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화
여덟 번째 괴담 -
저주받은 중간고사 (5)
차가운 눈길로 나를 보는 부원들.
“그... 시간 말야. 돌아가니깐……
나는 어색함을 참지 못하고 헛기침을 내뱉었다.
“…솔직히 안 믿기는 사람들도 있을 거야. 그냥 간단한 거야. 나중에 선생님한테 전화가 걸려 오면 그걸
대신 받아 주기만 하면 돼.”
“응? 어렵지 않지? 그냥 전화 오면 대신 받기만 하면 끝. 심장마비니 이런 얘기는…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만 받아들이고.”
“···후우.”
경원이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문답을 쭉 지켜보다가 부 장이 마지막으로 모든 걸 기억하고 돌아가겠다는 계획이구나.”
“그렇지.”
“한계치를 알 수 없는 뻔뻔함이군. 하지만, 부장.”
안경을 고쳐 쓰는 녀석.
“도와줄게.”
선아도 따라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준아. 나도 도와줄게……
“···고마워, 선아야.”
“나도 할게.”
하윤이 마저 태연한 목소리로 응하자 덕훈이가 움찔하더니 한숨을 내 쉰다.
“야레야레... 뭐, 전화를 받는 것뿐이라면야. 어울려 주지.”
진희는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가 만히 있더니, 참나, 하면서 고개를 돌렸다.
반응은 이렇게 해도 역시 시간이 되면 진희도 무심한 척 따라올 게 뻔하기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함께해 줘서 정말 고마워, 얘들아.”
* * *
다음 날.
중간고사의 첫 교시, 수학 시간.
나는 시험지를 대충 찍어 놓은 채 다시 한번 계획을 점검하고 있었다.
부원들이 내 전화를 대신 받고는 과학 선생과의 퀴즈 게임에 응해 준다. 거기서 과학 선생은 저주가 되돌아 오는 걸 피하기 위해 문제들을 다시 낼 테고, 우리는 답을 맞히든 못 맞 히든 어떻게든 정보를 캐낼 수 있는 질문들을 던진다.
경원이가 못 맞히고 죽으면 선아가 바통을 이어받고 그다음도 반복.
‘후. 제대로 되려나.’
과학 선생의 저주 대상은 나.
부원들은 아직 20살이 되지 못한 17살.
먼저 내 핸드폰으로 걸려 오는 저 주를 17살인 부원들이 대신 받아, 그 저주를 짊어지는 게 가능하냐가 첫째다.
‘···일단 경원이가 된다고 한 거면 되는 거겠지?’
저주에 관련된 괴담에서는 다른 사람이 대신 짊어져 주는 게 가능한 건 클리셰라나 뭐라나.
두 번째로 마음에 걸리는 건.
우리가 묻고 싶은 게 많더라도, 과학 선생의 문제를 못 맞히고 부원이 죽는 순간 그대로 게임이 끝나 버린 다는 것이다.
내가 원하는 그림은 핑퐁 식으로 서로 문제를 주고받으며 정보를 계 속해서 캐내는 건데.
한 명이 죽는 순간, 저주가 끊기는 걸로 판정되어 과학 선생이 전화를 끊어 버리면 말짱 도루묵인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덕훈이가 가능하다고 대답해 주었는데, 다소 황당한 이유였다.
[개인전에서 팀 게임으로 변경한다면 서로 릴레이 형식이 되는 것 따 위, 당연한 사실 아니냐능.]
‘그렇게 표현하니깐 이거 마치 가 족오락관의 폭탄 돌리기 같네.’
저주라는 폭탄을 서로에게 떠넘기며 정신없이 문답을 주고받는 그림.
어느 한쪽의 인원이 모조리 전멸할 때까지 멈추지 않는 죽음의 퀴즈 게임.
과학 선생은 말하고 싶지 않아도 몽땅 토해 내야 할 것이다.
이윽고 2교시, 영어 시간.
