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담 동아리-57화 (57/130)

57 화

여덟 번째 괴담 -

저주받은 중간고사 (8)

중간고사 하루 전, 점심시간. 동아리방.

“준아, 시험 공부-”

나는 빠르게 화이트보드로 가서 마카펜을 집었다.

그리고 새하얀 판에 정신없이 선생들의 이름을 휘갈기며 써 내려갔다.

오정호.

윤덕희.

최강찬.

박 담임.

이제금.

손평호.

정영식.

“뭐야..?”

“후.” 마지막 이름까지 갈겨쓰고 나서야 나는 참았던 숨을 내쉬었다.

다행히 하나도 놓치지 않고, 기억한 걸 모두 쏟아냈다.

“얘들아, 앉아 봐.”

“뭐라고오오! 어떻게 그런 일이 이!”

다시 한번 놀라는 경원이.

“나는 믿어……

다시 한번 믿어 주는 선아.

그리고 다시 한번 멀뚱멀뚱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의 진희와 덕훈이, 그리고 무표정한 하윤이.

나는 대략적으로 설명을 끝내고, 휴대폰을 들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가만히 통화 대기음을 기다리는 나를 멀뚱멀뚱 바라보던 경원이가 결국 참지 못하고 물었다.

“누구한테 거는 거야?”

“너희도 아는 사람.”

“ 흐음?”

어리둥절해하는 표정의 부원들.

“이런 일이 생기면 연락 달라고 한 사람이 한 명 있거든.”

곧 누군가 무뚝뚝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는다.

[오랜만이구나.]

그 사람과 통화를 하며, 과학실 안에서 선생과 대면했을 때를 떠올려 봤다.

진희가 선생님을 때리고, 나는 심 장마비로 쓰러졌던.

나도 모르는 새 문답을 주고받다가 져서 죽었던 그때.

‘분명 전화상이 아니라 만나서 직접 질문을 주고받은 건데도 저주가 성립되었었지.’

그 이유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 봤다.

어쩌면 전화는 마지막으로 저주를 발동하기 위한 트리거와 같은 역할이 아닐까.

내가 20살이 된 해이고, 서로가 괴담을 알고 문제를 출제한 상황.

조건은 이미 다 갖춰져 있었다.

전화는 마지막으로 저주를 발동시 키는 마침표의 역할, 반드시 전화로 만 문답을 주고받아야 하는 건 아닐 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과학 선생.

그는 큰 실수를 하나 저지른 셈이 된다.

* * *

다음 날.

‘2분단 네 번째 자리, 2분단 네 번 째 자리……

과학 선생은 미리부터 전해 들은 이준이라는 학생의 이름을 되뇌며 교실로 들어갔다.

‘저 녀석인가.’

가만히 필통을 뒤적이며 과학 시험을 준비하는 이준.

물론, 자신의 수업에 몇 번 들어왔겠지만, 무미건조하게 교사의 직무를 수행하던 그에게는 특별히 기억에 남아 있지 않은 얼굴이었다.

‘실수하면 안 되지.’

총 세 장으로 이루어져 있는 과학 시험지.

선생은 천천히 한 장씩 제일 앞 분단의 학생들에게 그걸 나누어 주며, 이준이 있는 분단의 학생들이 어떤 식으로 시험지를 넘기는지 확인했다.

그리고 마지막 장 시험지를 나누어 줄 때 괴담이 적힌 시험지가 이준에게 갈 수 있도록 순서를 배치한다.

‘문제없군.’

다행히 별다른 돌발 행동 없이 앞 전의 두 장처럼 마지막 한 장도 관찰한 방식대로 시험지를 넘기는 학생들.

괴담이 적혀 있는 시험지는 이준에게 무사히 도착한다.

순조롭게 시험 감독을 마치고 4층에 있는 과학실로 올라가는 그.

원래라면 감독을 마친 선생들은 즉 시 교감실로 가서 답안지 인수를 해야 하지만, 그에게는 좀 더 중요한 임무가 맡겨져 있었다.

“같이 가자능! 같이……!”

방금 감독을 보고 나온 교실의 학생들이 우르르 몰려와서는 자신보다 앞서 계단을 올라간다.

그중에는 자신이 죽이려는 이준도 포함돼 있었다.

