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 화
여덟 번째 괴담 -
저주받은 중간고사 (6)
[2019년 4월 23일 화요일, 12: 13]
[이준 - 2회차]
[괴담 포인트 : 202]
[인과율 : 11%]
[ ... ,... ♬... .]
오후의 동아리방. 울려 퍼지는 벨소리.
“받아. 빨리.”
하윤이가 마침내 가느다란 손을 뻗더니 내 핸드폰을 집는다.
그리고 가만히 대답하는 그녀.
“여보세요?”
[…….]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서인지 잠시 말이 없는 과학 선생.
[···이준 휴대폰 맞습니까.]
“맞는데요.”
다시 침묵이 이어지는 휴대폰.
우리 바로 아래층의 과학실에서 과학 선생이 휴대폰을 든 채 머리를 굴리는 장면이 그려진다.
[이준 본인입니까.]
“네. 누구세요?”
살짝 목소리를 깔고는 나인 척 태 연하게 대답하는 하윤이.
휴대폰 너머로 잠시 갸우뚱하는 정적이 이어졌지만 이내 질문이 들려 왔다.
[남자가 자살한 이유는?]
“남자가 무인도에서 먹었던 갈매기 고기가 사실 아내의 인육이라는 걸 알게 돼서.”
[…….]
당황하지 않고 나에게 들었던 대답을 그대로 차분하게 대답하는 그녀.
휴대폰 너머로 침묵이 울려 퍼진다.
나는 하윤이에게 명령을 내렸다.
“나를 죽이려는 이유에 대해 한 문 장으로 연이어서 질문해 봐.”
처음에 이유가 뭐죠,라는 질문에 엉뚱한 대답을 했던 과학 선생.
혹시 내가 문장을 끊어서 물어봤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가만히 나를 보는 하윤이.
‘뭐 해, 어서.’
나는 물어봐야 할 걸 물어보라는 눈치로 턱을 치켜들었다.
하윤이가 결국 다시 차분하게 핸드폰에 대고 묻는다.
“이준을 왜 죽이려고 하는 건지 그 이유를 말해.”
[……!]
순간, 당황한 듯 숨을 들이켜는 휴대폰 너머의 남자.
우당탕탕.
무언가 시끄러운 소리가 난다.
[헉, 헉, 헉……』
급하게 어딘가로 달려가는 듯한 선생의 숨소리.
나는 다시 한번 눈치를 줬다.
‘카운트를 세.’
끄덕이는 하윤.
“오. 사. 삼……
아나운서가 숫자를 세듯 또박또박 한 발음.
“이. 일……
[잠시만! 잠시마아아아아안-!]
핸드폰 너머로 울려 퍼지는 절규.
[이기주의를 빨리 발음하면 이준이 되니깐! 난 이기주의적인 사람이 싫어서! 그래서 이준을 죽이려 했어!]
뭐지.
순간 동아리방을 맴도는 당혹감.
‘ 병신인가?’
벙찐 얼굴로 서로를 쳐다보는 우리.
누가 좀 설명해 보라는 눈치다.
하지만 이게 무슨 상황인지는 아무도 짚이는 게 없는지 다들 말이 없다.
하윤이만 눈썹을 살짝 찡그리며 핸 드폰을 붙잡고 있을 뿐.
[헉, 헉. 진짜 문제투성이인 것은 뭐지?]
다시 날아온 질문.
‘차례가 우리에게 넘어왔다!’
뭐지?
이기주의를 빨리 발음하면 이준!
그래서 죽이려고 했다!
‘그런 개병신 같은 게 정답으로 인정 된다고?’
[헉 · · · 헉*** 오* · · /사 ·]
뭐라고 대답해야 하느냐는 듯 나를 보는 하윤이.
하지만 나는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삼… 이… 헉, 헉.]
여전히 어딘가로 다급하게 달려가는 중인 과학 선생.
[일... 헉, 헉.]
“···문제투성이. 정답은 이준. 문제 투성이니깐 당신이 죽이려고 했다.”
