이겠지? 자, 내가 방금 적은 이 두 개의 키워드를 잘 기억

“오이, 좆경.”

덕훈이가 말을 끊고 팔짱을 낀 채 지적했다.

“세 개다. ”

그 말에 경원이는 아차, 하는 표정을 짓더니, 곧 한 가지 단어를 더 옆에 적었다.

3. 저주

“자, 내가 방금 적은 이 세 개의 키워드를 잘 기억해 줘. 사무실에 틀어박혀서 학생에게는 무관심한 과학 선생답게 푸는 사람을 전혀 배려 하지 않은 기출 변형 문제니깐.”

그렇게 말한 경원이는 각 괴담의 내용들을 쭈욱 적어 내려가기 시작 했다.

“원판이 되는 괴담들조차 처음 들어 보는 사람들을 위해 다 적어 놓을게. 우선 쭉 읽어 봐.”

그 말에 선아가 고개를 쭉 내밀고는 글씨를 읽으려 눈을 찌푸렸다.

1. 기억하면 불행해지는 괴담 (돌 고래다리, 보라색거울)

- 돌고래다리 or 보라색거울이라는 단어를 20살까지 기억하고 있으면 불행해진다. 이야기가 전승되는 지역에 따라서 20살이 되는 해에 “돌고래에 다리가 있을까?”라고 묻는 전화가 걸려온다는 뒷얘기가 붙어 있기도 하다.

2. 바다거북 스프 문제 (갈매기고기 괴담)

- 부부가 무인도에 표류되었다가 바다거북 스프(or 갈매기고기)를 먹고 남편만 살아났는데, 알고 보니 아내의 인육이어서 사실을 알고 자살하는 이야기.

“존나 복잡하네, 씨발.”

진희가 불평 섞인 한마디를 내뱉자 경원이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평소에 공부를 안 해서 그런 게 아닐까?”

‘뭐지?’ 하는 표정으로 눈을 가늘 게 뜨는 진희.

하지만 마이크 잡은 사람이 깡패라고, 아무리 진희라도 함부로 이 분 위기에 뭐라 못하는 눈치다.

“내가 적은 두 괴담. 무슨 내용인 지 다들 이해했어?”

“뭐, 어려운 얘기는 아니네.”

내 대답에 녀석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설명을 계속했다.

“부장이 접한 문제는 이 두 가지 괴담을 서로 섞어서 짜깁기한 문제야. 잘 봐.”

그렇게 말한 녀석은 곧 손에 들고 있던 마카펜으로 여기저기 단어들에

밑줄을 치기 시작했다.

첫 번째, 20살까지 기억하고 있으면 전화가 걸려온다는 부분.

두 번째, 갈매기고기 괴담의 내용.

“이걸 적당히 합치면 이제 부장이 본 문제가 나오는 거야.”

[36]

이 문제를 20살까지 기억하고 있으면 20살이 되는 해에 갑자기 전화가 걸려 와서는 답을 묻는다고 한다.

장님의 남자가 아내와 함께 무인도에 표류되었다.

남자는 고기를 한 점 베어 물고는 앞에 있던 포크로 자신의 목을 찔러 자살하고 말았다.

남자가 자살한 이유는?

“…이해했어. 내 시험지의 마지막 문제는 원래부터 있던 괴담이 아니 라, 기존에 존재하던 괴담 두 개를 과학 선생이 짜깁기했다. 이거지?

근데 그게 어쨌다는-”

“오이, 좆준.”

덕훈이가 말을 끊고는 팔짱을 낀 채 무언가를 지적했다.

“세 개다.”

그 말에 나는 아차, 하는 표정을 지었고, 세 번째 키워드를 바라보았다.

3. 저주

“덕훈이의 말이 맞아, 부장. 이야기 안에서 확인할 수 있는 짜깁기된 괴담은 총 두 개. 하지만 그 뒤에 과학 선생이 보이던 이상한 행동을 생각하면… 최종적으로 문제는 사실 저주의 형태에 가까운 이야기일지도 모른다는 소리지.”

저주!

“저주라니… 그게 무슨.”

“읽으면 죽는 이야기를 상대방에게 보여 준다? 그건 상대방에게 ‘저주를 건다’라고 표현할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 우리는 저주에 초점을 맞춰서 이야기를 재구성 해 보았지.”

“그렇다, 부장. 사실 네가 본 건 과학 선생이 엮어낸 괴담의 일부 내 용뿐. 선생이 들고 있는 원본, 안경과 나는 그걸 역순으로 다시 괴담을 엮어서 재구성해 봤다.”

다시 화이트보드의 빈칸에 무언가를 빽빽이 적어 가는 경원이.

“자, 부장. 이걸 읽으면 모든 게 이해 갈 거야. 이게 과학 선생이 들고 있는, 최종적으로 엮어내서 부장을 죽이는 데 쓴 괴담이다.”

저주하고 싶은 상대방이 있습니까.

여기 아무도 모르게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저주가 있습니다.

몇 가지 조건만 갖추어진다면 상대 방이 어디 있든 손쉽게 죽일 수 있습니다.

먼저는 다음의 괴담을 상대방에게 들려주십시오.

“이 이야기를 20살까지 기억하고 있으면 정답을 묻는 전화가 걸려 온다고 한다. 장님의 남자가 아내와 함께 무인도에 표류되었다.

···남자는 고기를 한 점 베어 물고는 앞에 있던 포크로 자신의 목을 찔러 자살하고 말았다.”

