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 화
아홉 번째 괴담 - 구석놀이 (1)
“이거, 나이가 드니 살기 위해서 운동하는 느낌이군요.”
“하하, 그러게 말입니다. 젊을 때는 할 일 없이 뒹굴어도 건강했는데 말이죠.”
신림동 인근의 족구장.
시험채점을 마친 낙성고의 교직원 들이 우르르 모여서는 족구를 하고 있다.
그대로 퇴근할 법도 한데 어째서인 지 족구장에 모여 공을 차면서 담소를 나누는 그들.
“그나저나, 과학 선생이 그렇게 갈 줄이야... 놀랍네요.”
“태상님의 지시는 명확합니다. 지금부터 그 이준이라는 학생에게 절대 손대지 말라는 내용입니다.”
안경을 낀 깐깐한 중년의 여성, 교감이 벤치에 앉은 채 족구를 하는 선생들을 향해 나지막이 말한다.
“그 주변 인물들을 포섭하거나, 지금처럼 감시를 위해 인연을 맺는 것은 자유입니다. 하지만 절대, 절대로 이준에게 그 어떤 위해를 가하는 행 동은일절 용납하지 않으시겠다고 하십니다. 만약 어쩔 수 없는 상황 이 오더라도 행동 전에 반드시 위 사명자에게 보고하고 지시를 기다리세요.”
“참 알 수 없는 분이군요. 저번 지 시에서는 분명히 괴담을 이용해 죽이라고 하셨는데……
“무언가 뜻이 있으시겠죠. 읏차!”
선생들이 한마디씩 던지는 도중, 날아오는 공을 반대편의 담임이 가뿐하게 뱃살로 내려받는다.
“20살. 3년의 격차군요. 그것과 뭔가 관련이 있을 것 같습니다만.” 그 농담조 추측에 교감의 표정이 날카로워 진다.
“억측은 금물입니다, 담임. 조심하세요.”
“홋홋… 이거 실례했습니다. 읏 차!”
담임은 기묘한 웃음소리를 뱉고는 다시 공을 주고받는다.
* * *
[2019년 4월 26일 금요일, 10: 12]
[이준 - 2회차]
[괴담 포인트 : 233]
[인과율 : 12%]
중간고사가 끝났다.
과학 선생과 뒤얽히며 정신없던 첫 날을 무사히 넘기고 수, 목까지 연달아 시험을 마친 후.
마침내 금요일.
오늘부터 학교는 다시 정상 수업으로 돌아간다.
“이 녀석들아, 고개 들어! 중간고사 끝났다고 늘어져서는… 눈 깜빡 하면 또 금세 기말고사야! 거기 뒤에 자는 놈! 일어나!”
기술가정을 맡으신 최강찬 선생님 이 소리를 지르시자 저 뒤에서 진희가 부스스 고개를 든다.
‘최강찬……
저 사람도 나를 죽이려고 안달 났던 사람들의 리스트 중 하나.
조용히 그를 쏘아본 후 교과서 밑에 숨겨 둔 괴담집을 몰래 꺼내 읽었다.
‘…어디 보자. 늦은 밤, 자취방 안에서 잠을 청하던 나는 어떤 소리에 잠에서 깬다. 하지만 내 방에는 나 말고는 아무도 없다… 소리의 정체 도서관에서 대충 눈에 띄는 걸 골라 온 책.
나 역시 부원들에게 일을 맡기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지식을 쌓기 위해 여러 가지 무서운 책들을 읽으며 공부 중이다.
탕! 탕!
“치수보조선은 치수선을 긋기 위해 외형선을 연장한 선이다!”
입시에도 실생활에도 써먹을 일 없는 내용을 칠판을 두드리며 강조하는 선생님.
‘X발, 집중 안 되네.”
마침내 점심시간.
“동방 가자, X발!”
요즘 따라 기분이 좋아 보이는 진희가 호탕하게 웃으며 교실을 제일 먼저 나섰다.
“참나. 동아리방에 가는데 욕은 왜 하는 건지.”
경원이도 뒤에서 투덜대며 따라갔다.
“준아, 뭐 시켜 먹을 거야……?”
선아가 수줍은 미소를 하고는 내 뒤를 쫓아온다.
매주 금요일 CA시간에 동방에서 배달 음식을 시켜 먹는 건 이제 우리 사이에 전통처럼 굳어졌다.
고등학생이라 금전 부담이 좀 있기는 했지만, 알바하는 진희가 가끔씩 기분 좋으면 통 크게 다 내 줄 때도 있었고, 나 역시 아버지와 기묘 한 사건을 같이 겪은 탓에 은근히 금전 지원을 받고 있어서 괜찮았다.
선아의 경우에는 매번 내가 대신 돈을 부담하고 있는데, 항상 그걸 고마워하면서도 미안해하는 눈치다.
“어디 보자, 돈이……
나는 계단을 올라가며 지갑을 살펴 봤다가, 3,000원밖에 없는 걸 깨달았다.
‘아! 오늘 CA시간 재료 준비한다고 이것저것 샀었구나. 큰일이네.’
