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담 동아리-59화 (59/130)

59화

막간 - 상황 정리 (2)

곧 배달기사가 와서는 철가방을 내려놓고 동아리방에 음식들을 꺼내 주기 시작했다.

다들 하교하여 학교가 한산해진 탓에 경비의 눈을 피해 본관까지 들어 올 수 있었나 보다.

“형사님 잘 먹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래, 맛있게 먹어라. 너희랑은 앞으로도 계속 볼 것 같은 기분이 드니깐.”

테이블 한가득 올려져 있는 짜장면, 군만두, 탕수육, 깐풍기.

“내 앞에 좀 덜어놔 줘요. 설명 다 하고 먹게.”

“흉하다. 앉아서 먹고 하자, 그냥.”

형사님의 제지에 그냥 나 역시 설 명을 끊고 앉아서 젓가락을 뜯는다.

“하나둘 정도는 짬뽕 시키지. 다 짜장면이네.”

진희의 투덜거림에 형사님이 눈을 번쩍이셨다.

“너 담배 피지?”

움찔하는 진희.

“젓가락 집는 거 보면 다 알아, 인마. 조용히 먹어.”

늦은 식사 시간이 끝난 후, 나는 그 외에도 내가 겪었던 모든 일을 설명해 주었다.

제일 처음의 안내 방송 괴담으로 모두 머리가 터져 죽은 것부터 웃는 여자, 가짜 엄마, 몽중몽 등등.

“점심 먹기 전에 안 들어서 다행이다.”

잔혹한 내용들에 경원이가 가슴을 쓸어내렸다.

“괴담 포인트라는 게 있는데요. 이 걸로 이것저것 할 수 있거든요.”

한바탕 내 삶에 대한 일대기가 끝 난 후에는 시스템에 대한 설명이 이 어졌다.

괴담을 퇴치하며 얻은 포인트의 사용과 갖가지 능력들까지도 모조리 설명 후, 상태창을 보니 어느덧 5시를 가리키고 있는 시간.

“부장이 3년 더 살다 왔다니……

중얼거리는 경원이.

나 역시 경계하고 있던 부분이다.

지금까지는 동갑내기 친구로 잘 지 내 왔다지만, 실제 나이는 20살인 입장이니깐.

“···뭐, 나이 때문에 부담스러워 할 필요는 없어. 지금까지처럼 편하게 생각해 주면 고마울 것 같아.”

“아니, 그것 때문이 아니고… 수능 문제 답을 다 알겠다는 생각에 불공 평하지 않냐는 생각이- 아얏.”

쓸데없는 소리에 옆에 있던 하윤이가 경원이의 허벅지를 꼬집는다.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현실감 있게 받아들여. 3년 뒤에 마왕이 부활하고 세상이 멸망할 거야. 입시 같은 건 사실 아무래도 좋은 거야.”

“동감한다고. 우리가 세계를 지켜야 해.”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장대한 포부를 말하는 덕훈이.

만화 속 등장인물이 된 기분인지, 흥미진진하게 즐기는 듯한 표정이다.

[인물 오덕훈에 대한 이해도가 10 올랐습니다.]

“그래서. 방금 이 소파가 갑자기 생겨난 것도, 네가 그 포인트란 걸 사용해서 얻었다 이거냐.”

“네. 맞아요.”

나는 형사님께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포인트의 사용처는 정말로 많아요. 고작 이런 물건을 쓰는 데 사용하는 건 아까울 정도로.”

“비싼 소파인데?”

“현실의 돈으로도 살 수 있는 거잖아요. 돈으로는 할 수 없는 초현실적인 것들이 포인트로는 가능하니 깐, 낭비였던 거죠.”

“확실히 그렇군.”

“능력을 얻거나, 동아리의 기능을 확장하거나……

형사님은 생각하는 표정으로 곰곰 이 화이트보드를 들여다보시더니, 또 무언가를 물으셨다.

“인과율은 뭐지?”

인과율.

그러고 보니 뭘까.

“나도 궁금하다, 부장. 상태창에 떡 하니 적혀 있는데 아까부터 언급이 없네.”

“···그게, 사실 나도 잘 몰라.”

“ 모른다고?”

“응. 괴담을 하나씩 해결할 때마다 올라가 있기는 하던데……

“흠 ·

화이트보드에 그려 놓은 나의 상태 창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부원 들.

