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 화
아홉 번째 괴담 - 구석놀이 (2)
“안녕하세요, 아주머니. 혹시 과자 박스 남는 거 있나요?“
5교시, CA시간 도중.
나와 경원이는 창문에서 새는 불빛을 막기 위해 매점에 박스를 가지러 왔다.
다행히 시원스럽게 가져가라고 허락하시는 매점 아주머니.
“감사합니다.”
“어디 보자… 한 5개 정도면 넉넉하게 붙이고도 남겠지, 부장?”
“완전히 빈틈없이 새는 부분을 덧 붙일 예정이니깐 좀 여유 있게 가져 가자.”
* * *
드르륵-
“수고했어!”
한 아름 들고온 종이박스를 동아리 방에 내려놓자 맞이해 주시는 선생님.
이어서 여성부원들이 커터칼로 박 스를 적당히 오려서 창문에 붙였다.
“여기 떨어지겠다, 테이프 더.”
쫘악- 쫙-
“됐다, 휴. 이 정도면 완전히 빛이 안 들어오겠지? 불 꺼 봐.”
탁.
“잘된 것 같은데.”
출입문에 붙어 있는 유리창에서 복 도의 빛이 들어오는 걸 제외하면 완전한 암흑.
“선아야, 출입문에 유리창 좀 막아 봐. 한번 테스트 좀 해 보자.”
“으 ”
흐¬소파의 쿠션을 들어 올려 적당히 막아 보는 선아.
그러자 동아리방 안은 완전한 어둠 이 되었다.
“어때? 뭔지 분간 가는 사람?”
“아니. 아무것도 안 보인다.”
“좋아. 이대로 적응될 때까지 잠시 있어 보자. 눈이 적응된 것 같은 후에도 여전히 아무것도 안 보이면 성공이야.”
우리의 목적은 구석놀이를 재현하기 위해서 사방을 완전한 암흑으로 만들 것.
눈앞에 무언가 보인다면 뻔히 놀이가 잘못돼 가는 걸 눈치챌 테니, 우선 아무것도 안 보이는 암실을 만들어 놓는 게 중요했다.
이 괴담의 조건은 ‘놀이가 될 것 같다’는 행위자들의 착각이 전제되니 말이다.
‘···물론, 그것도 떠도는 괴담에의 거한 논리의 비약이지만.’
모두가 암흑 속에서 숨을 죽이고 눈이 적응될 때까지 기다려 봤다.
1분 정도 지났을 무렵.
갑자기 누군가 내 몸을 더듬기 시작했다.
더듬더듬
“으악! 누구야!”
반사적으로 주먹을 앞으로 내질렀고, 누군가 퍽 맞고는 비명을 지른다.
“크억!”
“···덕훈이니?”
“미, 미안… 벽에 붙으려고 움직이 다가.”
“때린 내가 더 미안.”
다시 조용한 가운데 몇 분이 지나고.
“어때? 누구 뭐 분간되는 사람?”
내가 암흑 속에서 묻자 부원들이 웅성거리며 대답했다.
“아니. 아무것도 안 보인다.”
“안 보여.”
“나도……
“좋아. 선아야, 가방 치우고 불 켜 줘!”
딸칵.
“크어어어어어어어어억”
“서, 섬광탄이다.”
저마다 갑자기 들어온 빛에 눈을 감으며 얼굴을 찌푸린다.
“이 정도면 완벽한 암실 만들기에는 성공한 것 같아. 바로 도전해 보자!”
* * *
쉬는 시간이 끝나고, 6교시가 시작 되었다.
구석놀이를 할 때는 벽에 붙어서 이동해야 하기에 동선에 걸리는 게 없도록 우리는 책상과 소파, 화이트 보드를 방 가운데로 밀어놓았다.
“후우, 세팅 완료!”
“좋아, 다들 모여 봐.”
동아리방 입구 근처에서 우르르 모이는 7명.
“이 놀이는 4명이서만 하는 건데 우리는 총 7명이야. 3명은 미안하지만 나가서 놀이가 끝날 때까지 기다려 줘야겠어.”
“데덴찌로 정하자.”
지역에 따라 ‘뒤집어라 엎어라’, 혹은 ‘젠디또야’라는 이름으로도 불리는 편 가르기.
우리는 ‘4:3’의 구도가 나올 때까지 열심히 손바닥을 뒤집었다.
“데덴찌. 데덴찌.”
“앗, 나왔다.”
“나랑 안경원, 인하윤, 이진희. 이렇게 안에 남고 선아랑 덕훈이랑 선생님은 나가 주세요.”
« 응 ”
“휴대폰이나 MP3, PMP 등등 심령 현상이랑 어울리지 않는 것들도 다 밖으로 들고 나가. 슬리퍼도 다 벗어. 걸을 때 소리 날 수도 있으니 깐.”
“그런 것까지……
“철저하게 해야지.”
어차피 물건은 복도에 나가는 인원이 지켜 줄 테니깐.
곧 우리가 내놓은 휴대폰을 들고는 느릿느릿 불평을 뱉으며 밖으로 향 하는 셋.
동아리방에 남은 우리 넷은 각자
귀퉁이에 자리를 잡았다.