경원이한테 빌려야 하려나.
“포인트로… 시킬수 있지 않을까?”
“응?”
선아가 내 표정을 보고 대번에 어떤 상황인지 눈치채고는 조심스레 묻는다.
“포인트로?”
생각도 못 해 본 발상.
포인트로 배달 음식을 시킨다라… 확실히 궁금하긴 했다.
‘어디 보자, 1포인트에 1만 원이니 깐... 10포인트만 써도 부원들이 배 터지게 먹고도 남겠군.’ 지금 가지고 있는 포인트는 233포 인트.
어디에 써야 할지 딱히 정하지 않아서 아직 아껴 두고는 있는데.
여유분이 좀 있는 편이니 상점에서 음식을 사는 게 가능한지 체크해 둔 다면 앞으로의 활동에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좋아. 시험이 끝난 다음 날이기도 하니 오늘은 그냥 내가 쏜다!”
헤실거리며 좋아하는 선아.
덕훈이는 이어폰을 낀 채 주머니에 손을 넣고는 계단을 오르고 있고.
하윤이도 우리 사이에 슬쩍 끼어서는 말없이 조용히 동아리방으로 향 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배달 음식은 불 가능했다.
이 상점창이란 건 마치 인터넷의 쇼핑몰과 비슷한 방식.
치킨으로 검색해 보아도 냉동치킨 같은 전자렌지에 돌려 먹는 상품들 만 나올 뿐, 가게에서 주문하는 서 비스를 사는 건 불가능했다.
‘하긴, 쇼핑몰에서 갓 튀긴 치킨을 택배로 보내 주지는 않지.’
그래도 음식을 살 수 있는지 시험은 해 봐야 했기에 부원들의 의견을 받아 가며 빵, 과자, 과일들을 주문 했는데 별문제는 없었다.
“아무도 안 보지?”
실시간으로 동아리방 문 앞에 펑펑 생겨나는 음식들.
우리는 누가 볼 새라 급히 안으로 가지고 들어갔다.
“동아리방 안에 생기면 좋을 텐 데.”
“택배의 개념인 것 같아.”
동아리방 책상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와플, 롤케이크, 초콜릿…….
“전투식량! 무슨 맛인지 항상 궁금 했다고.”
“우~ 홋. 나도 나도.”
전자렌지에 돌릴 필요 없이 바로 먹을 수 있는 발열 전투식량을 집어 드는 경원이와 덕훈이.
“와, 크림빵……
이것저것 빵을 챙겨 가는 선아.
하윤이는 비싼 초콜릿 몇 개를 뜯어서 베어 물었고, 진희는 오징어다 리 같은 술안주를 질겅질겅 씹어 먹는다.
그렇게 급식 대신 군것질로 점심을 때운 우리.
이윽고 오후 1시, 점심시간이 끝나고 5교시. CA시간이 시작되자 괴담 동아리의 담당이신 장화은 선생님이 문을 열고 들어오셨다.
“너희들 또 여기서 음식 먹었니? 환기 좀 해! 진짜.”
창문으로 성킁성큼 걸어가셔서는 커튼을 확 젖히시자.
“키에에에엑!”
가만히 소파에 누워 있다 햇빛을 정통으로 받은 진희가 소리를 질렀다.
“너희가 어둠의 자식이니! 여기 컴 컴한 동아리방에 모여 앉아서는… 햇빛도 들어오게 하고 창문도 좀 열고 살아!”
마침내 둘러앉은 6명의 부원과 화이트보드에 서 있는 부장인 나.
CA시간, 우리 괴담 목표는 ‘괴담 찾아
“좋아요. 이번 동아리의 활동 나서기’입니다.” “박수~”
짝짝짝짝.
진희의 외침에 수를 치는 부원들.
마지못해 따라서 박
나는 조금 민망한 얼굴로 고마움을 표시했다.
“어흠. 고마워, 진희야.” 맨날 교실에서 엎드려 자던 진희. 소파를 사 준 후부터 틈날 때마다 동방에서 누워 자기 시작하더니, 묘하게 활동에 적극적이고 텐션도 좋아졌다.
“앞으로의 CA시간은 인터넷에 떠 도는 여러 금기나 괴담을 직접 재현 해 보며 실제로 이상한 현상들이 나 타나는지 찾아 나서는 시간이 될 거 예요. 매주 주제는 다를 거구요.”
미리 부원들과 합의된 사항이다.
이제 시스템이라던가 3년이라는 제 한 시간을 알게 된 부원들은 가만히 사건을 기다리기보다는 함께 찾아 나서기로 결심한 것이다.
“우선 이번 시간에 탐구해 볼 주제는 ‘로슈타인의 회랑’입니다.”
“아인슈타인?”
“모르면 앉아 계세요, 선생님. 경원 아, 준비한 거 부탁할게.”
곧이어 경원이가 나 대신 화이트보 드에 서서 준비한 자료를 읽기 시작 했다.
“우선 괴담 하나를 들려줄게.”
설산을 등반하던 산악부 5명이 조난을 당했다.