“뭐 생각나는 거 없어, 덕훈아?”

덕훈이를 향해 묻자 녀석이 턱살을 움찔거린다.

게임 시스템에 대한 요소라면 이 녀석이 여기서 제일 빠삭할 거다.

“인과율, 인과율… 흐음.”

곰곰이 생각하는 덕훈이.

“게임을 진행할수록 올라가는 수치라면, 일단은 완성도나 진행률이 당 장 떠오르는데….”

“완성도? 진행률?”

“보통 싱글플레이 게임에서는 엔딩까지 어느 정도 진행이 남았는지를 보여 주기 위해서 저런 식으로 퍼센 트를 표시해주기도 한다능. 게임을 절반쯤 진행했다면 50퍼센트라고 표시되는 방식이지.”

“하지만 엔딩의 경우에는 확실히 기간이 정해져 있잖아. 2022년 2월, 마왕이 부활하는 날짜로.”

“···그, 그렇네. 그럼 글쎄.”

고민하는 덕훈이.

그렇다.

게임이 끝나는 시점은 확실하게 정해져 있다.

2022년, 2월 15일.

졸업식 날.

그날, 마왕의 부활을 막느냐, 못 막느냐가 바로 엔딩의 분기가 된다.

“게임 외적으로, 단어 자체의 개념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이번에는 일반 상식에 해박한 경원이가 의견을 주었다.

“단어의 개념?”

« 응 ”

경원이가 안경을 빛낸다.

“내가 화이트보드를 좀 써도 될 까.”

“어서 써.”

녀석은 자리에서 일어나 내 옆으로 오더니, 마카펜을 들고는 무언가를 적어 나가기 시작했다.

인과율

因果律

“···이게 뭔데?”

“인과율을 한자로 적어 놓은 거야. 인할 인(因)에 실과 과(果), 법칙 율 (律)

“흠.”

“원인과 결과에 대한 법칙이라는 뜻이지. 원래는 물리나 철학 쪽에서 쓰이는 단어다.”

“···나는 처음 들어 보는데.”

“일상생활에서 많이 쓰이는 단어는 아니니깐.”

그 말에 가만히 지켜보던 형사님께 서 한마디 툭 던지신다.

“어떤 개념인지 자세히 설명하고 넘어가는 게 어떠냐.”

“… 그럴까요?”

크흠, 하고 헛기침을 하더니 풀이를 시작하는 녀석.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까,라는 속담은 다들 아시죠?”

“알지.”

“그거랑 같은 거예요. 모든 일에는 반드시 원인이 있다는 것. 그걸 한 자로 표현해서 인과율(因果律)이라고 하는 거죠.”

“왜 굳이 그렇게 어려운 표현이 이어져 오는 거야?

선아의 질문에 경원이가 곤란해하는 표정을 짓는다.

“처음 단어 붙인 사람이 그냥 유식 해 보이고 싶었나 봅니다. 일상 대화에서는 아예 쓰일 일도 없는 단어 니깐, 그냥 그런 개념이라는 것만 알아 두시고, 지금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거기까지 말하고 슥슥 화이트보드의 글자를 지우는 녀석.

“부장의 상태창에 있는 인과율. 법칙 율(律)이 아니라 비율 율(率)이 아닌가 싶은 부분이에요.”

“ 비율?”

“상태창에 인과율 옆의 올라가는 수치. 퍼센트로 표시되고 있으니깐.”

그렇게 말한 녀석은 새로 쓴 한자 밑에다가 뜻을 풀어 적기 시작했다.

因果率

인할 인(因)

실과 과(果)

비율 율(率)

“원래는 없는 단어인데 한번 추측 해 본 거다. 풀어 보면 인과관계에 대한 비율이라는 의미쯤 되겠네.”

비율... 확실히 그렇다.

이 인과율이라는 수치.

무엇을 나타내는지는 몰라도 확실히 퍼센트로 무언가에 대한 비율을 나타내고 있었다.

그래서 법칙 율(律) 대신 비율 율(率)로 표현해 본 건가.

“내 해석은 이래. 지금까지 부장의 행동이 무언가의 결과에 대한 트리거가 되고, 그게 착실히 쌓여 가는 중인 거지.”