‘그 웃기는 동아리의 부원들인가.’

죄책감은 없었다.

교주인 태상(太上)의 가르침을 받아들이기 이전에도 선생이란 직위는 자신에게 밥줄에 불과한,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일 뿐이었으니깐.

드르륵-

아무도 없는 과학실의 문을 열고는 자재실 겸 사무실로도 쓰는 자신의 방으로 선생은 들어갔다.

책상에 챙겨온 OMR 답안지를 내려놓고는 위로부터 내려온 지시 사항을 다시 한번 점검해 본다.

오늘 감독하게 될 이준이라는 학생에게 어떤 괴담이 적힌 문제지를 특별히 인쇄해서 내줄 것.

그리고 시험이 끝나는 대로 아무도 안 보는 곳으로 가 그 학생에게 전화를 걸어 이야기의 답을 물어볼 것.

혹시라도 이준이 정답을 말할 경우에 대한 대처부터 이준의 전화번호, 그리고 목소리를 변조하는 어플이 제대로 작동하는지도 살펴본다.

‘이렇게 해서… 이렇게.’

어째서 이렇게 복잡한 방식으로 그 학생을 죽이려는지는 의문을 가지지 않았다.

다만, 주어진 명령대로 철저히 순종할 뿐.

‘···놓친 건 없나.’

다시 한번 지시 사항을 꼼꼼히 점검하는 과학 선생.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에게는 한 번도 보여 준 적 없는 굉장히 세심한 태도였다.

곧 점검을 끝내고는 가만히 휴대폰을 꺼내는 그.

천천히 이준의 번호를 누른다.

미리 저장해 놓았던 핸드폰 속 전화번호부와 일치한다.

몇 번 더 번호를 확인하고는 통화 버튼을 누르는 그.

그리고 들려오는 컬러링.

[ …♬… .]

오르골이 울려 퍼지는 불길한 멜로 디.

통화 연결음으로는 끔찍한 소리였다.

[  ... )... ♬ … .]

‘…이딴 걸 컬러링으로 설정해 놓다니. 요즘 애들은 튀고 싶어서 주체를 못 하는군.’

눈살을 찌푸리며 요즘 세대를 욕하는 그였지만, 이준의 원래 컬러링이 아닌 저주의 트리거가 발동했기에 들리는 멜로디임을 모르고 하는 소리였다.

곧 소리가 끊기더니, 누군가 전화를 받는다.

[여보쇼.]

묵직하게 낮은 걸걸한 목소리.

이준이라는 학생이 저렇게 애늙은 이 목소리였던가.

곰곰이 생각해 보지만, 역시 학생 따위는 평소 안중에도 없었던 그였기에 이준의 목소리를 알 턱이 없다.

[누구십니까.]

대답이 없자 누구냐고 묻는 전화 속 남자.

아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학생의 목소리로는 생각이 안 된다.

선생은 잘못 걸었나 싶어 가만히 휴대폰에서 귀를 떼고는 번호를 다시 확인해 본다.

‘맞는데.’

의문을 떠올리며 이준이 맞는지 물어보려 다시 휴대폰을 귀에 갖다 대는 순간.

[혹시 이준이라는 학생 관계자 되십니까.]

| 99

전화 속 남자가 먼저 그에게 질문을 던진다.

선생은 놀랐지만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여보세요.”

[예. 말씀하세요.]

“이준 핸드폰 아닙니까.”

[맞습니다. 실례지만 이준이라는 학생과 아는 사이 되십니까.]

띡_

선생은 거기서 빠르게 전화를 끊어 버렸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이준이 아닌 다른 사람이 전화를 받았다.

그럼 괜히 이야기를 나눠서 꼬리가 밟힐 만한 걸 남길 필요가 없다.

‘···잠시 후에 다시 걸어 봐야겠군.’

그렇게 생각하며 학생들의 OMR 카드를 정리하는 그.

어디 이준이라는 곧 죽을 그놈, 시 험은 잘 쳤나 슬쩍 보려던 순간.

자신의 핸드폰으로 불길한 멜로디 가 울려 퍼진다.

[ ··· … ♬… .]

영화 착신아리의 벨소리처럼 오르골이 울려 퍼지는 음산한 멜로디.

