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담 동아리-62화 (62/130)

62 화

아홉 번째 괴담 - 구석놀이 (3)

“경원아? ·.·하윤아?”

나는 중얼거리며 천천히 다시 벽을 잡고 뒷걸음질 쳤다.

역시 돌아오는 대답은 없다.

사방이 조용하다.

뭐지.

무슨 일이지.

지금껏 돌던 방향의 반대로 돌아 본다.

빈 벽.

다시 마주한 빈 벽.

아무도 없는 구석, 차가운 시멘트 벽.

“···후우, 후우.”

어둠 속에서 정신없이 돌다 보니 긴장해서 숨이 조금 거칠어졌다.

다시 호흡을 가다듬어 봤다.

도대체 무슨 일이지.

다들 어디로 간 거야.

나 혼자 아무도 없는 곳을 헤매고 있었던 건가.

어릴 때 술래잡기의 술래가 되었는 데, 눈을 감고 초를 다 세고 나니 다들 집에 가 있는 기분이다.

분명히 같이 놀고 있다고 생각했는 데 알고 보니 혼자였다는 두려움, 공허함.

“문… 문……

일단 나가자.

나가서 생각하자.

벽을 따라 이동했다 보니 부원들이 방의 가운데 숨어 있을 가능성도 있었지만.

이 적막.

뭔가 다르다.

혼자다.

“후우, 후우.”

지금 내가 있는 위치를 모르기에 일단은 벽을 더듬으며 문을 찾아 헤 맸다.

한 발자국… 두 발자국…….

‘···여기는 아니네.’

아무것도 없는 매끈한 시멘트 벽 뿌

‘다음, 다음 벽으로.’

천천히 벽을 더듬으며 돌면서 다시 생각해 봤다.

방금까지 나랑 같이 있었다고 생각 했는데.

분명히 우리 여기서 같이 돌고 있었는데.

안경원.

네가 내 어깨를 쳤잖아.

근데 왜 없냐고.

“후우, 후우.”

너무 어둠 속에서 헤매다 보니 머리가 조금 어질거렸다.

호흡을 가다듬으며 도착한 바로 옆의 구석.

«1그

이 벽도 아니었다.

느껴지는 건 차가운 시멘트 벽의 촉감.

“다음, 다음 벽으로.”

나는 벽을 잡고는 다시 다음 구석으로 이동했다.

스륵- 스륵-

이제는 발소리를 감출 필요도 없다.

최대한 빨리 여기서 나가야겠다는 생각뿐.

벽을 짚고는 허겁지겁 어딘가에 있을 문을 찾아 더듬거리며 옆걸음질 쳤다.

으 n T그”

정신없이 문을 찾아 벽을 짚어 가던 나는 어딘가에 부딪혔다.

툭.

서늘한 기운에 손을 들어 부딪힌 무언가를 만져 봤다.

빈 벽이다.

또 빈 벽에 부딪힌 것이다.

“그, 그럴 리가……

잠시 당황했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놀랄 일도 아니다.

벽의 면은 총 네 개.

지금껏 살펴본 면은 세 개.

다음 벽에 문이 있겠구나.

다음 벽에.

빈 벽.

“말도 안 돼, 말도 안 돼……

양손으로 벽을 짚고는 문이 있음 직한 곳을 찾아 다시 옆걸음질 쳤다.

하지만 느껴지는 것은 차가운 시멘 트뿐이다.

말도 안 돼, 말도 안 돼.

다시 한없이 벽을 짚고 이동했다.

툭.

아무것도 없는 차가운 시멘트 벽들을 짚고 이어진 그곳은 다시 공허한 구석.

“헉, 헉.”

그제야 눈치챈 나.

문뿐만이 아니라, 지금껏 이동하며 창문도 만지지 못했다.

동아리방의 벽은 총 네면, 그중 빈 시멘트뿐인 건 두 면밖에 없다.

나머지는 출입문이 있는 면과 반대 편의 창문이 있는 면.