“ 흐음?”

“다시 말하자면, 어떤 결과를 향해서 원인이 차곡차곡 쌓여 가는 중이라는 거야. 지금 인과율이 12퍼센트 니깐, 100분의 12 정도 원인이 쌓였다고 볼 수 있겠네.”

“…예시를 들어 줄 수는 없을까?”

선아가 어리둥절해하는 표정을 짓고 있자, 나는 다시 경원이에게 부 탁했다.

“흠. 예를 들어 말야, 부장.”

“응 ”

“지금 부장이 당장 여기 창문에서 뛰어내렸을 때 살 수 있는 확률은 얼마쯤 될까?”

“···글쎄.”

여기는 5층.

뛰어내리면 최소 반신 불구가 보장 되지만, 그렇다고 또 100퍼센트 죽는다고 하기에는 애매한 높이다.

“···한 20퍼센트 확률로 살 수 있으려나?”

“그럼 이번에는 바닥에 매트리스를 깔아 놓고 점프한다면?”

“그래도 5층 높이니깐 위험할 텐 데. 흠.”

곰곰이 생각하는 동안 형사님이 대신 대답해 주셨다.

“투신을 대비한 매트리스라면 머리로 착지하며 목뼈가 부러지는 게 아닌 이상 90퍼센트의 확률로 살 수 있다.”

“그렇군요.”

고개를 끄덕인 경원이가 마지막으로 질문을 던졌다.

“그럼 이번에는 바닥에 매트리스를 깔고 낙하산까지 메고 점프한다면?”

“…그럼 99퍼센트의 확률로 살겠지.”

“바로 그거야.”

안경을 반짝이며 결론을 말하는 녀석.

“5층에서 맨땅에 뛰어내리면 높은 확률로 죽는다는 인과관계. 거기서 맨땅을 매트리스로 바꾸고, 낙하산까지 메는 등 조건들을 바꾸면 그 확률에 변동이 생기잖아.”

“그렇지.”

“원인과 결과에 대한 비율. 인과율 이란 건 그런 개념이 아닐까, 하는 거지. 쉽게 말해서 확률이야. 어떤 결과가 발생할 확률.”

그렇게 말하니 어렵지 않다.

그냥 확률이란 걸 조금 꼬아 놓은 단어일 뿐이구나.

“중요한 건 말야, 부장.”

안경을 빛내는 녀석.

“부장의 상태창에 있는 수치. 이게 과연 ‘무엇에 대한 인과율’이냐는 것이지.”

“무엇에, 대한, 인과율……

“확실한 건 100퍼센트가 되는 시 점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 같다. 시간이 되면 부활하는 마왕과는 별도로 쌓이는 걸 보니.”

“흐음.”

시간이 되면 부활하는 마왕.

그리고 시간과는 관계없이 괴담을 퇴치할 때마다 쌓여 가는 인과율.

과연 나는 어떤 결과를 향해 원인을 쌓아가고 있는 걸까.

“이 정도면 대충 다 설명 들은 것 같은데?”

“더 말해 줄 거 있어?”

“으 ”

곰곰이 생각해 봤지만 다 말해 준 것 같다.

“일단 다 공유한 것 같은데.”

“그렇군.”

“…그런데, 나도 너희들한테 몇 가 지 묻고 싶은 게 있어.”

고개를 갸웃거리는 부원들.

나 역시 이 이해할 수 없는 상황 들에 대해서, 누군가에게 조언을 구 하고 싶었던 게 몇 가지 있었다.

“오이! 속 시원하게 다 말해 봐라, 부장!”

덕훈이가 책상을 탕 치며 콧김을 내뿜는다.

진지한 표정으로 경청하는 부원들.

“좋아. 먼저는 이 2회차라는 단어. 어떻게 생각해?”

“ 호오······

역시 제일 먼저 입을 여는 덕훈이.

“보통 게임에서의 2회차는 게이머 가 엔딩을 한 번 본 후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는 경우를 가리키지.”

“…그렇지? 역시 그거겠지?”

전에 한 번 들었던 대답이었지만, 다시 생각해도 어이가 없었다.

사람들이랑 대전하는 것도 아니고, 똑같이 흘러가는 스토리 게임을 처음부터 다시 하면 지루하지 않을까?