원래 이런 벨소리가 아닌데, 뭐지. 하고 눈을 찌푸리는 과학 선생은 곧 발신자의 이름을 보고는 흠칫하고 만다.

[이준]

잠시 고민했지만 이내 받아 보기로 결정한 그.

‘···뭐지.’

수락 버튼을 누르고 천천히 귀를 가져다 댄다.

[여보세요.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 박강운 형사입니다. 전화 끊지 마세요. 추적 들어갑니다.]

형사!

무미건조하고 무뚝뚝한 그였지만, 형사라는 이름 앞에서는 흠칫할 수 밖에 없었다.

‘···형사?’

[여보세요. 계십니까.]

‘그런 사람이 왜 이준의 휴대폰을 대신 받는……

그는 순간 당황해서 심장이 오그라 드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이내 정신을 수습한다.

아니다, 괜찮다.

아무도 모른다.

아니, 알 수가 없는 일이다.

이해가 안 되는 와중에도 그는 필사적으로 스스로 되뇌며 말을 이었다.

“뭡니까.”

[그건 내가 할 질문입니다. 왜 이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었습니까? 번 호도 숨기고.]

잠시 머뭇거리던 선생은 그냥 끊기로 결정했다.

무슨 상황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대화를 이어 나가 봐야 자신에게 좋을 게 없었다.

학생들의 채점을 마무리한 후, 나 중에 다시 걸자.

이준이 받길 바라며.

그렇게 전화를 끊으려던 찰나.

[여보쇼. 혹시 끊으시려는 거면 관두는 게 좋을 겁니다. 벌써 위치 떴는데, 보자… 신림동의 낙성고등학교 안이네.]

동공이 커지는 과학 선생.

입술을 움찔거리며 뭐라 할 말을 찾던 그의 심장이 급격하게 요동치기 시작한다.

‘진짜로 위치를 알아냈다고?’

정말이라면 경우의 수를 생각해야 할 게 많아지지만, 지금은 빠르게 결정을 내려야 할 때.

그는 모든 의문을 무시한 채 지금 바로 일을 끝내기로 마음먹는다.

“···학교 관계자입니다. 이준이라는 학생 좀 바꿔 주시겠습니까?”

[왜 전화를 거셨는지부터 먼저 말 씀 부탁드립니다.]

“···그냥 할 말이 조금 있어서 그럽니다.”

그냥 갈매기 고기를 먹은 남자가 왜 자살했는지 물어보는, 아주 사소 한 질문일 뿐이다.

‘어서 바꿔, 씹할.’

이준이 받는 순간 게임 끝이다.

[바꿔 달라고요… 그건 좀 어렵겠는데요.]

“···왭니까.”

[사망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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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번 동공이 크게 확장되는 과학 선생.

휴대폰 너머로 형사의 담담한 음성 이 울려 퍼진다.

[사건이 터져서 현장 조사 중인데, 마침 피해자 학생의 핸드폰이 울려서 제가 대신 받았습니다. 실례지만 성함과 신분 좀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사, 사망……

선생은 침을 꿀꺽 삼켰다.

어떻게 된 걸까. 잘 된 걸까?

어차피 죽이려고 했던 마당에 먼저 죽었으니 깐?

아니, 잘 된 건 아니었다.

교주는 분명히 이준이라는 학생이 특정한 방식으로 죽기를 원했다.

그냥 아무렇게 없애 버릴 작정이었다면 이렇게까지 복잡한 지시를 내 릴 이유가 없었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확인해 봐야 한다.

이준이 왜 죽었는지.

‘꿀꺽.’

엉뚱하게 죽은 거라면, 그에게 있어서 임무 실패와 다를 바 없었다.

교주의 명령은 절대적.

그걸 실패한 사람에게 어떤 가혹한 형벌이 기다리고 있을지, 그는 두려 움에 떨며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린다.

[여보세요. 지금 당신 굉장히 수상 하거든요. 피해자의 핸드폰으로 발신자 표시 제한에 음성 변조까지 해 서 전화 걸고. 한 번만 더 대답 안 하면 찾아갑니다. 학교 안에 있죠,

지금?]

선생은 아차, 하며 급하게 휴대폰의 음성 변조 어플을 껐다.