산속을 다 헤매고 다녀도 길을 찾지 못하고, 밤은 어두워져만 갔다.
결국, 해가 지고 한 명은 추위를 이기지 못하고 동사.
네 명은 죽은 시체를 업고 겨우겨 우산속에서 오두막집을 하나 찾아 낸다.
그리고 가운데 시체를 두고 네 명은 ‘n’ 모양의 오두막 귀퉁이에 각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잠들면 얼어 죽으니 한 명씩 천천히 다음 귀퉁이로 이동해서 옆 사람을 깨워 주자.”
다음 귀퉁이로 이동한 사람은 그 자리에 앉아서 졸고, 깨워 일으켜진 사람은 다음 귀퉁이로 이동해서 또 옆 사람을 깨워 주고…….
술래잡기를 하듯이 빙빙 도는 네 사람.
한 번 옆 사람을 깨우고 나면 다시 자기 차례가 올 때까지 몇 분가 량 눈도 붙일 수 있기에 넷은 그렇게 쪽잠을 청하며 설산에서의 하룻 밤을 이겨 낸다.
이윽고 동이 트고 날이 밝을 무렵.
저 멀리 구조대의 헬기 소리를 듣고 도는 것을 멈춘 산악부는 그제야 깨달았다.
방금까지 그들이 하던 것.
4명이서는 불가능하다.
“…이게 바로 ‘구석놀이’라고도 불리는 괴담이야.”
“4명이서는, 안 된다고……?” 선아가 궁금하다는 듯이 묻는다.
“이야기로 들어서 그래. 처음부터 그림을 그려서 살펴보면 전혀 말도 안 된다는 걸 알게 될 거다. 잘 봐.”
화이트보드에 그림을 그려 가며 설 명하는 경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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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o O 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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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이렇게 네 명이 있었지? 여기서 한 명이 다음 칸으로 이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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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8 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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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 너무 삐뚤빼뚤해.”
딱 잘라 평가하는 하윤이의 말에 잠시 멈칫하더니 귀가 빨개진 채 설 명을 잇는 녀석.
“그리고 다음 사람을 깨우고 일으켜진 사람은 옆 칸으로 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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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반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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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 이
I I “자, 여기서 문제. 마지막으로 일으켜진 사람은 어디로 가게 되지?”
“빈 공간으로 향하게 되는구나 “그래. 그래서 원래는 정상적으로 이 놀이를 하려면 최소 5명이 필요 한 거야. 하지만 처음 얘기를 들으면 귀퉁이가 네 개니깐 네 명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착각하게 되지. 그런 사고의 허점을 파고든 괴담이야.”
“그렇구나……
착하게 리액션을 잘 해주는 선아.
“이런 식으로 캄캄한 사각형 방의 네 구석을 로테이션으로 돌다 보면 정체불명의 누군가가 섞여서 순환이 끝없이 이어진다는 게 주 내용.”
“신기하네. 근데 구석놀이라는 게 어떤 건지는 이해했는데, 로슈타인의 회랑이라는 이름은 뭐야?”
“그건 괴담이 있기 전 이 놀이를 최초로 실행한 사람의 이름을 본따 서 생긴 거예요.”
선생님의 질문에 녀석이 안경을 치켜세운다.
“이 구석놀이의 제일 처음 시초는 영국의 귀족 로슈타인 경이라는 사람이 힝기스 성에서 행한 실험. 이 행위를 하면 정체불명의 누군가가 섞여 온다는 소문을 듣고, 로슈타인 경은 자신의 성에서 가장 어두운 회 랑을 골라 네 사람을 배치시켜 실험을 했다고 해요.”
“용감한 사람이구나.”
“결과는 괴담처럼 네 번째 순서 이 후로도 계속 문제없이 순서가 굴러 갔기에 사람들이 놀라서 기절했다는 걸로 마무리. 그래서 이 구석놀이를 ‘로슈타인의 회랑’이라고 부르기도 한다고 하네요.”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는 부원들.
“수고했어, 경원아.”
«응
경원이를 다시 자리에 앉힌 후, 나는 화이트보드 앞에 선 채 부원들을 내려다봤다.
“다들 어떤 내용인지는 이해했지?”
“이해했어.”
“CA시간은 5, 6교시. 이번 5교시는 이렇게 설명을 듣고 창문을 막을 재료들을 다 같이 만들 거야. 그리고 잠시 쉬는 시간을 가진 후, 6교 시부터 동아리방의 창문을 막고 이 놀이를 직접 해 보는 거다.”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는 부원들.
이 놀이를 해 봤을 때 실제로 이 상한 현상이 생긴다면 가장 베스트.
‘해결하고 포인트를 얻으면 되니 깐.’
하지만 괴현상이 생기지 않더라도 이 괴담이라는 게 어떤 식으로 작용 하는 건지 알아내는 데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지금까지 이상할 정도로 내게 많이 일어나던 괴담들.
단순히 인터넷에 떠도는 괴담들이 조건만 맞게 되면 전부 이루어지는 건지, 아니면 뭔가 더 있는지도 이 시간에 알아내 볼 것이다.
괴담 동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