상대방이 당신에게 괴담을 들었습니까?

그렇다면 상대방의 나이가 20살이 되는 해에 전화를 걸어서 남자가 자살한 이유를 묻습니다.

상대방이 그때까지 이 문제를 기억 함과 동시에 맞추지 못하면 저주는 성공입니다.

하지만 상대방이 정답을 말해 버린 다면 저주는 오히려 당신에게 되돌아오니 유의하시길.

“이것이 선생이 엮어낸 괴담……

내가 조용히 중얼거리자 경원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조건도 까다롭고 실패했을 때 리 스크도 크다는 게 보통 매체에서 표 현되는 저주.

그 점을 감안해서 적어 놓은 우리들의 추측일 뿐이지만, 아마도 확실 할 거다. 방금 부장의 죽음을 토대로 적은 거니깐.”

“그럼 내가 정답을 맞혔음에도 다시 질문을 받은 건……

“사실 중간에 부장은 자신도 모르게 문답을 주고받았던 거지. 대화를 다시 떠올려 봐.”

[내 시험지에 괴담을 적어 놓았죠. 이유가 뭐죠?]

[유럽 연합… 시험지에 괴담을 적은 이유는 당연히 널 죽이려고지. 진짜 문제투성이인 것은 뭐지?]

내가 선생에게 ‘이유가 뭐죠’라는 질문을 했고, 선생이 ‘유럽 연합’이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선생이 ‘진짜 문 제투성이인 것은 뭐지’라고 질문을 던졌다.

이때 내가 대답을 하지 않아 죽고 말았다.

“그렇구나. 서로 번갈아 가며 문답을 주고받는 형식이 됐었구나.”

나는 대충 이해는 했지만, 그래도 머릿속이 너무 복잡했다.

“도대체 그 사람은 왜 이렇게 번거 로운 짓을 한 거야?”

괴담의 부분들을 쪼개고 나눠서 합 치고, 그걸 다시 저주의 형태로 가 다듬어서 나에게 시전한다.

왜?

무엇을 위해서 그렇게 복잡한 짓을?

“그건 사실 우리도 모르겠어.”

여기서는 경원이도 고개를 저을 수 밖에 없었다.

“아니, 그보다 애초에 괴담을 그렇게 합쳐서 이용한다는 게 가능한 거야? 이게 실제로 효과가 있다고?”

“효과야 있었지. 실제로 부장이 여기에 당해서 죽었으니깐.”

“후우.”

나는 이마를 붙잡고 한숨을 쉬었다.

“힘내, 준아……

“그래. 고마워, 선아야.”

“어쨌거나, 부장. 저주란 건 실패할 경우 시전자에게 대가가 따르는 게 통념적이다. 이 경우에는 실패할 경우 시전자와 대상자의 입장이 뒤바 뀌는 것 같아. 그 결과 문답을 주고 받는 그림이 되는 거고.”

“그렇구나. 그럼 첫 번째 문제에 정답을 말하고 내 차례에 말도 안 되는 문제를 내면 바로 역관광 가능 하겠네.”

“쿡쿡쿡... 히토오 노로와-”

대번에 진희가 날아와서는 덕훈이의 대가리를 후려쳤다.

퍽 -

“야이 개씨발 새끼야, 한국말 써!”

“미, 미안… 저주를 하려는 사람은 무덤을 두 개 준비하라,라는 속담을 말하려고 했었어…… 갑자기 착해지는 덕훈이.

“알겠어, 부장? 그 사람이 왜 그런 번거로운 방법으로 부장을 죽이려는 지는 아직 몰라. 하지만 돌아가는 상황이 어떤 모양인지는 대략 다 알 아낸 거야.”

“그래, 고맙다. 경원아, 덕훈아. 둘 다 수고했어.”

나는 바톤을 이어받았다.

이제 내가 결정을 내려야 할 차례다.

과학 선생이 어떤 방식으로 나를 죽이려고 하는지와 그 파훼법까지 알아낸 상태.

여기서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가만히 질문을 기다렸다가 바로 역습해서 저주를 넘겨 버릴 것인가?

아니면…….

나는 고민 후 내린 결론을 이야기 했다.

“얘들아. 선생님과 문답을 번갈아 가며 해 보자.”

“뭐?”

선아가 걱정하는 표정을 짓는다.

“왜 그렇게 위험한 짓을……

“전화를 받아 정답을 말한 후 끊거 나, 아니면 내 차례에 과학 선생이 대답 못 할 만한 엉뚱한 질문으로 되받아치면 상황은 물론 해결되겠지. 하지만 그걸로는 아무런 의문도 풀리지 않아.”

그렇다.

이 사람.

애초에 어째서 나를 죽이려고 하는 건가?

그리고 왜 그런 복잡한 방식을 쓰는 건가?

어떻게 괴담이라는 현상을 알고 이 용하는가?

괴담이란 게 자르고 붙인다고 효과 가 있어지는 현상인가?

지금 머릿속에 떠오르는 수많은 의

되받아친다고 과학 선생을 심장마 비로 꽥하고 죽여 버리면 그대로 땅 속으로 묻히게 될 의문들이다.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그 이유까지 최대한 알아낼 수 있는 만큼 반드시 파내야 한다.

나는 가만히 부원들을 쳐다보다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기, 얘들아. 이번 시간대에는 너 희들이 먼저 좀 죽어 줄래?”

괴담 동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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