“아, 아… 어흠. 죄송합니다. 제가 감기에 걸려서요. 음성 변조 같은 건 아닙니다.”

[피해자랑 어떻게 연관되시는 분인 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과학 선생은 챙겨 온 학생들의 OMR카드를 불안하게 만지작거리며 대답했다.

“나는 낙성고등학교의 과학 선생 되는 사람입니다.”

[아, 학교 선생님이셨습니까. 무슨 일로 전화 거셨는지…….]

“준이랑 거… 평소에 친하다 보니. 시험 잘 쳤는가 하고 물어보려 전화 했지요.”

[그렇습니까.]

“그래서, 그냥 전화해 본 건데… 좀 많이 당황스럽네요. 장난 같은 건 아니죠?”

[아닙니다. 학생이랑 많이 친한 관계셨습니까?]

“아니, 뭐. 그렇게까지 관계 있는 건 아니고. 안부 가끔 묻는 사이입니다.”

지나치게 엮여서 좋을 건 없다는 생각에 적당히 선을 그은 과학 선생 은, 형사가 뭐라 입을 떼려는 순간 선수 쳐서는 먼저 묻고 싶었던 걸 물었다.

“그나저나, 대체 뭔 일입니까? 준 이 학생이 사망했다구요?”

[크게 관계없는 사이라고 하셨죠. 그럼 당장 말씀드리기는 좀 그렇네요. 교직원이시니 나중에 학교 통해 서 확인하시죠.]

그렇게 전화를 끊으려는 분위기의 형사에게 과학 선생은 황급히 말을 돌린다.

“아니, 또 그게 크게 관계없는 사이인 건 또 아니고……

순간 땀이 눈썹을 타고 흘러내려서 잠시 눈을 비비는 과학 선생.

어느샌가 너무 긴장하고 있었는지 조금씩 땀을 흘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교주로부터 내려온 지시, 이번을 위해 교단 측에서 준비해 놓은 모든 것들.

마지막으로 자신이 전화만 걸면 되는 건데, 그새를 못 참고 이준이 엉 뚱한 이유로 먼저 죽었다.

그걸 다른 선생들… 특히, 교단의 간부들이 알아차리기 전에 그는 원인을 확인하고, 최소한의 변명거리 라도 먼저 준비해 놔야만 했기에 긴 장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는 그 이준이라는 학생이 돌연사한 원인이 제발, 그가 막을 수 없었던 천재지변 같은 이유이기를 간절히 빌 뿐이었다.

[···크게 관계없는 사이는 또 아니라고요? 아까 제가 물었을 때는 안 부 가끔 묻는, 별거 아닌 사이라고 방금 몇 초 전에 말씀하셨던 것 같은-]

“아이고. 제가 무뚝뚝한 경상도 남자라 그리 말한 걸 또 그대로 받아 들이십니까!”

과학 선생은 형사의 말을 끊고는 메마른 감정 속에서 억지로 슬픈 목 소리를 끌어내기 시작했다.

“시험 잘 쳤냐고 제가 이렇게 전화를 건 것만 봐도 모르십니까! 정말 별거 없는 사이면 연락도 안 했겠죠!”

[···그렇겠네요. 이거 실례했습니다.]

“준。], 우리 준이...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겁니까? 제가 참 아끼던 학생이었는데……

억지로 감정을 연기하는 그의 음색 톤의 높낮이가 굉장히 어색하다.

[실례지만, 어느 정도 가까운 사이 셨는지요.]

“가깝고 가까웠지요! 무남이던 내 겐 아들 같은 녀석이었는데… 암요... 준이 녀석, 나만 보면 친구들 도 다 제치고 달려와서 인사하고……

[…….]

“선생님~! 선생니임~! 하고 달려 오면 내가 안아 주고 그랬지요… 어린 게 어찌나 영특한지… 순수하고 해맑았고… 이것저것… 공부도 참 잘하는 아이였고, 근데 어쩌다……

[신입생이고 첫 중간고사도 안 끝 났는데 공부 잘하는 걸 벌써 아셨습니까.]

“말이 그렇다는 겁니다, 말이! 교실에서 어떻게 하는가 보면 알지 않겠습니까! 숙제도 꼬박꼬박 잘해 오고, 항상 앞자리에서 집중도 잘하던 녀석이었는데… 어쩌다……

[앞자리? 학생들의 증언으로는 교실에서 중간쯤 자리에 앉았다는데요.]