“소울류 게임이라든가, 로그라이크 등등 싱글 게임 중에는 엔딩을 본 후 일부러 다시 처음부터 하는 변태 들이 흔하다고. 재미를 위해서기도 하고, 진엔딩을 보기 위해서기도 하고.”

···롤이나 배그 같은 것만 해 온 나에게는 역시 이해가 안 되는 짓이다.

“전생에서는 몇 회차라고 떴는지?”

“전생에선……

곰곰이 기억을 떠올려보지만 생각 이 안 난다.

그러고 보니 전생에서는 상태창을 열지도 못하고 배드엔딩을 맞이했었다.

“···전생에서는 상태창을 확인해 본 적이 없었어. 그냥 평범하게 살다가 죽어 버렸어.”

“상태창이 떴는데 평범한 생활을 한다고? 오이오이, 농담도 정도껏-”

“그러려고 한 게 아니라, 학교를 벗어나자 튜토리얼이 안 깨져서 상태창이 쭉 잠긴 상태였거든. 그래서 확인을 못 한 거야.”

“소데스네.”

내 대답에 덕훈이는 가만히 턱을 움켜쥐더니 고민했다.

“전생에서 1회차인 걸 확인했고, 마왕을 본 후 2회차라고 뜬 거라면 엔딩을 한 번 봤으니 회차가 늘어난 거구나 싶겠지만… 전생에서 확인을 못 해 본 거라면, 흠.”

갸웃거리는 녀석.

“이 2회차가 게임에서 쓰이는 용어와 같은 의미인지는 섣불리 단정할 수 없겠는데. 일단 인과율이나 괴담 포인트조차 일반 게임에서는 안 쓰이는 용어니깐.”

이 시스템은 싱글 게임의 감성과 언뜻 비슷한 듯하면서도 다른 구석 들이 많기에 단정 지을 수는 없다는 걸까.

“회차에는 단순히 너 자신이 두 번 째라는 의미 말고도, 바통을 이어받은 상황에서도 계승했다는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능. 몇 회차 주자다, 하고 사용되기도 하고…”

“···릴레이 경기에서 몇 번 들어본 거는 같네.”

“하여튼 아직은 어떤 의미인지 미 지수로 보이니깐. 일단 그 정도만 하고 다음 주제로 넘어가자고.”

“그러자.”

2회차에 대해서는 이렇게 정리하고 나는 다음 주제로 넘어갔다.

“좋아. 그럼 다음으로 궁금했던 건 데, 웃는 여자와 싸웠을 때의 일이야.”

“좀 된 얘기네.”

나는 매뉴얼 괴담 속 웃는 여자와 싸우던 그 날 있었던 자리 배정에 관해 얘기해 주었다.

그날, 시간을 몇 번이나 돌아가면서 아무렇게나 뽑았었는데도 계속 같은 자리가 걸려서 덕훈이와 짝궁이 됐었던 게 줄곧 궁금했었다.

“오타쿠 네가 뭐 조작한 거 아냐? 같이 앉고 싶어서.”

“마사카!”

진희가 킬킬대며 농담을 던지자 덕훈이가 버럭 화를 낸다.

“BL 요소는 분명히 없다고 하지 않았냐능!”

“담임 선생님이 뭔가 한 건……

선아도 갸웃거리며 의견을 냈다.

“흠, 담임?”

가능성 있는 말이었다.

자리 배정의 제비뽑기를 시킨 건 담임 이었으니 깐.

“···하지만 담임이 나를 거기 앉혔 다고 보기에는 의도가 짐작이 안 가는데. 나를 이 녀석이랑 앉혀서 그 사람한테 좋을 게 뭐야.”

“그렇다능. 후욱, 후욱.”

덕훈이가 빠르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결국 종이를 골라서 뽑은 건 나잖아. 뭔가 조작을 할 여지는 없어 보여.”

“부장, 어쩌면 말이다……

뭔가 떠오르는 게 있는지 입을 여

는 경원이.

“인과율이라는 말과 연결 지어서 한번 생각해 본다면… 그때 일어났던 일은 나비효과의 반대 개념 같은 건 아닐까 생각되는데……

“나비효과?”

들어 본 적 있다.