장화은 선생님이 심심한 표정으로 교실을 어슬렁거리시며 괜히 회초리로 벽을 툭툭 치는 동안 나는 허공의 시스템 창에 집중하고 있었다.
『미스테리와 비밀이 가득한 낙성 고등학교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학교에 숨겨진 음습한 비밀들을 밝혀내거나, 도시전설과 괴담들에 맞 서 싸우며 포인트를 얻어 특수 능력 들을 획득해 보세요. 그리고 함께할 동료들을 모아 졸업하기 전까지 마왕의 부활을 저지하세요. 세상은 당신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정말 오랜만에 띄워 보는 메시지.
그러고 보니 괴담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은 과학 선생이 처음이 아니다.
모르고 당하는 듯한 장화은 선생님을 빼면 한 사람이 더 있었다.
‘담임.’
학교에 숨겨진 음습한 비밀이라.
지금까지는 막연히 마왕과 괴현상에 관한 내용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사실은 문자 그대로 이 학교에 뭔가 비밀이 있다는 걸까.
곧이어 3교시, 드디어 과학 시간이 왔다.
시험을 치는 데 집중하느라 조용한 교실.
과학 선생이 감독하며 돌아다니느라 생기는 발소리와 학생들의 사각 거리는 싸인펜 소리만 들린다.
다시 한번 계획을 점검하며 이것저 것 생각하고 있자, 과학 선생이 슥 다가와서는 묻는다.
“너는 왜 문제를 안 푸니?”
나는 짜증이 나서 후우, 하고 한숨을 내쉬고는 대답했다.
“다 풀었는데요.”
“대충 찍은 것 같은데.”
“오지랖 부리지 말고 가세요.”
순간 조용한 교실에서 몇몇 학생이 놀라 숨을 들이켜는 소리가 들린다.
항상 무뚝뚝하던 과학 선생의 얼굴 이 처음으로 일그러진다.
“···방금 뭐라고?”
“오지랖 부리지 말고 가시라고요.” 점차 구겨지는 선생의 두꺼운 얼굴 가죽.
“너, 따라 나와.”
“싫은데요. 중간고사 문제 풀어야 해요.”
물론, 저주받은 중간고사의 기출 변형 문제를 말하는 것이다.
과학 선생은 고목 같은 얼굴을 엄하게 뜨고는 다시 나에게 말했다.
“그럼 농땡이 부리지 말고 시험 문 제 풀라고.”
“사실 갑자기 공부에 회의감이 들어서요.”
«
“왜 공부를 해서 좋은 대학에 가야 하는지. 그런 고민이 갑자기 떠올라 집중이 안 돼서 시험지를 넘길 수가 없어요.”
숨조차 함부로 쉬기 힘든 조용한 시험 시간.
무슨 생뚱맞은 질문인가 싶지만.
역시 나를 구슬려 이 괴담을 읽게 하는 것이 목적인지 의외로 큰소리를 내지 않는 과학 선생.
“갑자기 이 와중에 그런 고민이 왜 드는데.”
“이 와중이니깐요. 시험 시간이잖아요.”
“앞으로 이런 시험을 10번도 더 넘게 준비하고 쳐야 한다는 게 너무 고민이에요.”
과학 선생은 가만히 뒷짐을 진 채 듣고만 있다.
나는 힘든 척 한숨을 내쉬며 마지 막 문장을 내뱉는다.
“그 고민만 해결된다면 시험지를 볼 것 같은데.”
뒷짐을 진 채 위압적인 자세로 한 참을 서 있던 그.
이윽고 엄한 표정으로 한쪽 눈썹을 치켜올리고는 말했다.
“좋은 대학 못 가면 좋은 사람 못 된다.”
그 대답에 저 멀리 벽 쪽의 분단에서 푸훕, 하고 누군가 웃는 소리 가 들렸다.
쳐다보니 하윤이가 손으로 입을 가리며 웃고 있었다.