“내… 내 말은 과학실에서 말입니다! 과학실에서!”

선생은 슬픈 연기를 하다 말고 급 한 마음에 역정을 부렸다.

“그, 과학 시간에는 교실에서 수업 안 하고 이동을 하잖습니까! 이 학생, 과학실에서는 그랬다는 말입니다! 과학실에서는! 제발 똑바로 들으쇼!”

[허허, 이거 또 실례했습니다. 근데 왜 번호는 발신자 표시 제한으로-]

“아이고 우리 준이……

선생은 형사의 말을 무시하고는 고목나무 같은 딱딱한 얼굴을 찡그리며 소리를 높여 본다.

“우리 착한 준이가 어쩌다가… 아이고……

무릎도 탁탁 쳐 가며 영혼 없는 목소리로 꺼이꺼이 메마른 울음 소리를 내는 과학 선생.

“왜, 어쩌다가 그렇게 됐다는 말입니까... 아이고……

“아들 같은 우리 준이… 우리 착한 준이가 왜……

생전 관심도 없던 한 학생의 이름을 목놓아 부르는 그.

휴대폰 너머에서 형사가 아닌, 다른 누군가 웃음을 참는 소리가 들려 왔지만 연기에 열중한 그는 듣지 못 했다.

“하늘도 참 무심하시지… 이렇게 착한 준이를 데려가고… 아이고… 아이고……

[…….] “차라리 나를 데려가라, 저승사자야. 차라리 나를… 이 늙은 놈을 데려가야지, 왜 착한 준이가 먼저 갔느냐... 아이고......

[…….]

“나는 이제… 준이를 가슴속에 묻고 살아야 합니다… 선생으로서 이 보다 더 슬픈 일이 어디있습니까… 아이고, 아이고… 그래서 도대체 왜 죽은 겁니까, 아이고……

[···알겠습니다. 말씀드리죠.]

드디어!

선생은 바로 무뚝뚝한 평소의 모습으로 안색을 사악 바꾸고는 휴대폰에 귀를 기울인다.

[그게 말입니다. 사실 어떻게 된 거냐면. 이 친구, 옛날에 조난 한 번 당했던 거는 아십니까? 그때 굶어 죽기 직전 간신히 갈매기를 잡아 서 먹고 살아났는데 세월이 오래 흐른 후, 남자는 그때의 갈매기 고기가 생각이나 갈매기 고깃집을 찾았다. 남자는 고기를 한 점 베어 물고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남자가 놀 란 이유는?]

잠시 사고가 정지돼서는 멍하니 있던 선생.

이내 천천히 얼굴을 부들부들 떨더 니, 피부가 빨개져서는 손에 든 휴대폰에 버럭 소리를 지른다.

“개소리 마, 이런 X발! 오라질놈의 새끼가! 누가 쳐 장난질이야!”

[끊으시면 후회할 텐데.]

“미친 새끼가 사람을 놀려……!”

부들부들 떠는 과학 선생.

그러고 보니 방금 자신이 감독을 하고 교실을 나온 지 아직 20분이 채 안 되었다.

갑자기 형사라는 사람이 전화를 받길래 머리가 안 돌아가 미처 생각 못 했지만, 그 짧은 시간 안에 이준 이 학교 안에서 죽었을 리가 만무했다.

“어떤 새끼가-”

말을 하다말고 그는 문득 멈췄다.

어떤 새끼가 아니다.

지금 전화를 받은 휴대폰은 분명히 이준 본인의 것이다.

입을 벙긋거리는 그의 이마로 한 줄기 식은땀이 다시 흘러내린다.

‘혹시······

[…….]

‘자, 잘은 모르겠지만… 설마.’

낚인 건가……?

늙은 주름살을 타고 흘러내리는 식 은땀.

과학 선생, 그는 스스로 음성 변조를 끄고 목소리를 드러낸 채 자기소 개를 해 버렸고, 얼토당토않는 연기를 해 버리고 말았다.

다 들통나 버린-

‘아, 아니다… 오히려 다행이다!’