잘못됐다, 뭔가 잘못됐다…….

반대쪽. 반대쪽으로 가 보자.

창문에 나무박스 붙여 놨잖아.

출입문도 촉감이 전혀 달라서 헷갈 릴 리가 없잖아.

다시, 다시 살펴보자. 다시.

“허억, 헉.”

한 걸음. 두 걸음. 세 걸음.

약, 스무 걸음 정도를 좁은 보폭으로 걸은 후에 도착한 비어 있는 구 석.

“다, 다음… 다음……

다시, 다시…….

다시 벽을 짚고 이동한다.

다시.

또다시.

그렇게 공황 상태에 빠진 채 한참을 어둠 속에서 돌고 돌다가 겨우 머릿속에 받아들였다.

창문도, 문도 없다.

여기 있는 것은 시멘트 벽뿐이다.

말도 안 돼.

여기, 우리 동아리방이 맞기는 한 걸까.

나는 한 손을 벽에 붙인 채 최대 한 다른 손을 뻗어 어둠 속에서 무언가 잡히는 게 있는지 찾아봤다.

내가 어디에 있는지 지탱해 줄 벽 마저도 잃어버린다면 정말로 공황상 태에 빠져 버릴 것 같아서.

왼손만큼은 절대 벽에서 떼지 않은 채 다른 손으로 어둠을 휘젓는다.

분명히, 분명히 책상, 화이트보드, 소파를 동방 가운데로 밀어 넣어 놨었다.

무언가 익숙한 것이 손에 닿는다면 간신히 이성을 유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탁-

휘젓는 손은 허공을 맴돌았지만, 뻗어 본 발에는 무언가가 걸렸다.

발로 그걸 툭툭 건드려 봤다.

벽에서 1미터 조금 넘게 떨어진 위치.

그곳 바닥에 무언가 있었다.

뭘까.

뭔가 물렁한 감촉.

책상이나 화이트보드는 딱딱하다.

소파일까?

소파는 가죽이라서 촉각이 다르니 깐.

=7=5三 =『·

다시 발로 그걸 건드려 봤다.

그리고 곰곰이 생각하다 소파는 아닌 것 같다는 결론을 지었다.

물론, 이 동아리방 안에서 물렁한 감촉을 지닌 건 가죽으로 이루어진 소파뿐이겠지만, 그것과는 확실히 차이가 있었다.

소파 제일 밑의 기둥 부분은 딱딱 하다.

하지만 지금 발에 치이는 이 물체는 그렇지 않다.

어떡하지.

확인해 볼까.

두렵지만 곰곰이 생각해 봤다.

이미 벽을 짚으며 돌고 도는 건 충분히 해 보았다.

나에게는 이 조용한 어둠 속에서 무언가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가만히 자세를 숙이고는 엎드려 봤다.

역시 벽에서 떨어지는 건 위험하다.

잠시 저 물체를 확인하러 가는 순 간, 영영 아무것도 없는 어둠 속에 남겨질 듯한 느낌.

양발을 벽에 붙인 상태로 엎드려 그대로 기지개를 켜듯 두 팔을 쭈욱 벌려 봤다.

체감상 거리로는 이렇게만 해도 충 분히 그 물체에 닿을 것이다.

이윽고 손에 그 물체가 잡혔다.

그리고 잠시 눌러 보던 나는 대번에 깨달았다.

‘사람이다!’

내가 손으로 잡고 있는 건 누군가 가느다란 팔과 교복의 옷감이 느껴 진다.

누구지.

안경원?

인하윤?

이진희?

가느다랗기는 한데 경원이도 남자 치고는 왜소한 체격이라 만지는 것 만으로는 누군지 구별이 안 된다.

역시 나는 혼자가 아니었구나.

일단 조금은 안도했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단지 기절해 있던 것뿐이다.

툭툭 건드려 봤지만 반응이 없는 쓰러진 누군가.