인터넷에서 몇 번 본 것 같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나비의 날갯 짓이 이곳에 토네이도를 발생시킬 수도 있다는 개념이다.”

경원이의 설명에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부원들.

“그게 가능해?”

“비유야, 비유. 아주 사소한 행위가 발단이 되어서 예상치 못한 결과를 가져온다는 뜻이지.”

“흐음, 그렇구나. 그럼 반대라는 뜻 “나비효과의 반대되는 개념이 바로 부장의 상태창에 있는 인과율이다.”

사소한 행위가 완전히 예측할 수 없는 혼돈으로 향한다는 나비효과의 개념.

그리고 거기에 반대되는, ‘일어날 일은 반드시 일어난다.’라는 개념의 인과율.

“···맞네. 정확히 반대되는 단어구 나.”

“그렇지.”

나비효과가 사소한 선택의 변화로 예측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결과를 가져온다는 이론이라면, 인과율은 일정한 조건만 넘어선다면 어떤 결과는 반드시 일어난다는 반대되는 개념인 것이다.

“부장이 처음 자리 배정의 쪽지를 뽑았을 때와 그다음 아무 생각 없이 뽑았을 때, 결국 같은 자리가 걸렸다. 그리고 선아에게 말을 거나 안 거나 결국 둘은 어느샌가 매점으로 가 있었다.”

경원이가 안경을 매만지며 그날 있었던 일들의 포인트를 짚어 준다.

“그것뿐만이 아니야. 부장의 이야 기를 곰곰이 들으면서 기억해 놨던 건데. 포린세스 때와 방금의 사건도 그랬어.”

“···음? 포린세스 때?”

거기 뭔가 있었나?

“포린세스 사건의 경우, 부장이 시간을 돌려 다시 돌아왔을 때도 음악 실에서 비슷한 상황이 재현됐잖아. 남학생이 핸드폰으로 신곡을 틀고 음악 선생님이 그걸 지적하시잖아.”

“···그렇네. 그 직후에 노래가 안 들리는데도 한 번 착각하는 것도 비 슷했고.”

“응 ”

·

고개를 끄덕이는 경원이.

“방금 전 사건의 경우에도 그래. 시간을 몇 번이나 돌아오더라도 선아는 부장에게 시험 준비 잘돼 가냐고 물었어. 한 번 정도는 표정이 이 상한 걸 눈치채고 다른 반응을 보였을 법도 한데 말야.”

“···그것도 그렇네.”

나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던 부분을 경원이는 논리에 맞추어 정확히 짚 어낸다.

“그런 상황 자체가 결국 인과율과 관련이 있다, 그렇게 생각해. 선아가 이미 마음속으로 그런 말을 건네야 겠다고 생각하고 결심한 후였기에, 비약하자면 ‘선아가 부장에게 시험 준비 잘돼 가냐고 물을 인과율’이 100퍼센트였다고 표현할 수 있는 거지.”

“ 인과율……

확실히 내가 뭘 하든 간에 사람들의 행동 패턴이 꽤나 비슷하게 흘러 갔던 적이 많았다.

“아마도 말야, 부장. 이 세상은 ‘나 비효과’보다는, ‘인과율’로 흘러가는 것 같다. 사소한 행위가 몇 번 달라 지더라도 결국 일어날 일은 일어난 다,라는 거지. 이 학교 안에서 말고. 세상 자체가 말야.”

“흐음!”

복잡하고 거대한 이야기였다.

게임 시스템으로부터 추론해 낸, 이 세상의 질서에 관한 이야기.

“···그런데 말야.”

곰곰이 곱씹어 보다가 이내 의문이 들었다.

“꽤 거대한 이야기 같기는 한데… 이걸 지금 알게 된 게 나한테 어떤 이득이 있을까?”

그렇다. 이 인과율이라는 개념. 결국,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는 것.

중요한 것 같기는 한데 실제로는 어디에 어떻게 써먹어야 하는 걸까?

“아주 큰 의미가 있지, 꼬마야.”

지금껏 가만히 앉아 계시던 형사님 이 묵직하게 말씀하셨다.

“2022년 3월, 누가 대통령이 되는 지 말해 봐.”

대통령!

나는 순간 흠칫했다.