과학 선생은 요동치는 머릿속을 필사적으로 정리한다.

지금까지의 상황이 모두 낚시였다면 오히려 다행인 일이었다.

‘이준! 아직 살아 있구나!’

그 애새끼 중 누가 어른 목소리를 흉내 내는지는 몰라도, 자신의 정체를 밝혀내려 이런 일을 꾸민 것이구나!

과학 선생은 눈을 희번덕이며 순식 간에 독기에 찬 채 머릿속을 굴린다.

확실히 그는 스스로 정체를 드러내고 말았다.

하지만 이제 와서 그런 것 따위는 중요하지 않은 일.

중요한 건 이준을 이 괴담을 이용 해 죽이는 것, 그게 아직 가능하다는 것이다.

“주, 준아아아?”

땀이 흠뻑 젖은 채, 천천히 떨리는 가식적인 목소리로 상냥하게 불러 본다.

“호, 혹시 거기 있니이이이?”

떨리는 과학 선생의 두 눈이 희미하게 반달 모양을 그린다.

기묘하게 올라가는 그의 입꼬리.

“거, 거기 있지, 그치이이? 여, 옆에서 다 듣고 있었던 거지이이? 응?”

아까부터 형사의 옆에서 들려오던 다른 누군가의 인기척, 분명히 이준이다.

자신을 낚으려고 이런 트릭을 짰다면 틀림없이 옆에서 모든 걸 듣고 있을 게 분명하다.

“이, 있지이? 이, 있잖아, 너. 거기 있잖아. 다 듣고 있잖아… 그치이 이?”

덜덜 떨리는 과학 선생의 두 손.

[···후우.]

아니나 다를까, 형사의 옆에서 누 군가 그를 향해 한심하다는 듯 한숨을 내쉬는 소리가 들려왔다.

형사의 낮은 음색과는 다르게, 변 성기가 막 끝난 조금 가느다란 한숨 소리.

순간 과학 선생의 두 눈이 희번덕이며 광채를 발한다.

“이주우우우우운! 찾았다아아아아!

너 옆에 있구나아아아아아!”

숨길 수 있다면 숨긴 채 질문을 하는 게 베스트겠지만, 막무가내로 밀어붙여도 꿇릴 건 없었다.

학생의 시험지에 괴담을 적고 전화를 걸었다는 건 교육자로서 굉장히 수상한 행동이기는 했지만, 이준이 겪게 될 심장마비와는 법적으로 아무 문제 없는 일인 것이다.

‘아, 안 늦었다! 가능하다! 지금 바로! 당장!!’

선생은 상대가 전화를 끊을 타이밍 도 주지 않고, 곧바로 전화기 너머 엿듣고 있을 이준에게까지 들리도 록.

핸드폰을 목구멍까지 쑤셔넣을 기세로 붙들고는 핏대 높여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버린다.

“남자가 죽은 이유는 뭘까아아아아아아요~?”

[……!]

“오 4! 삼! 이! 일! 때애애애앵~!”

순간 숨을 들이켜는 전화 너머의 상대.

크, 크윽!]

그리고 누군가 털썩 쓰러지는 소리와 함께, 당황해서 웅성거리는 소란 이 들린다.

들었다! 들었다! 들었다! 들었다!

들었구나~ 들어 버렸구나, 준아!

선생은 저 단전 밑에서부터 펑 터져 들끓어 올라오는 웃음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주, 준아아악! 선생님이 너 먼저 뒤져 버린 줄 알았잖아~! 으하, 으 하하하하하… 이, 이러기 있니이… 정말... 킬킬킬.”

불안감으로 시작해서 분노, 당황, 억지 눈물, 카타르시스.

짧은 시간 동안 감정의 양극단을 미친 듯이 오간 과학 선생.

마침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광기에

찬 웃음을 터트리고 만다.

“크, 크핫, 크핫핫핫……

융퉁성 없는 아저씨로만 생각하던 학생들 입장에선 처음 보는 미친 그의 본모습.

“아~ 큭큭큭. 쓰발, 골때리네. 우리 아들 같은 준이! X발, 학생이 돼 서는 하늘 같은 선생님을 놀려먹고 말이야! 으·~ 히히. 이 개새끼, 개 같은 새끼, 크하하핫… 선생님이 얼마나 놀랐는 줄 아니이이! 존만 한 게 어른을 놀려먹어어! 나 때는 선생 그림자도 못 밟았는데 말이야! 이 빌어먹을 애새끼!”