그래서 불러도 대답이 없었구나.

천천히 누군가의 등을 손으로 타고 올라가며 머리를 찾아봤다.

머리카락을 만져 보면 누구인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긴 머리면 여자일 테고 진희는 염 색해서 조금 푸석거릴 테니.

하지만 등을 짚어 가며 머리를 찾던 나의 손은 갑자기 허공을 짚더 니, 그대로 바닥을 짚고 말았다.

무언가 끈적거리는 따뜻한 액체가 바닥에 있었다.

머리가 없었다.

“허억, 헉.”

기겁하며 뒤로 흠칫 물러섰다.

그대로 최대한 벽에 밀착해서 찰싹 붙었다.

“헉, 헉.”

끈적거리는 피의 촉감에 기절할 듯 몸을 떨며 시멘트 벽에 손을 닦았다.

뭐야, X발.

뭔데 X발, 뭐냐고…….

어둠 속에서 공포로 미칠 듯한 기분, 그 속에서 간신히 이 상황을 벗 어날 방법을 생각해 봤다.

일단 자살하는 건 어떨까.

이해할 수 없는 지금의 상황 속에 서 덜덜 떨고 있는 것보단, 차라리 자살하는 게 훨씬 나을 것이다.

자살해서 시간을 되돌아가는 거다.

그 후에 빨리 대책을 세워 보“ 허억, 헉.”

벗어나고 싶다.

시체만 있는 어두운 암실에서.

지금 당장.

‘···그, 그런데 어떻게 자살하지?’ 그게 문제였다.

자살할 수가 없다.

저번에는 선아의 도움으로 방송국 옥상에서 뛰어내려 쉽게 자살했었지만.

여기는 아무것도 없다.

스스로 헤칠 수 있는 흉기도, 뛰어 내릴 창문도.

죽을 때까지 벽에 머리를 찧을 수도 없는 노릇.

영화에서는 가끔 혀 깨물고 죽거나 벽에 머리 박고 죽는 그런 장면이 나오지만.

나는 평범한 고등학생.

그런 미친 짓 따위 엄두도 나지 않는다.

죽을 때까지 머리를 벽에 박는다 고?

그런 마음을 먹는 것조차도 어마어 마한 의지가 필요한 미친 짓이고, 사람은 그렇게 쉽게 죽지 않는다.

머리를 박다가 기절해서 다시 깨어 나고, 또 영문을 모르게 되고.

그러니 그 방법은 보류.

어떻게 하지. 어떻게 자살하지.

“사, 상태창.”

파앗-

[2019년 4월 26일 금요일, 14:37]

[이준 - 2회차]

[괴담 포인트 : 225]

[인과율 : 12%]

일단은 불안한 마음에 상태창을 띄 웠다.

다행히 어둠 속에서도 영향을 받지 않고 망막에 새겨지듯이 선명하게 떠오르는 상태창.

그걸 보자 그제야 마음이 조금은 안정되는 느낌이 들었다.

“후우. 후우.”

상태창. 상태창.

회귀 후 돌아갈 때마다 어지러운 내 정신을 수습해 주던 나의 버팀 목.

그 어떤 혼란 속에서도 지금의 날 짜, 시간을 보여 주는 확실한 척도.

“후우… 후.”

다시 한번 숨을 크게 몰아쉬어 봤다.

상태 창.

상태 창.

빛도 소리도 없는, 아무것도 판단 할 기준이 없는 이 암흑 속에서 상태창은 나에게 한 줄기 빛이었다.

“후우. 후우.”

[2019년 4월 23일 금요일, 14:38]

[이준 - 2회차] [괴담 포인트 : 225]

[인과율 : 12%]

가만히 상태창을 보면서 생각해 봤다.

당연히 지금의 상황은 괴담이 엮인 결과일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어떤 괴담에 얽혀 있는 걸까?

구석놀이의 이야기에 사람들의 머리가 잘려 나가고 암흑 속에 갇히는 상황 따위는 나와 있지 않았다.