“불은 누가 끄지?”
“내가 가까우니깐 끌게.”
경원이가 묻자 출입문 쪽 귀퉁이에 자리 잡은 하윤이가 스위치에 손을 올리며 대답했다.
“좋아. 다들 게임 규칙은 잘 알 지?“
나는 마지막으로 방 안에 있는 인원들에게 이제부터 어떻게 할 건지 말해 주었다.
”이 괴담의 조건은 놀이가 성사될 거라고 착각을 해야 하는데 있어. 하지만 우리는 이미 이야기를 아는 입장이야. 그래서 적당히 착각을 일으킬 수 있게 순서를 돌릴 거야.”
다 알고 놀이를 해 봐야 뻔히 언제쯤 끝날지 결말을 알기 때문에 소용없다.
그래서 처음 불을 끈 후 10바퀴 정도를 우리는 차례대로 빙글빙글 돌 계획이다.
한쪽 구석에서 다음 구석으로, 거 기서 또 다음 구석으로 빙글빙글.
그러다 내가 벽을 똑똑 치면 멈추고 놀이가 시작.
미리 무작위로 제비뽑기 해 둔 사람이 처음 순서를 시작한다.
“불 끄고 구석을 따라 계속 이동하는 거다. 어둠 속에서 자기가 어디에 있는지 헷갈릴 때까지.”
“그래.”
“그다음부터는 터치 당하는 순서대로 차례차례 옆 칸으로 이동해.”
구석에 자리를 잡고 선 채 고개를 끄덕이는 진희, 하윤이, 경원이.
“좋아, 시작하자. 불 꺼.”
탁.
하윤이가 불을 끄고, 동아리방 안은 한 치 앞도 구별 안 될 만큼 캄 캄해졌다.
우리가 열심히 종이박스로 빛이 들어올 만한 곳을 다 막은 덕분이다.
째깍, 째깍.
정적만이 흐르는 동아리방 안.
우리는 천천히 구석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한 걸음, 두 걸음.
‘···생각보다 넓네.’
불이 꺼져 있어서 감각이 예민해진 탓일까.
아니면 나름 공간의 업그레이드를 두 번 마친 후라서 그런 걸까.
뭔가 평소보다 한참을 걷는 기분.
조용한 가운데 양말이 마룻바닥에 스치는 소리만 살짝씩 들려온다.
그렇게 몇 번 돌다 보니 금세 자신이 어디에 서 있는 건지 알 수 없게 돼 버렸다.
‘좋아. 이 정도면 대충 많이 돌았겠지.’
나는 슬슬 놀이를 시작하고자 벽을 두드렸다.
똑. 똑.
그러자 멈칫하는 모두.
놀이가 시작된다.
‘···움직이고 있는 건가?’
조용한 정적만이 흐르는 암실.
첫 번째 타자가 굉장히 조심스럽게 이동하는 모양인지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부스럭.
뭔가 인기척이 일더니, 누군가 사뿐사뿐 움직이는 소리가 들린다.
‘…두 번째 주자구나.’
양말 차림이지만 마룻바닥에 스치는 소리가 은근히 들려온다.
‘조심성 없이 소리 내는 걸 보니 진희 같은데.’
완전히 소리 없이 움직인 첫 번째 타자는 아마도 하윤이.
조금이지만 양말 소리가 들리는 지금의 발걸음은 아마도 진희.
그렇게 한참을 움직이는 것 같더 니, 다음 구석에 도달했는지 곧 부 스럭하는 인기척과 함께 세 번째 타 자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경원이겠네.’
다시 한참을 걷는 경원이로 생각되는 발걸음.
불이 온통 꺼져 있어 벽을 짚으며 이동하다 보니 속도도 느릴 것이고, 이 동아리방은 두 차례 확장을 거치며 은근히 넓어진 상태.
한 귀퉁이에서 다음 귀퉁이까지 가는 데 생각보다 시간이 걸린다.
곧 눈앞의 어둠 속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누군가 내 어깨를 툭 친다.
툭.
‘드디어 내 차례군.’
보이지는 않겠지만 고개를 끄덕이고 다음 칸으로 나도 이동을 시작했다.
‘원래는 하윤이가 있던 칸이려나.’
하윤이가 첫 시작이고 내가 마지 막. 하지만 제일 처음 하윤이부터 시작하며 자리를 옮긴 탓에 지금은 비어 있는 공간일 것이다.
야구로 치면 3루에 있던 내가 홈으로 돌아가는 격.
그 마지막 귀퉁이를 향해 나는 벽을 짚고 천천히 이동했다.
바스락, 바스락.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책상과 소파를 옮겨 놓기는 했지만 자리를 이탈하면 부딪칠 수도 있다.
최대한 벽 쪽으로 가까이 붙어 안 전하게 한 걸음씩 움직였다.
체감상으로는 한참을 걸은 것 같은 데 아직도 먼 걸까.
조용한 암흑, 감각이 예민해져 있다 보니 멀게만 느껴진다.
툭.
이윽고, 더듬거리며 뻗어 가던 내 손에 무언가가 만져졌다.
벽이었다.