“정말, 정말로, 정말. 크핫핫.” “정말로 우리 준이는 못말린다니까 아아아안!!!!!!!!!!!!!!!!!!!!!!!!!!!!!!”

너무 땀을 많이 흘려 다 젖어 버린 채 색깔이 변한 셔츠의 가슴팍을 붙들고 과학 선생은 폭소한다.

“백 점! 너 중간 고사 백 점! 선생님이 백 점 줄게! 크하, 크하하핫.”

휴대폰 너머에서는 이준의 숨넘어 가는 헐떡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끅, 끄윽, 끅.]

“크하하핫핫. 크하핫.” 웃음을 참지 못하고 책상을 탕탕 치던 그.

그 진동으로 책상 위에 올려놓은 학생들의 OMR카드 무더기가 쏟아 지더니, 이준의 답안지가 손등을 덮는다.

“이 개 같은 놈, 존만 한 게 잔머리는 되게 잘 굴러가, 선생님이 그 건 인정! 그건 인정한다 선생님이, 크하하핫... 잔머리는 백 점, 너 백 점, 크하핫.”

[끄으윽... 끄윽......』

이준의 숨넘어가는 소리를 들으며 정신없이 웃던 그는 이준의 OMR 카드를 집어 들고는 눈앞에서 팔랑 거리기 시작한다.

“기분이다, 선생님이 수정테이프로 다 고쳐 준다! 시험 점수는 백 점! 안심하고 죽자, 준아! 크하핫……

<36. 남자가 무인도에서 먹었던 갈 매기 고기와 맛이 달라서. 왜냐면 무인도에서 먹었던 고기는 아내의 살점이었다.〉

“크핫, 크하핫… 미친놈의 애사] 끼… 크핫……

〈36. 남자가 무인도에서 먹었던 갈 매기 고기와 맛이 달라서. 왜냐면 무인도에서 먹었던 고기는 아내의 살점이었다.〉 “크하핫… 크핫……

〈36. 남자가 무인도에서 먹었던 갈 매기 고기와 맛이 달라서. 왜냐면 무인도에서 먹었던 고기는 아내의 살점이었다.〉

<36. 남자가 무인도에서 먹었던 갈

매기 고기와 맛이…….〉

비어 있어야 할 주관식 칸에 빼곡하게 무언가가 써져 있는 이준의 OMR 답안지.

선생은 잠시 눈을 비비고는 다시 그것을 쳐다본다.

<36. 남자가 무인도에서 먹었던 갈 매기 고기와 맛이 달라서. 왜냐면 무인도에서 먹었던 고기는 아내의 살점이었다.〉

저게 뭐더라.

어디서 많이 본 문장인데.

짧은 시간.

과학 선생의 머리가 핑핑 회전하기 시작한다.

그렇다.

그것은 그가 이준에게 낸 문제의 답이었다.

[36]

이 문제를 20살까지 기억하고 있으면 20살이 되는 해에

남자가 자살한 이유는? 의문형으로 끝나는 이 문제의 마지 막

거기에 이준은 OMR카드에 답을 적어 출제자인 선생 본인에게 건네 준 것이다.

[다 웃었소?]

묵묵하게 묻는 형사.

[그럼 내 문제에 빨리 답해 보쇼. 남자가 갈매기 고기를 한 점 베어 물고는 놀란 이유는?] 순간, 형사의 목소리 옆에서 이준의 목소리가 함께 들린다.

[오.]

[사.]

[삼.]

차갑게 카운트를 세는 이준.

“···저기, 아니. 잠시만… 뭔

[이.]

“지금 뭘 하고 있는……

[일.]

내가 대답할 차례라고?

왜?

영문을 모르겠는 선생이었지만 그 래도 갑자기 등골이 서늘해지는, 뭔가 이상한 분위기를 감지하고는 서 둘러 대답한다.

“나, 남자가 놀란 이유? 그야 무인 도에 있었을 때 먹었던 갈매기 고기가 아내의 살점이었다는 걸 알게 돼 서……

[껄껄껄… 뭔 개소리요. 이 사람 문제 제대로 안 들었네. 준이한테 아내가 어디 있소, 아내가?]