“대통령의 선거 같은 국가적인 차 원의 일들은 학생인 네가 조금 다르게 행동한다고 해서 달라지지 않는, 인과율이 아주 굵직한 사건이지. 아 마도 100퍼센트 전생과 똑같이 흘 러간다고 봐도 될 거다.”

“그, 그렇네요. 그렇게 되겠군요.”

“준이는 2월에 죽었는데……

선아의 중얼거림.

대통령 선거는 3월, 하지만 나는 2 월에 죽었다.

“바로 전이잖아. 대충 분위기는 알 거 아니냐.”

대답을 재촉하시는 형사님.

나는 곰곰이 기억을 떠올렸다.

“일단 대통령 선거는 22년이 아니라 2021년 초, 그러니깐 제가 고등 학교 3학년이 됐을 때 일어났어요.”

“···뭐? 선거는 5년 주기잖아. 왜 1 년 빠르게-”

“조기 선거예요. 지금의 대통령이 어떤 사고에 휩싸이게 되면서 실종 이 되거든요.”

심각한 표정을 지으시는 형사님.

“그래서 누군데.”

“머리가 하얗게 센 할아버지인데, 어떤 종교의 교주라고 말이 엄청 많았어요. 혼란스러운 시국을 타서 어떻게 수를 썼는지 그 사람이 당선됐 고요.”

“이름이 어떻게 된다고?”

종교의 이름과 대통령의 이름을 말 씀드리자 고개를 갸우뚱거리시는 형 사님.

“공백(空白)교의 태상(太上)… 종교명도 이름도 둘 다 처음 들어 보는구나. 나도 형사치고는 꽤 중요한 일들을 많이 맡아 봐서 정치판이랑 접점이 많은데……

“저도 그때 처음 들어 봤어요. 실제로 논란이 많았었는데 어쨌든 그 사람이 당선됐고, 그 후로는 별일 없이 흘러가다가 22년 2월에 다시 돌아온 거예요.”

“···그렇구나.”

그 후로도 다들 궁금한 걸 묻거나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오이, 장냔하냐고! 히데오 코지마 가 제작하는 데스스트랜딩! 정말 못 들어 본 거냐고!”

“몰라, 인마. 기다렸다가 나중에 플 레이해 봐.”

“클로버 기업에서 내놓은 세로로 접는 폰은 어때? 지금 폴드폰이랑 많이 차。] 나?”

“···너희들. 시험 아직 이틀이나 남았어. 슬슬 공부하러 해산해야 하는

“연쇄살인 사건이나 뭐 뉴스 기사 기억나는 것 있으면 다 적어 봐라.”

“저도 사람이에요! 집에 좀 가고 싶다고요!”

“X발, 내년 최저시급 얼마 되냐고.”

형사님은 뉴스를 둘러싼 사건 사고 들과 정치판에 대해서 물어보셨고, 덕훈이는 일본 게임과 애니에 대한 질문이 주였다.

진희는 로또나 토토 같은 걸 물어 봤지만, 역시 아는 게 없어서 대답 해 줄 수 없었고, 하윤이는 흥미롭 다는 듯이 그냥 얘기를 듣고 있을 뿐이었다.

선아의 표정이 어느 순간부터 하얗 게 질린 게 신경 쓰였지만, 그럭저 럭 설명을 마무리하고 초저녁이 될 때쯤 우리는 서서히 의견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 본관을 나서서 운동장을 걸어가는 우리.

“알겠어? 3년 뒤, 마왕이라는 이상 한 존재가 부활하고 이 세상이 멸망 할 거야. 우리는 그때까지 최대한 많은 괴담을 처치하면서 성장해야 해.”

“···부장. 역시 처음에 입시 때문에 동아리 만든 건 거짓말이었구나.”

부담스러운 말투로 중얼거리는 경원이.

“···미안해. 너희들을 멋대로 끌어 들여서. 하지만 나 역시 원해서 여기 있는 건 아니야.”

“뭐, 그렇기는 하겠지……

나는 녀석들이 받아들여 주기를 바라면서 천천히 진심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나 역시 처음에는 도망칠 생각뿐 이었어. 하지만… 그렇게 안 되더라. 3년을 도망쳤지만 결국 돌아왔고, 하루를 도망쳐도 돌아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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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내몰리고 내몰려서 할 수 없이 시작하긴 했지만… 그래도 시간이 지난 지금은 조금 생각이 달 라.”