일단 아무렇게나 대답해 보는 하윤 이.
하지만.
[땡.]
순간, 하윤이가 항상 침착하던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가슴을 붙잡는다.
“그윽... 윽... 으윽.”
부르르.
눈을 까뒤집고는 경련하는 하윤이.
그대로 입에 게거품까지 물더니 그 대로 책상에 머리를.
쿵.
박고는 쓰러져 버렸다.
“하, 하윤아!”
경원이와 선아가 하윤이의 어깨를 붙잡고 흔들었다.
진희와 덕훈이도 놀란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선생! 선생! 나 좀 도와주쇼, 헉, 헉.]
휴대폰 너머로 과학 선생의 다급한 외침이 들린다.
동시에 웅성거리는 여러 사람의 목 소리.
“이 잇!”
경원이가 쓰러진 하윤이의 손에 있던 휴대폰을 낚아채고는 외쳤다.
“당신들 뭐야! 정체가 뭐냐고!”
휴대폰 너머로 소란이 들려오더니 누군가 외친다.
[···뭐지! 누구 차례인 거지!]
[방금 제가 낸 문제로 한 사람 죽었고 이제 저놈들 차례요!]
[X발! 빨리 스피커폰으로 변경해!]
우리가 문제를 낼 차례인 걸까.
핸드폰을 들고는 식은땀을 흘리는 경원이를 바라보며 나는 무언가를 떠올렸다.
‘···설마.’
머릿속에 무언가 번뜩였다.
바다거북 스프 문제라고도 불리는 이 갈매기 괴담.
이걸... 정상적인 문제라고 할 수 있을까?
애초에 일반적인 사회 상식에서 인용되는 퀴즈 문제라는 건 해석의 여지가 없는 Q&A.
라디오 방송에서 막간을 이용해 가 볍게 퀴즈를 낼 때조차도 책의 지은이나 노래의 제목 같은 해석의 여지가 필요 없는 확실한 정답이 있는 문제를 낸다.
하지만 이 바다거북 스프 문제.
일반적인 퀴즈 문제와는 성향이 다르다.
이 이상한 문제를 만약에 카테고리를 붙여 분류한다면, 뭐라고 이름 지어야 할까.
추리 문제? IQ 문제?
이유(EU)가 뭐냐고 묻는 내 질문에는 유럽 연합(European Union)이라고 대답.
이준을 죽이려는 이유에 대해서는 이기주의.
X발.
나는 휴대폰을 든 채 땀을 흘리는 경원이를 보며 빠르게 화이트보드에 글자를 적어 나갔다.
넌 센 스.
흠칫하는 부원들.
‘이걸 이제야 알아차리다니, 미 친……
과학 선생이 저렇게 필사적으로 절 규하며 간신히 대답한 건 본심을 숨 기려는 의도 때문이 아니었다.
넌센스로 대답을 쥐어짜 내느라 그 랬던 것이다.
골든벨이든 중간고사든, 라디오의 퀴즈 문제든 수능시험이든 간에 한 번 정해진 문제의 형식을 다음 차례에서 바꾸지는 않는다.
일반 상식을 묻는 골든벨이라면 일반 상식의 퀴즈가 나와야 하고, 중 간고사라면 1학기 때 배운 문제가 나와야 한다.
국어 시험이라면 국어 문제가, 과학 시험이라면 과학 문제가.
그리고 이 괴담의 경우에는 바다거 북 스프 문제로 시작하였기에, 분류 하자면 ‘넌센스’ 문답 게임이 되는 것이다.
경원이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일단 끄덕였지만, 마땅한 문제가 생각 안 나는지 머리를 쥐어뜯는다.
이내 입술을 질끈 깨물고는 휴대폰에 묻는 녀석.
“거울을 보고 가위바위보를 했는데 깜짝 놀란 이유는?”
그러자 휴대폰 너머로 한바탕 소란 이 일어난다.
‘이 사람. 혼자가 아냐!’
아무래도 과학 선생은 자신을 도와 줄 동료 선생들에게 달려가느라 헉 헉댔던 모양.