이내 껄껄대며 웃는 형人}.

“뭐, 뭐요? 무슨… 아니, 애초에 왜 내가 질문을 받는……

[응? 준아, 바꿔 달라고? 그래, 여기.]

[선생님.]

“주, 준아.”

너무나도 멀쩡하게 살아 있는 이준의 목소리.

과학 선생은 저승사자라도 만난 것처럼 덜덜덜 몸을 떨기 시작했다.

“사… 살아 있구나.”

[살아가야죠. 이렇게 사랑받았는 데.]

“그... 그래.”

사시나무 떨듯 온몸을 떠는 선생.

입술을 움찔거리다 겨우 한 문장을 내뱉는다.

“어... 어떻게 된거니, 이게?”

[몰라요?]

피식, 하고 웃는 휴대폰 너머의 남학생.

[기출 변형이잖아요. 중간 고사니 깐.]

가파르게 숨을 내쉬며 동공에 지진 이 일어나는 그.

여전히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하나도 이해하지 못한 모습이다.

[뭐 더 하실 말씀 있으세요?]

침을 꿀꺽 삼키는 과학 선생.

“…준아.”

“한 번만 봐줄래?”

[좆까.]

[타임 오버.]

지끈

“우욱······!!”

이준이 차갑게 타임 오버를 말하자 마자 과학 선생은 심장에서 강한 충 격을 느끼고 두 손으로 가슴을 움켜 잡는다.

떨어지는 그의 낡은 휴대폰에서 다시 건네받은 형사의 굵직한 목소리 가 울려 퍼진다.

[정답은 고깃집의 갈매기살이랑 헷 갈려서. 껄껄… 그 왜, 돼지고기의 부위 중에도 갈매기살이 있잖소. 그 고기가 그 고기인 줄 알고 음식점을 잘못 찾아서 한 입 베어 물고는 놀랐다고… 나 참, 어이가 없어서… 준아, 또 내가 할 거 있냐? 음? 여보세요? 여보세요?]

자재실 안.

과학 선생은 바닥에 쓰러진 채 경 련이 일어난 채 누워 있다.

곧이어 휴대폰이 끊기고 바깥이 소란스럽더니, 우르르 누군가 5층에서부터 계단을 내려와 4층 과학실 안으로 들어온다.

덜컥.

“…세상에.”

과학실 안의 자재실로 들어온 괴담 동아리의 여섯 학생. 그리고 이준의 휴대폰을 손에 쥔 형사.

그것이 과학 선생이 마지막으로 본 광경이었다.

“···틀렸어. 벌써 죽었다.”

“고생하셨어요, 형사님.”

“후, 속는 셈 치고 해 봤다만, 정말 이런 걸로 사람이 죽을 줄이야……

“이제 믿으시나요?”

“조금. 다른 방식으로 해결할 수는 없는 일이었니?”

“없어요. 지금만 해도 벌써 네 번 째예요. 이 사람은 결국 어떻게든 나를 죽이려 했을 거예요.”

“···후우. 그건 알지만.”

“형사님 엄청 험악하게 생기셨는데 의외네요.”

“이 녀석아, 생긴 게 이래도 형사 님은 정의의 편이다. 눈앞에서 사람 이 죽는 건 원하지 않아.”

“죄송해요. 그런데 정말로 어쩔 수 없었어요. 저주가 이미 걸려서 울려 오는 핸드폰은 끄거나 거절도 안 돼요. 그 순간을 넘기더라도 어떤 식으로든 쫓아왔을 거예요.”

“…그래서 그냥 돌려준 것뿐이다 이거냐. 자충수라고. 후우… 일단 알겠다. 여기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 깐 너희는 괜한 의심 안 받게 교실로 돌아가 있어.”

“알겠습니다.”

“뭐가 어떻게 된 건지는 나중에 확 실히 들을 테니깐 대기해. 여보세요? 어, 나 박형사인데. 여기 낙성 고에 사건 발생. 심장마비로 한 명 사망. 지병인 것 같고. 어, 앰뷸런스 연락하고. 아니 뭐, 서두를 건 없고……

괴담 동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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