이건 무언가 다르다.

그게 뭘까.

‘···안경원. 이럴 때 녀석이 살아 있었다면.’

아쉬워하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경원이는 이미 죽었다.

뭔가 방법을 써서 시간을 돌아가게 되면 물어보기로 하고.

우선은 지금 내가 알아낼 수 있는 눈앞의 일에만 집중하자.

그중에 하나가 바로 부원들은 언제, 어떻게 죽었냐는 것인가.

차마 시체를 찾아 어둠 속을 헤맬 엄두까지는 안 나고, 추측이기는 하지만…….

지금 내 눈앞의 시체 말고도, 아마 나머지 부원들도 이 방 어딘가에서 시체가 된 채 누워 있을 것이다.

이 동아리방에서 구석놀이를 한 멤 버는 경원이, 진희, 하윤이.

그리고 나.

하지만 살아 있는 건 지금은 나 혼자뿐.

‘언제, 도대체 왜……

천천히 구석놀이를 처음 시작할 때의 순서를 되짚어 봤다.

첫 타자 때 소리 없이 움직인 건 아마도 하윤이.

그다음 조심성 없는 발걸음은 느낌 상으로 진희.

그 후 내 어깨를 친 것은, 소거법을 통해 순서를 되짚어 보면 분명히 경원이.

여기까지는 아직 모두 살아 있었을 것이다.

내 차례가 되기 전까지는 분명히.

그리고 바통을 이어받은 내가 마지 막 귀퉁이에 도착 후 그대로 장난을 치러 하윤이에게 움직이는 사이.

‘···그 짧은 사이에 모두가 죽었다 고?’

목이 잘려서?

정말 몇 초밖에 되지 않는 순간이었는데. 도대체 무슨 일이.

이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누가, 어떻게 사람 세 명의 머리를 자르는.

“목이 잘린 여자 귀신이 웃으며 허공을 둥둥 떠다니고 있어요. 목이 잘린 여자 귀신이 웃으며 허공을 둥 둥 떠다니고 있어요.”

아무도 없을 어둠 속에서 갑자기 여자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씨, 씨발. 뭐야.

“허억, 허억.”

나는 그대로 벌떡 일어서서는 벽을 짚어 가며 목소리로부터 멀리 도망 갔다.

“목이 잘린 여자 귀신이 웃으며 허공을 둥둥 쫓아가요.”

“허억, 허억.”

여전히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그대로 벽을 짚어 가며 한참을 이 동했다.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한참을 허둥댔지만.

다음 귀퉁이는 나오지 않는다.

아니, 귀퉁이가 나오지 않는 게 아니다.

내가 벽을 짚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어느 순간부터 목 아래에 아무 감각이 없었다.

나는 도망치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목 잘렸어요.”

갑자기 세상이 정신없이 도는 어지러운 기분이다.

허공에서 떨어져서는 데굴데굴 머리가 굴러가는 탓이다.

쿵, 쿵, 쿵, 쿵, 쿵, 쿵, 쿵.

동시에 누군가 쿵쿵대며 어두운 동아리방 안을 마구 뛰어다녔다.

이리저리 쿵쾅쿵쾅 부딪치며 미친 듯이 공간을 뛰어다닌다.

“나는괴담 동아리의부장이준여자귀 신한테목잘려서몸을빼앗겼다나는괴담 동아리의부장이준여자귀신한테목 잘려서 몸을빼앗겼다”

여자의 머리가 내 잘린 몸뚱이 위에 얹힌 채로 내 성대를 사용해, 내 목소리로 그렇게 중얼거리며 동아리 방을 미친 듯이 뛰어다니는 가운데.

머리뿐인 나는 정신을 잃고 말았

다.

[당신은 죽었습니다.]

[체크 포인트에서 다시 시작합니다.]

[로딩중…….]

죽었다는 메시지가 이렇게 반가운 건 처음이었다.

괴담 동아리


0