그것도 이 이상한 상황을 이해하고 도와줄 수 있는 같은 편.
[...거울을 보고 가위바위보를 했는 데 놀랬대! 이 선생! 빨리 생각나는 거 아무거나.]
아우성치는 선생님들.
누구인지는 몰라도 교직원 중 그와 함께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이 학교 안에서 나를 죽이려고 음모를 꾸미는 세력이 있는 것이다!
“오 사! 삼! 이!”
[이겨서! 정답은 이겨서… 아니면 졌거나……』
다시 한번 과학 선생이 절규하듯 외치고는 바로 다음 문제가 들려왔다.
[다음 문제! 다음 문제 빨리… 그 래. 이걸로! 남을 등쳐 먹고 사는 사람은?]
남을 등쳐먹고 사는 사람!
사기꾼인가? 하고 생각하던 중, 카 운트가 벌써 울린다.
[오! 사! 삼! 이!]
경원이가 얼굴이 새파래져서는 나를 쳐다봤다.
하지만 나 역시 식은땀을 흘리며 녀석을 볼 뿐이다.
순간 선아가 휴대폰에 대고 대신 외친다.
“남을 등쳐 먹는 사람! 안마사!”
[일! 타임 아웃!]
«으
경원이가 가슴을 움켜잡고 쓰러진다.
털썩.
‘정답을 말했는데, 어째서!’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나는 서서히 게임의 규칙을 깨닫는다.
이건 소위 말하는 줄줄이 릴레이 방식의 게임.
상대 팀과 우리 팀에서 한 명씩 일대일로 붙는다.
누군가 대신 말해 준다고 해서 정답으로 인정되는 게 아니었다.
반드시 휴대폰을 붙잡은 사람 본인 이 정답을 얘기해야 한다.
하윤이에 이어 경원이까지 쓰러지자 우리 역시 소란스러워졌고, 이 와중에 선아가 재빨리 휴대폰을 잡았다.
[…….]
누군가 휴대폰을 잡은 걸 눈치챘는 지 갑자기 조용해지는 상대방 편.
잠시 더 기다려 봤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우리의 질문을 기다리는 눈치다.
경원이가 죽으며 차례가 우리 쪽으로 다시 넘어왔나 보다.
나는 빠르게 머리를 굴리며 선아에게 문제를 내라는 눈짓을 보냈다.
선아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외쳤다.
“하, 할아버지가 좋아하는 돈은?”
[……!]
다시 한번 휴대폰 너머가 시끄럽다.
서로 마구 의논을 주고받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진희와 덕훈이에게 외쳤다.
“진희야! 덕훈아! 너희는 지금 당 장 교무실로 내려가서 이 사람들이 누군지 확인해 줘!”
놀란 얼굴로 벌떡 일어서는 덕훈이와 입술을 질끈 깨무는 진희.
“지금 과학 선생이랑 같이 있는 사람들! 다 한패야! 누군지 다 알아내야 해!”
“알겠다!”
덕훈이와 진희가 동아리방을 나섰다.
원래는 질문을 던져서 이 사람들의 속셈을 알아낼 생각이었는데, 형식 이 넌센스라면 제대로 된 대답을 기대할 수 없다.
하지만 과학 선생을 포함해서 학교 안에서 나를 죽이려는 세력.
그들의 얼굴이라도 확인하고 죽어야 한다.
지금 몽땅 잡아내야 한다!
“오… 사… 삼……
카운트를 읊조리는 선아.
휴대폰에서 다급하게 다시 고함치는 선생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인터넷! 빨리 인터넷으로 검색하라고……』 “이… 일……
곧이어 다급하게 외치는 과학 선생.
[할머니! 할‘Money’니깐!!]
“···정답.”
[다, 다음 문제! 세상에서 제일 가 난한 왕은 누구일까?]
“최저 임금. 세상에서 제일 뜨거운 전화는……?”
[···이 선생! 세상에서 제일 뜨거운 전화! 뭐야! 빨리!]