어느새 어둑해진 학교.

그 운동장 한가운데서 모인 우리 괴담 동아리.

나는 마치 연설하듯이 주먹을 강하게 움켜쥔 채 녀석들에게 내밀었다.

“이건 정의롭거나 도덕적이라서 해야 하는 일이 아니야. 우리가 살아 남기 위해서는 방법이 없는 거야. 해야만 해. 미안해, 멋대로 끌어들여 서. 몇 번이나 죽게 해서. 하지만… 함께해 줄래?”

“···준아.”

“혼자서는 절대 못 해. 엄두도 안 나. 하지만 너희가 함께해 준다면… 용감한 척 앞장서 볼 수 있을 것 같아.”

“···부장.”

“내가 좀 더 열심히 할게. 내가 좀 더 짊어질 테니깐, 많이 도와줄래? 같이해 줄래?”

가만히 내민 내 손등 위로 누군가의 부드러운 손이 살며시 포개졌다.

“준이 너 혼자 그런 걸 감당해야 할 이유는 없어……

“··.선아야.”

살며시 웃는 선아.

“함께하자. 도와줄게.”

“고마워.”

이윽고 경원이도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남자치고는 곱상한 손을 내 밀었다.

“불합리하다고 생각하기는 하지만. 뭐, 부장한테 그걸 따져 봐야 소용 없겠지. 이런 일을 벌인 장본인도 아닌데 말야.”

“경원아……

“도와줄게. 방법이 없네. 까짓거, 해 보자고.”

이어서 올라온 건 투명한 피부의 날씬한 여자 손.

“···하윤아. 괜찮겠어?”

살짝 웃는 신비로운 미소녀.

“궁금해서. 네가 앞으로 어떻게 헤 쳐나갈지.”

[인물 인하윤의 이해도가 5 올랐습니다.]

진심이구나.

나는 그녀에게 피식 웃어 주었다.

“좋아. 마음껏 지켜봐.”

이어서 올라온 덕훈이의 두터운 손.

“오이, 세상을 구해 보자고.”

“푸핫, 그래 보자고.” 잠시 정적이 일더니, 진희가 결국 눈길을 참지 못하고 잔상처가 많은 손을 툭 올려놓는다.

“개 오글거려……

“고마워. 유치한 일에 함께해 줘 서.”

그렇게 괴담 동아리의 여섯 부원이 손을 모으자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

파앗-

[퀘스트를 받았습니다.]

퀘스트.

오랜만에 보는 단어였다.

『축하드립니다. 당신은 부원들에게 드디어 자신의 비밀을 공유하였습니다! 마왕의 부활을 막기 위한 여정. 거기에는 파티의 끈끈한 동료애는 필수인 법입니다. 당신은 오늘을 기점으로 부원들에 대하여 더 이해하려고 노력하기 시작합니다.』

[퀘스트를 받았습니다.]

〈퀘스트 - 동료애〉

O부원 한 명의 이해도를 100으로 만드세요.

O보상 : 학교 교육정책 능력치 추가.

“아자 아자, 괴담 동아리 파이팅!”

“파이팅!”

어두운 운동장 한가운데, 빙 둘러 선 채 손을 모으며 외치는 우리.

갑자기 진희가 원 가운데로 뛰어들어 난동을 부렸다.

“아아악, X발! 개 오그라들잖아!”

“하하하.”

“푸하하.”

“쪼개지 마!”

실실대며 웃던 경원이의 대가리를 퍽 후리고 정문으로 뛰어가는 진희.

“X발, 존나 유치해!”

“오이오이! 어디 가냐고! 지구를 지켜야지!”

“꺼져, x발!”

덕훈이가 드디어 약점을 잡았다는 듯 애니 주제가를 부르며 뒤쫓아 간다.

“괴담 동아리 친구들! 세상을 구하자! 승리는 언제나 우리의 것~♬”

“푸하하.”

그걸 보고 웃는 우리.

뒤에서 보던 형사님이 담배에 불을 붙이며 피식 웃으셨다.

“청춘 영화 찍냐. 녀석들, 참......

이내 연기를 후 뿜으시고는 우다다 정문으로 달려가는 우리를 향해 중 얼거리신다.

“젊을 때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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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면

괴담 동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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