나 역시 슬그머니 미소를 짓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선생님이 응원해 주시니 힘이 나요. 저 시험 잘 쳐 볼게요.”
“그래. 열심히 해라.”
커다란 어른의 조언이라도 한 듯 무게를 잡으며 돌아서는 과학 선생. 하지만 눈길은 내가 정말로 시험지를 보는지 옆으로 흘겨보고 있는 상태다.
나는 피식 웃고는 그가 원하는 대로 시험지의 제일 뒷장을 펼쳐서 읽어 보는 시늉을 했다.
그제야 안심한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교실을 도는 과학 선생.
‘저런 선생은 어디에나 있지.’
굳이 이곳, 이상한 학교의 괴담투 성이 교실이 아니더라도 어디에나 있는 사람이다.
평소에는 학생에게 관심도 없었던 주제에 본인이 필요할 때면 입시니, 인생이니, 가식으로 다가 오는 어른들.
나는 느긋하게 기지개를 켜고는 크 게 하품을 했다.
학생을 세 번이나 죽이려는 선생 따위.
받은 대로 돌려줄 뿐이다.
띵~ 동~ 댕~ 동 ♬
종이 치자마자 벌떡 일어서는 여섯 명의 괴담 동아리 부원.
“빨리, 빨리!”
“헥, 헥.”
우르르 몰려 교실 문을 나선다.
선생님과 학생들이 복도를 헐레벌 떡 뛰어가는 우리를 뭔가 하는 표정으로 본다.
그대로 감독을 마치고 나에게 전화를 걸러 올라가던 과학 선생도 지나 친 채 우르르 계단을 오르는 우리 6명.
이윽고 5층 동아리방.
“헉, 헉… 존나 높아……
멀쩡해 보이는 건 운동으로 단련된 듯한 진희뿐.
우리는 서둘러 테이블을 중심으로 자리를 정렬했다.
그리고.
[ ···♬… …….]
곧 내 핸드폰에서 불길한 멜로디가 천천히 울려 퍼진다.
나는 핸드폰을 테이블의 중심에 올려 뒀다.
부원들의 눈길이 불길하게 울리는 핸드폰으로 쏠린다.
“부장, 역시 내가 아는 게 많으니 첫 번째로 받는 게-”
“기다려.”
경원이가 손을 뻗으려는 걸 내가 제지했다.
[ ···,… ♬… …….]
나른한 오후의 햇살이 하얀 커튼을 뚫고 비치는 동아리방.
중간고사의 첫날이 끝났다는 흥분에 소란스러운 학생들의 소리가 아 련하게 층을 타고 창문 너머로 들려 온다.
그 평범한 학교의 풍경 가운데.
동아리방에 모여 앉아 불길한 멜로 디의 휴대폰을 보는 우리 여섯 명.
[ ···♬… .]
“준아, 안 받아……?”
의문스러운지 묻는 선아.
이대로 이 전화를 받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 걸까.
그것도 분명히 좋은 결말은 아닐 거다.
[ ... ... ♬... 이 학교에 비밀이 숨겨져 있다.
괴담에 대해 이미 아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다면.
나는 천천히 팔짱을 낀 채 대답했다.
“인하윤, 네가 먼저 받아.”
고개를 들어 슥 나를 쳐다보는 하윤이.
부원들도 갑작스러운 내 태도에 서 로를 쳐다봤다.
[…,… ♬… …….]
빨리 안 받으면 큰일 날 거라는 경고처럼 점차 음량이 커져 가는 오르골 벨소리.
나는 다시 한번 확고하게 말했다.
“인하윤, 네가 받으라고.”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는 하윤이.
선아랑 경원이가 왜 그러냐는 눈빛으로 나에게 묻는다.
하지만 나는 단호한 표정으로 하윤 이를 노려볼 뿐이다.
“받아. 어서.”
그렇다.
인하윤.
의심스러운 건 너도 마찬가지야.
괴담 동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