망설임 없이 바로 대답하는 선아와 다시 날아온 퀴즈에 비명을 지르는 휴대폰 너머의 선생들.
그때 쓰러져 있는 경원이의 핸드폰으로 덕훈이에게서 영상 통화가 걸
려 왔다.
‘아. 세상에서 제일 뜨거운 전화… 화상 전화가 답이구나.’
그런 생각을 하며 경원이의 휴대폰을 내가 대신 받았다.
[여보세요? 부장! 이 사람들 지금 방송실에 모여 있어! 얼굴 다 확인 해 봐!]
“고마워, 덕훈아!”
방송실 앞에 웅성거리며 모여 있는 선생님들이 화면에 들어왔다.
그 사람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기억 하기 위해 경원이의 최신 휴대폰 액 정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오… 사… 삼……
[뜨거운 전화! 그게 뭐야! 제발! 이 선생! 빨리!]
“이… 일······
[씨바아아알! 모르면 빨리 검색해 보라고! 빨리!]
“타임 오버.”
[으윽……!]
털썩.
휴대폰 너머로 신음 소리와 함께 드디어 과학 선생이 쓰러지는 소리 가 들린다.
덕훈이가 걸어온 영상 통화에서는 방송실 앞에서 당황한 채 웅성거리는 선생님들의 모습이 보이고.
[방송실에 모여서 뭐 하나요?]
[무슨 공사 하니깐 상관 말고 가세요!]
웅성웅성.
가만히 보니 다 같은 편은 아니었다.
웬 소란이냐고 묻는 사람들도 있었고, 신경 쓰지 말고 가던 길 가라며 상황을 숨기려는 선생들도 보였다.
‘누가 아군이고, 누가 적인가!’
나는 비좁은 액정 화면으로 수신되는 영상을 필사적으로 지켜봤다.
곧 선아가 들고 있는 휴대폰에서 누군가 과학 선생 대신 전화를 받고는 문제를 던졌다.
[··♦화장실에서 금방 나온 사람은?]
“일본사람. 둘리가 재학 중인 고등 학교 이름은?”
기계처럼 빠르게 대답 후 바로 질 문을 던지는 선아.
전화를 받은 선생은 이렇게 바로 날아올 줄은 몰랐는지 잠시 멍청하게 있다가 곧 다급하게 외쳤다.
[뭐? ···아니, 둘리! 둘리라는데! 빨 리 누가……』
“오… 사... 삼… 이… 일… 타임 오버.”
[윽! 으윽.]
털썩.
다시 한번 상대편이 쓰러지는 소리.
[다음! 다음 빨리 누가 받아 봐! 체육 선생님 당신이…….]
[여보세요! 식인종이 우사인 볼트를 보면?]
“패스트푸드. 우유가 아프면?”
[우유! 우유가 아픈 게 뭐야! X발! 아무도 몰라? 교감! 당신! 빨리 나 좀 도와주쇼! 우유가 아픈 게 뭐야! 우유가 아픈 게 뭐냐고… 으윽
“타임 오버.”
차갑게 중얼거리는 선아.
털썩.
다시 한번 풀썩 쓰러지는 소리가 들렸고.
휴대폰 너머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서로에게 폰을 떠넘기는 선생님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윤 선생! 당신 나한테 이러면 안 되지! 전에 돈도 빌려 가 놓구 서……
[이런 X발! 죽게 생겼는데 개소리야! 최 선생! 당신이 받아 봐!]
[X발, 아무나 상관없으니 빨리 쳐 받아 개새끼들아! 안 그럼 우리 다 뒤진다고!]
[야 이 x발년아, 그럼 너부터 받아! 교감 네가 우리를 끌어들였잖아! 네가 받아 빨리……』
‘윤선아 잘한다!’
그러고 보니 선아의 그나마 있는 취미 하나가 집에 있는 옛날 유머집을 읽는 것이었다.
감격한 듯 무언의 응원을 보내는 내 제스처에 선아가 홍조를 띠며 훗, 하고 웃는다.
괴담 동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