나는 별일 없이 다음 귀퉁이에 무사하게 도착한 것이다.
‘흠.’
뭐 없나 싶어서 이리저리 손을 뻗어 봤지만, 양옆으로 가로막고 선 벽만 느껴질 뿐.
완전히 비어 있는 벽의 구석이었다.
‘역시 이런 간단한 장난으로는 괴담을 불러낼 수 없는 건가……
하긴 그렇긴 하다.
이런 고등학생들의 장난 같은 걸로 괴담이 실체화돼서 나타나는 거라 면.
이 세상은 정상적으로 돌아갈 수 없었을 것이다.
마왕이 괴담을 보내든가, 아니면 시스템이 수집해 오든가.
역시 그 두 가지만을 기다려야 하는 걸까.
‘휴. 과학 선생은 맘대로 괴담을 써먹은 것 같길래 도전해 봤는 데……
이대로 그냥 끝?
···아니다.
모처럼 공들여서 암실로 꾸민 후 각 잡고 시작해 본 건데, 조금만 더 해 보는 건 어떨까.
이대로 내가 다시 다음 칸까지 이 동해 버리면?
그럼 무슨 일이 일어날까?
‘하윤이가 놀라겠군.’
···아니, 그 여자애한테 놀란다는 감정이 있기는 할까.
문득 궁금해졌다.
항상 태연한 표정으로 침착하고 친 절한, 조용하고 예의 바른 아이로 보이지만.
그 안에서는 무슨 생각을 하는 건 지 도저히 종잡을 수가 없었다.
이대로 하윤이를 놀라게 하면 반응을 하기는 할까?
‘해 보자.’ 그래도 한 달 넘게 지내며 느낀 하윤이의 성격으로는, 뭔가 화를 내 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슬금슬금.
그렇게 나는 어둠 속에서 하윤이를 향해 음습하게 다가갔다.
아까보다 훨씬 더 조심스럽게.
‘발소리도 내면 안 되지.’
물론, 양말 차림이긴 하지만 마룻 바닥에 스치는 소리조차 나지 않도 록 심혈을 기울였다.
숨을 죽여 가며 그렇게 한참을 이 동하던 중.
툭.
더듬거리던 손에 무언가 차갑고 딱 딱한 것이 만져졌다.
‘벽이네.’
나는 다시 빈 벽에 도달한 것이다.
‘ ···뭐지?’
구석에 찰싹 달라붙어서 사방으로 손을 뻗으며 더듬거려 봤다.
역시 귀퉁이다.
방금 내가 있던 곳에서의 다음 귀 퉁이.
당연히 하윤이가 있어야 할 곳.
그런데 아무도 없었다.
뭘까. 어떻게 된 걸까.
‘···알아차렸나?’
소리를 죽이고 이동했다고는 하지만, 역시 알아차리고는 슬며시 옆으로 도망간 것이다.
‘눈치가 빠르군.’
그러고 보니 하윤이는 결코 머리가 나빠 보이는 타입은 아니었다.
오히려 상대방의 위에서 항상 내려 다보며 농락하는 타입.
‘에잇. 한 번 더 간다.’
나는 오기가 생겨 다시 다음 칸을 향해서 옆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이대로 가면 중간에 하윤이가 있고, 귀퉁이에는 진희가 서 있겠지.
사삭, 사사삭.
그렇게 한참을 음습하게 게걸음 치며 손을 휘두르던 중, 곧 무언가에 손이 부딪쳤다.
‘잡았다!’
벽이었다.
나는 또다시 빈 벽에 도달했다.
하윤이는 어디론가 약삭빠르게 숨었다 치더라도, 진희는 어디로?
아니, 혹시 그건가.
하윤이 역시 나처럼 멋대로 게임을 이어 가고 있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구석을 빙글빙글 돌며 서로 술래잡기를 하는 격.
‘···역시 인하윤. 쉬운 상대가 아
냐.’
좋다!
어둠 속의 술래잡기를 시작하자!
나는 이제 발걸음을 숨기지도 않고, 사사삭 빠르게 다음 구석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툭, 이동한 빈 벽.
‘더 빠르게.’
이대로 당해서 내 뒤에서 쫓아오는 경원이에게 터치 당해 놀란다면, 부 장으로서 위엄이 서지 않는다.
그래도 잔머리 하나로 먹고 사는 나다.
인하윤, 터치해 주마!
사사삭, 사사삭.
어둠 속에서 음습하게 벽을 더듬으며 움직이는 나.
더듬더듬.
더듬더듬.
그렇게 다음 구석을 돌고, 그다음 구석을 돌고.
빈 벽.
빈 벽.
사사삭, 사사삭.
빈 벽.
사사삭.
빈 벽.
사사삭
빈 벽.
나는 그제야 뭔가 이상한 걸 눈치 채고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얘들아?”
“···저기 얘들아?”
우 W
“···우리 이제 그만하자. 누가 불 좀 켜 줘.”
우 W
“···그만하자니깐. 저기, 얘들아?”
“인하윤. 이진희. 대답 좀 해 봐.”
“···경원아? 경원아, 대답해 봐. 경원아?”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괴담 동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